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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회 회원권 규정에 관한 소고
    지교회 목회자 직무 위탁 사역자는 노회 정회원예외나 조건 위한 단서(但書), 어떻게 본문을 뒤집나 우선 1922년 판 헌법의 노회원 자격규정을 보면 “본 총회와 노회의 의결로 직무를 부담케 아니한 목사와, 본 장로교회에서 봉급을 직접 지불하지 않는 목사는 투표권이 없으나 언권이 있고, 위원회에서는 투표권이 있는 회원이 될 수 있느니라”(정 제4장 제2조)고 규정하였으니, 본 총회나 노회의 결의로 직무가 위탁된 목사와, 본 장로교회에서 봉급을 받는 목사는 회원권이 구비된 목사요, 그 이외의 목사는 언권회원이지만, 위원회 에서는 투표권이 있다고 하였으니, 결국 무임목사도 위원이 되는 피선거권은 있고, 위원회에서는 투표권도 행사하게 해 왔는데, 이 규정이 1930년 판(정 제11장 제3조)에서는 “…상회에 총대권도 있느니라”고 무임목사에게도 총회총대 피선거권을 부여하였고, 이 규정이 1993년 판까지 그대로 이어졌으니, 이 규정은 목사가 노쇠하였거나, 병약하거나, 기타사정으로 비록 교회나 교회기관에서 보수를 받고 일하던 신분에서는 떠났을망정, 수일간 회집하였다가 헤어지는 노회와 총회를 섬기는 일은 넉넉히 할 수 있고, 그래서 노회에서는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도 못하고(결의권에 속했으니), 가부를 물을 때에 “예!”도 못하고 “아니오!”도 못하나, 이렇게 해야, 저렇게 해야 한다고 그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언권회원이 되게 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통치능력과 노련한 경력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무임목사에게도 위원이 되는 피선거권을 부여하였으며, 위원회 에서는 투표권도 행사하도록 규정해 왔었는데, 2000년 판에서 “지교회 시무목사와 정년 이전의 원로목사와 총회나 노회가 파송한 기관 시무를 위임한 목사는 회원권을 구비하고, 그 밖의 목사는 언권회원이 되며, 총대권은 없다”(정 제10장 제3조)로 개정하였으니, “기타 목사” 또는 “그 밖의 목사”로 불리던 언권회원인 무임목사에게 부여해 온, 위원이 되는 피선거권과 위원회에서의 투표권과 상회총대 피선거권을 깡그리 삭제 하였고, 정년이 경과된 원로목사들도 이 무임목사와 똑같은 대우, 즉 “노회에서의 언권회원이 되며 총대권은 없다”가 되었는데, 이것이 과연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한 목사로…본교회에서 명예적 관계를 보전하고자…노회의 결정으로 원로목사의 명예직을 준다”(정 제4장 제4조 4)는 명예직에 합당한 대우인가?뿐만이 아니다. 2010년 제95회 총회가 “헌법 정치 제4장 제4조 2항 임시목사의 명칭을 「시무목사」로 바꾸고, … 미조직교회 시무목사의 시무기간은 3년으로 하되, 연기를 청원할 때에는 당회장이 노회에 청원할 수 있다…”로 개정하기로 하고… 노회에 수의하여 차기 총회에서 채용하기로 하다”(동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 P.42)고 하였으나, 3년이 지난 2013년 제98회 총회에서 “헌법 임시목사제도 개정과 관련하여 95, 96 총회 결의대로 시행하기로 가결하고, 노회수의 과정이 완료되었으므로 시행을 공포하다”(동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 P.44)고, 임시목사가 「시무목사」가 되었는데, 그러므로 종전의 “지교회의 시무목사”란 지교회를 시무하는 모든 목사, 즉 위임목사, 임시목사, 전도목사 등을 총칭하고 있었는데, 헌법 개정 후에는 ‘지교회 시무목사’란 종전의 임시목사만을 가리키는 것이 되었으니, 노회 회원자격을 규정한 “지교회 시무목사(즉 개정 이전의 임시목사… 필자 주: )와 정년 이전의 원로목사와 총회가 노회가 파송한 기관 사무를 위임한 목사는 회원권을 구비하고, 그 밖의 목사(즉 위임목사 와 무임목사와 정년 이후의 원로목사를 가리킨다… 필자 주: )는 언권회원이 되며, 총대권은 없다”가 되었으니 이것이 옳은가? 결국 헌법개정에 있어서의 헌법의 단견(短見) 빚은 난센스가 되었다고 하는 말이다.