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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지금은 사랑하고 치유해야 할 때입니다”
    저는 요즘 같으면 명대로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설교 때 말씀드린 ‘꾀꼬리 틀의 단장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조선 중종 때 ‘어숙권’이라는 식물학자가 꾀꼬리 어미와 새끼를 칸을 막아놓고 분리를 시켜놨다지 않습니까? 게다가 새끼들을 굶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꾀꼬리 새끼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꾀꼬리 어미는 밤낮으로 구슬프게 울기만 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에 어미와 새끼를 만나게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어미 꾀꼬리는 곧바로 쓰러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어미 꾀꼬리 배를 갈라보니까, 창자가 18토막이나 나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미 꾀꼬리의 애간장이 녹고 녹아 창자가 잘라져 버린 것이죠. 저도 몇 주 동안 애간장을 끓이며 살았습니다. 지금 언론이 얼마나 교회를 향하여 공격적 포문을 쏟아내고 있습니까? 더더욱 참담한 것은 국민의 분노의 화살이 한국교회 전체를 향하여 빗발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애드립 문제로 공격받은 것에는 신경 쓸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총회와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온 애를 끓으며 전심전력을 다 해 투혼을 불살랐습니다. 저는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14년 동안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왔고 이슬람 스쿠크, 포괄적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 등의 문제를 위하여 전면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총회와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저에게 이렇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소 목사님,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6.25전쟁 때도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배를 드렸는데 우리가 순교를 각오하고 현장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공적 사역이니 소 목사가 총대를 메고 정부와 싸워 주세요.” 다짜고짜 화를 내며 퍼부어대는 목사님께 참고 인내하면서 이렇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저도 목사님과 생각이 똑같습니다. 만약 공산당이 총칼을 들고 와서 예배를 못 드리게 한다면 목숨을 걸고 예배를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온 국민이 전염병 때문에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있는 때가 아닙니까? 우리 교회 역시 주변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 지역이 초비상인데, 우리가 일상적인 예배를 강행했다가 우리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최소한의 숫자가 예배를 드리면서 동시에 온라인예배를 드리도록 저는 정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설득하고 있습니다.” 저는 깊이 성찰해 보았습니다. “아, 나는 정말 용기가 없는 목사인가, 정말 비굴한 사람인가. 아니, 나만큼 예배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그리고 예수님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잖아. 지금은 전염병을 막고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상처와 시대적인 아픔을 품고 애통하며 기도하고 사랑해야 할 때야. 감염병 때문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정부와 싸울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저는 먼저 제 자신의 부족함부터 회개하고 가슴을 치며 애통하였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는 먼저 자성하면서 서로 하나 되어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전염병 확산을 막고 퇴치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다시 선교와 재부흥의 기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멀어도 예배를 생명처럼 여기면서도, 국민 보건을 위해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사랑의 길도 포기해서는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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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8-2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를 마지막으로 끝내야 합니다"
    지난 목요일에 섬진강 둑이 터져서 완전히 마을이 호수처럼 되어버렸던 남원시 금지면 귀곡리에 가서 150여명의 성도들과 함께 피해복구 작업 및 봉사활동을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적지만 이환주 남원시장님께 1억원의 구호성금을 전달하였습니다. 원래는 그날 오후 2시에 경주에서 총회 일정이 있었는데 그 일정을 저녁으로 미루고 새벽에 남원으로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도 수요일 저녁에 결정을 한 것이죠. 남원이 제 고향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파서 저도 직접 내려가서 그릇도 닦고 삽질을 하였습니다. 옛날에 삽질을 해 봤기 때문에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여러 곳에서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는 것입니다. 제가 남원에 내려왔다는 단신기사가 인터넷에 뜨니까 많은 사람들이 제가 남원에 온 걸 다 알고 이렇게 연락이 온 것입니다. “목사님, 벌써 남원에 가셨네요. 목사님의 열정은 못 말립니다. 정말 목사님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입니다. 이제 지난일은 잊어주세요.” “목사님, 별거 아니에요. 목사님의 진정성을 압니다. 목사님이 사람을 높이려고 했겠습니까? 그분을 아군으로 선용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죠. 목사님만큼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해 온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 분도 목사님의 공적 사역에 열렬한 우군이지 않았습니까? 그만 잊으세요.” 이런 등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잊어 버렸는데 이런 연락들이 오니까 지난 주간의 일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데 일부 사람들로부터 인신공격에 가까운 극렬한 공격을 받았을 때 왜 스트레스를 안 받았겠습니까? 