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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시설보다 중요한 것들
    저는 지난주부터 한교총 사무총장에게 “폭염 때문에 잼버리 대회가 난항을 겪고 있으니 한국교회에서 해야 할 게 뭐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생수 5만 병 보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1만 병을 지원했는데 이것 가지고는 너무 허전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주최 측으로부터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용은 수천 명도 할 수 있지만 샤워시설이 따르지를 못합니다. 더더구나 우리 교회는 지금 여름수련회 집회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관을 개방하면 바닥에 침구를 깔고 500명 이상은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간작업을 해서 화장실을 샤워시설로 개조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 480명이 입소를 했습니다. 애들이 교회 들어오자마자 “야,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느냐.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교회에서 밥만 제공한 게 아니라 간식까지 제공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캐리비안베이를 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새만금에서 흘린 땀을 캐리비안베이에서 다 식혀 버리도록 한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모든 경비를 다 제공했고요. 그런데 다음날 연락이 왔습니다. 교회보다는 용인시를 비롯해서 다른 숙박 시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2인 1실이고 샤워 시설도 제대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솔하는 대장들이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그쪽으로 가고 싶은지 설문조사를 하니까 10분의 9가 교회에 남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청소년 수련원이나 기업체 연수원에 가면 훨씬 시설이 좋죠. 그렇지만 캐리비안베이를 비롯해서 교회에서 하는 행사와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화요일부터 마지막날까지 이재훈 목사님 주도로 메디컬처치를 오픈하였습니다. 실제로 의사와 간호사들이 직접 하얀 가운을 입고 무료 진료를 해 주고 약을 주니까 아이들이 더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종민 목사님을 비롯해서 모든 스텝들에게 “최대한으로 잘 섬겨 주세요. 특별히 중국에서 온 아이들은 새만금 잼버리의 폭염의 기억들을 다 지워버리고 우리 교회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도록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주세요”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회에 남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방송에서 우리 교회라고 콕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강당 바닥에서 잠을 자도록 했다는 부정적 보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아침을 먹으러 나온 아이들이 핸드폰을 켜들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 뭐래요? 왜 이렇게 썼대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단장님들도 서류 뭉치를 들고 와서 걱정스럽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사는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기자회견이라도 할까요?” 그러나 우리 스텝들은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단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합시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보고를 받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빠른 뉴스와 정확한 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뉴스를 할 때 심층 취재를 좀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니 우리가 원해서 아이들을 숙박하게 한 것도 아니고 갈 데가 없으니까 우선 종교시설과 여러 교육시설을 알아보고 우리한테 요청해서 온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밤을 새워서 샤워시설을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점이 있었겠지만. 그런 부분만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인가, 언론은 균형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더 좋은 시설이 있으니까 가지 않겠느냐고 묻고 그들이 가면 정말로 환송을 잘 해주려고 했는데 그들은 끝까지 교회에 남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MZ세대와 기성세대의 차이가 대단한 줄 알았는데 MZ세대라고 별 차이가 없구나. 그들도 시설보다 중요한 게 친절이고 환대고 섬김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 바깥에선 아무 행사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시원한 실내 공간에서 재미있는 레크레이션을 하고 심지어는 CCM 율동까지 하면서 완전히 디쇽(영원한 불꽃은 없으니 빛날 때 만끽하라)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은 진짜 어렸을 때 교회에 나갔었는데 처음으로 교회로 와서 숙식을 해봤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성을 다해서 사랑해 주고 섬겨주는 것을 보면서 교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가고 안 나가고를 떠나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애와 인류애를 실천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반드시 이런 일을 해야 됩니다. 저는 수련회 집회 중에도 비전홀과 각 교육관 시설을 개방하여 화장실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성도들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교회 화장실을 들리지 않고 집회를 마친 후에 집에 가서 용변을 보신 성도들에게 한없이 송구하고 추앙합니다. 그리고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재정을 투자하여도 모든 걸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신 장로님들과 성도님께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역시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살아남는 길은 처치 션샤인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 교회가 앞장서서 사회적 돌봄과 시대적 아우름에 앞장서야 교회가 산다고 생각합니다. 퇴소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들이 행복한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부정적 성향의 보도를 한 언론은 이런 것을 알고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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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1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디쇽, 빛날 때 만끽하라.”