그리고 또 한 가지는 1930년 판 헌법시대 이래로 전도목사는 “교회 없는 지방에 파송되어 교회를 설립하고, 노회나 총회의 결의로 그 설립한 교회를 조직하며, 성례를 행하고, 교회부흥 인도도 하느니라”(정 제4장 제4조 7)는 규정이 1986년 판까지 그대로 이어져 왔으니, 56년 간, 즉 반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행해 온 규정이다. 그리고 1987년 제72회 총회에서는 “전도목사도 임시목사에 준하여 노회임원이 될 수 있다”(동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 p.31)고 전도목사의 피선거권을 밝히기도 했었는데, 1993년 판 헌법에서 엉뚱하게도(?) 전래의 전도목사 규정(제4장 제4조 6)에 “단, 노회의 언권은 있으나 결의권은 없다”고 단서를 추가하여 사실상 무임목사 취급을 당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웬 일인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1922년판 헌법시대 이래로 “본 총회나 노회의 결의로 직무가 위탁된 자와, 본 장로교회에서 봉급을 받는 목사는 회원권이 구비된다는 원칙이, 그후에는 표현이 다소 바뀌었어도 ‘지교회 시무목사와 <정년 이전의 원로목사와> 총회나 노회가 파송한 기관 사무를 위임한 목사는 회원권이 구비하고…”(2016년 현행판)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교회 없는 지방에 파송되어 교회를 설립하고 노회의 결의로 설립한 그 교회를 조직하며, 성례를 행하고 교회부흥 인도도 한다”고 하였으면, 전도목사가 왜 교회를 시무하는 목사가 아닌 것처럼 홀대하는가? 교회부흥 인도는 물론 성례까지 행한다고 하였는데 성례를 교회 안에서 하는가? 밖에서 하는가?노회의 결의로 직무 위탁을 받은 목사이니 회원권이 구비된 노회원이요, 지교회를 설립하고 교회를 조직하기 위하여 개척 목회사역에 종사하는 목사로서 노회 전도부나, 혹은 파송기관을 통해서 생활비를 받는 목사이니, 역시 회원권이 구비된 회원이 확실한데, 이 전통적인 명문규정을 그냥 두고서도 단서로 명문규정을 부인하는가? 단(但)서는 본 문 밖의 예외나 조건을 나타내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쓰이는 용어요, 본문을 뒤집기 위한 용어가 아니니, 어법(語法)을 어기면서까지 회원권이 구비된 노회원인 전도목사를 무임목사와 똑같이 다루는가?2002년 제87회 총회촬요 P.53에 의하면 “미조직교회 목사(임시목사가 노회장과 총회 총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의건은 법(노회장과 총회총대가 될 수 없다)대로 하기로 가결하다”고 하였는데, 임시목사가 「시무목사」로 그 칭호가 바뀐 후에도 위에 제87회 총회 결의대로 노회장과 총회총대가 될 수 없는가? 있는가?위임목사들의 우월감과 홀대에 익숙한 시무목사(임시목사)들의 비굴함이 이런 양상을 빚었다면 천만의 말씀인가? 과연 그러한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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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2019-08-21
  • 특별기고 /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의 비성경적인 교리의 정체를 밝힌다-4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계 15:5-8).기록된 말씀에서 일곱재앙을 가진 일곱천사가 나온 장막성전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천사의 일곱재앙을 마치기까지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다고 하였다(계 15:8).일곱천사의 일곱재앙이란 무엇인가?요한계시록 15장 5절의 근거로 1980년 9월 14일 유재열 장막성전이 무너지고 이만희 장막성전이 세워졌다. 그러나 장막성전을 세운 이만희는 3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장막성전에서 나와야 할 일곱천사도 네 생물도 나온 사실이 없고 일곱재앙을 가진 일곱천사가 네 생물부터 재앙의 일곱대접을 받은 자도 아무도 없다. 신천지 신도들이여! 성경을 보라!