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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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Bible School Journal 지에 소개된 이야기이다. 미국 독립 전쟁 시절 펜실베니아에 사는 ‘피터 밀러’ 목사님은 각계각층에서 모두 존경받았지만 유독 인근에 사는 단 한 사람만은 그를 몹시 증오했다. 어찌나 미워하고 욕했던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나라에 대한 반역을 꾸미기도 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밀러 목사님은 이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워싱톤 장군에게 달려가 그의 목숨을 살려 줄 것을 애원했다. 그러나 워싱톤은 말했다. ‘미안하지만 친구를 위한 당신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친구라고요?’ 밀러 목사님이 외쳤다.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내가 만난 최악의 적입니다’. ‘적이라고요?’ 워싱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신은 원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97km나 되는 먼 길을 걸어왔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좀 별 문제군요? 당신을 봐서 그를 용서 하리다’ 워싱톤은 특사 통지서에 서명을 해주었고 밀러 목사는 즉시 사형 집행이 열리는 장소로 달려갔다. 그곳은 밀러 목사가 출발한 지점으로부터 80km나 떨어져 있는 곳 이었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죄수가 막 사형대에 올라서려던 참 이었다. 사형수는 밀러 목사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저기 늙은 피터가 오는군! 오로지 내 목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복수의 기쁨을 즐기려고 에프라타(Ephrata)에서부터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하지만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밀러 목사는 군중들을 밀치고 나아가 워싱톤 장군의 사면 통지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실로 악을 선으로 갚는 다는 것은 어렵다. 말로는 쉬울지 모르나 막상 자기에게 그런 일이 닥쳤을 때는 참 실천하기가 힘들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고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는 웃는 얼굴로 대하고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는 화난 얼굴로 대하는 것은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원수를 사랑하고 나와 핏줄과 사상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허나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밀러 목사님을 보자. 그가 악으로 선을 갚는 행동을 보며 느끼게 되는 것은 참 그리스도인 이라면 남다른 행동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주님을 본받아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도 사랑하고 용서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구체적인 행동의 결단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참으로 어렵지만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어찌 해야 하겠는가?
 주께서 왜 원수를 대적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라 하셨을까? 이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사실 폭력으로 원수를 거꾸러뜨려 복수하는 일은 한편으로는 시원하고 통쾌한 일일 수도 있다. 허나 그로인해 내가 상대편의 원수가 되고 그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보복을 가해올 것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더욱 큰 문제들을 발생 시킨다. 또 원수를 해하려 하는 이는 우선 자기 자신이 더러워 진다. 세상 죄와 불의에 오염되고 타협하기 쉽다. 그리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대신 사단의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을 논하거나 그것을 주제로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이념이나 구호가 아닌 어떠한 형태로든 구체적인 실천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사랑을 단지 주제로 삼고 논하는 것으로 사랑의 실체를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반영된 때에야 사랑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그렇다 기독교는 분명 사랑의 종교이다. 즉 사랑을 원리로 하는 종교이다. 하지만 요즈음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부를 때는 그것을 인정하기 보다는 조롱하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 것 같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가 분명하고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확실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만 사랑을 외침으로 사랑이 구호로만 그치고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자. 혹시 형제의 사소한 잘못이나 공격에 못 이겨 복수심의 칼을 갈고 있지는 않을까? 그것을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리지는 않을 까? 헌데 이러한 것은 우리의 인격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무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묵상하고 이 사랑을 바로알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주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또 하나님의 구속의 원리대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진정한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원수 대신 친구를 얻게 될 것이고 만일 그가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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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선대하는 밀러 목사님(Peter 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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