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1.jpg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영웅호걸들이 발호(跋扈)하는 법. 중국의 진 왕조(秦王朝) 말기가 그랬다. 이름이 알려진 영웅들에게는 자신의 꿈이나 앞날을 맡겨 보려는 인재들이 모여들었지만, 크고 작은 영웅들 가운데서 최종적으로 가장 많은 인망을 모아드린 영웅이 바로 유방(劉邦)이었던 셈이다.
인망이 유방에게 쏠린 것은, 첫째로 그가 가진 “들을 귀” 때문이었다고들 말한다. 다른 영웅들이 자존심을 앞세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는 반면, 유방은 아랫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경쟁자 항우(項羽)에게는 없는 장점이었기에...
항우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랫사람의 도움을 받아드릴 여지를 내줄 수 없었던 것이다. 명 참모로 알려진 진평(陳平)과 가장 뛰어난 무장 한신(韓信)도 원래 항우의 사람이었지만, 주공을 버리고 유방의 사람이 된 것은 항우와는 달리 유방이 “들을 귀”를 가진 영웅이었기 때문.         
경청(傾聽)이란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 것”. 들을 청(聽)자의 자원(字源)을 보면, “聽”의 오른쪽 부분이 덕(德)의 생략형으로 되어 있다. “德”의 원래 글자는 덕(悳). “곧은 직(直)” “마음(心)”이 곧 덕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니까 “聽”은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곧은 마음과 귀로 듣는 자세이다. 또 “聽”의 다른 쪽 하단을 보면, 한 일“一”과 마음 심“心” 으로 읽을 수 있는데, “마음을 하나로 모으다.” 는 뜻인즉, 들을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들어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것.
당시 중국은 의협(義俠)을 중시하는 풍조였다. 유방이 많은 신하를 통솔할 수 있었던 것은 “들을 귀”를 가진 “의협”의 사나이였기 때문. 유방이 존경하는 인물 중에 위(魏)나라의 신릉군(信陵君)이 있었다.  
이웃 조(趙)나라가 진(秦)의 공격을 받아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신릉군의 형은 진의 보복이 두려워 동맹국인 조나라에 명목상의 원군만을 보내면서도, 부하 장군에게는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도록 당부한다. 신릉군은 의협심을 배신하는 형의 태도에 화가 나서, 원군을 이끄는 장군을 죽이고 스스로 장군이 되어 진나라와 싸워 대승한다. 그의 의협심과 군사적 재능이 세인의 신뢰를 얻게 했던 것이다.
유방은 그러한 신릉군을 이상적인 지도자로 마음에 두었다. 자신은 신릉군과 같은 명문출신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힘없는 자들을 도와, 힘 있는 자들을 누르는”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유방은 패공(沛公)이라는 지방관원으로 있다가 거병하여 반란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되는데, 의협심은 그의 일생을 같이 한다. “패공은 이해득실로 군을 움직이지 않는 의협의 사람”이라는 평판이 늘 그를 따라주었다.  
인재가 모여들면 용인술이 요구된다. 유방의 인재등용 법은 남달랐다. 소개도 없이 불쑥 나타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쓸 만하다 싶으면 당장에 큰 자리를 주곤 했다. 장량(張良)과 한신(韓信)의 경우가 그랬다.   
그러한 “유방 표” 용인술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한 역사 소설가는, 이미 자리 잡기 시작한 유교적 가치관에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라 풀이한다. 조직을 정리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유교적 예법이나 사상이 편리한 도구가 될 수 있는 반면, 노장사상과 같이 무위자연(無爲自然)하는 이념은 조직을 흐트러지게 한다는 풍조 속에서, 유교적 이념이 조직을 경직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을 직시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경서를 깡그리 암기하고 있는 수재만이 요직을 차지하는 조직은 보신과 선례주의가 판을 치게 마련인 것을.   
장량이나 한신이 발탁되는 것을 지켜보는 거병 초기부터 그를 따른 중신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터. 그러나 그들이 불평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근본적으로는 자신들이 주군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으리라. 어찌 주군의 뜻을 속속들이 알 수 있으랴만, 거의 언제나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져왔었다는 신뢰가 있었기에, 맡기고 기다릴 수 있었으리라.    
경영학이 되었거나, 용인술이 되었거나, 밑바닥을 흐르는 것은 소통과 신뢰이고, 그 둘은 별개의 것이 아닌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enoin34@naver.com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유방(劉邦)의 경역학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