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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름다운 라일락 향기의 역사를 만드신 분”
    이 글은 우리 교회 장로님이자 단국대학교 명예 이사장이신 장충식 장로님의 ‘아름다운 인연’과 ‘학연가연’이라는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한 축사를 게재합니다. 존경하는 장충식 단국대 명예총장 겸 이사장님의 출판기념회를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장충식 이사장님은 저희 교회 장로님이시기도 합니다. 장로님께서는 워낙 거산과 같으셔서 끊임없이 맑은 물과 산소를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큰 거산과 같은 장로님을 저희 교회 장로님으로 모시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여 주일날 교회에 오실 때마다 저는 항상 허리 숙여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혹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아십니까? 어느 날 경비행기에 기장과 목사와 과학자, 어린아이, 총 4명이 타고 가는데 그만 엔진이 고장이 나서 3분 안에 급하게 탈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낙하산은 3개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맨 먼저 기장이 무책임하게 낙하산을 타고 탈출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유전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나는 인류의 생명과 번영을 위해 먼저 탈출합니다”하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자 목사와 어린아이는 마지막 하나 남은 낙하산을 보고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는 어린아이에게 “어차피 목회자는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이다. 어서 빨리 낙하산을 타고 탈출을 하거라.” 그러자 어린아이가 “목사님도 함께 탈출할 수 있어요” “이 녀석아 시간 없어. 지금 거의 1분도 안 남았어.” 그러자 어린아이가 뭐라고 말한 줄 아세요? “목사님, 아닙니다. 낙하산이 아직 2개가 있어요. 아까 제가 보니까 과학자 아저씨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다는 게 제 보이스카웃 가방을 메고 뛰어내려 버리더라구요.” 이게 지도자론에서 흔히 쓰는 유머 예화입니다. 여기서 기장은 있으나 마나 하는 지도자입니다. 과학자는 자신의 욕심만 부리다가 죽음을 자초하는 지도자입니다. 목사는 희생하는 사람의 모형입니다. 어린아이는 역사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충식 장로님 안에는 목사와 같은 섬김과 희생의 정신,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역사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역사 속에 태어나고 역사를 만들며 역사를 남깁니다. 존경하는 장충식 이사장님은 정말 역사의 격변기에서 독립운동가 장재 선생님의 아드님으로 태어나셔서 수많은 역사를 일구셨습니다. 그는 30대에 단국대학교 최연소 총장이 되셨고 36년 동안이나 총장으로서 단국대를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일구신 분이십니다. 북경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 단장,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단장,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특히 대한적십자사 총재 시절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성사시키는 등 남북 화해의 새 장을 열어가는 자리에 서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역사를 일구어도 그것이 기록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칫하면 그 역사가 흙무더기 속에 고서로 묻혀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장충식 이사장님은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사관 중에 사관이 되고, 사초의 사초를 쓰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혼자 이루는 게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아니, 그냥 사람을 만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인간애와 진실한 삶이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장충식 장로님은 정말 생명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존중하고 품에 안으신 분입니다. 이 어른은 음악에도 재능이 있으셔서 노래도 성악가 못지않게 잘하시고 바이올린 등 많은 악기를 다루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가끔 저희 교회에서 특송자로 모시기도 하고 바이올린 연주자로 모시면서 아주 작지만, 사례비를 드리면 그 사례비를 제자들에게 모두 나누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어르신은 정말로 사람을 아끼고 섬기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 ‘아름다운 인연’이라는 책을 보면 그의 진정한 인간애의 삶이 배어있고 천의무봉과 같은 필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쓰신 회고록 ‘학연가연’에도 학교를 통해서 이루어진 수많은 아름다운 인연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책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얼마나 재밌고 감동적이던지, 저는 밤을 새우며 단숨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특별히 후농 김상현 의원과의 인연의 스토리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몰래 도둑 강의를 듣던 불우한 청년 김상현을 가슴으로 품어주고, 훗날 그 청년 김상현이 국회의원이 되어 단국대학교가 종합대학교로 승격하는 데 조력을 하는 거룩한 부메랑의 스토리가 진한 감동의 여운을 주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라면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을 보여주신 것이죠. 이렇듯이, 장충식 장로님은 인간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잔인한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라일락 향기의 역사를 만드신 분입니다. 