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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한 판결
    법관들이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사 30:18) 그들을 법관으로 세우시고(롬13:1), 마땅히 공의만 좇으라(신16:20, 사56:1)고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뇌물을 받고 판결을 불의하게 내려 힘없고 약한 자들을 울리는 불의한 법관들도 참으로 많다(욥 22:9, 렘 5:28) 우리의 법관들은 공의로운 재판을 하고 있을까? 일본 에도시대에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로 유명한 ’이다구라 시게무네‘가 있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그에게 공정한 판결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자 그는 ’나는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사람의 얼굴이란 보면 볼수록 미워지는 얼굴과 볼수록 선량해 지는 얼굴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눈에는 믿게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 악인일리 없고 내 눈에 선하게 보인다고 해서 꼭 선량한 사람일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피고와 원고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문을 닫고 혼자 방에 앉아서 재판 합니다. 유명한 재판관들은 얼굴을 보고도 악인과 선인을 구별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재주가 없으니 그저 사심 없이 사실 그대로 재판하는 것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오늘 날 우리 사회를 보자. 어떤 분이 우리 사회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는 부패가 극에 달하여 외국인들로부터 ‘ROTC 공화국’ 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고 한다. 즉 총체적 부패 공화국(Republic of Total Corruption) 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가 이러한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을까? 오늘 날 우리 사회가 이토록 혼탁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의를 신조로 하는 사법부가 빵 한 조각 훔친 사람에 대해서는 ‘법대로 외치면서도 힘 있고 돈 많은 권력층과 부유층에 대해서는 소위 ‘성역‘을 만들어 이들의 불법을 보호 묵인 은폐까지 함으로써 사법적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이같이 법관이 공정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다른 이유로 불의한 판단을 내린다면 그 나라의 정의는 바로 서지 못하고 나라의 기초가 흔들리게 된다.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할 의무는 재판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남을 판단하고 시비를 가리는 자들에게도 요구된다. 공정한 재판의 비결이 무엇일까? 먼저 선입견을 버려야한다. 법관은 재판받는 당사자들을 볼 때 은연중에 사회적으로 비천하거나 학식이 높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게 되고 그를 마치 죄인 것처럼 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삼상 16:7). 그리고 궁핍하고 비천한 자의 탄식을 들으시는 하나님은 선입견을 가지고 불의한 판단을 내리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시기 때문이다(겔 18:12, 13). 고로 법관들과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은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나 재물 등 외적인 모습을 보고 판단을 내리지 말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말씀과 공정한 양심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물질의 탐욕을 멀리해야 한다. 법관이 법정에서 불의한 판결을 내리는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재물 때문이다. 법관이 어느 한쪽으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자신의 금전적인 이익이 개입 될 때는 공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불의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미가7:3) 그래서 성경은 뇌물은 재판자의 명철을 흐리게 하고(전7:7) 판결을 굽게 한다고 경고하며 재판을 할 때 결코 뇌물을 받지 말라(신16:19)고 교훈했다. 아울러 이러한 일은 비단 법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나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자신의 금전적인 이익을 위하여 시비를 올바르게 가리지 않고 불의하게 판단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스스로를 망하게 한다. 왜냐하면 뇌물이나 불의한 재물은 지금 당장은 그 개인에게 유익이 되는 듯하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의 장막을 불태우고(욥15:34) 결국엔 멸망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권세자의 부당한 압력이나 청탁을 멀리해야한다. 왜냐하면 재판을 받는 한 쪽 편이 높은 권세를 가지고 있을 때 그는 법관에게 부당한 압력을 넣게 되고 법관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당한 판결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재판장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나 교회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시비를 가릴 때 공정하지 못하고 권세 있는 자의 편을 들고 약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허나 이것 또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시35:2) 고로 법관이나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은 선입견이나 재물이나 권세 때문에 불의한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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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
