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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쑥 캐는 소녀는 어디 있는가?
- 4월부터 제 밥상에 어김없이 오르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쑥국입니다. 저는 쑥국이 맛있기도 하지만 쑥국을 먹을 때마다 쑥 캐는 소녀가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시절 제가 좋아했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봄이면 화사한 옷을 입곤 하던 그 아이의 모습이 너무 예뻤습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마을 뒷동산을 넘으면 냇가가 하나 있는데 소녀는 냇가 건너편 마을에 살았습니다. 하루는 우리 동네 한 친구가 쑥을 캐러 간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그 소녀가 쑥을 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훔쳐보면서 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었을까요, 그저 막연한 동심의 연모였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같은 순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날 밤, 쑥 캐는 소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장착되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제 가슴에 사랑의 씨가 싹트면서 밤새 뒤척이며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도와줘야 할 일은 없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애를 괴롭히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공부도 제법 잘했고 인기도 좋아 모든 친구와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얼마 후,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시험을 망쳐서 1등을 못했다고 울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그 소녀를 보며 ‘다음 시험에는 일부러 몇 문제를 틀려서 그 아이에게 1등을 양보해 줘야지’ 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소녀를 위해 다음 시험을 일부러 망쳤는데도 다른 아이가 시험을 잘 보아서 그 소녀가 또 1등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져 그 소녀보다 제가 더 속상하고 분했습니다. 몇 년 뒤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남자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녔지만 여자애들은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녔습니다. 저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는데도, 영어 단어를 외우고 다니는 여학생에게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저도 어느덧 중년을 넘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쑥 캐는 소녀가 어디에 사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또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그 시절의 순수한 마음으로 기억을 간직할 뿐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목회를 한 후 쑥 캐는 소녀를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는 오직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목양 사역으로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4월, 5월이 되면 쑥국을 먹을 때마다 쑥 캐는 소녀가 떠오르고 나이와 상관없이 다시 청춘, 아니 소년으로 돌아갑니다. 너무 삭막하고 강퍅한 시대 속에서 순수의 시대를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순수를 잃어버리고 온갖 야욕과 음모, 위선과 권모술수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한국교회마저도 너무 이념화, 정치화되어 사회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때에 우리 모두 다시 순수의 시대를 회복해야 합니다.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을 쏙 캐는 소녀, 쑥 캐는 소년으로 생각하며 언제 어디서나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목양 사역에 전념할 것입니다. 비록 빛바랜 추억의 흑백 앨범 같은 것일지라도 저의 가슴에 쑥 캐는 소녀와 같은 순수한 추억과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런 기억마저 망각한 채 거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차갑고 삭막한 삶일까요. 저는 우리 교회에 오시는 모든 성도들이 쑥 캐는 소녀라고 여기며 반깁니다. 새로운 4월, 5월이 되면 한 살, 한 살 나이는 더 먹어 가지만 변함없이 저는 다시 소년으로 돌아갑니다. 천국 갈 때까지 저는 콘크리트 도시의 경쟁과 야욕, 망상을 떠나 그 눈부셨던 순수 시대의 봄의 길을 걷고 봄의 사역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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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쑥 캐는 소녀는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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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나라에서부터 빛의 연대기까지
- 지난주 수요일 오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빛의 연대기’ 공연을 하였습니다. 남들은 그냥 지켜보는지 모르지만 저는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제가 작사를 할 뿐만 아니라 영상 하나하나, 멘트 하나하나까지 다 체크를 해야 했거든요. 사실 제가 영상 내레이션을 몇 번을 보면서 “이렇게 고쳐라, 이렇게 편집하라”고 수정하고 또 수정했습니다. 영상 실무를 담당하는 나유진 자매가 우리 교인이 아니었다면 엄청난 시험에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마지막 순간까지 꼼꼼하게 체크를 하고 지적을 했거든요. 사실 장소를 허락해 주신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마는. 아쉬운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직도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애당초 한교총과 한기총이 합하여 이 칸타타를 공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무선에서부터 반대가 심하고 어떤 적대감, 증오심 같은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또 하나는 사실 ‘빛의 연대기’ 공연을 더 넓은 광장에서 하고 싶었지만, ‘광장’하면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잠실에 있는 체조경기장이나 기타 다른 곳도 찾아봤지만, 대여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본당 2층을 가득 메운 우리 교회 성도들의 그 뜨거운 열기는 강단으로까지 전해졌고 저의 제스처에 따라서 다 움직이는 성도들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음악감독을 맡은 류형길 지휘자가 너무 수고가 많았습니다. 