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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새해에 드리는 기도 “비가(悲歌)를 그치고 연가(戀歌)를 부르게 하소서”
    주님, 저 멀리 보이는 깜박이는 등대의 불빛이 보이십니까? 우리는 코로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밤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두려웠고 우울하고 지쳤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암울한 밤바다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저 바람이 휘몰아치는 바다 어딘가 당신이 서 계시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코로나 팬데믹의 광풍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코로나 팬데믹의 검은 안개가 자욱한 중에도 여전히 동해에서는 붉은 태양이 장엄한 몸짓으로 솟구치고 그 새해의 일출은 신비로운 에덴동산에서 비추던 심원의 빛으로 우리의 지친 영혼을 비춰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은 우리 안에 시들어버린 희망의 화롯불을 다시 살아나게 하여 곧 팬데믹의 광풍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주님, 이제 우리 모두 2021년의 찬란한 일출과 함께 지난해의 절망과 비난, 혼란과 분열의 비가(悲歌)를 그치고 화해와 포옹의 연가를 부르게 하소서. 또한 다시 하늘순례자의 발걸음으로 신발끈을 동여매며 어둠에 잠긴 산을 넘고 절망의 협곡을 지난 후 새벽 하얀 서리 내려앉은 강물 소리를 따라 가슴 벅찬 희망과 화해의 행진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어두울수록 별은 빛이 나고 절벽 끝에 피어난 꽃은 잔인할 정도로 향기를 발하는 것처럼, 지난해 거친 광야의 절망과 어둠의 시간을 이겨내고 맞은 우리의 새해는 더욱 더 눈부신 꿈으로 빛나게 하옵소서. 주님, 2021년은 팬데믹의 절망과 잿빛 저항을 물리치고 새로이 비상하는 원년이 되게 하옵소서. 민족의 들녘에 상처를 조장하는 파괴적 외침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연모하고 그리워하는 세레나데의 소리가 메아리치게 하옵소서. 길을 잃은 청춘의 별들과 불 꺼진 도시의 텅빈 거리,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상처 입은 꽃들의 눈물을 닦으며 다시, 첫 새벽의 심장 박동을 깨우게 하옵소서. 반달리즘으로 인하여 파괴되어 버린 음악, 예술, 문화 공연이 살아나서 산성화된 국민들의 정서가 다시 순환되게 하시고 감성이 말라버린 우리의 사회가 다시 회복되게하소서. 이를 위해 한국교회가 먼저 가슴을 치며 주의 제단에 눈물을 쏟고 회개와 통곡소리로 신 사도행전의 아리아를 부르게 하옵소서. 주님, 2021년 새해, 팬데믹의 어둠을 깨우는 눈부신 아침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거친 황무지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는 잔인한 생명과 사랑의 소네트가 차가운 산야의 쓰러진 나무와 꽃들을 깨우며 울려 퍼집니다. 한국교회가 그 생명과 부활의 한 중심에서 다시 한 번 세계 위로 비상할 무지갯빛 높고 푸른 나래를 펼치게 하옵소서. 올해는 반드시 한국교회가 하나됨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코로나의 파고를 당당히 이겨내며 열방 앞에 새 역사, 새 날의 아침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다시 한국교회 안에 뜨거운 감격과 통회, 눈물과 헌신의 역사가 이어지며 예배 회복의 폭풍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성령의 임재사건을 통하여 예배를 향한 사모함과 부흥의 영성이 활활 타오르게 하옵소서. 코로나의 위기를 넘어 한국교회의 연합과 세움의 대역사를 이루는 대반전의 역전드라마가 펼쳐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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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1-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마세요. 또 포기하지 마세요.”