    2015-07-24
  •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8세에 아비를 잃는다. 폼페이우스가 죽인 것이다. 로마가 정쟁이 일상이었던 세월을 어린 브루투스는 어머니 세르빌리아의 손에서 자란다. 당시 로마에서는 미망인의 재혼이 당연시되고 있는 터였으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에 정성을 다한다. 어머니의 배경에는 카이사르가 있었다. 세르빌리아가 재혼하지 않은 것은 정부 카이사르 때문이란 소문이었지만, 카이사르에 대한 그녀의 일편단심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라는 사춘기 브루투스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먼 훗날 브루투스로 하여금 카이사르를 살해하게 하는 동인의 일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까. 청년 브루투스는 학업에 몰두한다. 아테네, 페르가몬, 로도스 섬 등, 당시의 최고학부를 모두 거친다. 여느 청년처럼 정치와 군사에 관심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30세가 될 무렵 금융업에 뛰어들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넘었기에 로마가 내전에 휩쓸렸기 때문. 36세가 되어서는 삼촌 카토에게 동조하여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했다. 폼페이우스가 누구였던가.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정서의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포로가 된다. 어머니가 나설밖에. 카이사르의 주선으로 용하게 살아난 브루투스는 이후 카토와는 손을 끊는다. “브루투스는 석학 키케로의 총애를 받을 만큼 해박한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지식과 교양이 반드시 지성과 일치하지는 않는 법, 그는 언제나 누군가의 영향 아래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로마인 이야기) 키케로가 브루투스의 연설원고를 두고 한 말이 있다. “문장구성은 치밀하고 논리적이지만, 정열이 부족하다. 남에게 자기 뜻을 전달시키고 싶다는 의욕이 모자란다.” 카이사르도 그의 연설을 듣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 젊은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키케로와 카이사르의 눈에는 그가 그리 탐탁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평생을 함께해준 애인의 아들이 정계에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브루투스가 처음부터 카이사르 살해음모의 주모자였던 것은 아니다. 진짜 주모자는 매제 카시우스. 그런데도 그가 주모자로 떠받들린 것은 브루투스의 명성을 이용해서 한 사람이라도 가담할 인사가 불어나게 하려는 카시우스의 책략 때문이었고, 그것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그에게 그만한 지도력은 있었다는 것도 확인된 셈이다. 롱기누스 카시우스는 브루투스와 동갑내기. 30세에 크라수스의 파르티아 원정에 종군하지만, 크라수스군의 궤멸로 끝이 난다. 그런데 카시우스는 총사령관 크라수스를 버리고 500명의 기병과 함께 도망쳐서 목숨을 건진 뼈아픈 경력을 남기게 된다. 또 내전이 일어나자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하는가 하면,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승리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여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에 도착하자, 카시우스는 싸워보지도 않고 투항했다.카이사르의 관용으로 거주선택의 자유를 얻은 그는, 이집트로 망명한 폼페이우스도, 북아프리카로 망명한 동지도 마다한다. 그렇다고 브루투스가 그랬던 것처럼 한 동안 근신하는 척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카이사르에게 협력하고 나섰다. 그에게 군사적 재량은 있었던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로 알려진 전투에서는 군단장에 임명된다. 이제 카시우스가 카이사르의 충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브루투스의 누이를 아내로 맞고, 브루투스와 함께 법무관이 된다. 41세. 앞길이 훤하게 트이는 듯 했다. 그러나 카시우스는, 옛날 크라우스를 버리고 500기병과 함께 뺑소니 쳤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주군 카이사르도 밑바닥에서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도 없었으리라. 카이사르가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자신의 장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가 말했다. “카시우스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다.” 카이사르의 잔머리는 잘 돌아갔다. 브루투스 뒤에는 카이사르의 비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원로원 의원은 없는 터에, “나 브루투스가 찌른 것은 사랑하는 카이사르가 아니라, 그의 야심이었노라!”하는 브루투스의 수사법은 성공을 거두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성공은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것이 역사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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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7-24
  • 카타콤에서의 주일 예배