사실은 총 9곡인데 제가 과감하게 한 곡을 뺐습니다. 저라고 아쉬움이 있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마는, 저는 항상 시간을 예측하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한 곡을 더 불렀으면 그 한 곡 때문에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류형길 지휘자에게 서곡을 한번 멋지게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지역 차량이 돌기 때문에 12시까지 예배를 마쳐야 되거든요. 그런데 정확하게 행사가 끝나는 시간이 12시 1분 30초였습니다. 제가 7번 곡을 뺀 것이 너무 정확한 판단이었습니다. 특별히 서곡에서부터 시작하여 피날레에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할 때는 그야말로 모든 청중이 감동을 받고 다 일어서서 함성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태초의 밤하늘에 떠오르던 별 / 달빛 아래에 잠든 꽃들이 깨어나고 / 구속사의 푸른 장강이 흐르고 /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 길을 따라가 / 눈물과 상처로 얼룩진 역사 / 길고 길었던 시간들 / 하나님 섭리로 이겨냈네 / 빛의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 / 이제 어두웠던 역사 그치고 / 밝은 빛의 향해를 시작하네 / 우린 진정한 하나가 되어서 / 이 빛을 지켜가리라 / 우린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 빛의 선민으로 나아가리라 / 우린 진정한 한민족 되어서 / 이 빛을 지켜가리라 / 거룩한 환상 생명의 언어로 /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리라 / 어둠을 뚫고 밝아오는 찬란한 / 찬란한 새벽빛이여 /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행사가 끝나고 나니까 어느 국회의원은 “이거 목사님이 진짜 쓴 거 맞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또 어떤 총회장은 “목사님이 시인이라는 걸 이제 알았네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 국민일보도 안 보십니까?” 사실 이 공연은 한 교회에서만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유튜브에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본다 한들 현장에서의 느낌과 감동을 그대로 전해주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유튜브를 시청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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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나라에서부터 빛의 연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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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기독교가 융성하고 과학이 발전하는 나라
- 저는 이분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송봉현 선생님이신데 과학기술부에서 국장까지 지내신 분이십니다. 이분이 ‘두뇌자원 나라’라는 책을 쓰셨는데 직접 사인을 해서 저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모르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책에서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5천 년 전 빈곤을 말끔히 씻고 천국과 같은 선진국의 삶을 누리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것입니다. 유엔 설립 후에 새로 가입한 150여 국가 중 우리나라만이 최고로 올라선 유아독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마르티아 센 교수의 주장처럼 기독교가 융성한 것이고, 두 번째는 과학자들, 첨단기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디서부터 시작이 됐냐하면, 미국의 원전 대가 워커리 시슬러가 경무대를 방문하셔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라늄 1g은 석탄 3톤과 맞먹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석탄은 땅에서 캐내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자원입니다. 과학자들을 기르십시요.”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200명의 우수 과학자들을 선발해서 1인당 6천 달러씩 지급하여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과학 인재 투자의 열매를 박정희 대통령이 근대화, 산업화의 자산으로 거두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정근모 박사였습니다. 이분이 산파 역할을 해서 69년도에 키스트(KIST)가 생겼고 그 이후에 카이스트(KAIST)대학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 교회 최진경 장로님과 같은 우수한 과학 기업인이 나온 것이죠. 우리나라는 키스트와 카이스트 설립 후에 원자력 발전 국산화, 고속전철 개발연구원, 자체 인공위성 발사, 농약 신물질 창출, 제약 국산화 기반 구축, 화학연구원 등이 생겨났고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진보 진영이었지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경제정책, 과학기술 업무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이어져 오던 정책 기조를 뒤집지 않고 그대로 이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반원전을 표방했다가 완전수용, 과학기술부 승격, 정보화 고속도로 구축, 과학 훈장제를 신설하였고, 노무현 대통령도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키면서 과학기술 발전을 향한 확고한 국정철학과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역사를 몰랐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 과학 계통의 노벨상도 우리 한국이 받아야 할 차례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AI 기술도 대한민국이 앞장서야 하는데, 아니 우리 한국교회도 정말 미래 인재를 키워내야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저의 사역도 인재를 키우는데 앞장 서려고 합니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방학 중에 신학생들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주면서 교육하고 인재를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대통령입니다. 