성경과 다른 허깨비 허상된 교리를 믿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5장 8절의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연기(煙氣)가 차게 되매 일곱천사의 일곱재앙이 마치기까지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다고 하였으므로 일곱천사의 일곱재앙이 마치기까지 저주의 연기가 가득한 장막성전에 들어가면 안된다. 그러나 이만희가 세운 장막성전은 1980년 9월 14일 이후 부터 3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증거장막성전에서 예배를 보고 있지 않는가? 이만희 신천지 장막성전 교인들은 성경의 기록과 전연 다른 복음을 믿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 1:8)성경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만희 장막성전에서는 일곱천사의 일곱재앙을 마친 사실도 없다(일곱재앙은 계시록 16장 전장). 이만희 장막성전이 성경에 기록된 장막성전이라면 장막성전에서 결단코 예배를 보아서도 안되고 장막성전은 영적인 저주의 연기가 가득한 곳이므로 장막성전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성경이 명령한 들어가지 말라고 한 곳을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같은 자들이다. 왜 장막성전(이만희)에는 저주의 연기가 가득 차 있는 곳인가?“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계 9:1-3) 기록된 말씀에서의 무저갱(無:없을 무, 底:낮을 저, 坑:구멍 갱)이란 구멍(함정과 같음)의 깊이가 끝없는 어두움의 함정과 같은 곳으로서 용과 옛뱀(하와를 꾀인 뱀) 사단 마귀가 들어갈 마귀의 처소다. 요한계시록 20장1~3절을 자세히 읽어 보라!요한계시록 9장 3절에 무저갱에서 나오는 연기 가운데서는 황충이 나온다고 하였다(황충은 메뚜기 같은 곤충).요한계시록 9장 7절엔 황충들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과 같다고 하였고 연기 가운데서 나온 황충 곧 메뚜기가 악한 사단의 군대가 되어서 말과 같은 큰 자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 황충들은 재앙의 사명자로서 다섯달 동안 사람을 괴롭게 하는데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음이 저희를 피한다고 하였다. 즉, 죽음의 자유도 없는 대 환난을 황충들이 일으키는 것이다(계 9:3~6).황충이 연기 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이(계 9:3) 장막 성전의 일곱재앙을 가진 일곱천사도 성전에 연기가 가득한 장막 성전에서(계 15:8) 일곱재앙을 가진 일곱천사가 나오는 것이다.요한계시록 15장 5절 증거장막성전의 간판을 머리에 이고 이만희씨와 함께 한 모든 자들이 모두가 연기 가운데서 나온 저주의 사명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성경에 예언된(계 15:5~8) 7천사가 나온 증거장막성전이 신천지 이만희 교리라면 영적으로 저주의 연기가 가득한 교리의 교회가 이만희 장막성전이 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황충과 같은 사단의 교리를 가진 자들인 것이 사실이다.신천지 장막성전 신도들이여! 일곱천사의 일곱재앙이 마치기까지 증거장막성전에 들어가면 안된다(계 15:8).장막성전에서 나온 일곱천사는 구원의 사자가 아니요, 저주의 사명자들이므로 일곱천사가 일곱재앙을 가지고 나올 때에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일곱천사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하게 담긴 일곱대접을 나누어 주므로서 저주와 저주의 사명을 받은 자들이 출현하는 곳이 신천지 증거증거장막 성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비성경적인 이만희씨의 장막성전 교리 그 자체가 연기와 같은 것이다. 더 이상 신천지 교리의 연기를 마시면 영적으로 죽는다. 그러므로 일곱천사의 일곱재앙이 마치기까지 장막성전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였다(계 15:8).일곱천사가 없는 증거장막성전 신천지 교회에서는 일곱천사의 일곱재앙이 끝이 날 수가 없으니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교리는 영원히 들어가서는 안될 저주의 장막 성전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저주의 장막성전에서 나온 이만희씨 또한 저주의 사명자다.