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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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로교단이 총회에서 ‘다시 거룩하기’의 표제를 내 건지 벌써 6개월을 넘겼다. 이 교단의 한 목회자가 교단이 내건 말씀에 집중하기 위해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는 말씀으로 가까이 나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고인이 되신 오병수 목사님의 꿈을 꾸었다. 겨울인 듯, 목사님께서는 여느 때 같이 외투를 입으시고 모자를 쓰시고, 교역자님들의 모임에 가르침을 주시려고 강사로 오신 것이었다. 주최 측에서 오 목사님을 반가이 맞이하며 강단으로 안내하여, 옷과 모자를 목사님 옆에 잘 정돈하였고, 말씀 강론이 시작되었다.
오 목사님의 첫 번째 처녀 목회는 1943년 요동벌의 요양(遼陽)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교회는 국권을 일제에 빼앗긴 터이라서,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들에게 수난은 피해갈 수 없었다. 오지의 한 교회의 교역자도 일제에 붙들려간 지 오래라서 교역자 자리가 공석이었다. 그 교회에서 만주신학교 학장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전도사를 보내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오 목사님께, 학장님으로부터 그 교회로 가서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신도들을 치유하라는 것이었다. 신학교에 들어온 지 불과 일 년이 채 안되어서 담임교역자로 나가게 된 것이었다. 학장님께 기도하며 결단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고서는, 밤새 예배당에서 주님 앞에 엎드리었다. 그러자 주님으로부터 요한복음 15장 4,5절 말씀을 들었다.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서는 북간도 오지의 한 교회에 부임하신 이후, 조국의 광복을 경험하셨고, 성북교회에서 은퇴하시기 까지 초지일관 ‘그리스도 중심에서의 삶과 사역’에 전념하시었다.
‘네가 내안에, 내가 네 안에’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바울 신학에서도 들어난다. 모든 삶의 가치와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금 찾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형된 세속적 가치관에 반응을 하게 되어 있다. 세속적인 가치관에 길들여짐을 ‘자연인’이라고도 하거나 ‘육적인’, 혹은 ‘육에 속한 사람’ 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성향을 보면 그 집안에 내려오는 가치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알코올 중독은 뇌와 유전자에도 각인이 되어서 후손들이 이 질병의 영향을 받게 되듯이, 사람의 육적 성향과 기질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관을 따라서 산다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이뤄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성경에서 자신의 부모에게서 떠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자신이 살던 고향 친척에게서 떠나서 낯선 땅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여간 고충이 뒤따르는 삶이 아니었다.
바울은 자신의 율법적인 기질과 성향의 프레임을 벗어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그가 학문적으로나, 서기관 급의 숭배를 받는 특별한 직위에서, 전통적인 사회적 관습과 기존의 가치에 확고하게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속한 가문이나 그가 가진 학문적 토대가 흔들린다거나 무너진다면, 그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바로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의 신앙과 가치관이 충돌하였던 첫 번째 접전은, 헬라말로 소통되는 유대 기독교인 집단의 지도자 격인 스테반과의 만남에서 발생하였다. 그가 판단하기로는 가장 위험한 집단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운동력을 가장 래디컬하게 이어받은, 헬라 말을 하는 스테반 기독교인 집단이었다. 저들이 갖게 된 가치관과 신앙은 유대 정통에서 너무나 멀리 나아간 신앙이었다. 그래서 그 수장 격인 스테반을 민중재판인 돌무더기로 척결하고, 기독교인들을 잔멸하였다. 저는 지방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인의 싹을 잘라내는 데에 성공하였다고 판단하여서, 이제는 지경을 넘어 다른 지역의 기독교 공동체까지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 거리까지 진격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빛을 비추임 받으면서 성령의 지식을 얻게 된다. 사람을 자신이 살던 집단에서 떠날 수 있게 하는 운동력은, 경전에서는 모두 위로부터 오는 계시적인 지식으로 비롯되었다. 아브라함도 영광의 하나님을 뵐 수 있었기에 갈대아 우르 땅과 하란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비 집과 친척과 문화와 종교를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출생과 같은 것이다. 바울은 보좌에 앉으신, 그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나사렛 예수의 영광을 본 것이었다. 바울은 실제로 죽음을 경험한 것이다. 이제 그가 사는 것이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고, 모든 죄 값을 치르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고, 그 것이 바로 예수로 인해서 얻은 새 생명이며, 예수 안에서 시작되고, 예수 안에서 마쳐지는 새로운 삶이었다.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를 ‘말씀 가운데로 나아간다’로 하듯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함’이라 함은, 곧 ‘거룩한 삶’이 시작되었음을 알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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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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