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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매미처럼 처절하게, 풀벌레처럼 고요하게”
    화요일 저녁 모처럼 큰 마음을 먹고 산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선광현 목사님이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해서 혼자 먼저 걸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로 오는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저녁 8시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분들이었습니다. 성도들과 마주치면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아, 기도하러 오시네요. 저는 오랜만에 산행을 하러 갑니다.” 그런데 순간 멈칫했습니다. 성도들은 기도하러 오는데 저는 산행을 가고 있었으니까요. 순간 “나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중세시대 수도사 성 버나드가 말한 ‘하나님과 나의 합일의 4단계’가 떠올랐습니다. 첫째, 나를 위한 내 사랑의 단계입니다. 둘째, 나를 위한 하나님 사랑의 단계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 사랑의 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위한 내 사랑의 단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합일의 경지에서 나를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주님과의 합일의 경지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며 하나님 사랑이 내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을 밟고 나를 사랑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숨 쉬고 먹고 마시는 것조차 주님과의 깊은 합일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산행을 할 거야”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예수님을 태운 나귀를 생각했습니다. 이건 오리겐이나 이레니우스가 했던 풍유적 해석인데, 잠시 그걸 받아들였습니다. “내 한 발은 온유의 발이 되고, 내 한 발은 겸손의 발이 되리라. 내 한 무릎은 기도의 무릎이 되고, 내 한 무릎은 순종의 무릎이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을 올라갔습니다. 산에서는 풀벌레들이 얼마나 위대한 합창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 여름 내내 처절하게 울어대던 매미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1-2주 전만 해도 목이 터지도록 사랑의 연가를 불러대던 매미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어느 순간 저의 기도는 잠시 멈추고 사색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 옛날 신학생 시절 무등산에서 기도했을 때는 왜 풀벌레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매미 소리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그때는 저의 인생이 매미처럼 처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풀벌레 소리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 소리로 들리고 찬양 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만큼 저의 삶이 성숙해지고 감성의 지평과 사색의 여유가 생겨났다고 할까요. 저는 정상에 올라와 벤치에 앉아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기도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살아있음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땀을 흘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풀벌레 소리와 함께 고요한 기도를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땀을 흘리며 산행을 하고 또 이 땅에서 기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때로는 매미처럼 처절하게, 때로는 풀벌레처럼 고요하게 하나님 사랑의 연가를 부르겠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문득 산에 올라오다가 마주친 이주연 집사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소개해 주신 분입니다. 집사님은 기도하러 교회에 오는데 저는 산행을 하러 가서 조금은 겸연쩍은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집사님, 우영우 드라마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기도는 잘하셨나요?” 그런데 집사님의 첫 마디가 저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목사님, 혼자 산에 가셔서 어떡해요. 신변 보호를 해 드려야 하는데... 우리 목사님 혼자 산에 가시면 어떡하냐고 집사님들과 걱정을 하였어요.” 순간, 이렇게 담임목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해 주는 성도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매미는 7-8년 동안을 땅 속에 있다가 성충이 되어 잘해야 1-2주를 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지 짝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2세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렇게 처절하게 연가를 부르는 것입니다. 입추가 지나면 저녁에도 더 애처롭게 구애의 연가를 부르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제 인생의 겨울이 오기까지 때로는 매미처럼 처절하게, 때로는 풀벌레처럼 고요하게 기도하고 사명의 노래, 목양의 연가를 부를 것입니다. 그런 묵상을 하는 동안, 선 목사님과 송 집사님이 뒤늦게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날 밤은 정말 산속에서 홀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고요 속에서 드린 목양의 연가요, 적요의 기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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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8-2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포스트 엔데믹, 교회 세움 프로세스