    한국교회가 비상상황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송구영신예배마저도 비대면으로 드려야 하는 위기입니다. 저는 교단의 총회장으로서,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시대적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백방으로 뛰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어떤 경우도 성탄절예배와 송구영신예배만큼은 좀 더 완화된 현장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몸부림 쳤습니다. 그런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진자가 1000명이 넘어가며 방역수칙은 더 강화되고 심지어 몇몇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며 여론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저는 무력한 제 자신을 돌아보며 맥이 빠지고 한동안 깊은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우울증을 그냥 혼자 앓고 있으면 그것도 행복할 텐데, 저를 찾는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기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닌 것입니다. 마음은 우울한데 꼭 위선자처럼 아무런 일도 없는척 사람을 만나야 하고 이런 저런 모임을 이끌어가야 하니,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다른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도 비상상황인 것입니다. 다른 교회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겠지만, 우리 교회는 송구영신예배가 최고의 영적 축제요, 1년의 첫 농사입니다. 첫 출발부터 흐지부지하게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다시 한 번 ‘절.절.포’ 신앙을 떠올렸습니다. 윈스턴 처칠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게 되었을 때 이렇게 딱 한 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Never give up! 여러분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청중들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을 때 처질은 다시 이렇게 외쳤습니다.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나서 처칠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Never give up!” 일곱 번의 Never give up, 그것이 처칠이 했던 축사의 전부였습니다. 육군 7보병사단 사단장이셨던 우리 교회 서정열 장로님도 부대원들에게 ‘절절포 정신’을 역설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사비로 모든 부대원들에게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머플러를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비상(非常)시기에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비상(飛上)해야 합니다. 제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릴 때, 예년처럼 성도들을 모이게 하면 중대본의 지침도 어길 뿐만 아니라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목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확진자라도 나오면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대본의 지침을 지키면서도 송구영신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오전 10시 반에 20명 이내의 인원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그때부터 제가 하루 종일 가족단위로 오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 주려고 합니다. 그때 기도도 받고 약속의 말씀도 받고 신년소원예물도 드리고 가는 것입니다. 물론 순간순간 철저하게 소독하고 방역을 지키면서 할 것입니다. 그리고 11시 반에 송구영신예배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때 온라인으로 다 참여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때는 CBS TV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도 합니다. 우리 모두 힘든 겨울 광야를 걷고 있지만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얼마나 고귀합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습니까? 코로나는 누구도 예견할 수 없었던 재앙이었습니다. 내년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뿌려야합니다. 변함없이 축복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심어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송구영신예배를 포기하지 말고 약속의 말씀도 포기하지 말고 신년소원예물을 심는 것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더 비상 신앙, 비상 기도, 비상 헌신을 하며 더 높이 비상하고 웅비해야합니다.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작년 송구영신예배에서 본당을 가득 메운 성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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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12-2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비상(非常)시기입니다. 그럴수록 더 비상(飛上)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정말 대한민국의 비상시기이고 한국교회의 비상시기입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성탄절 예배까지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나 굴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지지난주부터 예배를 회복하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하였습니다. 중대본과 협의 할 때 우리 쪽에서 2.5단계에서도 공간의 10% 인원이라도 예배를 드리도록 조정 했어야 하는데 이것을 대비 못한 게 발등을 찍고 싶을 정도입니다. 사실은 모두들 2.5단계까지는 안 가리라고 생각 했거든요. 