그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여름수련회를 다 인도하고 주일설교도 다 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화요일에는 총회 목사님들을 많이 만나고, 수요일에는 한교총 주관으로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위장된 차별금지법 반대와 철회를 위한 한국교회 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새벽에 남원에 내려온 것입니다. 제 진의와 상관없이 덕담을 가지고 비판한다면 얼마든지 사과하지요. 그러나 악의적으로 단어 하나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의 말꼬투리 하나 가지고 그랬지 않습니까? 요즘 더 가슴 아픈 것은 설교자에게 있어서 복음의 본질이 중요한 것인데 복음논리가 아닌 이념논리를 가지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신학교 교수들 가운데도 이념논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복음논리, 성경논리, 교회세움 논리가 중요하지요. 진보진영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이 중심이 돼야 하고, 보수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뒷전으로 하고 이념을 앞세워버리면 교계 안에서도 상처와 분열과 파멸을 조장하는 파괴적 문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도 존경 받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존경을 받는다고 공적 사역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존경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한국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고 세우는 공적사역을 잘해야 합니다. 존경만 받으려면 자기 이미지 관리만 하고 개교회 목회만 잘하면 되지요. 그러나 저는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교계와 정재계, 사회문화 분야를 다 아우를 수 있는 크리스천 탑 리더십을 구사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일부 말 한 마디를 왜곡 편집하여 악의적으로 공격하거나 이념의 색깔을 씌워 분열시키는 파괴적 문화는 끝내야 합니다. 이것은 꼭 제가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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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8-1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 떨림은 거룩한 부담감이 되었고요“
    몇 달 전 저는 30년 전통을 이어온 새에덴 장년여름수련회를 앞두고 고심 하였습니다. 예전처럼 오크밸리에서 할 것인가, 아니면 코로나 여파로 중단 할 것인가를 놓고 말입니다. 그런데 김종대 장로님과 이종민 목사님이 교회에서 할 것을 계속 건의하는 것입니다. 오크밸리에서 하면 몇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첫째, 사회적 분위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방역의 모범을 보였는데, 집단생활을 하다가 한 사람이라도 확진자가 나와 버리면 사회에 얼마나 부정적 파장을 주겠습니까? 둘째, 우리 내부에서도 숙소를 남의 가족과 함께 쓴다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고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셋째, 아이들 방학이 너무 짧아 5천여 명이 멀리 함께 이동을 한다는 것이 무리였습니다. 결국은 제가 그 제안을 수용하였고, 오크밸리와 계약한 것은 내년으로 연기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여름수련회를 교회에서 하게 되었는데, 결정을 잘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여름수련회를 처음 하기에 과연 얼마나 모일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첫 예배 때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많이 모일지는 저도 생각을 못 했고, 준비팀에서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물론 생활속 거리두기를 지키긴 했지만 본당 1,2,3층을 가득 채우고 비전홀까지 가득 앉아서 성도들이 영상으로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동탄지성전은 지성전대로, 기도원에서 참여 한 분도 계셨고, 또 지하 주차팀들은 지하에서 영상으로 집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주차장이 가득 차 단국대에 수백 대가 넘는 차를 주차 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리 예상을 못한 결과 단국대를 오가는 셔틀버스 준비가 많이 안 돼 교인들에게 얼마나 불편을 끼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계속 모여드는 것입니다. 모여드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너무 송구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바쁜 가운데도 최선을 다해 설교 준비를 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더 밤을 새워 말씀을 더 잘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리고 말씀을 더 잘 전했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김요한 안수집사님에게 소독을 철저히 잘하고 있느냐, 이종민 목사님에게 QR코드는 잘 체크를 하고 있느냐 점검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새벽에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도 본당이 가득 찬 것입니다. 오히려 짧은 시간에 준비한 설교를 다 전할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쉽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폭우 속에서도 새벽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본당을 가득 채운 성도들을 보며 경이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마음이 떨리기만 합니다. 금요일 오전에 쓰고 있는데 새벽에도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마지막 타임을 맞게 될 텐데 마지막 시간이 더 거룩한 부담감으로 가득해집니다. 아니 새에덴교회 성도들에게 더 빚진 자의 마음이 들기만 합니다. 그렇게 많이 모이기도 하지만, 감사헌금을 열심히 하는 성도들이 참 존경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 존경심과 부담감으로 저는 은퇴하는 날까지 신실하게 성도들을 말씀으로 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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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8-0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고요한 정적이 삶을 덮어오기 전···”