    2015년 6월 28일의 주일은 필자에게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이 날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로마를 여행하고 있었다. 때 마침 주일날이라 예배를 기획했으나 호텔을 비롯한 여러 장소들이 제약을 받고 있어서 예배처가 마땅치 않았다. 현지 여행 관계자들과 논의 끝에 결국 섭외 된 곳이 카타콤 이었다. 즉 카타콤을 여행하는 동안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예배를 드리자는 것이었다. 카타콤은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안식처’란 뜻을 가지고 있는 카타콤베는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당시 로마의 가난했던 사람들은 가족을 위한 무덤을 땅 위에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돈이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해서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 필자가 탐방 한 곳은 싼 칼리스토 카타콤베(Catacombe di Callisto)였다. 이곳은 우리에게 잘 아려진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말했던 베드로 사도와 주님의 만난 곳을 기념하여 세워진 쿼바디스교회와는 1km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산 칼리스토의 지하 묘지는 로마의 지하 묘지중 최대로 제 1~4 세기동안 여기에 묻힌 기독교인만 50만명에 달한다. 19km나 되는 길이에 터널을 파고 토굴로 만들며 무덤에 홈을 만들어 그곳에 장사를 지냈다. 로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대단했고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거의 300년 동안 박해는 끊이지 않았고 박해를 피해 지하로 피하게 되었다.싼 칼리스토 카타콤베(Catacombe di Callisto)는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통랑을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구아피아 가도 부근에는 대소 25개의 카타콤베가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를 합치면 500Km나 된다이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곳은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로서 5층으로 되어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는 20Km이다. 이곳에는 3세기의 교황의 유골이 모두 모셔져 있고, 음악의 수호성자 성체칠리아의 묘도 있다카타콤내의 여러 곳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곳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증거들이 다양하게 나타나있다. 즉 물고기 그림은 익투스( 그리스어: ?χθ?? 이크투스)로서 성도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하였다. 이 얼마나 크나큰 은혜인가? 초대교회의 신앙이 살아 움직이는 곳에서 주일을 맞이하여 순교와 선교적 열정으로 가득찬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다니!. 필자는 시 113편을 중심으로 ‘찬양과 감사’라는 주제를 통해 설교를 하였다. 메시지의 내용은 이렇다. 오늘 시편의 기자도 우리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특히 시편 113편의 본문은 먼저 “할렐루야”로부터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을 맺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을 날마다 지속하는가? 하나님의 성호를 우리의 전심을 다하여 찬양해야 하지만, 우리의 이성이 그렇게 찬양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이 있다. 우리의 못난 체면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의 어지러운 환경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할 이유를 찾아야 하겠다.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가 감사해야할 신앙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카타콤 속에서의 예배는 성찬식과 함께 끝을 맺었다.“예배는 있으나 영성은 없고 인물은 있으나 인격은 없다. 건물은 있으나 교회는 없고 명성은 있으나 존경은 없다”고 말씀하신 김상복 교수님의 진단처럼 암울한 기독교의 현주소 속에서 카타콤의 신앙으로 회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아무 흠도 없고 거룩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네” 찬송과 함께 예배를 마쳤다. 필자의 평생에 이러한 기회를 허락하신 주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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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5-07-24
  • (정신재)바둑과 氣
    바둑과 氣 정 신 재푹신한 나무결 위바둑알의 멋진 낙점첩첩이 쌓인 마음빗어내린 수염과 이마올곧은 기개는 살아초록 물밑 자맥질.정중히 응시한 대면눈동자는 하늘을 덮고뿌린 씨앗 보기 전에짜여진 판을 훑는다서로가 읽어가는 승부수투시 속의 꽃무늬. 가끔 자녀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하나님은 어떤 자녀를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집 딸 아이는 나의 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빠. 이 작품이 좋은데, 이것 문예지에 한 번 내 봐.”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빠. 나 독후감 써야 하는데, 좀 도와 주세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나는 두 아이를 보며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면 어떤 아이를 좋아하실까. 나는 딸아이의 행동이 더 맘에 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주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사는 자녀를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오늘도 말씀 한 구절이 다가오네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신 8:7). 작가는 아름다운 세계를 찾아 독자들에게 보여 주는 데서 보람을 느낍니다. 주님이 나를 “아름다운 땅”에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하늘과 같은 시야를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임재한 세계를 보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기뻐 찬양하며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상처를 보여 주며 상처받은 제자들을 위로하는 주님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 칼럼