솔직히 우리 교회는 당분간 온라인예배를 드려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워낙 결속력이 강하고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강해서 유튜브와 화상 줌으로 해도 엄청 많은 성도들이 참여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배 회복을 위한 시대적 소명감을 가지고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러자 지난주 토요일 오전에는 방역단체에서 교계에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주려고 회의를 하려다가 갑자기 국내 확진자가 900명, 1000명으로 올라가 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일부 교회에서 무더기 확진자가 나와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다른 교단이 아니라 우리 교단 교회에서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회의가 취소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정말 맥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통보를 받은 금요일 저녁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철야기도를 인도한 후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요즘은 어느 말 많은 선교단체가 규칙을 어기고 숨어서 집회를 하다가 무더기 확진자를 내버렸지 않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확진자 수가 더 많이 올라가고 교회마저도 가세를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도 사람인지라 힘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항상 탐욕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숙주 자체가 인간의 탐욕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교회도 육신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선교집회나 예배도 신앙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면 안되지요. 중세적 사고로 세를 과시하거나 인간의 교권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집회나 예배에서 대부분 집단 감염이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 제가 예배회복을 위하여 뛰고 노력하는 것도 저의 탐욕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구와 경쟁할 일도 없고, 세 과시를 할 일도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 안에는 인간의 탐욕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주님과 공교회를 위한 거룩한 욕망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뛰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한교총 두 대표회장님과 함께, 때로는 교단 총회장님들과 함께 정부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서 반 사정을 하고 반 공갈을 하면서 설득하고 소통을 하였습니다. “성탄절 예배는 우리 기독교뿐만 아니라 천주교도 열망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기독교 2000년의 역사, 한국교회 140여 년 동안 지켜온 기독교 최대의 성일입니다. 성탄절만큼은 제한적으로라도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비상시기에 일을 하다보면 맥도 풀리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하루 종일 저와 함께 다니던 한 분이 저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소 목사님, 어떻게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갑니까? 그 많은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해 내세요? 그러고도 건강이 버텨지나요.” 저는 이런 대답을 하였습니다. “비상(非常)시기 일수록 우리가 더 비상(飛上)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잘 버텨왔는데 왜 포기합니까, 비상시기일수록 우리가 더 비상하고 웅비해야죠. 저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절규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다시 비상하고 또 비상하면 하나님께서 코로나의 기승도 꺾어주시고 확산세를 막아주신다고 믿으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록다운된 한국교회를 다시 열어 주옵소서. 무너진 한국교회를 세워주시고 대한민국도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이런 비상 시기일수록 우리 모두 희망의 날개를 펴고 더 비상하고 웅비하겠습니다. 아무리 맥이 풀리고 지쳐도 다시 날갯짓을 하며 또 한 번 비상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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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12-2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겨울산과 바다가 그립습니다. 품기도 하고 뿜어내야 하기 때문이죠.”
    저는 어릴 때부터 야행성이 강해서 시험을 앞두고 밤을 새워 벼락공부를 하던 습성이 있었습니다. 시험만 앞두면 밤도깨비가 되었죠. 그런데 지금은 시험 볼 일도 없지만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습니다. 요즘 제가 수많은 항의전화와 문자를 받기 때문이죠. “소 목사 당신은 정부와 싸워 현장예배를 지키도록 해야지 왜 중대본의 지침에 협조만 하려고 하느냐”고 말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거니와 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가 현장예배를 목숨처럼 지키면서도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는데도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항의전화를 해 온 분들의 심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교계에 대한 중대본의 방역지침이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관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중대본이 교회 예배 인원 숫자를 획일적으로 20명으로 제한하는 것은 교계에 대한 깊은 배려가 부족했다고 할 수 있지요. 당연히 중대본은 한국교회에 최소한 공간 대비에 맞는 비율을 배려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들의 항의전화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당연히 제가 그런 항의도 받아야하지요. 그런데 또 일부에서는 이런 문자를 보내오기도 합니다. “이번 2.5단계에서 예배 상황을 확 바꾸기가 힘들다면 차라리 전적으로 중대본에 협조한다는 것을 국민 앞에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자칫 국민들에게 교회가 지나친 이기집단으로 보도가 되고 비춰질까 싶은 우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의견도 큰 틀에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분에게는 또 그런 분대로 설득을 해 주었지요. 