“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계 9:11) 황충들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無低坑)의 사자라고 하였고 히브리음으로 아바돈(파괴하고 파멸하는 지옥의 사자)이요 헬라 이름으로는 아볼리온(아볼루온=사단을 지칭하는 파괴자)이라고 하였다. 이로써 신천지 교인들은 악마 사단의 교리 연기 속에서 처음에는 메뚜기같이 작은 황충으로 나왔으나 나중에는 마귀, 악마의 교리 연기를 먹고 자란 말같이 큰 자가 된다. 파괴자들이 된다고 하였다(계 9:7). 악마의 교리는 처음에는 황충(메뚜기)같이 작은 자였으나 나중에는 악마 군대의 큰 말(馬)로 변한다고 하였다(계 9:7).신천지 교회의 시작은 황충(蝗蟲) 메뚜기같이 작은 몸집으로 시작하였으나 지금은 메뚜기가 말로 변하여 거대한 악마의 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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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1
  • 총회임원회의 치리권 행사 시비 소고(하)
    치리회 치리권에 의해서만 처결되는 치리회 안건임원회에 파회 후에도 처결케 한 규칙은 위헌 (승전) 그리고 이 규칙이 생긴 것이 2012년 제97회 총회였으나(동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 p.85), 그 이전에도 8.15 해방 이후 1952년 제37회 총회와 1955년 제40회 총회가 내회장소를 임원회에 맡겨오다가 나중에는 회의록은 정회했다가 속회할 때마다 채택했으나, 마지막 날 마지막 회의의 회록은 임원회에 맡겨 채택하게 되고, 주류, 비주류 갈리던 1970년대 후반에 와서는 중대한 의안은 잔무를(만들어?) 임원회에 맡기는 방식을 취하거나, 전권위원회에 맡기되 위원선정은 임원회에 맡기는 식으로 해 왔고, 그 시대가 지나간 후에는 전권위원회가 아니고 조사처리위원회로 바뀌고, 중대안건을 임원회에 맡겨 처리하는 일이 줄어드는가 했더니, 그래서 제90회 총회 (2005년)에서는 임원회 수임안건이 7건이요, 제91회 총회(2006년)에서는 15건이었는데, 제102회 총회(2017년)에 이르러서는 무려 44건으로 늘어났고, 제103회 총회(2018년)에서는 전례 없이 총회장에게 맡긴 3건을 포함하면 76건으로 늘어나고 있으니, 이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임원회가 축소치리회인가? 소총회인가? 어떤 일은 총회(전체회의)에서 처결하고 어떤 일은 임원회에서 처결하는가? 왜 이렇게 되고 있는가?총회회기는 총회규칙대로 매년 9월 3차 주일 후 월요일 오후 2시에 개회하지만 (총회규칙 제7장 제22조), 회기는 금요일까지 닷새동안으로 정해 내려오고 있는데, 지난 103회 총회(2018년)는 9월 10일(월요일)에서 9월 21일까지의 회기를 이틀을 줄여 불과 3일 동안에 회무를 마치고 폐회로 파회하였으니 어리둥절하리만치 빨라졌고, 이것이 총회 회무를 통괄하는 총회장과 총회임원들의 의사진행술(議事進行術)의 향상으로 말미암는 것이었다면 우선 찬사부터 먼저 보내고 싶다.그런데 제103회 총회에서 처리된 안건은 대충 헤아린 바대로 위원보고 26건 헌의건 370건, 각부 보고 18건, 기타 14건이니 도합 428건에 달하고 있는데, 이 많은 안건을 예배시간과 성찬예식에 이어 회원을 점명하고, 개회선언과 함께 임원을 선거하여 취임하기까지의 일은 빼고 안건을 처리한 시간은 첫째날 19:00~21:30 까지 2시간 반으로 끝났고, 둘쨋날은 9:30~12:00 까지 두시간 반, 14:00~17:00 까지 3시간, 19:00~21:30까지 두시간 반이니 모두 여덟시간이요, 셋째날은 9:30~12:00 까지 두시간 반, 14:00~17:00까지 세시간, 이렇게 다섯시간이니, 사흘 동안에 의안을 처결한 시간은 모두 합해 열다섯 시간 반(즉 930분)이 된다. 그러니 428건의 의안이 평균 2분 여 초에 한 건씩 통과시킨 셈인데, 토론은 커녕 안건을 읽지도 아니하고 유인물대로 받기로 동의 재청해서 가부 통과 시켰을까? 70건을 임원회에 맡기고 3건을 총회장에게 맡겨 처결토록 한 일이 회의 시간을 단축 시켰을까?