    • 기독시선
    2015-07-24
  • (정신재)문상(問喪)
    문상(問喪) 정 신 재딸아이의 병아리가 봄날의 햇살을 쪼던 오후아프지 마세요란 딸의 말이 이마를 간질이는데통풍과 오십견과 고혈압과 지방간이 어깨동무하고 오더니바람이 엄지 발가락을 찌르고세월이 어깨에 주사를 놓는데모래 바람으로 흩어질 몸에생명의 진액을 흘려 보냈던 청춘이 손 흔들며 지나가고꽃잎을 엮었던 대궁이가 여행을 떠나려는지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황혼의 빈혈 앞에엊그제 악수했던 묵객(墨客)이 떠났다는 비보허겁지겁 달려가는 발걸음에 매인 사연눈물이 말을 하고 공허가 모이를 쪼는데새싹처럼 일어서는 봄날의 하소연에도당신의 사연은 영원으로 가는 흔적마지막 웃음을 항아리에 담으려고영혼의 집 열쇠를 가슴에 담아가는우리들 행보는 바위를 닮나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거역할 수는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림으로써 모든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나사로는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다. 그의 동생 마르다는 예수님이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자, 그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로 생각하였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무덤에 있던 나사로를 살리신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물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 11:44).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표적은 복음서의 여러 군데서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눅 7:11-17),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다(눅 8:40-56). 역사상 죽은 자를 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었다. 필자 주변에도 연로하신 분들이 세상을 떠나갔다.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영생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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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시선
    2015-07-09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 속에 신앙 유산
    최근에 학생돌과 함께 크로아티아의 스플릿(Sprit)을 다녀오게 되었다. 스플릿(Split)이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크로아티아의 수많은 휴양지(休養地) 중의 하나로 생각한다. ‘중부 달마치아(Dalmatia) 해안의 꽃’이라고 표현될 만큼 도시 전체가 고풍스럽고 예쁘며, 주변의 풍광 또한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스플릿은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로 달마티안 지방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이곳도 긴 질곡의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 대전 후에는 문화, 언어가 다른 민족과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90년대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전쟁과 그 상흔은 아직까지도 도시 곳곳에 자욱하게 쌓여 있다. 그곳은 한국의 종편 TV에서 소개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였다.그러나 이곳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옛 달마티아의 땅이다. 스플리트에는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이자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로마유적 가운데 가장 보전상태가 뛰어나고 위엄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디오클레시안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이곳 출신으로서 로마의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정권을 자신의 두 심복들에게 이양하고 말년을 보냈던 장소였다.디오클레티아누스는 누구인가? 284년 로마의 황제로 즉위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사람이다. 달마티아 지방의 비천한 집안 출신인 그는 군대에서만큼은 두각을 나타내었다. 로마 제국의 방어를 위해서 남달리 애쓰고 있던 그는 군사적 위기를 상당히 잘 극복해 나가기도 하였다. 로마 제국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서 285년에 공동 황제를 임명하여 자신의 권력을 나누어 주었다.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재위 기간 초기에는 자신이 부황제로 임명한 갈레라우스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전임 황제들이 가졌던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하였다. 