    지난 수요일 저녁에 저는 태백시 황지교회에서 열린 성시화대성회의 강사로 갔습니다. 제가 어지간하면 전교인 수련회를 앞두고 외부 집회를 가지 않지만, 태백시는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가 있는 곳이고 제가 즐겨 보았던 드라마 ‘에덴의 동쪽’의 배경지로 각인이 되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함백산이 바로 보이는 숙소에서 하루 저녁 묵고 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예약했던 숙소를 취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새벽에 병원 중환자실에 가서 故 강정식 장로님의 임종을 지켜보며 마음이 심란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임종 직전에 들리는 소리로 “장로님, 천국에 잘 가세요.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곳은 더 이상 눈물도 고통도 질병도 없는 곳입니다. 천국에 가서 평안히 쉬세요”라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질타를 하였는지 모릅니다. 강 장로님은 생전에 당뇨병을 앓으면서도 운동하기를 그렇게 싫어했습니다. 한여름에 팥빙수, 아이스크림 겨울에는 꿀호떡, 호빵 등 온갖 달달한 것을 가리지 않고 먹고 살았습니다. 공복 시에도 당 수치가 250, 300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잔소리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강제로 산에 끌고 다니면서 운동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오대산을 한번 가고 나서는 다시는 산행에 따라오지 않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저런 험한 산은 못 오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몇 년 동안 투병을 하시다가 죽음을 맞이하시게 되었습니다. 강정식 장로님은 정자동과 구미동 목회시절에 제 가까이서 섬기고 봉사를 했던 분입니다. 그런 분의 임종을 지켜보니 마음이 심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수요일 오후에 위로예배를 드리고 빈소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겨우 집회시간에 맞게 태백에 도착했습니다. 도착을 해보니 공기가 수도권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정말 가을 날씨고 바람이 스산할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잠깐 움직였습니다. “이곳에서 하룻밤 자면 어떨까.” 그런데 순간 전교인 여름수련회 생각이 났습니다. 그 긴장감과 강박감이 마음을 억눌러서 결국 하룻밤도 쉬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시간이 되는 대로 강 장로님의 조문소를 지켰고 발인예배까지 인도했습니다. 다행히 강 장로님이 전교인 여름수련회 전에 돌아가셔서 제가 빈소를 지키고 모든 장례 절차를 집례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수련회 기간에 돌아가셨으면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장례식장을 지키고, 강정식 장로님의 영정사진을 볼 때 계속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엘리멘탈’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불의 세계의 언어인 ‘디쇽’이라는 단어입니다. ‘디쇽’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언어인데 “영원한 불꽃은 없으니 빛날 때 만끽하라”는 의미입니다. 강정식 장로님이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를 드실 때 제가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 이런 말을 했거든요. “목사님,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짧은 세상 사는데 먹고 싶은 거 먹는 것이 만끽이고 즐거움이 아니겠습니까?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아세요? 저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막 먹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고 즐거움이고 만끽이었을까요? 그분이 좀 더 먹는 걸 절제하고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잘했더라면 72세의 연세에 돌아가셨을까요? 그러니 건강 100세 시대를 추구하는 세상에 장로님의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영원한 불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빛날 때 만끽해야지요. 그러나 그 만끽은 방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절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불꽃이 없으니 빛날 때 좀 더 절제하고 건강을 지켰다면 더 행복한 삶을 만끽하고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전교인 여름수련회에 대입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인생이든 영원한 불꽃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병들고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영혼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하여 은혜를 받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받고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늙고 병들면 은혜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성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원한 불꽃, 영원한 삶은 없으니 조금이라도 삶이 젊고 빛날 때 은혜를 만끽하자”고 말입니다. 며칠 전 산행을 할 때 늦은 여름까지도 울어대는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제 글의 한 문장 속에 다시 깃을 치는 듯합니다. 소쩍새 역시도 영원한 불꽃은 없으니 빛날 때, 젊을 때 은혜를 받고 만끽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은혜받고 삶을 만끽하다가 언젠가 아름답게 죽음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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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잊지 않겠다는 약속”