    LA의 한 목사님으로부터 광복 77주년 기념 감사예배 설교를 해줄 수 없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목회자 세미나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 보자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주일예배를 빠질 일도 없고 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첫날 예상만큼 많은 분들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모일 수 없는 이유를 듣고 보니까 이해가 됐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의 광복절 메시지를 듣고 많은 분들이 큰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유튜브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소 목사님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 목사님은 그런 분이 아닐 텐데 하면서도 오해 아닌 오해를 할 뻔했는데 정말 애국적인 메시지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건 물론이고 이렇게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인지 몰랐습니다.” 광복절 감사예배가 끝나자, 주최 측에서 다음 날 목회자 세미나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간 분들, 그리고 목회에 대한 목마름과 갈망이 있는 분들은 다 올 겁니다.” 정말 다음날 목회자 세미나에 많은 분들이 온 것입니다. 저는 오전 10시부터 12시가 넘도록 브레이크 타임 없이 그대로 강의를 했습니다. 주제는 ‘포스트 엔데믹, 교회 세움 프로세스’였습니다. 사실 이 주제는 이번 주에 나올 저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저는 코로나가 바로 시작했을 때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라는 책을 이틀 만에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 책도 실제로 제가 작업하는 것은 하룻밤을 날 새워 한 것입니다. 물론 문서 목사님께서 워드 작업을 하느라 아주 수고를 했지만요. 하지만 그걸로 다 끝난 게 아닙니다. 원고를 가져오면 보고 또 보며 보완 작업을 몇 번을 했죠. 책에 이런 내용을 기술하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이 한국교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으며 앞으로 한국교회의 생태계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소극적이고 방어적 목회를 했지만 이제는 포스트 엔데믹 시대를 맞아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앞으로 엔데믹 기간에 뭘 해야 될 것인가를 설명하였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첫째, 신앙과 신학의 본질, 초대교회적 원형교회를 회복해야 한다. 둘째,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교회 세움에 올인을 해야 한다. 셋째, 주님의 강력한 임재와 운행하심을 회복해야 한다. 넷째, 폐쇄적 마인드를 극복하고 수용성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교회 이미지와 브랜드를 복원해야 한다. 여섯째, 병원 같은 교회(교회의 메디컬화)를 준비해야 한다. 일곱째, 교회의 새로운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지면상, 강의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강의를 할 때 한 사람도 조는 사람이 없었고, 시종일관 집중해서 진지하게 듣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들의 눈빛을 보니까 정말 교회 세움에 대한 갈망과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LA에 도착하자마자 광복절 집회를 인도하고 시차 때문에 잠도 설쳤기 때문에 조금은 쉬어가면서 적당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들의 강렬한 눈빛을 보니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시간 10분이 넘도록 열강을 했습니다. 사회를 보신 이성우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소강석 목사님이 와서 이런 강의를 하실 줄 몰랐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실제적이고 창의적인 강의를 하실 수 있는지 감동 받았습니다. 강의 용어도 생소하고 목회 콘텐츠도 새로운 발상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팬데믹에 갇혀 굳어 있었는데 다시 새롭게 한 번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 목사님께 기립하여 박수를 해 드립시다.” 저를 픽업해 주신 목사님이 준비위원장이셨는데 그분도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역대 LA 지역 목회자 세미나에 이렇게 많이 모인 적이 없습니다. 이민교회는 세미나를 해도 잘 안 모이는데 이렇게 많이 모여서 너무 해피하고 원더풀 합니다. 이민목회 역사상 목회자 세미나에 이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입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우리 교회에서 600명의 목회자를 초청하여 ‘위드 코로나, 우리 함께 갑시다’ 세미나를 한 적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분들이 세미나에 참석하여 도전을 받고 자신들의 지역에 가서 자발적으로 세미나를 열고 교회 세움 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저는 LA지역에서도 이런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분들의 교회 세움에 대한 갈망과 목마름, 눈동자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LA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아름다운 교회 세움 프로세스를 잘 적용해서 이민교회가 살아나고 거룩한 나비 효과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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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8-2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느 가시나무새의 목사 이야기
    지난 월요일 저녁에 내린 비는 비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물폭탄이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이런 물폭탄을 처음 봤습니다. 다음날 수련회가 있어서 일찌감치 자려고 수면제를 복용했습니다. 그런데 잠이 안 와 이상하다 싶어서 시설관리팀장인 김요한 안수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도로에서 흘러내린 물이 교회 주차장에 흘러들어 와서 한강을 이루고 있고 엘리베이터 안까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다른 직원들까지 전화해서 빨리 물을 퍼내라고 지시만 할 수도 있지만, 곧바로 내려갔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지하실이 한강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까 우리 교회는 고지대에 위치하였음에도 죽전천이 넘쳐 하수구의 물이 내려가지 않으니까 길에 쏟아진 폭우가 우리 교회 지하주차장으로 흘러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직원들과 함께 열심히 물을 퍼냈습니다. 워낙 주차장이 넓어서 각자 맡은 구역의 물을 한쪽으로 밀어내서 양수기로 퍼내야 하는데 정말 역부족이었습니다. 