다음 정권이 과학기술정책을 뒤집지 말고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특별히 AI 부분을 국가가 통제하지 말고 자발적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환경과 지원을 해 주어야 합니다. 삼성 반도체가 대한민국의 보물창고였다면 AI산업이 미래의 보물창고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촉발로 인하여 세계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위기감에 휩싸여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정치 역시 너무 이념과 정파적 이익에 치우지기 보다는 미래 경제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의 진보를 위해 투자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 그런 국가지도자가 나와서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다시 한번 선진 대한민국으로 비상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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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기독교가 융성하고 과학이 발전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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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연대기, 사랑의 하모니
- 우리가 생일을 맞으면 서로 축하해 주고 기념을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70세를 맞으면 고희연을 열어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무병장수와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지 않습니까? 올해는 한국교회가 14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어쩌면 140의 생일과 같은 것인데 100주년 이후로 뚜렷한 행사나 기념대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한국기독교 140주년의 역사를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역사 속에는 역사를 세우고 만들어 갔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피가 스며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은 그 역사 속에 담긴 땀과 눈물과 혼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기독교 14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대대적 행사를 광장에서 해 볼까도 생각했는데 워낙 광장 하면 많은 국민들의 인식에 나쁜 이미지로 각인이 되어서 고민 끝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특별히 직접 제가 대본과 작사를 한 칸타타 ‘빛의 연대기’가 공연될 것입니다. 그날 행사에는 한국교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정관계의 주요 지도자들과 기자들을 초청하여 다시 한번 우리 사회에 사랑과 빛의 하모니를 전하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유창한 연설이나 말이라 할지라도 언어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무조건 하나를 만듭니다. 영국 황실에서 음악회를 하면 여야를 다 초청하여 음악 안에서 하모니를 이룬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이념과 정파에 따라 얼마나 갈라지고 대립하고 있습니까? 심지어 한국교회마저도 사랑과 화해의 중재자가 아니라 분열과 갈등의 한 중심에 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심각하게 이미지가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빛의 연대기’를 통하여 우리나라 역사의 고난과 위기의 순간마다 나라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사랑과 희망의 빛을 발하였던 한국교회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빛의 파동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흑암의 땅에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 주기 전 예수님을 알았던 믿음의 선진들, 우상과 미신, 가난과 차별의 어둠으로 가득하였던 한반도에 복음의 빛을 전해준 푸른 눈동자들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복음의 빛으로 가득한 나라에서 경제 번영과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의 밤이 찾아왔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별빛 언덕에 빛의 서시를 쓰며 아침을 노래하였던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의 희생이 있었고, 한국교회 성도들은 새벽마다 차디찬 교회 마룻바닥에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의 경제강국, 문화강국으로 우뚝 비상하는데 사상적, 문화적, 영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기독교 140년의 역사야말로 빛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격동의 역사, 감동의 기록, 눈물의 시가 담겨 있는 ‘빛의 연대기’ 공연을 통하여 분열과 갈등으로 상처 입은 한국 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사랑과 빛의 하모니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일정을 미리 조정하여 다가오는 4월 23일 수요일 10시 30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모입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이 되어 함께 빛의 연대기를 씁시다. 한국기독교 140년의 역사를 시적으로 표현한 서정적 해설과 더불어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감동의 노래로 빛의 대서사시가 연출될 것입니다. ‘빛의 연대기’ 공연은 여러 방송과 일간지를 통해서 보도가 되고 기사화될 텐데 우리 모두가 역사의식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며 협력하고 헌신도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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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연대기, 사랑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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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새벽 미명처럼, 봄의 햇살처럼”