모쪼록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인간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의 큰 울림이 되어 또 다른 가연, 아름다운 인연의 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옥체가 강건하시고 문은 장수하시어 더 많은 집필을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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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5-1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고양의 눈빛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월요일 저녁 영광에 있는 ‘청아’라고 하는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숙소로 왔습니다. 그런데 호텔 주차장에서 내리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 야옹하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저를 보고 무섭지도 않은지 도망가지도 않고 오히려 애처롭게 울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언뜻 보니까 암고양이인데 새끼를 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호텔의 정문 불빛에 반사되어 고양이의 눈빛과 제 눈빛이 마주친 것입니다. 그런 고양이의 눈동자가 애틋하게 구걸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마도 고양이가 배가 고픈 것 같았습니다. 아니, 배 속에 있는 새끼를 위해서 모성애가 발동하여 어떻게든 먹이를 구하려고 밤거리를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호텔 숙소로 들어가는 저와 마주친 것입니다. 원래 길고양이는 사람을 만나면 무서워서 도망을 가는데 어떻게 안 도망가고 오히려 야옹, 야옹하며 다가온단 말입니까? 그래서 고양이에게 줄 게 있나 보았더니 마침 한정식집에서 다음날 아침에 먹으라고 준 갈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갈비를 주니까 그냥 “땡큐, 땡큐, 굿, 굿” 하는 듯 하면서 먹는 것입니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배 속의 새끼를 위해서 더욱더 간절하게 뼈까지 쪽쪽 빨아 먹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너무나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보니까 “갈비를 몇 개만 줘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플라스틱 통에 있는 갈비를 더 주었습니다. 수행하는 비서들이 “목사님 드실 것은 남겨 놓으세요”라고 했지만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어 버렸습니다. 제가 갈비를 줄 때마다 고양이가 구애를 하는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런 고양이를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많이 먹고 새끼들 낳아 잘 키우거라.” 그러자 고양이가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주인에게 버림을 받아 본 적이 있지요. 그러나 정말 제가 사람을 잘 봤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저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따뜻한 정을 줄 거라고 짐작했죠. 제 감이 옳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플라스틱 통에 든 갈비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니까 고양이가 다 먹은 후에 포만감을 즐기듯이 감사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와 처음으로 마주쳤던 눈빛은 애절하고 간절했는데 먹이를 먹고 난 후에는 만족하고 고맙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아마 정권사님이나 집사람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애완용 개나 고양이의 털이 빠져 날리면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애완용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애정의 대상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더 그렇지만, 자식이 있고 남편이 있다 하더라도 이기적이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은 정말 순수한 애정을 주고 싶은 대상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요즘은 애완용 개보다는 고양이로 많이 바뀌어 간다고 합니다. 그날 밤, 저는 제가 키우는 반려묘는 아니었지만 고양이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어 줬습니다. 계획된 사랑도 아니고, 예정된 사랑도 아니었지만 그날 저녁에 마주친 길고양이의 간절한 눈빛을 통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배 속에 밴 새끼를 먹여 살리기 위한 모성애로 가득한 길고양이를 사랑했다는 것도 보람이 있지만, 정말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찮은 미물이지만 저를 알아보고 잠시나마 의지했던 고양이가 고마웠고 생명 사랑의 마음을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길고양이의 눈빛이 아련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하찮은 미물도 자기 배 속에 있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음식을 달라고 구걸을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돌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과 사랑을 쏟으셨는지 모릅니다. 그 어버이의 은혜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 어버이의 은혜를 무조건 추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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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5-0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 서로 추앙하며 살아요.”