    우리 교회는 17년째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해 왔습니다. 처음에 행사를 시작할 때는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국가가 할 일을 왜 교회가 하느냐”고 말입니다.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는 이유는, 첫째, 보은과 보훈의 차원에서 하는 것입니다. 보은이 한 개인의 인격을 말한다면 보훈은 국가의 품격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난날 역사의 수치를 기억하고 미래의 평화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셋째, 더 나아가 민간 외교를 넘어서 공공외교 차원에서 하는 것입니다. 공공외교란 ‘정부 대 정부의 외교’(기존의 정무 외교)를 넘어서, 우리 정부와 민간이 상대국 국민들의 여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외교활동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새에덴교회와 같은 비정부 민간 행위자들도 외교에 뛰어들어 상대국 국민의 여론을 자국에 유리하게 변화시킴으로써, 상대국 정부의 정책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모든 외교활동을 공공외교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새에덴교회도 17년 동안 공공외교를 통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한ㆍ일 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우리 교회 참전용사 행사에 참석했던 미국 참전용사들이 “독도는 우리가 싸워 지킨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서한을 아들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적도 있습니다. 또한 참전용사들이 힘을 모아 세리토스 조재길 시장이 선출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의 보훈청이나 보훈병원에 가면 새에덴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러한 새에덴교회의 공공외교의 기록을 다큐로 제작하여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을 하였습니다. 물론 재방, 삼방도 해준 적이 있지만 방송으로만 끝나니까 좀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유튜브로도 남겨서 방송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봐야 할 텐데, 올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 교회가 자체적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박소현 작가가 대본을 쓰고 나유진 간사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처음에 다큐 시사회를 하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정말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절대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우리 교회 실력으로 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유튜브에 올리기 전에 교계 방송에 내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CBS, CTS, C채널, GOOD TV까지 재방, 삼방을 하였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본방을 보았는데 시사회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습니다. 방송을 이미 봤는데도 더 새롭게 느껴지고 더 감동적이고 매력 있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박소현 작가와 나유진 간사의 연출이 아주 돋보였습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자마자 교계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17년 동안 너무 수고 많았습니다. 새에덴교회와 소 목사님께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은혜받은 사람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박종삼 목사님을 비롯해서 광주신학교 다닐 때 조금이라도 빚을 진 사람들을 잊지 않고 찾아갔고, 구정 때는 내려가서 세배까지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 개인에 관한 보은의 마음이었는데, 차츰 은혜를 잊지 않고 받은 사랑을 보답하겠다는 의식과 안목이 더 넓혀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저는 새에덴교회를 담임하는 지역교회 목사가 아니라 한국 교회를 섬기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의식하고 시대와 사회를 보듬고 깨우는 선각자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것입니다. 특히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 전야제에서 만난 흑인 노병, 리딕 나다니엘 제임스와의 만남을 통해 저의 눈이 떠진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 의식과 시각으로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참전용사들의 초고령화로 국내로 초청하는 것은 마지막이라고 하지만, 그걸 우리가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마지막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할 수 있고, 또한 “나는 한국을 한 번도 못 와봤으니 제발 초청해 달라”는 분이 많이 계시다면 이 부탁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하나님과 저 스스로에게 “한 분의 참전용사라도 살아 계실 때까지 잊지 않고 찾아가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다”고 약속하고 공적으로 선포를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끝까지 함께해 주실 줄 믿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성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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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7-3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때늦게 바친 조시
    “님은 이곳 언덕 어딘가에 싸늘한 시신이 되었고 / 한 줌의 바람이 되어 떠났지만 / 우린 여전히 님을 보내지 못하고 그리워 합니다 / 포시에트 항구에 지쳐 쓰러졌던 소년이 / 우수리스크의 거상이 되어 / 독립운동가들의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 불의 페치카가 되었으니 /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 눈보라도 / 그 푸른 불꽃을 꺼뜨릴 수 없었습니다 / 최재형 선생님이여, 지금도 타오르는 페치카여 / 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고서야 / 어찌 자유 대한의 역사를 안다고 할 수 있으리오 / 그대처럼 조국의 제단에 모든 걸 던져 타오르지 않고서야 / 어찌 나라를 사랑한다 할 수 있으리오 / 때늦은 조시를 바치는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 이제, 당신 가슴에 타오르던 그 푸른 불꽃을 / 우리 가슴의 촛대에 점화시켜 주시고 / 님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별과 들꽃의 이름이 되어 / 더 이상 압제와 굴종이 없는 / 자유와 평화의 세상의 밤하늘을 비춰 주십시오.” 이 시는 제가 고 최재형 선생님이 순국을 한 소베스가야 언덕에서 낭송한 시입니다. 사실 저는 최재형 선생님을 잘 몰랐습니다. 몇 년 전, 블라디보스토크에 선교집회를 하러 가서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함경북도에서 소작농인 아버지와 기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흙수저 출신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8살 나이에 러시아로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블라디보스토크의 거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거상이 되었으면 요즘 말로 갑질도 하고 가오도 잡으며 살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거상이 되고 귀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흙수저와 같은 고려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권익을 신장시켜 주었습니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을 고려인들이 페치카(벽난로)라고 했지 않겠습니까? 