    저는 지지난주, 9월에 있을 총회 준비를 위한 지역 간담회를 했습니다. 지방을 내려가면서 갑자기 고(故) 박정하 장로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아들인 박희태 집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박집사님 말씀이,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내일이 팔순”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랑 산소에 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대구에서 오전 행사를 마치고 올라가는 길에 금산에 있는 묘소를 들리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약속대로 다음날 오후 박정하 장로님의 묘지에 꽃다발을 헌화하고 권사님과 집사님을 위로하고 왔습니다. 저에게 있어 박정하 장로님은 정말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으로 만나게 된 은인이십니다. 저는 젊은 나이에 총회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박정하 장로님께서는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총회장 후보 나이를 낮추도록 법을 바꾸고 직선제로 바꾸는데 앞장서셨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분이 돌아가실 날을 알고 그렇게 서두르셨는지 참으로 의아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총회와 한국교회에 정말 시기적으로 제가 꼭 필요한 상황인 듯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시 이런 인문학적 상념에 젖어 들었습니다. “아, 인생은 무엇인가.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삶과 죽음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몇 년 만 더 사셨어도 팔순예배를 함께 드리며 축하해 드릴 텐데... 누가 시키지도 않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장로님은 왜 그리도 나를 위해 열심히 뛰다 가셨는가.” 그렇게 보면 저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저 역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 세움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으니 말입니다. 묘소에서 내려오는데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흠뻑 땀을 흘렸습니다. 땀을 흘리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요, 살아 있으니까 저는 사명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박정하 장로님처럼 저를 위해 길을 열어주시고 도와주신 분도 계시지만, 간혹 저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저로 하여금 겸손하게 저의 길을 가게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여름과 가을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가을과 겨울 사이를 거닐 것이고 마침내 저도 박정하 장로님처럼 저의 사명을 다 마치고 겨울강을 건널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여름입니다. 저기 맑고 푸른 강이 풀잎처럼 누워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저 강을 건너야 오곡백과 풍성한 가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가을에 그 풍요의 열매를 제 손으로 직접 거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손으로 그 영글 영글한 열매를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 열매를 거두고 나면 들녘의 풍요를 나르던 가인들의 노래도 멈출 것이며 저문 광야에 찬 서리가 내리고 나면 홀연히 고요한 정적이 저의 삶을 덮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억새들의 하얀 머리털들이 바람에 부딪치며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저도 마침내 겨울강을 건널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여름에 더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엘리야 때처럼 숨겨 놓은 7천 명의 동역자들을 저에게 붙여 주셔서 함께 당신의 도성을 지키게 하소서. 당신의 나라를 더욱 강성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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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8-0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봄과 여름 사이를 지나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부르는 노래’
    저는 지난 주 9월에 있을 총회 준비를 위한 지역별 순회를 했습니다. 마지막 날 오후는 서울에서 서북지역협의회 리더들과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간담회만 한 후 식사도 못한 채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왜냐면 63빌딩에서 있는 남진 장로님 55주년 헌정 앨범 콘서트에 가서 축사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헌정 앨범 콘서트 자리에 본인이 새에덴교회 장로라고 소개하고,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유일하게 축사를 받고 싶다고 하는 남진 장로님의 신앙이 그날따라 더 별처럼 빛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무대에 올라가서 “불멸의 전설, 영원한 오빠, 노래하고 또 노래하는 남진의 55주년을 함께 축하합시다”고 하자 축사가 끝나기도 전에 청중석에서 “오빠”하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헌정 콘서트가 시작되자 남진 장로님의 젊은 시절부터 영상이 나오며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후배 가수들이 남진 장로님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조항조씨가 ‘울려고 내가 왔나’를 부르자, 제 옆에 있던 미연방하원의원을 지낸 김창준 장로님이 옛날 사귀던 여자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가수협회 회장 이자연씨와 알리, 서문탁, 육종완 밴드 등이 남진 장로님의 노래를 재해석하여 각양각색의 느낌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어찌 트로트의 제왕, 남진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순간적으로 저는 남진 장로님의 노래를 가장 근사치의 감성으로 부르고 싶은 주책없는 욕구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운도씨가 나와서 ‘모르리’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역시 트로트의 레전드답게 정말 잘 부르는 것입니다.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헌정 콘서트의 주제는 ‘당신을 노래합니다’입니다. 후배들이 선배에게 헌정 앨범을 헌정해 드리는 것은 우리나라 가요계 역사상 최초의 일입니다. 