    지난주는 총회 선관위 워크숍 차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물론 제주도 가서도 신경 쓸 일이 있지만 선관위 서기 되시는 김한성 목사님이 회의 때마다 모든 걸 빈틈없이 준비를 해오기 때문에 저는 그냥 놀고먹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이틀 있었는데 진짜 잠을 잘 잤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목사님, 장로님들하고 산책도 했습니다. 그런데 동행한 원태윤 장로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화요일날에 함평 나비 축제 강사로 오시는데 영광에 좋은 새 호텔이 있으니까 전날 밤 그곳에서 모시겠습니다. 하루 전날 내려오셔서 주무세요.” “아니, 미리 가서 잘 이유가 있습니까? 함평 집회도 오후 2시에 하는데요.” 그랬더니 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전날 오전에 군산에서 행사가 있고 오후에는 김제에서 행사가 있지 않습니까? 행사 끝나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건 너무 시간 낭비입니다. 그러니까 영광에서 주무시고 함평 나비 축제에서 설교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때 제가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러면 그 호텔에 개구리 우는 소리도 나고 뻐꾸기나 소쩍새 소리도 들립니까?” “시골이니까 당연히 개구리 우는 소리가 안 들리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가겠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바닷가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작은 연못에서 개구리들이 얼마나 많이 울어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저놈들이 지금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몇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이런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건 실제 개구리 울음소리가 아닙니다. 호텔에서 녹음기로 틀어 놓은 겁니다.” “아닙니다. 자연을 믿으세요. 설사 녹음기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저 낭만으로 느끼고 듣는 게 좋은 것이지요.” 그때 강인철 집사가 달려오길래, 제가 가서 이것이 녹음기 소리인지, 아니면 실제로 개구리가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는지, 가까이 가서 제대로 조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강인철 집사가 연못에 갔다가 확인해오더니 “이건 실제 자연의 개구리 소리입니다. 돌을 던지니 개구리들이 도망을 가더라구요.” 하는 것입니다. 그때 마침 우리 일행 옆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목사님들, 장로님들, 그냥 믿고 사세요. 그래야 우리 귀가 즐겁고 마음에 낭만이 느껴지는 겁니다.” 제가 방으로 들어오면서 이런 말을 하기를 너무나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말이 옳았고 저는 역시 시인의 감성과 낭만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분석하고 예단하고 무언가를 자꾸 캐내려고만 합니다. 그러면 순수시대의 낭만과 감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여자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니, 여자를 넘어서 아티스트들은 진짜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줄 때 그 사람들의 예술성이 창의성으로 발전하게 되는 걸 봤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처럼 서로 추앙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조건 믿어주고 높이 받들어주고 우러러볼 때 상대방도 상처가 치유되고 자기 자신도 행복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염미정과 구씨가 서로를 추앙해 주면서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해가지 않습니까? 그날 저녁은 창문을 열어놓고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이성적으로 의문하고 회의하며 분석과 통찰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정말 냉철하게 문제를 파고들고 감정에 치우침이 없이 판단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메시지 자체는 예리하게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때는 무조건 믿어주고 높이 받들어주고 우러러보며 추앙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도 따뜻한 사랑과 진심을 이해하게 되면서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아니, 추앙하는 내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고 순수시대의 낭만과 유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추앙하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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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5-0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여의도의 하늘을 열게 한 부활절연합예배
    지난주 부활절연합예배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를 않습니다. 원래는 부활절연합예배를 우리 교회에서 드리고 설교도 다른 분이 하는 걸로 예정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얼마든지 우리 교회를 부활절연합예배 장소로 협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 측 주요 인사나 만일 대통령 당선인이 오신다면 주일날 경부고속도로까지 통제해야 하는데 국민들에게 불편함이 너무 크고 당선인이 오시기에도 부담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한다면 VVIP나 정부 측 인사들이 오시는 데 불편함이 많이 없어질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어찌어찌해서 설교도 제가 맡게 될 뿐만 아니라 찬양대도 우리 교회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연합찬양대를 이루었습니다만. 저는 류형길 지휘자에게 ‘WAY MAKER’ 찬양을 부활의 내용에 맞게 개사하고 편곡까지 해서 웅장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 찬양대원들이 얼마나 많이 갔는지 찬양대 지정 좌석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일반 좌석에 앉은 분도 계셨다고 합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2000여 명의 찬양대원이 찬양을 하기 시작하는데 정말 여의도의 하늘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구약적인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빽빽하게 임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후문에 의하면 이영훈 목사님께서도 “지금까지 이렇게 은혜스러운 찬양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예측이 맞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면 아마 거리 때문에 많은 부담이 되었을 텐데 예배장소를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정하니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이번 예배를 참석하고 가신 대통령 당선인께서도 엄청나게 감동을 받고 가셨습니다. 