- 다시 한 번 우리는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탄핵, 그리고 파면으로 이어진 극도의 혼란과 분열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저는 지난해 12월 발뒤꿈치에 저온 화상을 입은 이후에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은 채 고요한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어수선한 시국과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 갈등과 혼란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특히 한국교회가 사랑과 화해의 중재자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 분열과 대립의 중심에 서는 듯한 모습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될 때는 ‘정말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이렇게 각인 되어서는 안 되는데... 교회의 본령과 방향성은 이런 모습이 아닌데...’ 하는 탄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광장에 나와 외치고 저항하는 분들의 그 안타까운 마음이야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습니까? 저 또한 의분이 일어날 때도 있고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십수 년 전부터 ‘한국교회 생태계’라는 말을 처음으로 쓰면서 반기독교 세력의 실체와 전략을 알리고 반이슬람,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아마 대형교회 목사로서는 최초로 수많은 집회와 세미나, 언론 기고 뿐만 아니라 광장에서 반동성애 운동을 이끌면서 저항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교회의 본질과 가치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결코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인 아젠다를 가지고 어느 진영이나 정파에 서서 외치거나 활동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정관계 지도자들을 만나고 언론인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사회적 외연을 확장해 갔던 공적 사역 역시 한국교회의 영광성과 거룩성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교회가 너무 극단적인 이념과 정치에 매몰되어 있는 현상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다시 한국교회는 복음의 본질과 가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정신으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희망의 미래를 열어가야 합니다. 남북으로 나뉜 현실만도 비극인데, 교회가 앞장서서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로 나뉘어 극단적인 분열과 충돌을 계속하면 어떻게 새로운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정치인들 역시 더 이상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거나 선동하지 말고 국민의 안위와 행복, 공공의 선을 이루는 정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보 진영이 되었건 보수 진영이 되었건 간에 국민의 행복과 공공선을 이루기 위한 이상과 가치를 펼쳐가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국가 분열과 혼란의 비극적 역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비전과 상생의 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의 가장 높은 산이 되어 진리와 가치, 비전을 제시하고 가장 깊은 바다가 되어 사랑과 용서, 화해의 정신으로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진실과 진리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합니다. 결코 지도자의 위치에서 혼란과 분열, 파괴와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최근 국민 힐링 드라마라고 불리는 ‘폭싹 속았수다’가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가족 사랑과 인간애의 따스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최근에는 될 수 있으면 슬픈 영화, 슬픈 소설은 안 읽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도 1회를 보고 더 이상 안 봤습니다. 인생의 과정 과정에 너무나 눈물이 많이 나올 것 같고, 그 슬픔을 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론만 물어봤습니다. 애순이는 요양원에서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관식이는 병들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고 합니다. 금명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을 겪고 나서 고향 제주도를 찾아왔을 때 아버지가 새벽에 배를 타고 나가자고 합니다. 금명이는 안 그래도 힘든데 무슨 새벽에 배를 타고 나가냐고 짜증을 내지만 아버지의 순애보적 사랑을 거부 못하고 겨우 따라 나갑니다. 아버지는 묵묵히 배를 띄우고 딸 금명이에게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 여명을 보여줍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금명이는 고백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추웠을 때 가장 따뜻했던 사람...” 훗날 아버지 관식은 딸이 힘겨운 여정을 보낼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니다 싶으면 빠꾸, 아빠가 뒤에 있을게.” 한국교회도 집단적 상처와 아픔을 겪으며 가장 차가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우리 사회에 가장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끝내 어둠을 뚫고 밝아오는 새벽 미명처럼, 봄의 햇살처럼 따스한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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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새벽 미명처럼, 봄의 햇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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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덤으로 살고 덤으로 쓰임 받다”