그런데 저의 가슴을 더 찡하게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팬들의 축하 영상 시간에 한 중년의 여인이 축하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젊은 시절부터 남진 장로님의 광팬이 되어 좋아하자 남편분이 무던히도 시샘하고 싸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남편이 그녀를 인정해주고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헌정 콘서트에 남편과 같이 오고 싶었는데 얼마 전 남편이 하늘나라에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있는 당신도 마음으로 함께 축하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는데 가슴이 찡한 것입니다. “음악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힘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지막 순서에 남진 장로님이 후배 가수들과 함께 ‘나에게 여러분이 있다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 안수집사님들이 ‘나에게 새에덴이 있으니’, ‘나에게 목사님이 있으니’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 순간 가수 이선희씨가 부른 ‘청춘’이라는 노래의 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또 봄과 여름 사이 어디쯤에 있을 그 시절 노래 부른다 / 청춘 노랠 불러본다” 저도 봄과 여름 사이의 시절,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질주를 하던 청춘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그런 시절을 지나 지금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고, 또 언젠가 가을과 겨울 사이에 서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때에도 교인들과 후배들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존경해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저도 지금,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인생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마음껏 사랑하며 섬기는 삶의 노래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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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7-2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돌다리도 두들겨가라는 시그널을 받았습니다”
    저는 작년 이맘때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고 총회에 등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단독후보가 되어 38년 만에 무투표로 부총회장에 당선되었습니다. 부총회장이 되어 지나온 1년 동안 총회장님을 잘 모시고 총회 운영을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2주 전에 노회에서 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노회에서는 ‘후보’라는 말을 빼 버리고 총회장을 추천한다고 해 버린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소감을 발표하면서 ‘총회장 후보’라고 했는데 노회 준비팀에서 너무 들떠서 그랬는지 ‘후보’라는 단어를 빼 버린 것입니다. 저는 성격이 소탈하여 와이셔츠나 바지에 뭐가 묻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문에 글을 쓴다든지 설교 원고를 작성할 때는 완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예민합니다. 그런데 저의 총회장 후보 추천을 위한 임시노회에서 총회장 후보 추천이 아닌 총회장 추천을 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임시노회를 소집하여 지난번에 빠진 ‘후보’자를 넣어 총회장 후보 추천을 받았다는 회의록을 본 임시노회에서 채택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일에 대해 거의 10일 동안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임시노회를 앞둔 전날 밤은 속이 상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잠이 안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임시노회를 한 후 총회 사무실에 가서 등록 하고 17개 광역시도회의에서 설교한 후 또 다시 총회임원회를 위해 목포까지 가야 하는 스케줄을 생각하니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불면의 밤을 지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소 목사 주변에는 장비처럼 밀어붙이는 충성꾼은 많지만 제갈량같이 치밀한 사람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전날 밤, 불면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야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일도 반드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라는 하나님의 시그널이었습니다. 임시노회를 마치고 총회 사무실에 가는 동안 이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기회요 고귀한 선물이라고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총회장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섬기고 가야할 위치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순간에 판단을 잘못하면 더 큰일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회의를 하고 결정 할 때 정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가야 한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제 자신을 가다듬게 되었습니다. 정말 중요할 때는 제갈량처럼 치밀한 사람을 옆에 두고 그런 사람 말에 귀를 기울려야 되겠다는 학습을 한 것이죠. 그런 학습이 축적이 되어서 제가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를 섬기는 동안 한 치의 오차나 실수가 없이 잘 섬기도록 하기 위한 기회요 선물임을 깨닫고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목포로 내려가면서 이 글의 초안을 쓰고 있는데 서해안 고속도로 가에 문득문득 보이는 도로 표지판이 오늘따라 새롭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저와 성도들의 삶의 순간순간마다 때로는 파란불로 때로는 빨간불로 시그널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이정표대로 멈춰야 할 때는 멈추고 달려야 할 때는 달리면서 순종하며 살기를 소원할 뿐입니다. 우리의 삶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그널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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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7-1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물 위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으려합니까?”