물론 저 역시 설교 준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강단에 서니까 찬양대에 앉은 우리 성도들과 극성스러운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이 우렁찬 환호성과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첫 설교의 톤이 ‘솔’ 음으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조명 빛이 저의 얼굴을 쏘아 댈 뿐만 아니라 찬양의 열기가 이미 제 가슴에 전달이 되어 설교 초반부터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따라 최선을 다해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설교에 만족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최 측에서 25분까지는 설교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지만, 다음 순서들이 많아서 21분으로 끝냈습니다. 그렇게 마치고 나니까 적어도 설교 원고의 1페이지 분량은 스킵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 봤자 24분일 텐데 시간에 대해 부담을 많이 가졌거든요. 그리고 저도 사람인데 어떻게 전하고 싶은 내용을 100%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죠. 주최 측에서 설교자에게 당선인을 배웅하도록 임무를 주셔서 당선인을 배웅하였는데, 가시면서도 설교에 큰 감명을 받고 간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더 잘 할 수 있고 더 감동스럽게 할 수 있었는데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많은 분들이 문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CBS방송과 유튜브를 통해서 설교를 들은 많은 분들이 지금까지 격려 문자를 보내고 있습니다. “소 목사님, 정말 최고였습니다. 이런 부활절연합예배는 없었습니다. 이런 찬양과 설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 녹화 방송을 봤습니다. 제가 봐도 정말 후회함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다른 분들이 칭찬하고 칭송하는 만큼의 설교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찬양대는 거의 완벽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찬양을 통하여 여의도의 하늘을 열어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게 아니라 청중들을 완전히 은혜와 감동의 전율로 압도하였습니다. 그날의 은혜와 감동의 여진은 지금도 제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한 가지 보람된 것이 있습니다. 저의 예측과 감각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더 많은 성도들이 올 수 있었고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오셨으며 많은 VIP인사들이 함께 예배드림으로써 그분들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감동의 찬양과 설교를 들었으니 말입니다. 저를 통하여 이런 판단과 기획을 제안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은혜 안에서 저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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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4-2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공공재로 쓰임 받아 감사할 뿐입니다”
    지난주 주일 저녁예배는 정말 가슴 설레는 밤이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합동 교단의 164개 노회 관계자들과 신학교, 총회임원 600여 명과 성도들을 합하여 4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름다운동행기도운동 마지막 전국기도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기도회를 앞두고 많은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과연, 성도들이 얼마나 올 것인가. 우리 총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정말 큰 은혜와 감동을 받는 기도회가 되어야 할 텐데...” 그런데 저의 염려와는 달리, 기도회가 시작하는 7시가 되기도 전에 본당 3층까지 자리가 꽉 차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본당에 자리가 없어서 교육관까지 가서 예배를 드릴 정도로 기도회 현장은 은혜를 사모하는 열기로 가득하였습니다. 총회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채워야 할 자리에 빈자리가 있으면 우리 성도들이 즉시 자리를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성도들은 은혜를 사모하며 최선을 다해 모였습니다. 특별히 저희 교회 연합찬양대가 부른 ‘Way Maker’의 웅장함과 장엄함은 청중을 압도하며 거대한 은혜의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기도회에 참석하신 총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다들 입을 벌리고 감탄을 하시는 것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 이렇게 집회를 할 수가 있습니까? 찬양대의 웅장한 찬양에 은혜 받았습니다. 정말 새에덴교회 성도들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큰 은혜를 받고 갑니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행사는 직접 섬겨본 교회만이 그 어려운 사정과 희생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소 목사님과 새에덴교회 성도들이 정성껏 준비를 잘 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기도회였습니다. 앞으로도 동지의식을 가지고 우리 교단과 한국 교회를 잘 섬겨 나갑시다.” 저도 그날 밤, 우리 교회가 총회의 회복과 세움을 위한 공공재로 쓰임 받은 것이 너무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 성도들에게도 감사했습니다. 이번 주 부활주일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리는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에서 1천여 명의 성도들이 찬양대로 섬기게 됩니다. 이 또한 새에덴교회가 공공재로 쓰임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교회론이 있겠지만 공공재로 쓰임 받는 교회는 공적 교회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주에 저희 교회가 총회를 위해서 공공재로 쓰임 받았다면, 이번 부활주일에도 한국교회를 위한 공공재로 쓰임 받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는 국가조찬기도회와 더불어서 한국교회가 교단을 초월하여 연합하여 드리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기도회입니다. 교계 언론 뿐만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보도하였고, 여러 주요한 인사들이 많이 참석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의 법칙을 박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과 감격을 1천여 명의 찬양대가 장엄하게 찬양을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격을 하겠습니까?