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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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브루투스는 8세에 아비를 잃는다. 폼페이우스가 죽인 것이다. 로마가 정쟁이 일상이었던 세월을 어린 브루투스는 어머니 세르빌리아의 손에서 자란다. 당시 로마에서는 미망인의 재혼이 당연시되고 있는 터였으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에 정성을 다한다.
어머니의 배경에는 카이사르가 있었다. 세르빌리아가 재혼하지 않은 것은 정부 카이사르 때문이란 소문이었지만, 카이사르에 대한 그녀의 일편단심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라는 사춘기 브루투스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먼 훗날 브루투스로 하여금 카이사르를 살해하게 하는 동인의 일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까. 청년 브루투스는 학업에 몰두한다. 아테네, 페르가몬, 로도스 섬 등, 당시의 최고학부를 모두 거친다. 여느 청년처럼 정치와 군사에 관심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30세가 될 무렵 금융업에 뛰어들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넘었기에 로마가 내전에 휩쓸렸기 때문. 36세가 되어서는 삼촌 카토에게 동조하여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했다. 폼페이우스가 누구였던가.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정서의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포로가 된다. 어머니가 나설밖에. 카이사르의 주선으로 용하게 살아난 브루투스는 이후 카토와는 손을 끊는다. “브루투스는 석학 키케로의 총애를 받을 만큼 해박한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지식과 교양이 반드시 지성과 일치하지는 않는 법, 그는 언제나 누군가의 영향 아래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로마인 이야기)
키케로가 브루투스의 연설원고를 두고 한 말이 있다. “문장구성은 치밀하고 논리적이지만, 정열이 부족하다. 남에게 자기 뜻을 전달시키고 싶다는 의욕이 모자란다.” 카이사르도 그의 연설을 듣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 젊은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키케로와 카이사르의 눈에는 그가 그리 탐탁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평생을 함께해준 애인의 아들이 정계에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브루투스가 처음부터 카이사르 살해음모의 주모자였던 것은 아니다. 진짜 주모자는 매제 카시우스. 그런데도 그가 주모자로 떠받들린 것은 브루투스의 명성을 이용해서 한 사람이라도 가담할 인사가 불어나게 하려는 카시우스의 책략 때문이었고, 그것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그에게 그만한 지도력은 있었다는 것도 확인된 셈이다.
롱기누스 카시우스는 브루투스와 동갑내기. 30세에 크라수스의 파르티아 원정에 종군하지만, 크라수스군의 궤멸로 끝이 난다. 그런데 카시우스는 총사령관 크라수스를 버리고 500명의 기병과 함께 도망쳐서 목숨을 건진 뼈아픈 경력을 남기게 된다. 또 내전이 일어나자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하는가 하면,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승리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여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에 도착하자, 카시우스는 싸워보지도 않고 투항했다.
카이사르의 관용으로 거주선택의 자유를 얻은 그는, 이집트로 망명한 폼페이우스도, 북아프리카로 망명한 동지도 마다한다. 그렇다고 브루투스가 그랬던 것처럼 한 동안 근신하는 척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카이사르에게 협력하고 나섰다.
그에게 군사적 재량은 있었던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로 알려진 전투에서는 군단장에 임명된다. 이제 카시우스가 카이사르의 충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브루투스의 누이를 아내로 맞고, 브루투스와 함께 법무관이 된다. 41세. 앞길이 훤하게 트이는 듯 했다. 그러나 카시우스는, 옛날 크라우스를 버리고 500기병과 함께 뺑소니 쳤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주군 카이사르도 밑바닥에서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도 없었으리라. 카이사르가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자신의 장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가 말했다. “카시우스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다.”
카이사르의 잔머리는 잘 돌아갔다. 브루투스 뒤에는 카이사르의 비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원로원 의원은 없는 터에, “나 브루투스가 찌른 것은 사랑하는 카이사르가 아니라, 그의 야심이었노라!”하는 브루투스의 수사법은 성공을 거두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성공은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것이 역사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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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와 카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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