- 지난 월요일에는 제 모교인 군산제일고등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방문 목적은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맞이해서 전킨 선교사의 선교 흔적을 취재하기 위해서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 간 것입니다. 전킨 선교사가 호남 최초로 군산제일고를 세웠거든요. 거기 가니까 지난번처럼 교장 선생님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근데 도착하자마자 어느 기자가 “소강석 목사님이 공부한 교실부터 보여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지금 본관이 리모델링 중이어서 죄송합니다.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대신 역사 기념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역사 기념관으로 안내하셨습니다. 저도 기자들과 함께 그곳에 들어가 “와”하고 탄성부터 내질렀습니다. 진짜 말로만 듣던 저의 사진이 거기에 걸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군산제일고를 빛낸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제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왜 제 사진을 걸어놨냐면 2015년도 <시사 저널>에서 대한민국을 이끄는 인물 100명 중에 한 사람으로 선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2021년도에 한교총 대표회장이 되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학교에서는 완전 비주류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완전히 미쳤다고 기숙사에서 쫓겨나다시피 퇴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취를 하며 마음대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학교에서 저는 내놓은 자식이고, 교회에 완전히 빠져 있는 놈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부를 게을리하는 대신 열심히 새벽 기도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부지런히 회지를 만들고 중고등부 학생회를 이끌어 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이러저러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광주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광주신학교 4년을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개혁신학연구원에서도 3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저는 오갈 데가 없었습니다. 누가 저를 써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부목사로 훈련받을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저에게는 교회를 개척하는 길뿐이었습니다. 개척 멤버 한 명도 없이 말입니다. 개척 멤버가 있다면 저희 집사람이고, 정 권사님이고 배영수 장로였습니다. 감사한 것은 제일 멀리서 살았던 김정호 장로님이 낮 예배에 참석해주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개척 목회자 가운데도 마이너리거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개척교회 목회자들은 대부분 친인척들이 모여서 수십 명이 되는데, 저는 그러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부지런히 전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끝없이 공부하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다시 학사학위, 석사학위, 박사 과정까지 다 밟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였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는 30대 나이에 최초로 천여 평에 달하는 예배당을 지었고, 40대 중반에는 만여 평에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속해 있던 예장의 개혁 교단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과 교단이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가운데 저를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하고 싶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말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였습니다. 되돌아보면 개혁측 출신이 경쟁 상대 없이 무투표로 총회장에 당선이 된 것은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방역을 지키고 현장 예배를 끝까지 드리게 했던 리더십을 발휘하게 했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제가 코로나가 오기 전, KBS에서 “이방인과 3.1운동”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모교를 방문하여 특강을 하고 공영방송에 모교의 모습을 보여줬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모교가 3.1운동을 주도했고 그 배후에 린튼 선교사가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모교에 가서 기념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뭐 주류니 비주류니 이런 것을 생각해 봤지만, 지금은 그런 것조차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 은혜요, 덤으로 쓰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산불 소식 때문에 마음에 큰 염려가 있었는데, 다행히 큰 불길은 진화가 되었다고 해서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요, 그나마도 덤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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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덤으로 살고 덤으로 쓰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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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탄식하는 인간, 감탄하시는 하나님
- 저는 요즘 하루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은 꼭 정 권사님이 거하시는 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해드리고 옵니다. 갈 때 말동무는 못 되더라도 잠시 기도를 해드리고 오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서지요. 목요일 저녁은 지하 계단에서부터 8층까지 걸어 올라갔는데 그 순간 배영수 장로님 부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것입니다. “짜고 치고 오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그 순간에 복도에서 만날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같이 들어갔는데, 갈 때마다 정 권사님은 성경을 보시거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는 불을 밝게 켜놓지만 기도할 때는 전기세를 아낀다고 불을 끄고 캄캄한 상태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랑 배영수 장로님이랑 탄식하는 말씀을 해드렸습니다. “지하 전 층과 1층, 모든 복도에 다 불이 켜져 있는데 어머니가 방에 불 하나 켜 놓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사람 깜짝 놀라게 하지 말고 불 좀 켜놓고 기도하세요.” 그런데 제가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기도만 하고 계세요. 좀 쉬면서 하세요. 성경도 꼭 읽으려고만 하지 말고 누워서 묵상을 하셔도 돼요.” 그랬더니 “아니네. 나는 성경이 너무너무 재미있고 기도가 나의 사명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라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살려두셨겠는가? 