    지난 7월 8일 중대본에서 전국 교회를 대상으로 정규예배 외 교회 내의 모임과 행사를 금지한다고 하면서 이를 위반 시 벌금 조치를 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저는 그 전날 저녁에 총회 임원회를 할 때 중대본에서 이런 발표 계획이 있다는 소식을 연합 기관을 통해 들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하니까, 연합기관에서 한 번 지켜보자 해서 저도 일단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얼토당토 않는 발표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후에라도 이곳저곳 연락을 해서 교회가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솔선수범하며 앞장서야 되겠지만 중대본의 발표는 너무 한 것이니 해제를 촉구 하였습니다. 그렇게 설득도하고 항의도 하였지만, 마음이 너무 분하고 허탈했습니다. 코로나 초기부터 우리교회는 얼마나 방역을 잘했습니까? 의료 전도사님을 세워서 메디컬 처치를 운영하였고, 정부의 7대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켰으며, 지금도 특허청 허가를 받은 열 온도기와 항균 소독기 수십 대를 교회 입구와 교육관까지 설치하여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대본의 발표가 있는 당일에 청와대 게시판에 취소 청원이 20만 건이 넘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34만4천여 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한국교회가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교회가 방역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중대본이 너무 극단의 조치를 한 것입니다. 중대본이 교회로 하여금 방역을 잘 지키는 쪽으로 선도를 해야지, 물리적 제약만 하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저는 ‘착월선후 낭패지경’(捉月獮猴 狼狽之境)이란 고사성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리석고 눈 먼 원숭이가 물 위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처럼 정부와 중대본이 한국교회를 물에 비친 달로 착각한 것 같습니다. 방역 당국은 힘들게 물리적 방역을 지키면서도, 우리 사회의 정신적, 영적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항체와 저항인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한국교회를 마치 물 위에 비친 달처럼 착각을 한단 말입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그림처럼 한국교회가 그나마 어둠속에 불을 밝히고 있는데, 그 불마저 끄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남북관계가 얼마나 교착상태고 경제가 파탄 지경에 놓였습니까? 코로나로 인하여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교회가 위로와 위무,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데 이것마저도 막으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북이 극단적 대립을 할 때 정주영 회장처럼, 한국교회가 소떼라도 몰고 의약품도 싣고 가서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평화의 길을 열어야하는데 이렇게 교회를 옥죄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비교적 열려 있는 사람이어서 일부 수용하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쪽에서 청와대나 광화문 집회를 하자고 해도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말자고 말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번 중대본의 발표에는 아주 섭한 마음이 듭니다. 중대본이 어리석은 원숭이 같은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를 물 위에 비치는 달처럼 착각해서 보지말기를 바랍니다.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을 올린 성도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면서 중대본이 조속하게 시정하고 해제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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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7-12
  • 땅 : 점령인가, 거하는 시간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마도 제일 좋아하는 것 가운데 하나를 들라 하면 땅이 그 중 하나가 분명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과연 남다르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은 공시가로 한 평에 1억 8000만원에 이르는 서울 명동인데 작년보다 두배로 올랐다고 한다. 반면 가장 싼 땅은 진도에 있는 것으로 한 평당 210원이라고 한다. 땅값은 오를 때와 내릴 때의 가격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투기용으로 가장 좋은 대상이다. 오를 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하지만 내리는 것은 거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전체 땅 값은 2176조에 달하지만 서울시의 땅값만 661조에 달하고 거기의 한 평당 땅값은 2000만원을 넘는다고 한다. 이 가격은 2002년도 2월 26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난 서울의 전체 땅 값이 무려 390조에 비해 두 배나 올랐고 그 가운데 서울의 강남구 땅 값만 152조로 부산시 전체를 사고도 남는다고 한다(조선일보 2011년9월19일). 