이분은 고려인들의 페치카만 되어 준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 거의 대부분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다 쓴 것입니다. 특별히 안중근 의사의 실질적 후원자였고 후견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만 많이 들었지만 안중근 의사가 위대한 열사가 되기까지는 그분의 후원과 지원이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이후에도 최재형 선생님은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을 잘 보호해 주고 뒷바라지를 해 주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던 것은 최재형 선생님을 어린 시절 때부터 키워준 양부모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해주에 32개 학교와 32개의 교회를 지은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려면 교육도 받아야 되지만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당시로서 남자의 향기를 발하신 분이고 미스터 선샤인의 삶을 살았던 분이죠.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분에 대해서 빚진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여름에 당시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었던 안민석 의원님의 도움을 받아 그분의 흉상을 건립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을 받아 이런 일을 시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외주 제작사에서 제가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현장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러시아가 전시 중이라 비행기가 운항이 되지 않습니다. 25시간 배를 타고 가야 되고 올 때는 중국 북경을 거쳐서 돌아와야 됐습니다. 더구나 밤 비행기로 북경에 와서 공항에서 꼬박 밤을 새우고 오전 비행기로 인천공항으로 와야 합니다. 그래야 주일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안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작사에서는 제가 가서 화면에 등장하여 설명도 하고 인터뷰도 해야 빛이 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결단 끝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재형 기념관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촬영을 하고 마침내 주 촬영 장소인 소베스가야 언덕에서 때늦게 바치는 조시를 낭독하였습니다. 조시를 낭독하는데 가슴이 울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베스가야 언덕에서 최재형 선생님이 총살을 당하여 죽으셨거든요. 그러나 그분의 유해조차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 금방 어디에 분명히 묻혀 있을 것입니다. 그걸 생각하며 조시를 낭독하니까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조시를 낭독하는 동안 들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바람을 통하여 들꽃들과 들풀들을 흔들리게 하셨고 저는 마치 그 들꽃들의 향기가 최재형 선생님의 정신과 혼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침없이 비쳐오는 오후의 태양 열기로 이마에서뿐만 아니라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의 모습과 향기는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온몸을 땀으로 목욕하고 얼굴이 까맣게 탔지만 그래도 나름 고생하고 온 보람과 가치가 느껴졌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연추와 포시에트 항구까지 가고 싶었지만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저는 미리 갑니다. 촬영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나니 어서 빨리 교회로 돌아가고 싶네요. 소베스가야 언덕에 그 아름다운 들풀의 모습과 향기를 가슴에 담고 어서 빨리 교회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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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7-2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집어등 교회를 꿈꾸다”
    지난주에는 제주도에서 저희 교회 전반기 교역자 정책수련회를 하였습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밤이 되면 바다에 현란하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찬란한 불빛이죠. 그 빛은 오징어를 잡기 위한 ‘집어등’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엔 그 집어등이 얼마나 찬란하고 눈부시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징어로서는 가장 슬프고 비극적인 불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징어는 다른 물고기와는 다르게 시각이 발달해 있죠. 그 시각은 눈부시고 찬란한 불빛을 좋아합니다. 그 불빛을 보는 순간 오징어는 사족을 못 씁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도 등 뒤로 하고, 죽고 못 사는 짝도 버려버린 채 불빛을 향하여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만 어부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버리고 맙니다. 오징어에게는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 되어 버리는 셈이지요. 만일 오징어에게 생각이 있다면 아마 이렇게 후회할 것입니다. “아차 속았구나! 저 불빛의 유혹에 내가 걸려들었구나” 그러나 가슴을 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유하 시인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눈앞의 저 빛 / 찬란한 저 빛 /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 의심하라 모든 광명을” 이 시적 의미는 오징어의 생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 시뿐만 아니라 모든 시에서의 은유의 본질이란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탐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는 문장과 문맥을 초월하여 인간의 삶의 차원으로 확산이 되죠. 그러므로 이 시는 인간에게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 죽음이 될 수 있고,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유혹의 미끼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러나 저는 집어등을 보며 이런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사고의 대전환을 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집어등 교회가 될 수는 없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징어를 유혹하는 집어등은 죽음의 미끼가 되지만, 교회가 집어등을 켜놓으면 죽을 영혼, 영원히 멸망할 영혼이 새 생명을 얻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혼탁하다 할지라도 우리 교회가 제대로 집어등을 켜고 비추기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을 영혼을 영원히 구원하고 수많은 영혼들을 거룩하게 납치할 수 있습니다. 