기도하라고 살려주신 거라네.” 그때 문득 몇 년 전에 정 권사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느 대학병원에서 정 권사님이 폐 CT 촬영 결과 폐암 진단을 받으셨거든요. 제가 얄궂게 물어봤습니다. “암으로 돌아가시면 어쩌시려구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 걱정도 안 하네. 죽으면 천국이고 살면 기도지...” 하여튼 정 권사님은 생에 대한 탄식이나 후회, 갈망 같은 것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냥 무조건 감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대답을 하였죠. “천국 가시더라도 암으로 돌아가시지 마시고 유언을 잘 남기시고 편안하게 가세요.” 그 이후로 조직검사를 해봤는데 결과는 폐암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정 권사님도 인간인데 폐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생에 대한 갈망의 의지가 들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정 권사님은 오히려 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영원한 천국에 대한 젠주흐트(Sehnsucht)가 컸습니다. 젠주흐트라는 말은 독일어로 향수의 개념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갈망이나 열망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 권사님의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제가 올라갈 때면 “뭐하게 올라왔는가, 내가 대신 기도할 테니까 소 목사는 좀 쉬소.” 얼마나 다정다감하게 따뜻한 손을 잡으면서 그렇게 부탁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정 권사님이 왜 이렇게 부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젠주흐트라는 향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내세에 대한 젠주흐트보다는 우선 이번 주에 어떤 설교를 하고 어떤 글을 써야 하는 부담감이 가득합니다. 어떨 때는 저도 정 권사님처럼 늘상 기도만 하고 성경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을 보고 기도하는 순간 새로운 워딩을 해야되고 메모를 해야 되거든요. 저에게 주어진 사명과 정 권사님의 사명이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구순이 다가오도록 오직 기도, 오직 성령으로 살아가는 정 권사님은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시편을 보면 탄식의 시(파괴적인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외침의 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탄식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 응답을 해주셨지만 정 권사님과 같은 젠주흐트의 기도를 들으시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감탄해 하시겠습니까? 탄식의 기도도 기뻐하시거늘,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얼마나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정 권사님을 뵐 때마다 항상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도 저렇게 오래 살 수 있을까, 저렇게 오래 살면서 오직 기도와 말씀을 붙들고 살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몫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결과일 뿐입니다. 몇 살을 살든지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감탄하시길 빌 뿐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구호를 외쳐봅니다.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 솔라 피데(오직 믿음), 솔라 크리스토스(오직 그리스도), 솔라 데오 글로리아(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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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탄식하는 인간, 감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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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담임목사로 산다는 것은”
- 오랜만에 제주도를 갈 계획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니고 집회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1박 2일 동안 세 번의 집회를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회를 앞두고 다리 운동을 좀 무리하게 했었나 봅니다. 지하 3층에서부터 지상 9층까지 여러 번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나서 다음 날 봤더니 피부 이식을 한 발뒤꿈치 부분이 빨갛게 성이 나 있더라고요. 수술한 병원에 가보니까 무리하면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앞으로 무리하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총회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제주 일정을 취소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부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김찬호 장로님의 빙모이시자 최성복 권사님의 어머니 김혜 권사님이 소천을 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조문소가 경남 밀양이었습니다. 밀양이라고 하는 곳은 저와 참 관계가 깊은 것 같습니다. 오래전에 밀양이라는 영화가 나왔지 않습니까? 저는 그 영화를 보고 굉장히 분노감을 가졌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사죄의 은총을 마치 비아냥거리기라도 하듯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밀양시 기독교연합회에서 집회 초청을 한 것입니다. 저는 모든 일정을 다 제치고 밀양으로 갔습니다. 시립체육관에서 집회를 하는데 첫날 너무나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보통은 그렇거든요. 첫날은 주최 측 동원으로 모이게 되지만 둘째 날부터는 강사의 실력으로 동원이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집회 두 번째 날은 자리가 거의 가득 찼습니다. 마지막 날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최성복 권사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특별히 주변 교인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김찬호 장로님의 빙부이시자 최성복 권사님의 친부이신 최기주 장로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조문을 하러 직접 내려갔습니다. 