그러나 재임 기간의 말년에는 기독교가 로마와 로마의 신들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군대에 복무중인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신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신들을 모욕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궁정 내부에 있었던 로마 신들을 모시고 있는 사제들은 불경스러운 기독교인들 때문에 점성술의 효력이 발생하지 못한다는 견해를 황제에게 전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자신이 어떠한 노선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밀레투스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 신탁을 의뢰 했다. 돌아온 대답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게 되었다.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궁전과 군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퇴출되었다. 두 번째는 제국의 전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없애는 작업을 진행 하였다. 303년 2월부터는 더욱 무서운 속도를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게 되었다. 교회의 건물을 파괴 되었고, 거룩한 문서들은 몰수 되었다. 성직자들을 투옥되었고, 이교의 신전에 제사를 드리도록 강요 되었다. 일부 신자들은 순교를 감행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했으며, 또한 신앙을 버렸다.기독교인들을 무섭게 박해하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말년을 보내기 위해서 새워진 성이 크로아티아의 스플릿(Sprit)에 세워진 디오클레시안 궁전이다. 이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그곳을 방문하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역사는 흘러서 이렇게 무섭게 박해하던 황제의 궁은 쓸쓸한 초가집이 되었다. 그대신 그곳에 우뚝 서 있는 것은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과 성 도미니크 수도원과 그레고리우스의 동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그렇게도 무섭게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호화로운 궁전은 역사 속에서 유물로만 남아있고, 심하게 박해 받던 신앙의 유물들을 지금까지 보존해 오면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믿음을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짐을 느겼다. 역사는 놀라운 것이다. 한때 그토록 무섭게 타올랐던 세상의 힘들은 종이장 처럼 바람에 말라갔지만 위대한 신앙의 유산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꽃피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세계로선교학교(www.worldcan.co.kr)
    • 칼럼
    • 선교
    2015-07-09
  • 무지개
    1. 오래된 미국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를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도로시역을 맡은 주디 갈랜드(Judy Garland)가 부른 <Over The Rainbow>의 멜로디와 가사는 아직도 많은 이의 입술에 남아 있을 터.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Some day I'll wish upon a starAnd wake up where the clouds are far behind me.(어딘가 무지개 넘어 높이/자장가에서 듣던 나라가 있지오.//어딘가 무지개 너머, 푸른 하늘에선/그대가 꿈꿔오던 일이 이루어지지요.//언젠가 별에게 소원하면/저 멀리 구름위에서 깨어나겠지요.//)2. 김요섭(1927-1997)의 동시 <무지개>를 읽어본다. 어머니도 아버지도어린 날 무지개를 보시면서 자랐다내가 제일 처음무지개를 본 것은그림책에서다이상하다왜우리들의 하늘에서무지개가 뜨지 않을까?우리들이 과학자가 되면우주선 타고 여행 가기 전에하늘에 무지개를 걸어 놓겠다하늘과 땅무지개로 이어 놓겠다3. 이쯤해서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1770-1850))의 <무지개>를 읽어보자.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내 가슴은 뛰노라. 나의 삶이 비롯했을 때도 그랬고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내가 늙어서도 그렇기를 바라노라.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자연에 대한 경건으로 이어지기를. 요사이 무지개가 보고 싶다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5-07-09
  • 화평의 복음을 심자
    교회에 잘 나오던 한 장로 부인이 얼마 전부터 계속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 걱정이 된 목사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장로는 ‘몸이 불편해서요’ 라고만 대답했다. 다음날 목사는 그 집에 심방을 갔다. 그런데 병상에 누워 있으려니 생각했던 장로 부인은 뜻밖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목사는 ‘병환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심방왔는데요’ 하고 의아해 했다. 그러자 장로 부인은 ‘병은 무슨 병이요. 우리 장로가 또 거짓말 했군’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나는 교회에도 안가고 예수도 안 믿을 랍니다. 저 영감하고 이 세상에서 같이 사는 것만도 지긋지긋한데 저 세상에까지 갈 마음은 없다 구요. 영감은 부지런히 교회에 다니니까 천당에 가겠지요. 그러나 난 지옥으로 가야겠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오늘 날 많은 목회자들과 장로들과 성도들이 가정, 교회, 직장, 사회에서 주님의 화평의 복음을 심지 않고 불신자들처럼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안될 것 같아 이해타산을 앞세워 서로 대립하고 다툼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자들로 살아야 할까? 