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해서, 또한 그날 외빈으로 오는 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외치고 한국교회의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한국교회를 위한 공공재로 쓰임 받는다는 자세로 설교를 열심히 준비하였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마쳐야 하는 부담감도 있지만, 정말 극화적이고 영적, 역설적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국민 화합과 희망을 선포하는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저의 설교가 공공재로 쓰임 받을 뿐만 아니라 찬양대도 한국교회를 위한 공공재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새에덴교회는 계속 한국교회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공공재로 쓰임 받으면 좋겠습니다. 50년이 아니라 100년 후에도 더 부흥의 횃불을 드높이는 공공재 교회로 쓰임 받으면 좋겠습니다. 항간에는 교회 건물을 너무 크게 짓는 것을 터부시하거나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일리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예전에 동구권에 갔을 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동구권의 나라들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 등이 공산화 되었다가 30년, 50년 후에 다시 자유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건물이 있었던 가톨릭교회는 재기를 하였지만, 건물을 중요시하지 않았던 개신교회는 일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교사를 파송하고 전도를 해도 마땅히 모여서 예배드릴 공간조차 없으니 선교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에덴교회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교회들이 더 부흥하고 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서 50년, 100년 후의 한국교회와 민족을 섬기는 아름다운 공공재 교회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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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4-1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봄보다 먼저 꽃을 만났습니다”
    지난 목요일 오후는 완연한 봄 날씨였습니다. 새벽부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오후 4시 이후로는 일정을 비워놨습니다. 왜냐하면 한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교회 새 가족 가운데 박시은 성도님이 계시는데, 죽전 카페거리에서 ‘Cielo(씨엘로)’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페를 개업하니까 여기저기 수많은 교회에서 전도를 하러 오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골수 타 종교인입니다”라고 거절하며 카운터에 불경과 염주를 놔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가 전도를 하러 오면 불경하고 염주를 내밀면서 “제발 내게 전도만은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에덴교회 전도단은 전도부터 하지 않고 와서 커피부터 마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말을 하더래요. “요즘 같은 때 장사는 되세요? 인생의 힘든 문제 있으면 저희들이 도와드릴게요” 그러니까 마음의 문이 열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계를 설정한 후에 “사장님은 교회 안 다니시죠?”라고 묻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교회인데요?”라고 되묻자 그제야 “새에덴교회입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 오라는 소리는 한사코 안하고 좋은 관계를 맺어갔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자기가 그동안 인간관계를 통해 상처받고 속상했던 것들을 교역자와 성도들에게 털어놓고 상담 아닌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렇게 따뜻한 분들이 다니는 교회라면 나도 한번 가봐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에 온 것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오니까 얼마나 어색하겠습니까? 찬양도 익숙하지 않고 설교도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담임목사가 설교 중에 하모니카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고 건전한 대중가요를 개사해서 설교와 매칭해서 부르는데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자신의 인생이 돌아봐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특별히 제 설교가 자신의 삶을 포근하게 에워싸고 둘러싸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음 주에도 나오고 새벽기도도 나오고 성경이 읽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기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일예배 시간에 영상 간증을 하였습니다. 저도 그 영상 간증을 보고 감동을 받아 “이분이 경영하는 카페를 꼭 한번 가보겠다”고 강단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박시은 성도에게 개별적으로도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매 바쁩니까?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산도 낮에는 거의 못가고 야간산행을 하지 않습니까? 이래저래 해서 못 가다가 한 해를 넘겨버렸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아예 교구 목사에게 “이번 주 목요일 오후 4시 이후로 가겠다”고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약속대로 제가 그곳에 가니까 벌써 우리 교인들이 와서 차를 마시고 있고 제가 온다고 박시은 성도는 아예 손님을 안 받고 문을 잠그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렸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다른 손님도 와서 차도 마셔야지 목사가 온다고 문을 닫아버리면 얼마나 상처받겠어요. 문 여세요.” 마주 앉아 있는 박시은 성도의 모습이 주일 간증영상에 비췄던 그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한 명의 새가족 성도를 넘어서 영혼의 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교회를 나온 이후로 30여 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프런트에다가 우리 교회주보와 교회신문까지 놓아두고 오가는 사람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너무 행복해졌어요. 새에덴교회를 다니면서 너무 마음이 평안해졌어요”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민식 교구 목사가 제 옆에 앉아 그 얘기를 하니까 진짜 그 여성도의 모습이 아름다운 영혼의 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 돌아오니까 오후 산행을 하기가 딱 좋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에서 느꼈던 필과 감동을 써놓지 않으면 글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오자마자 글을 썼습니다. 오늘 저는 진짜 한 영혼의 꽃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꽃잎에다가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새겼습니다. 