저는 몇십 분 만에 온몸이 땀으로 완전히 젖어 버렸습니다. 조금 전에 출장 드라이를 했는데 워낙 땀을 많이 흘려서 머리도 다 흐트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면제 기운도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고요. 그런데 저보다도 우리 교회 통제실 직원들이 더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남수현 장로님도 주무시다 보고를 받고 금방 달려오셨습니다. 게다가 갑자기 우당탕탕 하고 뛰어 들어오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김요한 안수집사의 가족들인, 윤정순 집사님과 요셉이, 영생이, 영원이가 한꺼번에 오는 것입니다. 그 녀석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진짜 물이 금방금방 줄어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최성주 집사 아들 주영이까지 왔습니다. 저는 부목사들에게 전화를 해서 나오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다음날부터 수련회를 하기 때문에 지장을 받을까 싶어서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하다 보니까 너무 힘들어 땅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반바지로 갈아입고 와서 또다시 물 퍼내는 일에 가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갈등이 생겼습니다. 김요한 팀장의 말을 들으면 새벽기도회에 오는 분들을 위해 꼬박 밤을 새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밤을 새워버리면 다음 날부터 있을 수련회 집회를 망쳐 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직원들에게 특별한 격려를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새벽 3시가 다 되어 제 방에 올라왔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수도권의 몇몇 대형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혹시 다른 교회들은 이런 일은 없는지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안 되는 걸 봐서 아무 일도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짧은 막잠을 자고 시간에 맞춰 오크밸리로 갔습니다. 개회예배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쏟아졌는지 모릅니다. 저는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원고를 얼마나 많이 고치고 보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준비된 원고보다도 훨씬 더 은혜로운 말씀을 순간순간에 터지게 해 주셨습니다. 어떤 손님이 와도 만나지 않고 대부분 집회가 끝나고 잠깐 인사만 나누었습니다. 왜냐하면 집중력이 흩어질까 싶어서입니다. 저는 낮에도 바깥에 나가서 밥 먹지 않고 그냥 옆방에서 해주는 밥을 간단히 먹고 계속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교회를 자기 몸처럼 사랑했던 직원들이 그렇게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수련회 집회는 마지막 날 폐회예배에 이르기까지 들불처럼 산불처럼 타오르고 타올랐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진짜 저는 한여름에 매미 같은 목사였습니다. 불과 2, 3주를 노래하기 위하여 7, 8년 동안 땅속에 애벌레로 있었던 매미처럼, 또 한순간의 최절정의 아름다운 노래를 위하여 자신의 가슴에 가시를 찔러대던 가시나무 새처럼 저는 후회 없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개회예배와 폐회예배가 가장 뜨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저는 3박 4일 동안 매미 목사였고 가시나무새 목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가시나무새처럼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저의 사명이 아직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일 테죠. 그래서 저는 다가올 신년축복성회에 때도, 또 내년에 장년여름수련회에서도 언제나 가시나무새 목사가 될 것입니다. 교회에 어떤 일이 생겨도 지시만 하지 않고 솔선수범하여 앞장서겠으며 말씀을 전할 때는 마지막 우는 매미처럼,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가시나무새처럼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사자후를 토해 내겠습니다. 강단에서 그렇게 사자후를 토해내다가 가시나무새처럼 쓰러지면 더없는 영광일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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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8-1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매미목사가 들려주는 숲의 이야기
    우리 교회 장년여름수련회는 3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장년여름수련회와 신년축복성회만 없어도 목회를 좀 쉽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이겠습니까.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서 수련회를 하다가 3년 만에 오크밸리 리조트에서 하는데 새로운 설교를 창작한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저의 서재에서 본당으로 가는 통로에 조그마한 공간이 있는데 주로 그곳에서 수련회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새소리도 들리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특별히 요즘처럼 폭염이 계속 될 때는 매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모릅니다. 매미는 일반적으로 알이 부화되고 나서 애벌레로 7년 정도 있다가 마침내 성충이 됩니다. 7년을 기다렸다가 겨우 1~3주 동안 울다가 장렬하게 생을 마치지요. 숫매미는 좀 크고, 암매미는 더 작습니다. 또 매미의 노랫소리도 다양합니다. 이들이 숲에서 아름다운 대합창을 이룹니다. 그럴 때면 마치 매미가 숲속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자기의 애벌레 시절부터 매미가 되어 숲에 나타나게 된 이야기까지 들려주려는 듯 노래하고 또 노래합니다. 매미에게는 시간이 없기에 어떻게든지 노래를 더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매미는 저녁에도 목청껏 노래를 하지요. 매미도 자야 되는데 마치 부르다가 죽을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애절하고 처절하게 노래를 합니다. 저는 주로 숲속의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수련회 말씀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매미가 숲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3박 4일 동안 성도들에게 성경 숲 얘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 곧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말씀해 줍니다. 