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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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전을 나온 산부인과 의사 출신인 한영덕 씨는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뒤로 마땅한 일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무면허 병원을 운영하던 무리에 걸려들어 그들에게 면허증을 빌려주고 몇 푼씩 얻어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의사도 아니면서 무면허병원을 차려놓고 주로 여성들을 상대로 하여 낙태수술… 등 쉽게 돈벌이가 되는 일을 붙잡아 큰돈을 벌어보려고 획책하던 그 돌팔이의사들의 부실 병원이 끝내 취체(단속)에 걸려들어 고발당하는 처지가 되자 그들은 평소 결벽증을 제법 드러내 보이곤 했었던 한씨를 배경 인물로 의심하고 그에게 근거 없는 보복 행위를 자행하고야 만다. 그들은 이런저런 그럴듯한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그가 위험분자(빨갱이)라는 점을 실감 있게 그려서 사직 당국에다 고발한다.
그런데 당국에 한번 잡혀 들어가고 나면 그가 위험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후에 밝혀진다고 해도 사직 당국에서는 그를 석방하지 않는다. 한영덕 씨도 국가보안 상의 위험분자란 혐의만은 용케 벗어나게 되었지만 결국 그는 다른 죄목(의료법 위반)으로 실형을 언도받고야 만다. 이 이야기는 작가 황석영의 중편소설 <한씨 연대기>(1972)에 나타난 북한 출신 의사 한씨(한영덕 씨)의 한 많은 일생을 다룬 한 편의 비화(悲話)이다.  
한씨의 일생은 이렇게 구차하게 뒤틀린 혼탁한 조류에 휘말려 흘러가버리고 만 것이다. 그가 아무리 깨끗한 인품의 소유자였다고 하더라도 권력의 횡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권력을 휘두르는 강자들 앞에서 일개 피난민인 약자 한씨는 자기를 보호할 아무 지푸라기 하나도 붙잡을 데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그의 말할 수 없이 억울한, 다른 말로 그의 ‘뿌리 뽑힌’ 삶을 읽는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시종일관 엄청난 분노와 공포감 내지 울압감(鬱壓感) 속에서 헤매게 된다.
그런데 필자는 피난민 의사 한영덕 씨가 월남한 뒤 상대하게 된 의료기관이 일개 무면허병원이었을 뿐이고, 그 병원을 운영하던 자들도 정식 의사가 아닌 속칭 돌팔이의사들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한씨도 의료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함께 걸려들 운명에 처해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생각해 왔었다. 즉 의료인으로서의 정당한 자격을 지닌 의사(한씨)가 무자격 의사들이나 무면허(무자격) 병원을 상대하다 보니까 그런 황당한 지경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가, 그렇게 판단해 왔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무법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도 6.25 직후인 혼란했던 1950년대(또는 1960년대) 경에나 있을 수 있었지 오늘날과 같이 모든 제도가 법적으로 정비되어 있는, 곧 적법(適法)만이 통용되고 있는 시대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음도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한영덕 씨가 겪은 불행한 사건은 현 시대가 아닌 지난 오·육십 년대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요, 또한 그가 무자격 의사나 무면허 병원을 상대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는 그런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필자의 다소 낙관적인 판단(믿음)이 깨지는 일이 최근 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요즘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한 예로 파주의 M병원이 면허 없는 의사에 의한 무면허 수술, 또는 의사도 아닌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을 시켰다가 결국 두 명의 환자를 사망케 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물론 그 무면허 의사나 영업사원이 환자 사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처지에 있음이 사실이지만, 병원 측은 최근 6개월 동안 단순히 ‘페이닥터’로 근무해온 다른 의사 N씨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 아닌가 싶다. 사립병원이 아닌 국립중앙의료원에서도 최근 수십 건의 영업사원의 대리수술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그렇다면 어쩌자는 건가. 병원 측이 자신들의 재정적 여건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으로 죄 없는 환자들이 죽어나가거나, 부실한 의료행위의 희생물이 되도록 해야 한단 말인가. 작년에 의료농단이란 말이 많이 흘러나왔었다.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의료진들의 과잉충성 작태와 관련해 이런 표현이 나왔었던 것 같다. 그것은 표현컨대 권력(權力)형 의료농단이었다. 이젠 치부(致富)형 의료농단이 의료계에 팽배해져 가고 있다. 다다익선이란 말이 있듯이 돈은 더 벌수록 좋다는 풍조다. 원래 권력과 금력(돈)은 칼의 양날과도 같은 관계이다. 그러므로 권력형이든 치부형이든 의료농단은 이젠 우리 사회에서 날카로운 메스에 의해 수술(청산)되어야 할 적폐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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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덕 씨 사건과 작금의 의료농단-임영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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