그 이유는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이다(마 5:9). 화평케 하는 자가 이렇게 복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화평케 하는 일이 주님의 사역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골 1:20). 그런데 이것은 역으로 그분이 오시기 전에는 이 세상에 화평이 없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는 이 땅에 화평이 없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은 이 세상은 평화로웠다. 하나님과 인간들은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고 사람들은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범죄는 그 모든 화평한 상태를 일시에 깨뜨리고 말았다. 친밀했던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범죄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다. 또한 인간의 범죄는 인간 간에도 갈등을 일으켜 서로 싸우게 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화목의 길이 막혀버렸다(사 59:2). 그리고 이는 인간에 있어서 모든 불행과 두려움의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인간에게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곧 화평의 하나님이(고전 14:33) 당신과 화목할 수 있는 그 길을 여신 것이다. 곧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만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백성이 범죄 하였을 때 제사장을 통해 소나 양을 제물로 삼아 화목 제사를 드렸다. 그와 같은 화목 제사는 곧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성육신시켜 세상에 보내심으로(마 1:23) 죄인 된 인간들을 대신하여 십자가 제단에서 죽게 하심으로 당신과 인간을 위한 화목제물로 삼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으로 당신과 다시 화목하게 하셨다(롬 3:24).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이다. 고로 인간이 화목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요 14:6, 행 4:12).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명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 땅에 화평케 하는 사역을 감당해야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기 때문이다(고후 5:18). 그렇다면 우리가 이 직책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 먼저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 시켜야한다(고후 16:20, 21).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세상 사람이 화목할 수 있을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믿을 때 화목할 수 있다(롬 5:1). 그러기에 하나님과 화목 시키려면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복음을 을 세상에 전해 주어야한다. 곧 평안의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좋은 기회만을 고대하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었든지 항상 주님의 화평의 복음을 전파해 한다. 다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해야한다. 주님의 사신된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주님의 지상 사역 중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 곧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이었기 때문이다(엡 2:16). 또한 주님께서는 직접적으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 5:9)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웃과 화목의 직책이 있음을 알려 주셨다. 따라서 우리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여야한다. 이제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와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 그리고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러기에 할 수 있는 한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하고 또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분쟁의 조정자가 되며 차가운 이 세상을 사랑과 선행으로 훈훈하게 해야 한다.
    • 칼럼
    • 목회자
    2015-07-09
  • (정신재) 緣
    緣 정 신 재진실의 싹 걸구면서 도솔천 꿈을 꾼다사랑하는 이 저만치 떼어 두고 거리를 잰다마지막 유언을 입가에 흘리면서....낮은 바람결에 눈발이 흩날리는 밤너와 나의 만남은 공허 속에 핀 종이꽃네 생각 뜻대로 흘러 어느 골을 또 밝히겠나.푸르던 나무 그늘 때 되면 드리우리손끝 매운 방황도 이쯤서 잠시 쉬고 싶다한 알의 모래로 만나 우리 서로 만년 인연.이문동 길목에 서서 퍼붓는 눈발을 본다어머니와 너의 미소가 중첩되어 떠오르고나는 또 하늘의 얼굴을 오늘에야 만난다. 창세기 24장을 보면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는 장면이 나온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가로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인연 없는 혼이 있을 수 없다. 위 시의 화자는 이와 같은 부부의 인연을 “우리 서로 만 년 인연”으로 형상화하였다. 아내와 남편의 얼굴에서 “하늘”을 본다면 더욱 더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할 수 있으리라. 영원으로 나아갈 부부의 인연을 생각하여 보자.