산란한 집어등을 통해 교회는 거룩한 영혼의 포로수용소가 되고, 새 생명의 어장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신앙의 본질 회복과 초대교회적 원형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대인의 안목과 생각에 호기심을 당겨주는 매력을 보이고, 거룩한 유혹의 빛을 발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게는 지역 주민에게 매력 있는 교회로 비추어져야 하고, 넓게는 이 시대와 사회에 신비스러운 유혹의 빛을 비추어주어야 합니다. 과거 선교사들은 암흑한 우리 민족사회에 집어등의 빛을 비추어주었습니다.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초대교회는 암울한 우리 민족의 명든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시대의 아픔을 치유해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시대적 집어등 교회가 되어 준 것이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교회는 시대적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저는 수련회를 하는 동안 내내 집어등 교회를 꿈꿨습니다. 후반기에는 더 생명의 말씀과 복음의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눈부신 복음의 빛과 더 거룩한 유혹의 이미지의 광채를 비출 것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역자들에게 우리 모두 함께 집어등 교회를 꿈꾸자고 하였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창문 밖으로 현란하게 집어등 불빛이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집어등 교회를 꿈꿔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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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7-1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목회자 이중직, 이렇게 본다
    최근 이재철 목사님의 목회자 이중직 발언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께서 한 목회자 세미나에서 ‘어떤 목사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중직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신 것입니다. 이 목사님 이야기의 요지는 이런 것입니다. “목회자는 교인과 다르게 신앙생활에서 프로 정신을 가져야 한다. 대통령, 의사와 더불어 수습 기간이 없어야 할 직종이다. 최근 젊은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가져도 좋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많이 하는데, 추신수 선수가 미국에 건너가 7-8년 동안 2군, 3군으로 활동을 할 때는 햄버거만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가 이중직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고 나흘은 야구장 가서 야구하고 사흘은 아르바이트를 했더라면 오늘날의 추신수가 존재하겠는가. 자기 기량을 더 높이기 위해 프로야구 선수도 그렇게 치열하게 미래를 위해 자기를 가꾸는데, 목사는 프로야구 선수보다 더 프로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더 몰입한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는 세속직을 가지라고 권한다. 목사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 자립이다. 세상에서는 내가 살아가는데, 내가 처자식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을 경제적 자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경제적인 자립은 내게 얼마가 주어지던 내게 주어진 경제적인 여건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목회자가 이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목회자의 마음을 담아서 설교할 수가 없다.” 이러한 발언을 놓고 유튜브와 SNS 상에서 찬반 논란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이 목사님의 발언에 대해서 이해하고 동의하는 쪽보다는 무차별적인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보았습니다. 과거와 달라진 목회 환경과 각자가 처해진 상황을 간과한 채 이중직을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폄훼하거나 작은 개척교회의 현실을 모르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중직 목회자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이재철 목사님이 말씀하신 “목사는 프로가 되어야지 아마추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이해하고 맞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라면 당연히 목회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목회자의 이중직이 무조건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바울도 천막을 만들며 선교를 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중직은 본질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선교적 방법론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목회자들의 이중직 문제를 생각할 때, 과거에 정말 일반 회사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아니 굶어 죽을 각오로 전도하고 목회를 해 본 적이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정말 아침 일찍부터 온 종일 사람들을 만나며 전도하고 심방하고 목회에 인생 전부를 걸고 투혼을 발휘해 본 적이 있는가하고 말입니다. 저 역시 가락동 지하상가 23평에서 개척 맴버 한 명 없이 개척을 한 개척목회자였습니다. 당시 저는 아파트 전도를 하기 위해서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며 전도지를 돌리며 뛰었습니다. 그때 신문 배달을 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문에 교회 전도지를 끼워 놓을 뿐 아니라 모든 아파트 문 앞에 교회 전도지를 놓는 전제로 신문 배달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살기 위한 이중직을 하는 것보다 선교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방법의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선교의 본질은 똑같습니다. 저는 정말 목회에 목숨을 걸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도를 하고, 말로 안되면 손을 잡고 뜨겁게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새부터인가 영혼이 달라붙고 납치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와 비슷한 방법을 실천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 굶어 죽을 각오를 가지고 뛰었습니다. 