그래도 한국교회가 중대본의 방역지침에는 기본적으로 협조하더라도 표적화(선별화)된 방역의 모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은 전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계 내부의 일치된 목소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월요일에 우리 교단 목회자 세미나에서 이런 때는 일치된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연합기관이 논평, 혹은 입장문을 내면 여기에 합리적인 의견을 표출해 주시거나 일치된 의견의 댓글도 달아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러한 저의 표현을 어느 교계 방송은 꼭 집어서 논란의 발언으로 보도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어떤 분은 우리 총회본부와 우리 교회 앞에 와서 “정부가 입안해 놓은 교회폐쇄법에 왜 항의를 하지 않느냐”고 시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정부와 싸우지는 않고 맨날 이 정부에 협조만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법은 교회폐쇄법이 아니라 여야가 합의해서 만든 ‘감염병 시기의 집회’에 관한 법안이었습니다. 그런데 9월 총회를 준비하는 기간에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 일은 저도 모르고 박요셉 목사님도 몰랐습니다. 그 이후로 그와 비슷한 60개 이상의 법안이 올라왔는데 제가 이사장으로 있고 서헌제 박사님이 대표로 있는 한국교회법학회를 통하여 문제되는 요소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제되는 법안 개정을 위해서도 국회와 열심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늘 정부와 싸우라고만 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 법이야말로 코로나 상황 중에도 과격한 집회의 강행 때문에 입법이 된 것인데요. 그러나 저는 항의하고 시위하는 사람들까지도 다 품어야 합니다. 하나됨의 사명을 이루어야하니까요. 오히려 저는 그들을 향해서도 끊임없이 산소를 뿜어주는 산이 되어야 하고 흘러오는 강물을 정화시키는 바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겨울산과 겨울바다가 그리워 잠들지 못하는 밤을 경험합니다. 언젠가, 깊은 겨울산과 바다를 한 번 가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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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12-1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이 없어도 걸어가겠습니다. 그러다보면 길이 될 거라 믿습니다”
    저는 지난 12월 3일 한교총 대표회장에 취임하였습니다. 한교총 대표회장은 세 명인데, 법적 대표는 이사장 한 명입니다. 그런데 백석 교단 총회장이신 장종현 목사님께서 세 명이 대표회장을 하는 것을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교총과 연합 활동하는 것을 행정보류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저는 그 어른을 찾아가서 사정사정을 하였습니다. “총회장님, 한국교회가 리더십의 부재로 얼마나 고초를 겪었습니까? 한국교회는 목사님 같은 큰 지도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행정보류를 푸시고 한교총에 들어와 대표회장을 맡아주십시오.” 저 혼자만 그런 말씀을 드린 것이 아니라 김태영 직전 대표회장님과 함께 만나 간곡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저의 진정한 목표는 장종현 총회장님을 이사장 겸 실제 대표회장으로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현존하는 지도자 가운데 가장 통 큰 지도자요, 섬김과 희생을 몸소 보여주셨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는데, 장종현 총회장님께서 갑자기 저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저더러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장종현 총회장님께서 맡아주시라고 또 간곡하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교계 연합기관을 통합하려면 온 몸으로 뛰며 반대 여론을 설득하고 소통과 공감을 해야 합니다. 또한 많은 오해와 비난의 화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종현 총회장님을 잘못 앞세웠다가 공연한 오해를 받게 하거나 명예를 실추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의 한교총으로도 좋은데 왜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돌이켜 볼 때 한국교회가 연합기관의 분열로 엇박자 리더십과 메시지를 냄으로써 얼마나 큰 데미지를 입었습니까? 연합기관과 단체들이 서로 엇박자 소리를 내고 다른 행동을 하니까 국민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부정적 여론의 프레임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코로나 팬데믹 처치 시대에 원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하고 원 메시지를 내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더 큰 참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저는 내면에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윗사람을 모시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장종현 총회장님을 대표회장님으로 모셔야 하는데 또 현실을 감안하면 장종현 총회장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밀고 당기기를 여러번 하였습니다. 결국 어찌어찌해서 등 떠밀려 제가 이사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인사말을 하는 순서도 장종현 총회장님이 제일 먼저 하시게 하고 사진을 찍을 때도 가운데로 모시고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를 할 때도 한 중앙으로 모셨습니다. 그래도 아쉬워서 오는 길에 장종현 총회장님 사무실을 들려서 이렇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총회장님, 정말 송구합니다. 저는 어르신의 그림자도 밟지 않겠습니다. 한국교회가 연합을 이룰 때까지만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 이후에 더 크게 섬겨주십시오.” 앞으로 제가 걸어야 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잠 못 이루는 밤을 많이 겪었는데 얼마나 더 많은 잠 못 드는 밤을 보내야 할지요. 저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그러나 오직 포스트 팬데믹 교회를 세우고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는 음부의 권세와 싸워나가기 위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걸어갈 것입니다. 길이 없어도 걸어가다 보면 곧 길이 될 것을 믿으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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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12-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싸움의 대상을 바로 정해야 합니다. 싸움의 기술은 더 중요한 거구요.”
