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1.jpg
1960년대, 경향의 레코드 가게를 달구었던 이미자의 노래 <임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 부르리까>의 노랫말의 대강은 이렇다. “...사랑을 하면서도/마음으로만 그리워/그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것처럼/울어야만 됩니까” 
거의 비슷한 시기, 극장가에서는 이성구 감독, 신영균, 윤정희 주연의 <당신>이 ‘고무신부대’의 발길을 사로잡았는데, “여자 고등학교 수학 교사 영재(신영균 분)와 새로 부임한 젊은 여교사 수진(윤정희 분)이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영재에게는 이미 가정이 있는지라, 두 사람은 고민하다 헤어진다는 멜로드라마. 거기에 <당신>이란 제목이 붙여진 것은 수진이 영재에게 마음 놓고 ‘당신’이라 불러보고 싶어 했던 사연을 클로즈업한 것이다.” 
그럴 즈음, 바다건너 일본에서는 남극 관측소에 가있는 남편에게 써 보낸  여인의 편지 한 통이 세인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데, 편지지를 채운 글자는  단지 “아나타(=당신)”하는 세 글자였다는 것.
그러니까 “당신”은 알뜰한 사랑의 심정을 담은 부부간의 호칭으로 쓰여 온 단어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쓸 수 있는 호칭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기”라든가 “이녁”이란 말로 대신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어법이 비슷한 우리나라와 일본사람들은 “당신”이라는 호칭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런 경우, “당신”이나 “아나타”는 영어로는 “you”가 아니라, “darling”으로 번역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호칭(呼稱)으로 “당신” “너” “그대”와 같은 인칭대명사를 쓰지 않는다. 집안 어른들에게 “당신”과 같은 대명사를 쓰는 사람은 없다. “형”, “누나” 대신으로도 쓰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이나 직장 상급자와의 대화에서도 “선생님”이라거나 “과장님” 이라 부르지 “당신”이나 “그대”라는 인칭대명사로는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당신”이란 말은 “너” “그대”와 비교해서 경어에 가까운 호칭이지만, 실제로는 손위에게 쓰기가 불편한 말이다. “당신”에다 “님”을 덧붙여보아도 비꼬거나 장난스러운 말은 될지언정 경어는 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윗사람에게 사용할 만한 인칭대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정을 벗어나서도 “아저씨, 아주머니”로 부를지언정 “당신”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시비가 붙었을 때가 아니면 “당신”이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장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너”하고 부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도전이라 간주해도 좋을 것이고, “너” 대신 “당신”이라 한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혹 현장에 있지 않는 제3자를 아주 높여 “당신”이란 대명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자리에 계시지 않는, 이를테면 돌아가신 부모를 지칭하여 “당신께서 평소 아끼시던 물건 …” 등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삼인칭인 경우에 지극히 한정적으로 쓰일 뿐이다.  
그런데도, 공중기도에서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당신”을 쓰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교회들의 현실이다.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선교사들의 말버릇을 받아들인 탓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대체로 선구자의식이 강한 지도자들이 즐겨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의 성찰과정은 거쳤으리라  믿어본다.
아이가 엄마에게 화를 낼 때, 영어로서는 “I hate you”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나는 당신이 미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기껏 “엄마 미워” 정도로나 번역할 수 있을 터. 인칭대명사의 발달과정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유럽언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대목이 인칭대명사, 중에서도 호격(Vocative)이라는 사실은 번역작업에 손을 대본 사람이라면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왕 우월한 문화권에서 들어온 종교이니 되도록 그쪽 언어에 동화하는 편이 여러 가지로 편리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미로 “하나님” 호칭을 “당신”으로 고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각도에서 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거추장스럽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연되이...”운운하면서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쓰고 있는 평균적인 우리말과 교회용어 사이의 골을 메꾸기 위해 애써보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임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