끝으로 1967년 제52회 총회에서 회록서기가 된 후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14년 동안이나 임원 자리를 지켜 실권자처럼 되었을 무렵, 호남의 K모씨가 언권을 얻어 말하기를 “총회의 모든 안건을 XXX에게 맡기고 폐회하기로 동의합니다”고 하였더니, “재청이요” 소리도 나왔고, 당시 총회장 P 씨가 가부를 물으려고 할 때에 장로 중 실세처럼 불리던 대구의 P씨가 손을 휘저으면서 가부를 만류(挽留)하고 앞으로 나가 “이런 동의는 묵살해야 합니다”고 사태를 수습한 적이 있었는데, 제103회 총회가 노회의 헌의건 3건을 총회장에게 맡겨 처리하기로 가결하였으니(동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 PP.108~109),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독노회 시대 이래로 원용해 온 회의법 상의 「위원회 심사의 원칙」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회의의 기본원칙은 가. 의사(意思)결정의 원칙에 ① 정족수의 원칙 ② 다수결의 원칙이 있고, 나. 회의 공정운영 확보를 위한 원칙에 ① 의사(議事)공개의 원칙 ② 사회자 공평의 원칙 ③ 회원평등의 원칙 ④ 발언 자유의 원칙이 있으며, 다. 능률적인 회의 운영 확보를 위한 원칙에 ① 의제 선고의 원칙 ② 일사건 일처리의 원칙(즉 일 의제의 원칙) ③ 위원회심사의 원칙 ④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의 원칙이 있다.그리고 회의란 그 구성요원된 전체회원이 회집하여 토의하고 결의하는 것인데, 회원수가 많아 각양각색의 주장으로 중구난방이 되어 깊이 있는 의논이 어려워지기 쉽다. 더욱이 의안이 건축이나 혹은 명승지 탐방계획을 짜는 일이었다고 하자. 회원 중 건축관계 업을 하는 분도 있고, 가고자 하는 명승지에 여러번 다녀온 회원이 있을 때에, 그 일의 전문성이나 경험을 갖춘 분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들이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게 하여, 전체 회의는 그 의견을 토대로 다시 의논해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게 한다면 시간도 절약되고 효율적인 회의가 되지 않겠는가? 위원회 심사의 원칙이란 특정의안에 대하여 예비적이며 준비적인 심의를 거쳐 그 결과를 본회의에 보고하고, 본회의는 그 보고를 토대로 다시 토의하여 최종적인 처결을 하는 능률적인 회의 운영을 위한 한 방도이다.치리회의 의안은 치리권에 의해서만 처결된다. 위원회는 치리회가 아니니 치리회의 의안을 처결할 권리가 없고, 다만 본회의에서 의안처결이 용이하도록 다듬는, 맡겨진 의안에 대한 준비적이며 예비적인 심의기구이니, 본회의의 보고와 동시에 소멸되는 임시기구이다.이쯤에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목사의 치리권 행사를 전도사에게 맡겨 행할 수 있겠는가? 장로가 당회에 못나간다고 아내를 당회 참석 시켜도 되겠는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교회를 다스리는 치리권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권한인데, 네가 누구이기에 교회치리권을 네 사유물처럼 여기 저기 맡기겠는가?총회여! 총회가 처결해야 할 총회의 의안(즉 총회의 치리권 행사를)을 치리회 아닌 총회임원회에 맡겨 처결함이 옳겠는가? 총회장에게 맡겨 처결함이 옳겠는가? 위원회 심사의 원칙은 치리회가 아닌 위원에게 총회의 의안을 맡겨 처결하는 축소 치리회가 아니고, 본 회의에서의 처결이 용이하도록 준비적이며, 예비적인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보고함으로 스스로 사라지는 임시기구인데, 언제까지 안건을 맡겨 처결을 하는 작은총회, 축소치리회로 여기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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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01
  • 특별기고 /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의 비성경적인 교리의 정체를 밝힌다 -3