    저는 젊은 시절에 중국 무협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저의 영적 전쟁으로 오버랩을 시키며 기도해봤습니다. “주여, 저의 영혼이 저렇게 민첩하고 용기 있게 하시고 잠을 자면서도 사탄과 싸우게 하옵소서.” 그러나 요즘은 그런 무협 영화를 보지 않습니다. 영춘권, 태극권의 고수들이 격투기 선수들에게 1분도 안 되어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이따금씩 삼국지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삼국지에도 좀 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조자룡이 20만의 진을 뚫었다든지, 관우의 오관 돌파의 전설이라든지 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역사 소설인 것만은 분명하거든요. 그런데 삼국지를 보면 군사의 수나 용맹보다도 싸움의 전략과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싸울지도 모르는 어설픈 군사들이 먼저 나가 싸우다가 전쟁을 망쳐버리는 것을 봅니다. 마속 같은 경우는 제갈량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소신을 앞세우다가 촉나라의 군대를 무참하게 희생 시켜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적벽대전에서는 다르죠. 제갈량은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는 면도 있었지만, 먼저 조조 진영의 군대를 이간질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조조의 군사들이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80만의 대군이 대패를 하게 만들어 버렸지요. 요즘 반기독교 진영에서는 한국교회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서 공격을 합니다. 어떻게든지 한국교회로부터 공격의 빌미를 잡아서 파상적인 공세를 취한 후 분열을 시키려고 합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각자의 의분을 가지고 내부총질을 하고, 기관마다 자기 소리를 내며 각개전투를 합니다. 한국교회가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낸 것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각자 따로 메시지를 내고, 따로 행동을 합니다. 코로나를 대응하는데 있어서도 여러 소리가 나왔습니다.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것은 정부에 굴복하는 것이라느니, 중대본의 수칙을 지키는 것도 정부에 항복하는 것이라느니, 사회적 거리두기 하는 것이 성경 몇 장 몇 절에 있느냐는 등 각자의 소리를 내며 오히려 싸움의 대상을 우군으로 정해버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예배를 생명처럼 여겨야 합니다. 전염병 중에도 구약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상번제를 끊지 않고 드렸습니다. 그러나 멀리 있는 백성들은 전염병 중에 성전으로 모이지 못할 것을 전제하고 성전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했잖아요.(대하6:28-30) 그러니까 전염병 중에는 당연히 건강한 중직자들은 현장예배를 드리되, 노약자와 고위험군은 집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다가 조그마한 실수로 교회에서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와 버리면 반기독교 세력은 온갖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서 모든 언론과 국민 여론이 교회를 공격하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코로나를 거치면서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싸움의 본질을 알고 싸움의 전략과 기술을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기독교 진영이 프레임을 걸어오면 우리는 그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고 오히려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며 새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교회와 예배의 본질을 붙잡되, 꼰대가 아닌 새로운 교회 모습을 보이고 새 술을 담는 새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하나로 뭉쳐 힘을 축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략가들을 세워서 싸움의 전략과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더 견고하게 될 것이고 시대의 정신적, 영적 방역의 기능을 하고 거룩한 항체와 저항인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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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11-2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 함께 귤 따러 가요”
    우리 총회에서 10년 전 제주도에 수양관을 지으려고 사 놓은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수양관을 짓지 못하고 귤밭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제주도에 가서 그 귤밭을 보고 반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회장이 되면 꼭 귤 따러 오겠다”고 이야기를 해 놓았습니다. 물론 제가 총회장이라고 해서 그냥 따는 것이 아니라 경작 수고비를 다 지불하고 성도들에게 좋은 추억도 선물하고 싶어서 같이 간 것입니다. 정말 총회장이 된 이후로 두려운 영광, 영광스러운 두려움에 싸인 긴장의 나날이었고, 총회 세움과 한국교회 세움의 사명 때문에 강박증에 시달릴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 제주도 귤밭에 귤 따러 간다고 생각하니까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가슴이 설렜습니다. 제주도를 수없이 왔다 갔다 했지만, 귤밭을 눈으로 보기만 했지 한 번도 직접 따보지는 못했거든요. 마침내 우리 총회 귤밭에 도착하였는데 정말 얼마나 탐스러운 귤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지요. 제주노회 목사님들이 총회장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현수막도 걸어주고, 삼겹살도 구워 놓았는데, 저는 바로 귤나무로 달려가서 정신없이 귤을 12개나 따 먹었습니다. 