성경이라는 숲에는 다양한 하나님의 사랑이야기,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가 원석으로 혹은 보화로 담겨 있습니다. 설교는 그 보화를 캐내는 것입니다. 보화가 원석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걸 잘 가공하고 세공을 해서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게 성경의 숲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번 장년여름수련회의 주제는 ‘하나님의 시계를 선용하라’입니다. 룻기에 보면 하나님의 시계란 말이 전혀 나오지는 않지만 철저하게 하나님의 시간대로서 진행되는 것을 봅니다. 나오미가 모압에 가서 남편을 잃고, 두 자식도 잃었습니다. 아마 나오미의 시계는 멈출 정도가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그 시간대에 의해서 계속 가고 있었습니다. 룻기는 짧지만, 룻기만큼 하나님의 헤세드, 하나님의 인애와 사랑 이야기를 근원적으로 설명해 주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수련회 때 하나님의 사랑의 숲, 하나님의 헤세드 숲 이야기를 노래하는 매미가 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3박 4일 동안 하나님의 구속과 사랑, 은혜의 숲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매미가 되려고 합니다. 마치 매미가 마지막에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부르다가 죽을 노래를 부르는 각오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일랜드의 전설에 나오는 가시나무새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가시나무새는 뾰족한 가시나무만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가장 뾰족한 가시나무가 보이면 그 가시에 자기 가슴을 콕콕 찔러서 피를 철철 흘리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그 뾰족한 가시에 가슴을 찔러 죽을 때 가시나무새는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번 장년여름수련회에 매미가 되고 가시나무새가 될 것입니다. 매미가 마지막에 땅에 떨어질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가시나무새가 가시에 찔려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다시 한 번 이번 여름수련회 때 매미 아니, 매미목사로 가시나무새처럼 쓰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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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8-0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꽃잎의 영혼들이여, 사무치는 이름들이여”
    미국 워싱턴에서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위하여 우리 성도들은 아시아나 항공으로 가기로 했고, 저는 대한항공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시아나 항공은 워싱턴에 운항하지 않고, 대한항공만 워싱턴으로 직항을 하기 때문에 대한항공을 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는 사실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월요일에는 대한항공이 워싱턴으로 운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과 몇일 전에야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가 아니라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정보를 미리 알았더라면 성도들과 함께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갔을 텐데 말입니다. 만약에 아시아나를 탔으면 그때 저희 교회 이원재 집사님이 기장으로 운항을 하였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뉴욕으로 가서 뉴욕에서 다시 거반 6시간이나 차를 타고 워싱턴으로 왔습니다. 워싱턴에 오자마자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고 다음 날 오전에는 고(故) 웨버 대령 묘소에서 헌화를 하였습니다. 웨버 대령은 6.25 때 강원도 원주에서 북한군과 싸우다 포탄에 맞아 오른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한국전 참전용사 메모리얼파크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추모의 벽을 추진해 왔던 분이십니다. 그리고 스톰스 소령 묘지에도 헌화식을 했습니다. 이분은 장진호 전투에서 부하들을 살리고 혼자 중공군과 맞서서 싸우다가 전사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장진호 부근에서 잠들어 있다가 2019년에야 유해를 찾아 알링턴 공동묘지에 안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묘지에 가서도 헌화를 하고 추모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팬타콘 호텔에서 400명의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을 초청하여 선물과 만찬을 제공하였습니다. 만찬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그분들 대부분을 호텔에 투숙을 하도록 모셨고 전 비용을 저희 교회가 담당하였습니다. 특별히 30여명의 준비위원과 안내위원들이 와서 준비를 하고 안내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초청받은 분들이 너무 감사하고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다음 날은 한국전 참전용사 전사자 추모의 벽 준공식 행사에 참석하여 수천 명이 모여 있는 가운데 기념시를 낭독하였습니다. 수천 명의 청중 가운데는 연방 상하의원, 장차관들이 계셨고 우리나라의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도 참석을 하였습니다. 제가 민간인으로서, 아니 외국인 목사로서는 유일하게 강단에 섰습니다. 솔직히 저의 영어 발음이 콩글리시 수준입니다. 하지만 다른 순서들은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잡담들을 하는 분위기였지만 제가 강단에 섰을 때는 청중들이 몰입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자신감 있게 기념시를 낭독하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어왔습니다. 끝나고 나니까 뒤에 앉아 있던 분들 중에도 한 사람도 잡담을 하지 않고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메릴랜드 주지사 사모님이 앉은 자리인데 그분도 “정말 영어를 잘했다고, 감명 깊었다”고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도들의 사랑과 헌신,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종대 장로님과 제니퍼 안 권사님이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기념시 ‘꽃잎의 영혼들이여, 사무치는 이름들이여’의 전문을 게재합니다. 