집사람이 우리 딸을 임신했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거의 유산 직전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그때마다 까마귀를 보내주시고, 애를 낳은 다음에도 우유를 대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굶어 죽을 각오로 전도하고 목회를 했을 때, 어느 순간부터 교회가 부흥이 되는 걸 봤습니다. 저는 이중직에 대해서 왈가불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환경과 상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중직이 새로운 목회 대안이나 출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이중직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이것이 새로운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중직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더한 열심을 가지고 목회에 모든 것을 투신한 후에야 환경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바로 이중직을 선택하는 것은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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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7-0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말씀으로 영혼을 납치하다
    ‘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시트콤을 아십니까?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며 초히트를 친 대한민국 최고의 시트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트콤을 쓴 박보영 작가님을 우리 교회 권부용 권사님이 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분께서 우리 교회 신문에 ‘나는 왜 일요일 10시 48분 차를 기다리는가!’라는 글을 쓰신 것입니다. “...(상략) 나는 타고난 성격으로 나르시즘과 낙천적이다. 유달리 연휴를 좋아하고 징검다리 연휴라도 끼어 있으면 미리부터 가슴이 설렌다...(중략) 6월 2일부터 6일까지의 5일간의 일정 여행이 나를 유혹했다. 아!! 한가운데 끼어 있는 일요일! 교회! 나는 “주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저와 함께 계셔야 합니다!!라는 목사님의 열창이 자꾸만 귀에 쟁쟁하게 맴돌았다. 목사님은 풍부하신 감정으로 그렇게도 노래를 잘 부르시는데 가수가 되셨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산적이지 않거나 건져 올릴 대화가 없는 자리는 피하는 편인데 더구나 교회와 설교는 나에겐 거리가 먼 곳이었다. ‘작가님은 교회랑 어울리지 않아요.’, ‘산새 좋고 공기 · 경치가 얼마나 좋은데요.’ 하며 모두들 나와 같이 여행 가기를 갈망했으나 나는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다. 왜일까? 나 스스로 나의 변화에 놀랍다. 인간은 나이를 먹으며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고 베풀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해서일까? 아님_ 공감과 유머와 열창(?)하시는 목사님의 설교 시간일까? 나는 어떤 것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설교 시간을 오롯이 혼자가 되어 느끼며, 반성하며 마음속의 고뇌를 정리한다. 그 시간은 나에게 참으로 가치 있는 시간이기에 내가 나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분명한 것은_ 설거지를 깨끗이 하고 난 후 혹은 이불 호청을 햇볕이 쨍쨍한 마당에 하얗게 널고 난 후의 개운함 같은 것은 가치 있는 변화임에 틀림없기에 나는 일요일 오전 10시 48분 차(교회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역시 대작가답게 한 줄, 한 줄이 저의 심금을 파고드는 명문들이었습니다. 이 글을 제가 먼저 읽고 그분께 직접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정말 교회는 질색이고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에덴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소 목사님의 설교에 매료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도중에 부르는 찬양이 너무너무 매료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어쩌면 가수가 되셨으면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노래로 심화를 시키고 정서적 환기를 시켜주셨을 거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저는 앞으로 작가님께서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담은 드라마 대본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보니까 류시화 시인이 쓴 ‘시로 납치하다’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전 세계의 유명한 시인의 시를 해설하면서 제목대로 시로 사람들을 납치하는 아름다운 글을 쓴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시를 쓰는 시인들도 있고 또 무덤덤한 시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천의무봉과 같은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도 있고, 지나치게 낯설게 하는 시를 써서 정말 이해하기 힘든 시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바람직한 시는 그 시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납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키 지오바니라는 시인은 ‘납치의 시’라는 시를 썼습니다. “시인에게 납치된 적이 있는가. 만약 내가 시인이라면 당신을 납치할 거야. 나의 시구와 운율 속에 당신을 집어넣고 롱아일랜드의 존스 해변이나 혹은 어쩌면 코니아일랜드로 혹은 어쩌면 곧바로 우리 집으로 데려갈 거야. 라일락 꽃으로 당신을 노래하고 당신에게 흠뻑 비를 맞히고 내 시야를 완성시키기 위해 당신을 해변과 뒤섞을 거야....”(하략) 이 시를 보는 순간 다시 박보영 성도가 떠올랐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입니까? 정말 시트콤의 원조라고 할 있는 ‘남자 셋 여자 셋’을 쓴 대작가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분이 제가 전하는 말씀으로 매혹이 되고 납치가 되어 5일간의 여행의 유혹을 뿌리치고 교회로 오다니요. 그래서 저도 그 시를 변형해 보았습니다. “설교에 납치된 적이 있는가. 만약 내가 목사라면 당신을 말씀으로 납치할 거야. 나의 설교와 찬양 속에 당신을 집어넣고 성전문을 지나 성소로 데려가고 은혜의 지성소로 당신을 데려갈 거야. CCM으로 당신에게 노래하면서 당신의 영혼을 흠뻑 젖게 하기 위해 당신과 눈물을 뒤섞을 거야..." 그런 위대한 작가가, 그것도 안티크리스천이었던 분이 우리 교회 예배와 제가 전하는 말씀에 매료가 되고 납치가 되어 이번 주에도 교회에 오실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더 설레였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그 어떤 AI시대, 챗GPT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매료하고 영혼을 납치하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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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7-0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었습니다.”