귤을 따 먹는데 얼마나 과즙이 상큼하게 터지는지 향기가 진동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동행한 성도들도 정신없이 귤을 따서 정말로 사랑하는 분들에게 택배로 보내드렸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상큼한 감귤을 따 먹는구나.” 십 수 년 전부터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포괄적 차별금지법, 종교인과세 등 한국교회를 위태롭게 할 수 있었던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많은 재정과 시간과 힘을 바쳐 눈물로 씨를 뿌렸습니다. 그 일의 가치와 성과를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같이 일했던 분들은 다 압니다. 그때 김영진, 전용태, 김승규 장로님, 이혜훈, 김진표 의원님, 측면에서 박지원 현 국정원장님 등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고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코로나19로 인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한 번도 취업을 못 해본 청년들이 29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하며 눈물로 씨를 뿌리면 반드시 열매를 딸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의 어딘가 제주도의 감귤처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꿈의 열매, 축복의 열매가 익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하면 모르지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영혼의 감귤, 삶의 성공이라는 감귤을 딸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감귤 뿐 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도 영혼의 감귤, 축복의 감귤이 있습니다. 그 감귤은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딸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고 눈물로 씨를 뿌린 자만이 거둘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돌아와, 저는 또 정신없이 총회와 한국교회 연합과 세움 사역을 위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사역을 하다 보면 오해도 받고 힘든 일을 겪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제 삶의 또 다른 내일 어딘가에 제주도의 감귤처럼 상큼한 축복의 열매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축복의 열매들이 익어가고 있으니까요. 우리 함께 귤 따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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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11-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영택트 시대를 선도하며 재부흥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저는 지난 화요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총회 미래정책전략특별위원회장이신 이승희 전 총회장님과 함께 특별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제가 부총회장 시절부터 총회 노재경 국장과 미리 의논하여 장년과 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한 ‘코로나시대 종교 영향도 인식조사’를 발표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많은 분들이 한국교회에 등을 돌리고 비난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평소에 진단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종교적 카르텔과 이너서클의 모습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포맷의 교회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말을 처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신문에도 글을 많이 쓰고 책에도 썼던 원론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느 기자가 제가 공개사과를 했다고 기사를 쓴 것입니다. 제가 그 기사를 보면서 좀 수정요구를 하려다가 리서치 대표를 비롯하여 몇 분들과 의논을 하니까 그대로 두는 게 낫다는 겁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현대인의 목소리고 국민 의견을 반영하는 글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장에 오지 않은 기자들까지 그 기사를 받아쓴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자들은 제가 말하는 의도대로 미래 비전 중심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도 없었고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부 언론의 기사만 보고 저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유튜브나 기사를 보지 않습니다. 물론 비서실에서 요약해서 보고는 하지만요. 저는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서편제에 나오는 유봉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유봉은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면서 소리의 3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다듬어서 아름답게 내는 소리입니다. 둘째는 그 아름다운 소리를 넘어 한이 맺히는 소리를 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송화가 한 맺히는 소리가 안 나올 뿐 아니라 도망을 가 버릴까 싶어서 한약방에 가서 눈을 멀게 하는 약을 지어다 먹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송화로 하여금 가슴을 찌르고 폐부를 오르고 내리게 하는 숙연한 소리가 나오게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다 내려놓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유봉이 죽으면서 송화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송화야, 이제 한을 내려놓아라. 내가 너를 눈멀게 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지? 