6.25 전쟁의 화염 속에 타들어갔던 잿더미 한반도 그 폐허의 잔해 위에 전쟁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을 때 이름도 모르는 낯선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거친 바다를 건너 총과 포탄을 실고 온 그대들은 포탄의 화염 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 불꽃이었으며 검은 잿더미 위에 낙화한 꽃잎의 영혼들이었거니 그 꽃잎에 촛농보다 뜨거운 눈물이 맺혔고 검은 재위에 꽃잎의 영혼으로 산화하였습니다 기억의 벽에 기록된 꽃잎의 이름들이여, 사무치는 이름들이여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은 13만 5천의 꽃향기로 한미관계는 혈맹관계가 되었지만 그 피로 맺은 혈맹을 넘고, 경제군사동맹을 넘어 이제는 영적 동맹관계가 되도록 기도해 주소서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와싱턴에 오면 반드시 이곳에 들러 당신들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아, 가슴 절절히 외쳐 부르고 또 부르고 싶은 그 가슴 사무치는 꽃잎의 이름들이여 주님, 기억의 벽에 새겨진 자유와 평화의 수호천사들의 이름이 검은 폭풍이 몰아치는 휴전선 위에 사랑과 평화의 별빛으로 떠오르게 하소서 그 어떤 거친 바람에도 시들지 않을 자유의 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오늘 건립된 기억의 벽이 훗날 한반도 DMZ에서는 화해와 평화의 성막으로 드리워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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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7-3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낮은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건물을 준공한 이후부터 교회 안에 있는 서재 안 방에서 거해 왔습니다. 저희 집이 이사한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 방은 동굴과 같습니다. 창문이 두 개가 있는데 둘 다 이중창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어지간한 천둥이 쳐도 천둥소리가 안 들릴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화장실 쪽에 있는 창문을 열어놓으면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반대쪽을 열면 환풍기가 있어 지하에서 뽑아 올린 좋지 않은 공기가 제 방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문을 닫고 환풍기로 강제 통풍을 시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끔 본당으로 가는 통로 쪽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글을 쓰고 설교를 준비할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창문을 열면 뒷산의 맑은 공기가 그대로 들어오고 새 소리와 매미 소리도 들립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곳에서 여름수련회에서 할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요란하게 “웨엥~~”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밖을 보니 누군가가 교회 벽 위에서 잔디를 깎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비서까지 불러서 둘이 함께 소리를 쳤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만 있으면 들꽃이 만발해 있는 곳까지 다 깎아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청을 다해 둘이 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야 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서부터는 풀을 깎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저렇게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을 어떻게 잘라내려고 하십니까?” “저야 교회 요청에 따라 시킨 대로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담임목사이니까 제 말을 따라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렇게 해서 다행히 들꽃들이 피어있는 곳은 깎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교회 담 위에 피어있는 꽃들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하얀 꽃이지만 손톱만 하게 피어있는 꽃이었거든요. 그러나 저 꽃들도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겠습니까? 그런데 애처롭게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들을 제초기로 깎아버리면 얼마나 무참하게 쓰러져버리겠습니까? 꽃이란 유명하고 화사한 꽃만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이름 모를 들꽃이라 하더라도 꽃망울을 여는 순간 그리움이 되고 연인이 되는 것입니다. 연모함을 찬사하는 사랑이 되고 순결한 고백과 같은 존재이지요. 그러니까 꽃은 바라보기만 해도 애처롭거나 행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저에게 사랑의 손짓을 하는 모습과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며칠 후 다시 와서 보니까 꽃은 어엿하게 서 있습니다. 아주 작은 꽃이지만 그 난폭한 여름의 폭우를 맞고도 끝까지 고고하고 순결한 자태로 서 있었습니다. 물론 얼마 있으면 저 꽃도 지게 되겠죠. 하지만, 아직은 곱고 순결한 자태로 오롯이 서 있었습니다. 저 손톱만 한 하얀 꽃을 보노라니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벼락에 올라 깎여지지 않은 들꽃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리고 여린 개망초 꽃이었습니다. 이름 모를 작은 들꽃도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꽃들이 흔들리며 저에게 이런 소리 없는 외침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무참히 꺾이지 않고 이렇게 작지만 지금까지 순결한 모습으로 피어있습니다.” 저 여리고 한없이 부드러운 꽃을 꺾지 못하게 한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문득, 밤에 별빛을 사모하는 마음처럼, 아니 그 마음이 꽃잎에 어리는 듯했습니다. 갑자기 낮은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르고파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지구촌 속에 저 역시 너무나 작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동안 이름 모를 저 들꽃처럼 바람이 불면 흔들리다가 아침이면 이슬 한 모금 축이며 저녁이 올 때까지는 작은 향기라도 풍겨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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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7-2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때도, 지금도 목양일념 뿐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강원도 델피노리조트에서 전반기교역자정책수련회를 하였습니다. 