서울시 전체 아파트가 163만 9519가구라고 하는데 절반은 거의 9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가장 싼 전남의 진도에 사는 사람과 서울 강남구에 사는 사람은 현상적으로는 같은 한국 땅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같은 땅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 셈이다. 전자는 그냥 흙에서 살고 있고 후자는 금덩어리 위에서 살고 있다고 해야 한다. 서울의 땅값이 그 정도라면 아마도 아파트 건물들은 그냥 콘크리트가 아니라 금과 다이어몬드로 장식이 되어 있다고 해야 한다. 건축비 원가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건축할 때 드는 비용을 포함하면 상상하기 힘들만큼 땅의 가격이 비싸다. 이런 통계는 한국 사람들이 가지는 땅이라는 공간 개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는 듯하다. 유달리 우리는 땅에 한이 많은 민족인 것처럼 비친다. 과거 옛 조상들이 가졌던 땅에 대한 관심과 현재 우리가 가지는 땅에 대한 관심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땅과 관계할 때, 땅을 거주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고 반대로 점령개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거주를 가리켜 ‘거함’이라 하고 점령을 가리켜 ‘차지함’이라 한다. 거주개념과 점령개념으로 생각해 본다면 우리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하는 땅의 개념은 확실히 ‘거하는 공간개념’이 아니라 ‘점령개념’이 매우 강하다. 즉 공격적인 점령개념이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공통적으로 가지는 땅의 개념은 ‘거주개념’보다는 ‘점령개념’이 강한듯 하다. 예를 들어 특히 서울에서 어느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분양하면 떼거리로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모이는 이유는 집을 사기 위함이다. 집을 사기 위함이라면 사실은 그 모이는 분들이 지금 거할 공간이 없는 분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실은 지금 잠잘 집을 다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집 없는 자들이 집을 분양 받기 위해 모여들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거할 공간을 지금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땅을 가지고 돈을 벌기 위해서고 또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이 정신없이 사는 방식은 지금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보다 더 넓히기 위해서 남이 거해야 하는 땅을 점령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지금 점령하고 있는 공간을 내가 차지했으니 있는 힘을 다해 더 점령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자건 불신자건 대체로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은 공간점령, 즉 땅 넓히기가 아닐까? 직장에 간신히 취업이 되어 아침부터 열심히 일하지만 뭘 위해서 일할까? 아파트 사기 위해서고 은행에 융자 받은 융자금 갚고 내 집 마련을 위한 소박한 꿈이다. 그러나 그 내면은 지금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이런 현상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지만 뭘 위해서 일까? 현재는 1만명 모이는데 1만5천명 목표를 위해서이다. 예배당을 신축한다고 하지만 뭘 위해서 일까? 1만5천명 목표를 위해서라면 놀라운 일이다. 지금 모이는 1만명도 엄청나게 많은데 1만5천명을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 개신교 교회가 다른 교회의 교인들을 점령하여 지금보다 더 넓은 공간을 점령하기 위해서 이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단순하고 원시적으로 가시적 공간을 넓히려 한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공간 넓히기에 큰 관심을 가진다면,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우리는 약간 고상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두고 말하는데 그러나 실상 내용은 거의 똑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자기들 모이는 교회의 활동 공간을 넓히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듯하다. 성도가 500명 모이는 공간보다 1000명 모이는 공간이 훨씬 보기 좋을 것이다. 불신자들은 살고 있는 20평 아파트 공간에서 30평으로 넓히기 위해 오늘도 죽어라고 노력한다. 이들이 눈에 보이는 공간을 넓히기 위해 노력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좀 더 고상한 방식으로,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넓히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내용적으로는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땅을 ‘점령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땅을 하나의 ‘허공’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땅이란 허공 또는 공간 개념인가? 현상적으로 보면 땅은 허공이다. 점령해야 하고 차지해야 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땅이 점령이나 차지의 대상으로 보이는 것은 나와 땅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땅과 관계하려고 할 때 땅은 하나님 없는 허공으로 보이게 되고 점령의 공간으로, 내가 차지해야 하는 특정 공간으로 보이게 된다. 내가 직접적으로 땅과 관계하려고 할 때 땅은 점령해야 되는, 혹은 차지해야 되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땅은 내가 직접 관계해야 되는 대상이 아니다. 땅은 처음부터 부여 받았다.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점령하거나 차지해야 할 허공이 아니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동안 머무는 시간적 존재이다. 땅은 더 이상 공간이 아니라 시간적 존재이다. 창조주를 인정한다면 땅은 더 이상 허무한 공간이 아니라 시간적인 존재로 이해된다. 내가 창조주를 만나게 되면 땅은 내가 점령해서 천년 만년 자손 만대 물려주고, 내가 획득했으니 내가 지켜야 하는 공간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가 다시 돌려줘야 하는, ‘거주하는 시간’의 개념으로 보인다. 땅은 잠시 동안 거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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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7-07