이제는 한을 내려놓고 넘어서면 그때는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세계만 남느니라.” 저도 옛날에는 제 자신이 잘 해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을 비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저 자신이 전면에서 이슬람 수쿠크법을 반대하고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며 종교인 과세 대처를 하는 사역을 하다보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하고 험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저는 더 잘 해보려고 했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그널만 바라보며 가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 사회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시대 변화와 흐름을 목도해야 합니다. 우리끼리 꼰대적 사고를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이번 기자회견은 메이저 일간지, 공중파, 종편 방송 등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회적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한국교회를 향해 부정적 인식을 보이던 이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사회적 소통과 공감의 채널을 넓히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언택트를 넘어 영(靈)택트 시대를 선도하며 한국교회의 재부흥 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 가을 낙엽을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상처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입은 상처는 다시 어둔 밤을 비추는 희망의 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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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11-0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는 거룩한 생산적 소비자들입니다. 새에덴이 프로슈머로 러닝할 때이죠”
    저는 총회장에 취임하면서 몇 가지 공약을 했는데 먼저 역사 다큐를 제작하는 것과 ‘합동 개혁 교단합동 15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총회 역사 다큐는 사상 초유의 온라인총회로 인하여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었던 총회를 진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는 총회가 되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단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수개혁신학의 순혈성을 지키는 역사 콘텐츠를 제작하는 큰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에는 63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합동 개혁 교단합동 15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실 10주년 때도 행사를 하려고 했는데 말들이 많아서 못했습니다. 작년에도 헌의가 들어왔는데 무산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총회장에 취임하면서 그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15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기획한 것은 예배드리고 밥 먹고 흩어지는 일회성 행사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합동과 개혁의 아름다운 화합의 역사를 우리 교단을 넘어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의 통합의 정신으로 확장시키고 우리 교단이 명실상부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화합의 플랫폼으로 우뚝 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행사를 위한 모든 경비는 우리 교회에서 섬겼습니다. 메달과 배지도 우리 교회에서 다 준비했습니다. 거룩한 생산적 소비를 통하여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교단의 비전과 가치,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한 것입니다. 큐시트 상으로는 12시 30분이면 행사가 끝나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좋으니까 기념사, 축사, 격려사들이 길어지면서 예상 시간을 초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패 받을 분들을 일일이 강단으로 모셔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유감스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사 내내 행사장 안에는 한국교회 최대 장자교단인 합동 교단의 위상과 연합의 기치를 다시 한 번 높이 세우고자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뜨거운 열망과 의지로 가득하였습니다. 온전한 합동의 마침표를 확인하는 자리요,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역사를 시작하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정세균 국무총리님께서 영상축사를 보내주셨고,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님, 한교총 김태영 총회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축사를 해 주셔서 화합의 큰 정신을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15년 전 합동과 개혁의 교단합동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행하시고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서기행 총회장님과 홍정이 총회장님의 진심을 오해하고 곡해하였던 것을 사과드립니다. 