첫날은 제가 강의를 했는데, 핵심 포인트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팬데믹의 안개를 뚫고 엔데믹을 딛고 서서 새로운 영토를 확장시켜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팬데믹을 맞아 생존형 교회가 되었고 엔데믹 단계에서는 생계형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계형 교회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목회자가 목양 마인드보다는 경영 마인드에 더 비중을 두게 됩니다. 어찌 대형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에게 목양적 마인드만 있겠습니까? 당연히 경영적 마인드도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정말 교회를 지탱하며 살리고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목회자에게 먼저 목양 마인드가 가득해야 생계형 교회에서 부흥하는 교회로, 이륙하는 교회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첫날 이런 강의를 했습니다. 둘째 날은 외부강사 강의와 교구별 사례 발표가 있었습니다. 발표 내용은 우리 교회가 어떻게 팬데믹을 뚫어왔고 엔데믹 시대에 어떻게 다시 새롭게 부흥하고 이륙하게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부교역자들끼리 발표하고 토론하게 할 수 있지만, 저는 수요일 오후까지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요일 오전에 제니퍼 안 권사님으로 부터 사진이 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찍은 사진, 미국의 마크 팬스 전 부통령과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곳에 참석을 하면 마크 팬스와 조용한 룸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참석 여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 새에덴의 영향력의 지경을 넓히고 글로벌한 영토를 개간하기 위해서는 마크 팬스 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교회, 우리 부교역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왔습니다. 또한 교무국장인 이종민 목사님과 의논을 해보니까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쪽보다는 우리 내부의 역량강화가 더 중요할 듯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목사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지 않고 수련회 장소에 남아서 교구 교역자들의 사역발표를 들어보니 정말 대단했습니다. 오늘날 새에덴교회의 예배가 회복되고 내부 역량이 강화되며 생계형을 넘어서 부흥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부교역자들의 놀라운 헌신과 발런티어 성도들의 자원하는 섬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까 옛날 일이 떠올랐습니다. 몇 분의 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대통령의 초청을 받았지만 제가 가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날 지방 신학대학교에서 집회를 하기로 했었는데 그쪽에서 절대로 양해를 안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약을 지키기 위해서 지방 신학대학교로 갔습니다. 그리고 집회를 인도하면서 “오늘 이 시간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청와대에 가기로 했는데 이쪽에서 양해를 해주지를 않아서 이곳으로 와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집회가 끝나고 학생들과 교수님들이 더 큰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제가 보통 때라면 우리 교회 교역자수련회이기 때문에 팬스 부통령을 만나러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엔데믹을 딛고 거룩한 플랫폼 처치를 세워야 할 위중한 시기이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우리 교회 교역자 수련회에 둔 것입니다. 제가 교역자수련회 첫날 저녁에 강의 한 것을 행동으로도 보여줘서 조금이라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새에덴교회만을 목양하는 목사가 아닙니다. 지금 한국교회 전체를 아우르며 연합사역을 하기 위해서 정무적 활동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초심의 신앙을 잃지 않고 목회의 본질과 내실을 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경영적 마인드보다는 목양적 마인드를 우선순위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새에덴교회가 더 견고하게 세워지고, 새로운 부흥의 동력으로 한국교회를 섬기며 글로벌한 리더십을 펼쳐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을 되돌아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목양일념으로 초지일관한 것 같아서 제가 제 자신에게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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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7-1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팬데믹을 뚫고 새로운 영토를 향하여”
    2년 반 전 즈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비종교인이 증가하였고 탈종교화 현상이 많아졌습니다. 특별히 기독교인의 감소가 더 많아졌고 교회는 심각한 이미지 타격까지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팬데믹은 지나갔고 에피데믹 단계(비교적 넓은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을 증가시키는 유행병)를 거쳐 지금은 엔데믹 단계(한정된 지역에서 주기적 혹은 국부적으로 발생하고 퍼지는 전염병)를 맞고 있습니다. 팬데믹은 생존적 상황을 일으켰고 엔데믹은 생계적 상황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팬데믹 단계와 에피데믹 단계까지만 해도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목회를 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교회마저도 이념주의와 체제주의로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그래서 아군끼리의 다툼과 내부총질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많은 풀뿌리 교회가 뽑혔다고 합니다. 