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4성 장군 출신의 박찬주 육군 대장이 소위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지난 2017년 군 검찰에 구속된 이후, 일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4월 26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17년 좌파 성향의 모 시민단체의 ‘박찬주 대장 부부 공관병 갑질 사건’이라는 폭로에 의하여, 부도덕한 군 지도자로 낙인이 찍혔다가, 1년 9개월 만에 ‘공관병 갑질 사건’(직권남용)과 ‘뇌물 수수혐의’까지 혐의를 벗게 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2017년 사건 폭로 당시에, 국방부에 전역지원서를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해 오히려 대장 신분으로 국방부 영창에 80여 일간 감금되는 치욕까지 겪었다. 그런데 올 해 4월에 일반 검찰에서도 ‘무혐의’를 내렸고, 서울고등법원에서도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번 기회에 군 내 갑질 문화를 뿌리 뽑으라’고 지시할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였고, 각 언론사들도 이를 기정사실처럼 대서특필했었다.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은 기갑(機甲) 출신으로 그 방면에 전문가로 알려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민단체는 군의 우수한 인재를 범죄자로 몰았고, 군은 신뢰를 잃어버린 결과가 되었다. 그에게 이런 죄목들이 씌워진 연유는 앞으로 차차 밝혀지겠지만, 이런 일들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찬주 전 대장은 뒤늦은 전역사(轉役辭)에서, 군의 철저한 중립을 주장하였고, 또 ‘정치가 군을 오합지졸로 만들어 패전국 군대 같다’는 말도 남겼다. 그의 전역사 중 유명한 것은, ‘평화 만들기(Peace-making)는 정치의 몫이고, 평화 지키기(Peace-keeping)는 군대의 몫’이란 말을 남겼다. 또 ‘정치가들이 평화를 외칠 때, 오히려 전쟁의 그림자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경계하였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시대에 그의 말이 깊이 와 닿는 것은 왜일까?
우리 시대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갑질 문화 척결’ ‘적폐 청산’ 등의 살벌한 구호와 여론을 형성하면서, 여차하면 누구를 찍어서, 여론 재판과 ‘마녀 사냥식’으로 주류 사회를 허물고 다른 세력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살벌한 전쟁을 보는듯하여 매우 걱정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혼란과 반목(反目)만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소위 말하는 ‘갑질 행태’나 남을 깔아뭉개서라도 자신이 우위를 차지하려는 권력 독점적 행태는 당연히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아이를 목욕시킨다면서,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함께 밖에 내다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이쯤 되면 그 시민단체는 정식으로 박 전 대장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활동에 대한 것을 신중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면죄부(?)를 준 검찰에 항고’하며, 이를 법원에 재정신청까지 할 예정이란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것을 국민들이 인정하겠는가?
이번의 박찬주 대장의 경우처럼, 잃어버린 명예와 신뢰, 그리고 국가를 위해 애써온 40년의 충성과 희생에 대한 누명과 오점(汚點)에 대한 것은 누가 보상하는가? 그래도 박 전 대장은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국가를 상대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인권’이란 말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당연히 ‘천부인권’은 보호받고 국가가 보장해 주며 사회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모든 주장에 대한 것을 ‘인권’으로 규정하여 수용한다면, 우리 사회는 질서와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므로, 실제적인 피해는 모든 국민과 국가가 떠안게 될 것이다.
소위 ‘갑질 척결’이란 행위가 지나치면, 이는 갑질 위에 갑질이 될 수 있다. 남이 하는 갑질은 안 되고, 갑질 위에 자신들의 갑질은 괜찮은 것인가? 국가기관이든, 시민단체든,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군인이든지 모두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므로, 국가와 사회를 밝게 만들고, 미래지향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갑질’의 위험성을 모르고, 계속 갑질로 갑질을 잡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갑질’의 병폐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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