  • 리처드의 가정의 행복의 이야기
    인류가 원하는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재물, 명예, 권력, 모험, 사치, 향락 등에서 처절하게 행복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사막에서 방황하는 길손들을 속이는 마치 신기루만 같았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가정에 있다. 나는 요즘 행복의 ‘초대’라는 책에서 미국의 럭키의 행복한 가정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으면서 깨달음 가졌고 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리처드 럭키는 어린 시절부터 화목한 가정에서 가족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다. 양가 조부모 네 분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할아버지 중 한분은 경찰관을, 또 한분은 자주 성가해서 큰 제빵 회사를 운영했다. 럭키의 아버지는 고교를 졸업한 뒤 사업가로 자주 성가 했다. 덕분에 리처드 럭키는 알프레드 중고등 학생 시절을 훌륭한 기숙학교에서 보냈다. 럭키는 대학을 졸업한 뒤 두 가지 사업을 동시에 시작했다. 그는 언제나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고 럭키는 재산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아내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을 어떻게 수용할지를 잘 알았다. 내과 의사들의 소견을 참조한다면 그의 70세 나이의 신체건강 상태는 객관적으로 나빴다. 고혈압, 심방섬유성 연혹, 취장염을 앓고 있었고 심장이 좋지 않아 심방 조절 장치를 하고 있는데다 척추수술까지 받았고 또한 비만이었다. 그러나 럭키는 실제로 병을 앓으면서도 76세에 이르렀을 즈음 건강상태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내과 의사들도 이제 더 이상 럭키를 신체적 무능 상태로 분류하지 않았다. 럭키의 취 장염은 말끔하게 완치 되었으며 70세에 대수술을 받은 뒤에 좋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척추상태는 몰라보게 호전되었다. 그 덕분에 럭키는 두 달 동안이나 스키를 즐겼다. 아직도 심박 조절장치를 하고 있고 고혈압이 있지만. 럭키의 주치 의사들은 “럭키는 신체적으로 매우 건강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매우 건강하다” 고 했다. 요즈음에는 남북전쟁에 관한 책까지 쓰고 있고, 예전과 같이는 않지만 톱질, 장작 패는 일쯤은 거든하게 한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리고 럭키는 오랫동안 꾸준히 교제해온 친구들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금연을 했다. 럭키는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린 뒤에도 무슨 일을 하던지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가능하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내는 “우리가족은 외출하는 일이 그의 없어요, 대신 교회 친구들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하거나 주말이면 농구팀 과 함께 스키 여행을 가곤하지요” 라고 말했다.럭키는 말로는 사교활동을 안하는 편이라고 했지만 알고 보니 웨스트 클럽에서 회장도 맡고 있었다. 직접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니 종교, 직업에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아내와 자녀들 역시 럭키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발표했다. 아내 역시 결혼생활에 만족하다고 하면서 럭키가 자기보다 결혼생활에 더 성실하다고 덧붙였다. 럭키는 동생과도 가까이 지내며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낚시를 함께 즐겼다. 또한 자녀들만 뿐만 아니라 요트클럽 회원들과도 여가 활동을 즐겼다. 럭키는 45세에 연구원에게 이렇게 답변서를 썼다. “죽음이 점점 가까이 오지만 나는 신(하나님)을 믿고 사후 세계를 믿음으로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고, 건강에도 자신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때 감정적문제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조금씩 양보하고 조심하면 그러한 사소한 문제들도 쉽게 사라진다”고 말했다. 럭키는 늘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살았다. 60세 때 럭키는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기억하며 살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럭키는 다른 사람이 베푼 은혜를 소중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75세가 된 럭키의 아내는 가족의 연간 수입이 500만 달러가 넘는데 여전히 청바지를 입고 잔 뒤를 깎고 이었고 마 굿 간 청소를 했다. 