    • 칼럼
    • 기독시선
    2015-06-30
  • 가난한 대통령, 가난한 선교사
    세상의 모든 이론들과 직업들은 부의 창출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 이면서도 퇴임을 할 때에는 취임 때처럼 28년된 고물 자가용을 몰고 집으로 향하는 참으로 멋진 대통령이 있었다. 이는 우루과이 무히카 대통령 이다. 세계의 언론은 그 분의 아름다운 퇴임의 모습을 대서특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으로 불리던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이 1일 퇴임했다. 이날 무히카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1987년형 하늘색 폴크스바겐 비틀을 손수 몰고 대통령궁을 떠났다. 대통령에 당선됐던 5년 전에도 그는 이 차를 직접 몰고 출근했다. 거리엔 많은 시민들이 나와 “굿바이, 페페(할아버지)”를 외치며 떠나는 대통령을 배웅했다.무히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직원 42명이 관리해 오던 대통령 관저를 노숙인 쉼터로 개방하고 해변 휴양도시에 있던 대통령 별장을 팔아버렸다. 자신은 농가에서 직접 낡은 비틀을 몰고 출퇴근했다. 집엔 가정부도 없어 집수리와 가사노동을 직접 했다. 대통령이 된 뒤 달라진 것이라면 경호를 위해 경찰 2명이 인근에서 대기했다는 것뿐이었다.무히카 대통령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며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돈을 다 갖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자신의 인생관을 밝혔다. 자신의 검소함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세상이 제정신이 아니다. 내가 평범하게 산다고 놀라워하는데, 그런 관점이 오히려 걱정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국민은 그를 열렬하게 지지한다. 물러나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65%에 이른다. 당선 당시 지지율 52%를 뛰어넘는 수치다. 이런 지지율의 밑바탕엔 비단 그의 검소한 모습만 작용한 것이 아니다. 주말에 농사를 짓고, 태풍이 오면 동네 이웃의 집을 고쳐주기 위해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재임 기간 평균 5%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이 세상에는 또 하나의 가난한 자가 있다. 이들이 바로 선교사님이시다. 최근 필자에게 선교지에서 학교를 운영하면서 겪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편지로 써서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그동안 자세한 선교소식을 전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말씀 드리고 싶었으나 말씀드릴 수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함께 8년 동안 일했던 빌리가 자신이 학교의 이사장이며, 교회의 담임 목사라고 하면서 구테타를 일으켰습니다. 제가 자신을 교회에서 나가게 하려고 했다고 오해하면서 말입니다. 학교의 이사들은 모두 빌리와 그의 아내, 성도들로 구성하였고, 성도중 한명도 빌리의 친척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의 이름만 빌려서 제가 모든 일들을 결정하고 학교의 운영도 하고 후원도 하였지만, 서류상으로는 빌리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 학교의 소유권을 주장하면 저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 결과, 제가 지난 8년 동안 운영했던 학교를 빌리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지난 1월에 결정된 일입니다. 11월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긴장의 연속입니다. 빌리는 학교가 목적이 아니라, 학교의 이사임을 앞세워 학교 부지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저에게도 제가 교회를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다행히, 학교 부지는 종교법인으로 등록을 해 놓아서 학교 부지는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세운 학교가 빌리에 의해 배신을 당하며 학교 운영을 빼앗긴 사건에 대해 세상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시장과 부시장, 시의원들이 나서 중재를 하였고, 빌리와 성도들의 사임을 받아 다시 학교의 운영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학교는 선생님들의 보고에 따르면 2014-15년 학기에 5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하였습니다. 선생님들 월급, 연금, 의료보험, 주택 부금등 체납된 금액입니다. 그리고, 빌리를 내어보내는데, 아무리 미워도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고, 500만원 정도는 합의금으로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아픔을 넘어 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고 계신 다른 성도님들께 함께 벨학교의 소식을 나누어 주시며 선교의 동역자를 모아 주시면 더욱 더 감사하겠습니다. 4월 안에 약 1,000 만원의 선교 후원금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선교 현지에서는 날마다 지원금이 오도록 기도하고 있다. 필자도 후원금 1,000여만원이 당장 해결되어서 잘못된 욕심으로 인하여 선교사들의 피를 빨고 있는 현지인 손에서 학교를 되찾아 정상적인 선교사역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특별 은혜를 주시도록 기도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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