이러한 때, 한국교회는 대안적, 진취적 의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회가 생계적 상황으로 전환되는 때에 교회는 더 선제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며 합리적이면서도 영적이고, 영적이면서도 전략적 정책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팬데믹의 안개 속에 갇혀 있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많습니다. 지난주에 제주도 서귀포 지역은 10m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개를 뚫고 제주시내로 오니까 날씨가 정말 청명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팬데믹의 안개를 뚫고 나가 거룩한 플랫폼 처치를 세워야 합니다. 플랫폼이라는 말은 과거에 나온 말이지만, 지금 제가 제시하는 플랫폼 교회상은 전혀 새로운 교회 모습입니다. 첫째, 신앙과 신학적 본질 위에 초대교회적 원형교회를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원형교회는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지, 앞으로 도래하는 교회 제4물결을 배격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엔데믹 시대에는 좀 더 다양한 듀얼 스타일의 교회나 하이브리드형 교회가 신생아처럼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엔데믹 시대일수록 성경적 신앙과 신학의 본질 위에 서서 정통교회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교회 제4물결이 몰고 오는 신생아적 교회의 모습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주님의 강력한 임재와 운행하심이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시스템이나 경영도 아닙니다. 물론 건물이 예배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교회도 시스템과 경영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운행하심과 임재가 빠져버린 교회는 아무리 건물이 화려해도 교회가 아닙니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으면 죽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매너리즘에 빠져 드린 예배를 받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가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말1:10) 그러므로 엔데믹을 맞고 있는 지금도 팬데믹의 안개에 갇혀서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매뉴얼만 작동시키는 교회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교회가 됐건, 큰 교회가 됐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임재와 운행하심이 가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코로나 기간에 시나치(Sinach)가 작곡한 ‘주 여기 운행하시네’라는 찬양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와 운행하심을 갈망하고 경험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강력한 퍼펙트 스톰과 불의 역사가 가슴 뭉클하게 느껴지도록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현장예배가 놀랍게 회복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셋째, 새로운 차원의 연합운동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연합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대형교회들이 생존형의 풀뿌리 교회들을 도와주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또한 팬데믹 시기에 서로를 비판하고 공격하고 정죄하던 마음이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분열된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서로 정죄하는 모습과 연합기관의 분열은 우리 스스로에 저주를 대물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어두움의 실체를 바로보지 못하고 여전히 분열의 정치와 파괴적인 정치공작을 일삼는 행위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안개와 흑암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상태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욱한 안개와 흑암을 뚫고 다시 일어서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영토를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새로운 부흥과 목회 해방 일지를 써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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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7-1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싱그러운 7월을 위하여”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가슴이 저렸을까. 오랜 기간 비가 오지 않았으니 가뭄이 깊어 산행을 할 때마다 내 발자국에 흙먼지가 포삭포삭 일었지요. 가보진 않았지만 시골 논바닥은 쫙쫙 갈라지기 시작하였으니... 논밭이 갈라지는 것은 땅의 가슴이 그만큼 타고 대지의 마음이 쪼개지는 것, 거기에다 산녘의 나무들은 한숨을 짓고 아우성을 쳤어요. 그러나 지금은 온 대지가 그토록 갈망했던 단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습니다. 타던 대지가 환호성을 지르고, 아프고 그립다고 아우성을 치던 나무들은 꿀비가 내린다고 대합창으로 노래하고 있네요. 지금 밖에 내리고 있는 꿀비는 온 들녘과 산을 푸르르게 하며 말라버린 계곡마저 물이 소리치며 흐르게 하고 있으니, 모두가 싱그러운 7월을 맞게 하고 있지요.” 지난 수요일 밤, 서재 반대쪽에 있는 저 만의 자그마한 공간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쓴 글입니다. 서재 안방에 누워 있는데 습도가 높아 눅눅했습니다. 욕실의 창문을 열어 놓으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산 공기를 마시며 시도 쓰고 독서를 하는 자그마한 뒷 공간으로 가보았습니다. 이 자그마한 공간은 건물을 설계할 때 제가 주문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창문을 열면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나뭇잎 소리, 빗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날은 제 안방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 천둥소리를 마음껏 듣기도 했습니다. 천둥소리는 6월의 소낙비를 더 풍성하게 해주고 그 비를 맞은 대지는 모두 환호하고 함성을 지르는 듯 느껴졌습니다. 7월이 오기 전 6월 말에 때마침 폭우가 쏟아짐으로써 싱그러운 7월을 맞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아니, 이 소낙비는 싱그러운 7월을 위하여 꿀비처럼 내리고 있는 것이라고요. 물론 지금은 이 단비가 꿀비이지만 더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수재가 일어나서는 아니 되겠지요. 