럭키는 결혼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변함없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 비결을 묻자 “나는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 한다”고 했다. 70세에 럭키는 “나는 건강하게 현재의 삶을 살고 있으며 현재나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다”고 썼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럭키가 고집을 부리며 까다롭게 행동을 할 때면 한 발 물러서서 양보했다. “내게 남편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다. 나는 옆에서 그를 보살펴 주는 것이 즐거우며 해가 거듭 할수록 우리 두 사람의 애정은 깊어지고 있다” 고 말했다. 은퇴 생활에 묻자 럭키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나는 단 하루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건강하게 생활하려면 누구에게든지 창조성이 필요해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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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7-0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위기 때 리더가 나온다잖아요. 당신이 그 리더가 되지 않겠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온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아니, 팬데믹은 엔데믹이 되어 대한민국 사회도 끊임없는 긴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의학계에서 호흡기 질환 바이러스는 여름이 되면 수그러들 것이라고 했는데,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예외적으로 여름에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아니, 다 잡았는가 싶었더니 몇몇 교회를 통해서 감염이 일어나면서 교회도 고위험군으로 확정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들이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특히 식사하는 일에 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몇몇 교회 문제로 교회 전체가 제재를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도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포스트 코로나’라는 언어를 많이 썼습니다.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은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가 아니라 ‘위드 코로나(with corona)’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당분간 코로나 백신이 나오고 완벽한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위드 코로나, 즉 코로나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할 상황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처음 시작했을 때 한국교회 지도부도 리더십의 방향성을 정하지 못했고 갈팡질팡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 확산의 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저는 한국교회 대표 지도자는 아니지만 줄기차게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소수중심의 현장예배와 온라인예배를 병행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배 회복 운동을 선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역사에서는 만일이라는 가설이 있을 수 없지만, 신천지 집단감염과 게이클럽 감염만 아니었으면 오늘의 상황까지 왔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문제는 이단과 동성애에 있었던 것이죠. 어떻든 간에 코로나 백신과 완벽한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 모두가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포스트 코로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위드 코로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위드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보다 코로나를 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답을 주시고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이걸 믿고 하나님의 답을 가진 사람만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 퍼스트 리더가 되고 선제적 리더십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 역시 이번 코로나 위기 때도 선험적 리더십을 발휘하였고 우리 교회도 선도적 리더십을 발휘해 왔습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저를 믿어주고 따라주고 지지해 주었기 때문에 저와 우리 교회가 이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위기 상황이 계속 될 것 같은데,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위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교회적 리더십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처한 개개인의 삶의 현장에서도 퍼스트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위기 때 리더가 나온다잖아요. 당신이 그 리더가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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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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