비록 석양녘을 바라보며 산행을 하진 못했지만 봄보다 먼저 꽃을 만나고 싶어 그리한 것입니다. 그 영혼의 꽃잎에 쓴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온 성도들에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전도가 되어 등록교인 5만여 성도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상황 중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현장예배가 견고하게 회복되어 가는 교회가 된 것이죠. 앞으로도 저는 어떤 상황이 와도 봄보다 먼저 꽃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의 꽃들에게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써서 러브레터로 보내겠습니다. 한국교회가 코로나로 인해 상처받고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소통과 공감의 사랑으로 다가가서 영혼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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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4-1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코로나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당신에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은 너만이 아니다 눈보라가 치고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날 허리가 부러지는 것도 너뿐 아니지 거센 눈보라와 칼바람에 마디마디가 꺾이고 찢겨질 때가 오면 나도 그때 상한 갈대가 되어 강바람에 쓰러지리니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그냥 서 있는 것은 죽은 것이 아닌가 너도 나도 살아 있기에 바람에 흔들리며 상한 갈대가 되는 거지. 이는 제가 한 겨울에 갈대밭을 거닐며 쓴 ‘갈대 앞에서’라는 시입니다. 갈대가 되었건 억새가 되었건 푸르른 날 하늘을 향하여 칼을 갈기도 하고, 갈바람에 춤을 추기도 하고, 눈보라 속에서 허리가 꺾이고 백설에 자취를 감춘다 할지라도,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입니다. 상처 받지 않는 것들도 죽은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오미크론 확진자가 하루 60만이 넘는 숫자로 정점을 찍고 이제 조금씩 감소세로 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20만~30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여전히 코로나의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 확진을 받아 치료를 받았다 한들 항체가 100% 형성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항체가 형성이 되어도 오래 가지는 않는다는 뉴스를 접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여전히 코로나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잘 버텨왔던 사람들 가운데도 어느 날 갑자기 코가 맹맹하고 목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닐 거야. 절대로 코로나가 아닐 거야” 그런데 여전히 코가 맹맹하고 목이 아프며 기침까지 해서 자가진단키트로 검사해보니까 두 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줄 중에 한 줄은 희미하게 나오기 때문에 “이건 코로나가 아닐 거야”하면서 퀴블러 로스가 말한 ‘부정의 단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도 행여나 해서 병원에 가서 신속 항원 검사를 해보니 양성이 나와요. 그래서 다시 퀴블러 로스의 이론대로 ‘분노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아니 어떻게 내가 코로나에 걸릴 수 있어! 감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에게 틈타다니! 하나님께서 불담과 불성곽으로 지켜주실 줄로 믿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안 지켜주실 수 있단 말인가!” 그 분노가 심하게 되면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짧아야 되는데 우울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해칩니다. 그래서 제가 코로나로 인하여 치료를 받거나 격리 중에 있는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마12:20) 아니, 오히려 상한 갈대를 일으켜 주시고 꺼져가는 심지에 기름을 공급해 주시고 사랑과 희망의 불꽃을 타오르게 해 주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코로나에 안 걸리면 더 좋죠. 그러나 그 코로나 때문에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고, 현장예배가 이렇게 소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 모든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지요. 또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지만 코로나의 바람에 겁이 나고 흔들리고 있는 분도 많으실 겁니다. 그분에게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죽어 쓰러진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시들어 떨어져버린 꽃잎은 찬이슬이 내려도 떨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살아있으니까 겁이 나기도 하고 흔들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나무도 고난이 나이테를 만들어주고 대나무도 겨울에 혹한의 바람이 마디를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특별히 로키산맥의 해발 4,500m 이상에서 혹한의 바람으로 무릎을 꿇는 나무를 가지고 최고의 바이올린을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코로나의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코로나의 바람 때문에 우리의 육체가 더 강력하게 되고 생명력이 더 질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바람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더 강인해지고 그 어떠한 혹한의 바람과도 맞설 수 있는 전천후 신앙이 될 겁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격리되어 있는 분들, 그리고 그 바람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당신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당신이 상한 갈대와 같은 모습이고 꺼져가는 심지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불꽃처럼 타오르게 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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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4-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소크라테스는 없어도 모차르트는 있어야 합니다”