그러나 지금의 단비는 열어 놓은 유리창을 두드리며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저기 멀리에 있는 그리움의 언덕으로 가보자고 말입니다. 이런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의 가슴은 이 가뭄처럼 척박하고 황폐하지는 않았을까. 이토록 척박하고 황폐한 우리의 가슴에도 단비는 내려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심령이 척박해졌고 교회들도 황폐한데... 이런 심령과 교회에 저 창밖에 내리는 단비와 꿀비처럼, 그런 폭우가 우리에게 내릴 수는 없을까. 주여, 우리 마음에도 단비를 내려주소서. 우리 마음에도 꿀비 같은 폭우가 쏟아지게 하소서. 잠들어 있는 우리의 마음 안에도 천둥이 치게 하소서. 모두가 이런 천둥소리에 영적 각성을 하게 하시고 철을 따라 내리는 우로를 인하여 심령이 부흥되고 교회가 부흥되게 하소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올해는 어느 때보다 싱그러운 7월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우리 교회는 더 그럴 것 같습니다. 우리 심령, 우리 교회에 단비가 풍성하게 내린다면 코로나19의 볼모로 잡혀 있던 영적 라이언 일병들이 해방되어 교회로 많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싱그러운 7월을 위해 우리 모두 각성하고 영적 부흥을 경험하며 예배와 교회를 힘껏 세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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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7-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다시 하나 된 원탁의 기사들처럼
    최근에 우리 교회 교무국장인 이종민 목사님이 총회 교회자립개발원 선진복지 기관 탐방을 하러 독일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저를 위해 ‘원탁의 기사 조각상’을 선물로 사 온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원탁의 기사는 아더왕의 전설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더왕은 브리튼 섬은 물론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오크니 제도를 정복하여 제국을 건설했고 이후 노르웨이, 덴마크, 갈리아를 정복하며 제국을 확장시켜 나갔던 왕 중의 왕이며, 수많은 무공을 세운 최고의 영웅이자 중세 기독교 위인이었습니다. 아더왕의 초기 설화들을 보면 아더왕은 브리튼의 영웅으로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고 초자연적인 존재와 싸우는 신화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브리튼인들의 멸족과 망국에 대한 위기감과 구원자에 대한 열망이 아더왕 전설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죠. 아더왕과 관련하여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엑스칼리버 전설입니다. 잦은 이민족들의 침략으로 인하여 브리튼이 혼란에 빠지자 사제들이 모여서 나라를 구해 달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바위가 내려왔는데 거기에 엑스칼리버가 꽂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검에는 이런 신탁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 검을 뽑는 자야말로 진정한 브리튼의 왕이 되리라.’ 이에 브리튼의 내로라하는 용사들이 검을 뽑기 위해 나섰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아무 이름도 없었던 어린 아더가 나와서 그 검을 한 번에 뽑아 버린 것입니다. 브리튼의 흩어진 나라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이끌 위대한 영웅의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더가 바위에 꽂힌 성검을 빼내어 브리튼의 왕이 되고, 침략자인 색슨족을 쳐부술 때 즈음의 일이었습니다. 아더를 따르는 기사와 제후들이 어느 날, 식사 시간에 서로 상석에 앉겠다고 자리다툼을 하면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언쟁은 결국 서로에게 검을 뽑아 드는 싸움으로 변하고 사상자까지 내고 말았습니다. 아더왕이 보니까 너무 가슴 아픈 것입니다. 기독교 제국인 브리튼을 지키기 위해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기사들이 자리다툼을 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을 맞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때 아더왕의 아버지 액터가 원탁을 선물하며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모두의 의견을 평등하게 포용하고 연합하는 성군이 되거라.” 바로 이런 전설을 배경으로 원탁의 기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더왕을 중심으로 한, 원탁의 기사들은 상하의 차이 없이 서로를 인정하게 되고 더 이상 싸움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탁의 기사들이 힘을 모아 이민족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강력한 기독교 국가를 지켜 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원탁의 기사는 연합과 평등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종민 목사님이 독일에서 ‘원탁의 기사 조각상’을 보고 “분열되고 흩어진 한국교회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애쓰시는 담임목사님이 생각이 나서 선물로 사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원탁의 기사 조각상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한국교회도 서로 자리의 싸움을 하면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얼마나 많은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과 악법들로 인하여 위기를 맞고 있습니까? 어떻게든지 우리가 한마음이 되고 연합하여 한국교회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처음의 원탁의 기사들처럼 왜 자리를 위해 칼을 뽑고 겨루려고만 하고 있습니까? 서로 간의 자리다툼으로 인해 왜 분열의 칼을 휘두르려 합니까? 지금 이때를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분열의 최후는 비참한 공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라도 하나 된 원탁의 기사들처럼 다시 함께 마주 앉아 한마음을 이루고 연합하여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을 막아 내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의 미래를 설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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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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