제 생애 두 번째로 밀양에 간 것입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6년 후, 김찬호 장로님의 빙모이시자 최성복 권사님의 어머니이신 김혜 권사님이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정말 조문을 앞두고 많은 씨름을 했습니다. 네비로 찍어봐도 정확히 4시간이 나오는 것입니다. 왕복이면 8시간이고 예배드리고 앉아 위로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 포함하면 9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김찬호 장로님께서는 극구 내려오시지 말아 달라고 사정을 하셨지만 제가 안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내려가면서 어차피 저는 차 안에서 일을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전날 저녁에 설교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미리 써머리를 했습니다. 가는 길에 주일 낮 설교를, 오는 길에 주일 밤 설교를 불러주기 위해서요.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발뒤꿈치 상처 부위에도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는다든지, 속도를 낸 상태에서 회전을 하는 경우를 대비해서요. 실제로 그런 순간순간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락 한 단락 설교문을 이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김찬호 장로님이 아니라면 간접 조문을 할 수가 있죠. 우리 김찬호 장로님은 우리 교회 재정부장을 10여 년을 넘게 섬기고 계시고 십일조도 최상위 그룹으로 하며 클라팜파 회장을 맡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김찬호 장로님 때문에 또 한 번 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가면서 설교 준비를 거의 다 했습니다. 설교 준비를 마칠 때쯤 차에서 좀 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수요예배가 시작될 무렵이어서 유튜브를 켜놓고 수요예배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그날 김선명 목사님이 설교를 하였는데 통상 담임목사가 없으면 부목사가 설교를 하고 기도하고 축도를 하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그런데 비서실에서 담임목사가 오고 있다고 김선명 목사에게 시그널을 보냈나 봐요. 설교를 마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또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냥 목사님이 축도를 하고 끝내시라”고 문자를 보내놨지만, 김 목사는 그 문자를 보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거의 10분 가까이 광고하고 찬양하고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부리나케 교회에 도착해서 강단으로 올라가서 기도하고 예배를 마무리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생각해 봤습니다. 담임목사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담임목사가 아니라면 밀양에 갈 필요도 없으며 담임목사가 아니라면 오가는 길에서 그토록 애를 써서 설교 준비를 할 필요도 없으며 담임목사가 아니라면 수요예배가 끝나기 전 부리나케 도착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얼른 보기에는 담임목사에게 많은 힘과 권한과 명예가 주어진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담임목사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권한과 힘과 명예를 가진 만큼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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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담임목사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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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느 국어 선생님 속에 남은 목사의 기억
- 우리 교회 장의곤 집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원래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셨던 분입니다. 이분이 은퇴를 하시고 교회 인근 아파트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원래 다니던 교회가 서울 강북의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 집사님께서는 교회가 멀어서 갈 수 없으니까 밤예배나 수요예배 때 우리 교회를 나오셨습니다. 그러더니 장 집사님께서는 부인이신 전순자 권사님께 꼭 새에덴교회로 옮기자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전 권사님께서는 친한 벗들이 그 동네에 많이 살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너무 머니까 결국은 우리 교회로 출석하셨습니다. 그것도 장의곤 집사님이 막 우겨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장 집사님은 우리 교회 예배를 참석하면서 정말 감탄의 감탄을 자아내셨다고 합니다. 첫째는 부족하지만 저의 설교가 너무 명확하고 시원하고 또 감동 있게 전해지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평생 국어를 가르쳐 왔지만 어떻게 저렇게 시원스러울 뿐만 아니라 감동적으로 설교를 하시는가. 그전에는 설교 시간에 많이 졸고 좀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지만 소강석 목사가 설교할 때는 한 번도 졸아본 적도 없다”고 감탄과 경탄을 하셨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주보에 실린 목양칼럼을 보시고 너무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평생 국어를 가르친 교사였지만 어떻게 매주마다 이런 새로운 글을 쓸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아, 정말 쉽게 읽혀지면서도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글을 매주마다 어떻게 쓴다는 말인가.” 세 번째는 어떻게 목사가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냐는 것입니다. 제가 그분의 성함을 기억해 주고 항상 오실 때마다 “국어 선생님, 국어 선생님”하고 불러드렸거든요. 저는 학교 다니면서 국어와 국사 과목을 아주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더욱 “국어 선생님” 하며 반갑게 인사를 드린 것이죠. 꽤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연세가 들다 보면 몸이 노약해지지 않겠습니까? 하루는 휠체어를 타고 교회를 오셨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저의 얼굴을 보려고 휠체어를 타고 예배당 맨 뒤에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손을 잡고 “아이고, 국어 선생님” 그랬더니 “소 목사님 최고! 소 목사님 최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부축하시는 권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너무 감동이 되었습니다. 