    제 평생에 수요일 밤예배를 빠진 적은 처음입니다. 물론 당일 수요 오전예배를 인도하였지만요. 저는 외부집회나 해외 집회 외에 국내에 있으면서 수요 밤예배를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지난 수요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특별 음악회’가 있었거든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종식을 위한 화합 음악회였습니다. 이 음악회는 코리아헤럴드에서 주최하였는데 코리아헤럴드 사장님이 저희 교회 최진영 집사님입니다. 그래서 낮예배를 참석한 일부 교인들과 함께 음악회에 참석했습니다. 처음에는 음악회 1부만 참석하고 부지런히 달려와 저녁예배 마무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물리적으로도 도저히 시간이 아슬아슬 할 것 같았고, 코리아헤럴드 사장님이 바로 제 옆좌석에 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회의 몰입도가 보통 높은 게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오케스트라 악장인 ‘세르게이 살로’는 우크라이나 사람이었고 부악장인 ‘크랴제바 올가’는 러시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함께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얘기를 듣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화해와 전쟁 종식을 위해서라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되었고 더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성호 지휘자가 이끄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정말로 환상의 선율을 선보였습니다. 연주회 내내 음악이라는게 이토록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대중음악은 대중음악대로, 정통음악은 정통음악대로 나름 의미가 있고 매력이 있습니다. 예술의전당에 모인 그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다 한 가족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음악회를 감상하는 동안 윤동주의 ‘간판 없는 거리’라는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조국 독립과 해방을 초월해서 전쟁이 없고,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이 없으며, 억압과 폭력이 없는 정말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시죠. 도대체 세상의 어떤 이념과 국가의 이익이 한 인간의 생명보다 앞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마16:26). 그 어떤 목적과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전쟁은 죄악이며 미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남아공의 만델라가 종신 징역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1988년에 영국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성악가 80명, 오케스트라를 합치면 200여 명이 모여서 만델라의 석방을 기원하는 음악회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음악회의 영향으로 그 이듬해 봄에 만델라가 석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과 용서, 화해와 평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대문호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수 있지만 모차르트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는 사상과 철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음악입니다. 어떤 때는 사상과 사상은 서로 대적하고 싸웁니다. 또 철학과 철학은 이데올로기를 만들면서 지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아주 특별한 록 음악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요하고 평화롭고 즐겁게 합니다. 하성호 지휘자가 자유롭고 즐겁게 지휘하는 모습도 대단했지만, 악장인 우크라이나 사람 ‘세르게이 살로’와 부악장인 러시아 사람 ‘크랴제바 올가’가 함께 연주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부대가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를 초토화 시켰을 때, 그 폐허 위에서도 러시아인들은 음악회를 하고 발레 공연을 하면서 희망을 꿈꾸고 노래하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타이타닉이 빙하와 부딪쳐 죽음의 물결이 드리워지는 순간에도,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끝까지 악기를 놓지 않고 연주할 때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지 않습니까? 이처럼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와 희망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과연 소크라테스는 없어도 모차르트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참 맞는 것 같습니다. 이번 ‘세계 평화를 위한 특별음악회’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좋은 파장으로 전달되어 어서 빨리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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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3-2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하나님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9세기 후반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기독교인들과 바이킹족들의 갈등과 전쟁을 그린 ‘라스트 킹덤’이라는 역사 드라마가 있습니다. 제가 드라마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잉글랜드가 거의 다 바이킹의 손에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웨섹스 제국의 알프레드왕 마저 바이킹의 기습을 받아 늪지대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왕은 절망에 빠지고 사람들 역시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됩니다. 급기야 알프레드왕을 뒤쫓아 온 바이킹들에 의해서 이제 마지막 남은 왕국마저 빼앗기게 될 위기에 처합니다. 그때 웨섹스의 전사 우트레드가 늪 지형을 활용하여 바이킹을 물리칠 묘수를 짜내게 됩니다. 결국 바이킹들은 우트레드의 유인 전략에 빠져 들어 모두 다 늪지대에 갇히게 되어 몰살을 당하고 그들의 배까지 다 불에 타 버립니다. 잉글랜드의 마지막 제국이 패망을 당할 위기에서 대역전승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때 우트레드가 이런 말을 남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아는 이상한 방법으로 도우신다.” 그 마지막 대사가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시간, 물질, 체력, 에너지를 다 쏟아 부으며 진력하였습니다. 수없이 많은 난관과 고비가 있었지만 인내하고 소통하고 설득하며 지금까지 이끌어왔습니다. 정말 너무 힘들 때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제가 정말 번아웃이 되고 지쳐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한기총에서 한교총과 합의한 기본합의서를 부결시켰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거장은 잠시는 지칠지라도 계속 지쳐서는 안 되고, 절대로 그럴 특권도 없습니다. 그 순간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아는 이상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신다.” 