    수요일 오전 전쟁기념관 방문은 정말 가슴 뜨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 적힌 전사자들의 이름들은 이 세상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이름이었고 포탄의 화염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 불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검은 잿더미 위에 낙화하였지만, 그 향기는 코끝을 진동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해 주고도 남았습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촛농보다 더 뜨겁게 떨어졌고 검은 재 위에 하얀 꽃잎으로 다시 피어났습니다. 거기에 적힌 이름들은 모두가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잎의 이름들이었고 사무치는 이름들이었습니다. 참전용사들은 그런 전우들의 이름을 만지며 오열하였습니다. 특히 ‘조지 수사’(George Sousa)라는 참전용사가 계셨는데 이분은 6.25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분입니다. 중상을 입으면 대부분 본국으로 귀환 조치가 내려지는데 이분은 중상을 치료받고 또다시 전선에 투입될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전선에 투입되어 전투를 하셨는데 함께 싸우던 친구들은 대부분 죽고 자기만 살아남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오열을 하고 또 오열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사자 유가족들은 그 이름에 탁본을 뜨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탁본이 떠지는 그 이름들이 제 가슴 속에서는 향기가 그윽한 꽃송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와서 취재를 하는지 카메라에서 터지는 플래시의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튀기는 번갯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기사를 쓰고 보도를 하였습니다. 저를 만날 때마다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은 “세상에 이런 교회는 없다고, 지상에 새에덴교회 같은 곳은 없다”고 계속 말을 하는 것입니다. 기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직까지 이런 교회는 없었다”고 말입니다. 보은이 한 개인의 인격이라면 보훈은 국가의 품격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지난 한 주간 세상에 보은의 교회로, 보훈 정신을 마음껏 함양하는 교회로 인각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험한 세상 다리가 되는 교회가 되었죠. 마음껏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힘들었습니다. 이 일은 어느 단체나 기관의 후원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순수한 헌신으로만 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해뿐만 아니라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앞두고 매년 고심을 합니다. “이 일은 반드시 우리 교회가 해야 되는데, 누가 한꺼번에 큰 헌신을 하는 일은 없을까. 하늘에서 횡재처럼 뚝 떨어지는 헌신은 없을까.” 그러나 올해도 그런 헌신은 없었습니다. 그저 성도들이 개미군단이 되어서 십시일반으로 헌신하여 이런 일을 너끈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수요일 저녁 잠실 롯데호텔에서 환영 만찬을 하는데 가서 보니까 안내자들까지 방을 40여개 이상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식사를 대접하는 돈, 또 환송 만찬의 비용이 모두가 성도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송구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넘쳤습니다. 목이 메였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 동안 우리 교회는 마음껏 험한 세상 다리가 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성도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어려운 가운데 헌신한 성도들에게 적어도 30배 60배 100배의 복을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험한 세상 다리가 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김종대 장로님을 비롯해서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을 가족처럼 섬겨주신 준비위원들, 안내위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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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6-2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보훈, 국가의 품격
    벌써 17년 전의 일입니다. 2007년 1월 15일, 저는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하여 마틴 루터킹 퍼레이드 전야제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흑인 노병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더듬거리는 말투로 “동두천, 의정부, 수원, 평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왼쪽 허리의 총상 흉터를 보여주면서 “6.25 전쟁 이후 한국에 꼭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데 누가 초청해 주는 사람도 없고 형편이 어려워 못 간다”고 하면서 울먹이는 것입니다. 그 분의 이름은 리딕 나다니엘 제임스(Riddick Nathaniel James)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엎드려서 절을 하면서 “제가 반드시 한국으로 초청하겠습니다. 친구 분들도 함께 오셔도 됩니다”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분이 친구 분들 5-6명 정도와 함께 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50여 명 가까이 함께 와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교회 최초로 제1회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시작되었고 17년째 한 번도 빠짐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국가기관에서도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경비와 대규모 자원봉사자, 기획과 준비과정이 필요한 행사입니다. 그래서 정 권사님을 비롯해서 주변에서도 너무 힘이 드니 몇 년만 하고 그만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의 감동이 결코 그만 둘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초청을 받아 온 참전용사 노병들의 그 감격의 웃음과 눈물, 기쁨과 환희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이 먼저 감동을 받고 가치와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서 싸워준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잊지 않는 보은의 신앙과 보훈 정신을 함양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17년째 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세계 최초로 온라인 화상 줌과 메타버스를 활용하여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가 국가 기관도 하기 힘든 일을 17년째 해 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지난 날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며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의 야드바셈 박물관에 보면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기억함은 구원의 빛이다. 그러나 망각은 포로 상태로 돌아가는 첩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수치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다시 6.25와 같은 참상이 재발하지 않습니다. 