몸도 약해지며 약간의 치매기가 오셨지만, 집에서도 입만 여시면 “소 목사님 최고, 소 목사님 최고”를 외친다는 것입니다. 그 국어 선생님을 보내 드린 후 와다 히데키가 쓴 ‘감정이 늙지 않는 법’이라는 책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그 책을 보면 기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지요. 하나는 의미 기억입니다. 이것은 주로 암기를 말하는 것인데요. 연도를 외우고 번호와 숫자를 외우는 인지 기억입니다. 또 하나는 에피소드 기억입니다. 어느 식당에 갔더니 서비스가 엉망이더라, 어느 회사를 갔더니 서비스가 엉망이더라는 감정이나 에피소드로 남는 기억을 의미하죠. 그런데 와다 히데키에 의하면 치매가 와도 인지 기억은 확연하게 떨어지지만, 에피소드 기억은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의곤 집사님 속에 있는 저에 대한 기억은 에피소드 기억이라고 할 겁니다. 아니, 에피소드를 넘어 영적인 홀릭의 기억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분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의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제가 국어 선생님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우리 새에덴교회의 역사와 또 한국 교회 역사에 좋은 기억으로 남고 기록이 되어야 할 텐데라고 하는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저도 요즘은 숫자나 연도를 깜빡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10대, 20대의 인지(認知) 기억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성도들에게 그리고 한국교회에 많은 에피소드의 기억을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또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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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느 국어 선생님 속에 남은 목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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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연대기
- 저에게는 오래된 꿈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민족의 빛과 소금이 되고 희망의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십수 년 전, 죽전 신도시에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건축하고 부흥의 최정점을 맞았을 때 저는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반기독교 세력의 실체와 전략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개교회 성장을 넘어서 공교회를 세우는 공적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계속해서 개교회 성장 지상주의로 갔다면 지금쯤 더 큰 예배당을 짓고 숫자적으로 더 큰 성장을 이루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교회와 건강한 사회를 지키는 영전, 사상전, 문화전의 최전선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 등 한국교회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반기독교 법안이 올라 올 때마다 정계와 교계의 깨어 있는 소수의 분들과 함께 대처하고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다 보니까 한 개인이나 개교회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예장합동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한국 교계의 분열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대정부, 대사회를 향해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계속 분열하면서 각자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지금도 그 꿈은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된다면 ‘빛의 연대기’라는 창작 칸타타를 제작하여 공연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하나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소망을 담아 공연을 준비하였습니다. 우상과 미신, 가난과 차별로 가득했던 조선 땅에 복음의 빛을 전해준 푸른 눈의 선교사들, 평양 장대현교회의 대부흥,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빛을 지켰던 믿음의 선진들의 고난과 희생, 폐허 위에서 조국 근대화와 부흥을 이뤄낸 한국교회의 눈물의 기도와 부흥의 대서사, 그리고 뼈아픈 분열과 상처... 다시, 연합과 부흥을 꿈꾸는 희망의 대서사시가 빛의 선율처럼 울려 퍼질 것입니다. 음악의 힘은 위대합니다. 남아공의 만델라가 종신 징역살이를 하고 있을 때, 1988년에 영국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성악가 80명이 모여서 만델라의 석방을 기원하는 음악회를 하였을 때, 그 음악회의 영향으로 그 이듬해 봄에 만델라가 석방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유창한 연설이나 은쟁반에 담긴 옥구슬 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언어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무조건 하나를 만듭니다. 영국 황실에서 음악회를 하면 여야를 다 초청합니다. 그래서 영국 의회는 극한으로 가다가도 음악 안에서 하모니를 이룬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얼마나 극한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습니까? 한국기독교 선교 140주년 기념 칸타타 ‘빛의 연대기’가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사랑과 용서, 화해의 하모니가 되고 희망의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교총 주관으로 4월 23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릴 예정인데, 한국교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정관계의 주요 지도자와 기자들을 초청하여 다시 한번 사랑과 빛의 하모니를 이루는 감동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시적으로 표현한 서정적 해설과 더불어 장엄한 연주와 감동의 노래로 빛의 대서사시를 연출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격동의 역사, 감동의 기록, 눈물의 시가 담겨 있는 ‘빛의 연대기’가 분열과 갈등으로 상처 입고 신음하고 있는 한국 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빛의 파동을 일으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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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연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