그리고 얼마 후, 기본합의서를 부결한 회의과정이 절차적 하자가 있어서 이의 신청이 들어와 다시 또 회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저는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드는 사역 역시 하나님께서 하나님만이 아는 방법으로 이루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알프레드왕과 백성들이 늪지대에 피신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왜 그 길로 인도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아는 방법으로 그들을 도우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따금씩 좌절하고 지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제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도와 주셨고 앞으로도 제가 알 수 없는 하나님만의 방법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저 저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사학법 문제 때문에 많은 가슴앓이를 했는데, 최근 대통령 당선인이 입법을 보류하고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띄우는 걸 보고, 진짜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아는 방법으로 도우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투자를 했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이 길로 가야 되나, 왜 나는 이런 결정을 하였나...”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고민하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만이 아는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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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3-2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계란이 부화하기만 한다면”
    최근 한기총 임원회에서 연합기관 통합합의안이 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물론 결의 과정에 하자가 있다는 또 다른 소식이 들리기도 합니다. 일이 어찌 됐건, 이 일에 대해 제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교계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한교총, 한기총, 한교연으로 분열된 연합기관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화합론자이기 때문입니다. 연합기관이 누구 개인을 위하거나 누구의 자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구의 놀이터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연합기관의 존재 목적은 한국교회의 공익과 공공선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일찍이 한국교회 생태계의 중요성과 반기독교 악법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형교회 목회자로선 한국교회에서 가장 먼저 동성애 반대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가지고 있는 독소조항의 문제점을 밝혀내지 않았습니까? 종교인과세 문제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저에게 주신 무거운 소명감을 가지고 한 것입니다. 특별히 종교인과세 문제를 대처해야 할 때는 연합기관이 서로 분열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힘겨루기를 하느라 이런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국 17개 광역시도연합회를 통해 대처했고요, 또 정권이 바뀌어 시행 세칙을 만들려고 할 때도 임시 조직을 만들어 대응했습니다. 저는 그때 종교인과세 대처와 차별금지법을 막으면서 연합기관이 하나가 되어서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발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꼈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 전면에서 싸워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릅니다. 진짜 한국교회 공익을 위해 앞장서서 싸워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있을 때 ‘한국교회 연합과 비전대회’를 열어 ‘2021 한국교회 공로상’을 주는 시상식을 가졌던 것입니다. 저와 함께 힘을 모아 차별금지법을 비롯해 반기독교 악법을 막고 교회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애를 쓰신 분들의 역사적 공로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미에서 한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반기독교 세력의 실체와 전략, 교회 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깨우치고, 앞장서서 경종을 울린 분들이 전용태, 김영진, 황우여 장로님이셨습니다. 그 뒤를 이으신 분이 김승규, 김진표 장로님이십니다. 전 국정원장이신 김승규 장로님은 한국교회에 이슬람의 문제를 알리고 스쿠크법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하셨고, 김진표 장로님은 종교인 과세문제가 대두 되었을 때 정부와 교회의 관계가 잘 소통되게 하면서, 교회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도록 노력하셨습니다. 이혜훈 전 국회의원님도 현직에 있을 때 스쿠크법을 대처하는데 적극 대응해 주셨습니다. 서헌제 교수님은 종교인 과세 문제를 법리적으로 잘 연구하여 한국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역사가 저의 역사이고 저의 역사가 그분들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분열된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 저의 공적 소명감과 애절한 순명을 오해 하고 저의 의도와는 달리 곡해하는 것을 보면, 이런 분들은 정말 화성이나 금성에서 온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번 대선결과를 봐도 결국은 누가 이겼습니까? 누가 뭐라 해도 서로 연합하고 힘을 모은 사람이 이겼습니다. 그것도 1% 차이도 안 나게 말입니다. 제가 분열된 연합기관이 하나 되어야 한다고 ‘교계 연합론’, ‘교계 화합론’을 펼쳤을 때, 한국교회 90%이상이 모인 한교총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굳이 연합을 하려고 하느냐고 반문하거나 무용론을 역설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 1%, 아니 그 이하의 어떤 미미한 조직이라 할지라도, 한국교회가 분열되어 있으면 엄청난 리스크를 당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저수지 댐도 미세한 틈 하나 때문에 결국 나중에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점을 한기총, 한교연, 한교총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공적 소명감과 통찰력을 가지고 교계 화합론, 교계 연합론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조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지치고 맥이 풀릴 때도 있지만, 여기까지 저의 연합사역을 도와주신 우리 장로님들과 성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물론 계란으로 바위를 깨트릴 수는 없지요. 그러나 언젠가 그 계란이 부화하기만 한다면 날개를 가지고 날아올라 그 거대한 바위를 뛰어 넘어가는 때가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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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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