둘째, 우리 스스로 보은의 신앙과 보훈의 정신을 새기고 그 신앙과 정신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목회적 대형교회로서의 사회적 환원을 하기 위함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의해 건국된 대한민국은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공산주의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애국가 가사처럼 하나님이 보우하시고, 국군 참전용사와 미국과 유엔 참전용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주셔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참전용사까지 기억하고 예우하며 보은해야 합니다. 보은이 한 인격의 품격이라면 보훈은 그 국가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민간 차원에서 참전용사들의 보은을 할 뿐만 아니라 보훈정신을 함양하는 한 알의 밀알로 쓰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셋째, 한미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민간외교 차원에서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희 교회가 17년째 진정성을 가지고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니까 여러 일간지에 소개되고 공영방송에서 다큐까지 제작 방영되어 국민들에게 역사와 사회를 섬기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고양(高揚)시킬 수 있었지 않습니까? 오늘의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있기까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해군 제독 출신이신 김종대 장로님이십니다. 김 장로님께서는 몇 년 전에 성대 수술을 하셔서 목소리를 잃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일생의 사명으로 알고 헌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새에덴교회 성도들의 눈물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한 분의 참전용사가 살아남을 때까지 잊지 않고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이어갈 것입니다. 저와 새에덴교회의 자그마한 헌신과 섬김이 한미동맹을 더 강화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길을 여는 자유와 평화의 꽃이 되고 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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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6-1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사랑은 무작정 따르고 싶은 마음이지요.”
    지난 수요오전예배를 마치고 평신도사역개발원 간사들과 함께 산행을 하며 숲속의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냥 교회 소예배실에서 모임을 할 수도 있지만 숲길을 함께 걷고 대화를 하며 더 깊은 소통과 공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산에 오르자 푸른 나뭇잎들 사이로 진한 밤꽃 향기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늘 저녁에 산행을 하는데, 그날은 낮에 평개원 간사들과 소통하는 사역도 하면서 산행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에 밤꽃 향기보다 더 진한 소통과 공감의 향기가 불어왔습니다. 불곡산과 대지산 사이 깊은 숲에서 나무 벤치에 앉아 평개원 원장인 이경희 전도사의 인도로 간사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양육 사역을 하면서 힘든 일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그 힘듬을 극복했는지, 보람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간사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은혜와 감격에 목이 메여 말을 못 잇는 것입니다. 저의 눈에는 그들의 뜨거운 눈물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었고 떨리는 숨결이 감사와 찬양의 노래였습니다. 눈물이 쏟아져 말을 못 하겠다고 하는 분들을 보며 제 마음도 울컥하였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성도들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도 저렇게 아름다운데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게 보실까.” 어느 누가 사명을 감당하면서 힘들지 않겠습니까? 모두 다 사명을 감당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사명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고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아니, 사명이 아니었으면 살지 못했을 거라고 하면서 ‘사명은 생명’이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저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 뿐만 아니라 여러 공적 사역을 하다보면 정말 절망하고 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주일설교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금요철야기도 같은 경우는 가끔 쉬고 싶을 때도 있고, 목양칼럼도 예전에 쓴 글을 재탕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 사명을 붙잡고 다시 설교를 준비하고 글을 쓰며 사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숲속의 대화를 하는데 정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의 끝 무렵에 “앞으로 내가 어떤 목사가 되기를 원하는지, 나에게 바라는 상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지금보다 더 잘하실 수가 없습니다. 건강만 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은퇴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무조건 목사님을 따릅니다. 몇 살이 되었건 목사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태완 작가의 “사랑은 무작정 따르고 싶은 마음이다”라는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너무 좋아서, 너무 닮고 싶어서, 너무 소중해서 무작정 따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들꽃들, 올라갈 때 맡지 못했던 밤꽃 향기가 더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꽃보다도, 그 어느 향기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 평개원 간사들과의 소통과 공감의 시간이었습니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모두 다 하나님 앞에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고 있는 간사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이야 말로 새에덴의 핵심 원동력이요 보배들과 같은 사역자들이었습니다. 대화의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높음이 아니라 깊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도 깊음이 아니라 높음을 추구하니까 서로 싸우고 분열하고 교만하게 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우리 평신도 양육 간사들은 언제까지나 높음이 아니라 깊음을 추구하며 각자의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모델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평신도사역개발원 간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중국의 시인 쉬즈모의 표현처럼 ‘고개 숙인 온화함’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그날 그리스도 안에서 나눈 밤꽃보다 더 짙은 소통과 공감의 향기는 계절이 지나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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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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