두 분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신 교단 합동을 이루신 신실한 사명자들이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합동의 간판을 달고 한국 교계에 큰 임팩트를 주는 교회 부흥을 일구었고, 합동이라는 날개를 달고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며 교회 생태계를 세우는 사역을 위해 러닝을 하고 또 러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3부 때 미니콘서트를 하신 남진 장로님도 대단하셨습니다. 그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무대를 휘어잡으며 열창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남진은 남진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15주년 기념 감사예배는 끝났지만, 진정한 화합의 역사는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 교단의 부흥의 불꽃이 화합의 플랫폼이 되어 분열된 국론과 코로나로 상처받은 우리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대한민국을 화합의 플랫폼으로 만드는 영적 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새에덴교회가 이 일을 먼저 주도하는 프로슈머, 거룩한 생산적 소비자들이 되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였습니다. 행사를 위해 물질로 섬겨주신 장로님들, 그리고 기도와 안내봉사로 섬겨주신 새에덴의 성도님들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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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11-0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낙엽에 내 마음을 새긴다. 부디 사랑의 엽서가 되어다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제가 총회와 한국교회의 여러 사역을 감당하다 보니 세월이 화살처럼 날아가는 듯합니다. 금세기 최고의 인문학자인 이어령 박사님의 표현대로 새가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날아가는 듯, 1년이 빠르게 느껴집니다. 벌써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단풍이 되어 거리에 나부끼고 있지 않습니까? 이젠 구르몽의 시처럼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를 느낄 새도 없습니다. 그냥 낙엽이 지고 있구나 하며 차창 밖으로 낙엽을 바라보고 지나갈 뿐입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이선희 선생님의 ‘청춘’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봄과 여름 사이 어디쯤에 있을 아 아 그 시절 노래 부른다 사랑 노랠 불러본다 보석처럼 빛나던 나의 꽃다운 날들 혼돈과 열정 사이 어디쯤이었을 청춘 노랠 불러본다” 이토록 청춘이 빨리 지나가고 벌써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삶이 허전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떨어지는 낙엽에다 저의 마음을 새겨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5월에 우리 교회는 예배 회복을 위하여 ‘보랏빛 초청 주일’을 지냈잖아요. 제가 그때 눈물을 훔치면서 설운도 선생님의 ‘보랏빛 엽서’라는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습니다. ♪보랏빛 엽서에 실어온 향기는 목자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 보려 해도 떠나버린 성도 마음 붙잡을 수 없네 오늘도 가버린 성도의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돌아올 성도 모습 목자의 사연 이 노래를 부르며 저도 울고 성도들도 많이 울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보았던 수만 명의 성도들도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부른 노래 영상을 임청화 권사님과 유송근 장로님이 설운도 선생님한테 찍어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운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로 얼마나 칭찬을 받은 줄 아십니까? “목사님, 어쩌면 그렇게 보랏빛 엽서를 잘 부르세요. 목사님이 가수인지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지금 떨어지는 가을낙엽은 노란빛, 붉은빛 색깔이지요. 저는 보랏빛 엽서 대신에 가을낙엽을 노란빛, 붉은빛 엽서로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잎사귀마다 새겼습니다. “낙엽들아,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자연을 순백하게 사랑하는지 알고 있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도... 이런 내 마음을 너의 마음에 새겨본다. 부디 사랑의 엽서가 되어 우리 성도들에게 전해 줄 수 없겠니.” 제가 얼마나 예배 회복과 만남의 공동체를 그리워하면 이런 생각을 해 봤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런 심정으로 지난주엔 ‘러블리 주일’을 기획하고 전자엽서를 만들어서 성도들 폰으로 이런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어디 있나요? 얼마나 힘들었나요? 혼자 보낸 시간이 너무 아프진 않았나요? 함께 모여 예배드리던 시간이 그리워 울지는 않았나요? 우리의 시간은 그냥 흐른 것이 아니겠지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간만큼 그리움이 쌓이고 사모함이 쌓이고 열망이 쌓여 더 새롭고 애틋한 사랑이 가슴에 꽃처럼 피어나지 않았나요? 이제 그 꽃송이를 들고 오세요. 러빙파더이신 하나님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랬을 때 주일예배가 웃음과 눈물이 함께 파도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어떤 면에서 코로나 때문에 더 강력한 부족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 모이고자하고 교회를 사모하는 열망이 더 커졌으니까요. 그리고 성도를 향한 저의 심장의 온도, 눈빛과 언어의 온도를 느낀 성도들도 눈물 젖은 헌신적 희생의 제물을 드렸고 오히려 더 강력한 영적 부족공동체를 이루어 주었습니다. 금주도 노란빛, 붉은빛 단풍엽서가 성도들 가슴 속에 잘 전달되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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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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