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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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허생전의 내용이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변 씨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 생이 곧 변 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엇을 좀 해보려고 하니 만 냥을 꿔 주시기를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요‘ 하고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변씨의 자제와 손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 씨가 말하였다. ‘이건 너희들이 알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주면 모르되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 하겠느냐?’
허생은 만 냥을 받자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안성으로 내려갔다. 안성은 경기도 충청도 사림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삼남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추, 밤, 대추며, 석류, 귤, 유자 등 과일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얼마 안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17세기 중반 조선효종 때 경제 구조가 취약함을 한탄하였다. 자고로 사람들은 돈을 빌려 줄 때 결코 아무에게나 빌려 주지 않는다. 돈을 부탁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대단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와 요건을 붙인다. 헌데 변씨를 보자.  비록 불신자 이지만 초면의 허생에게 이름도 묻지 않고 어떤 조건도 제시 하지 않은 채 거금을 내어 주었다. 오늘 날 목회자, 장로, 성도들이 본받을 만한 인물이 아닐까? 
깊이 생각해 보자. 오늘 날 우리들에게 물질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수단 방법을 다하여 물질을 모으고 저축한다. 그런데 왜 아까운 물질을 구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할까? 그것은 주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쓸 곳에 쓰라고 물질을 주셨고(마 25:14, 15) 누구에게든 구하는 자에게 주라(눅 6:30)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즉 너희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까다롭게 조건을 붙이지 말고 또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고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아예 ‘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가 물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색하여 물질을 구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지 않으면 그것은 큰 죄악이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돈 주머니를 회개한 자가 진정 회개한 자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생명처럼 사랑하여 더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탐심 때문에 베푸는 삶을 외면하고 포기한지는 않았던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에서 소유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세상의 곳간을 넓히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지도 또 행복하게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쌓아두려면 영원한 곳간에 쌓아두어야 할 것이다. 즉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선용하지 않고 창고에 쌓아 두기만 하면 결국 못쓰게 되고 녹슬고 또 도적들의 사냥감이 되기 때문이다.
한동안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위 대도들이 턴 집들은 묘하게도 모두 다 그 집 은밀한 곳에 현찰을 둔 집들만 공통적으로 털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자들이 물질을 구할 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외면하거나 냉정하게 거절하지는 않았는가 말이다. 이제 지금 우리를 살펴보자. 우리는 재물을 쌓아 놓고만 있는 어리석은 자는 아닌지, 그리고 주님과 세상의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기려고 하는 기회주의자는 아닌지 말이다. 고로 우리는 부에 대한 탐심, 성에 대한 탐닉, 세상의 영예와 소유에 대한 집착 등을 과감하게 버리자. 주님께서 주신 물질을 구하는 자에게 주지 않고 자기를 위해 치부만 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자산들이 상하여 못쓰게 되고 또 엉뚱한 자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며 평생 후회하고 후일에 주께 책망을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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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는 자들에게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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