    7. 유재열 장막성전의 예배유재열의 장막성전을 완공한 여덟 사람은 1966년 7월부터 언약서를 담은 언약궤를 단상에 두고 모두 같이 단에 올라가 예배를 드렸다. 설교는 임마누엘 왕이 두 세 시간씩 직접하였는데 성경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일곱 천사가 동시에 출현하였다는 이 한 가지 사실로 듣는 이로 하여금 신비성을 느꼈다. 이로 인하여 수백 수천의 신도가 모여 들었다. 이들은 곧 장소가 좁아지자 1969년에 400여 평이 되는 새 성전을 짓게 되었다. 성도들은 넘치는 사랑으로 네 것, 내 것이 없이 공평과 의리가 충만한 생활을 하는 듯 하였으나, 여덟 명의 피를 섞어 링거병 두 병에 담아서 언약한 ‘언약의 피’로서 수백 수천 명의 신도들에게 임명장을 줄 때에 임명장 뒤에 그 피로 십자가를 그어서 주었다. 그들의 피는 인류의 죄를 위한 피흘림이 아니요, 자칭 재림주로 나온 자들과 자칭 천사라고 하는 자들의 죄인의 피였다. 이러한 행동은 깡패들이나 과격한 폭력 집단 조직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단 마귀 귀신의 영을 받은 자들만이 행할 수 있는 무당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어찌 성스러운 예수의 새언약의 피에 비유할 수 있으며, 자칭 ‘새언약’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새언약’의 피이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19). 기록된 말씀과 같이 만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엡 2:15~18) 새언약의 피다. 링거병 두 병에 받은 피로는 수천명에게 임명장을 줄 때에 십자가를 그어 줄 수 없다. 붓으로 8명의 피를 그어준 십자가이므로 아무리 많이 십자가를 그어도 그 양이 100~200명 이상 그어 줄 수 없다. 당시 소문에 의하면 십자가의 피가 모자라서 산토끼를 잡아서 그 피로 십자가를 그어 주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유재열을 비롯한 8명이 과연 예수와 같이 인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거룩한 자들의 피인가. 성경은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7-20). 그들의 열매를 보자!자칭 임마누엘 왕 유인구는 아들 유재열과 싸워서 두 감람나무의 사명 1,260일 날을 채우지 못하고, 아들에게 쫓겨나서 화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있고, 유재열은 장막성전 교권을 오평호 목사에게 넘겨주고 현재 서울 모처에서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장막성전을 최초로 세운 유인구 임마누엘 왕을 일곱 천사가 내친 일은 세상 인륜의 도덕에도 어긋나는 일일뿐만 아니라, 천륜을 어긴 불효자의 행동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곱 천사란 자들이 1967년 당시 임마누엘 왕 유인구를 쫓아낼 당시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언약궤를 단상 위에 만들어 놓고 예배를 보았으나 언약궤를 열고 언약궤 안에 있는 유인구와 일곱 천사들이 맹세한 피의 언약 문서를 찢고 단상에 오줌을 싸고 성경을 봉하여 단상에 던지고 인천 송도로 떠나면서 각각 헤어졌다고 한다. 그 일곱 명 중에서 설교를 가장 잘하는 백만봉(솔로몬)은 자칭 재림주가 되었고, 정창례(사무엘)도 재림주가 되었으니, 두 증인 두 감람나무의 제자 중에서 자칭 재림주가 두 명이 나온 것이다. 나머지 천사들은 술과 여자로 타락하여 신도들 보는 앞에 술취하여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며 추한 꼴을 많이 보인 자들이 대부분이였다. 이들은 모두가 피로 세워진 장막성전을 버리고 모두 각각 흩어져 자기의 길을 간 것이다. 이는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은 것이다(마 7:17). 이러한 짐승같은 자들의 피로 세운 유재열 장막성전을 이만희는 영원한 새언약의 장막성전이라고 한다(이만희의 최초 저서, 종교세계 관심사, 30쪽 14째줄). 일곱 천사의 열매로 그들의 정체는 사단의 역사로 확인된 것이다. 예수의 피만이 인류를 구원한 영원한 새언약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눅 22:20). 8. 유재열이 계 15:5을 근거로 처음으로 세운 장막성전은 재앙(災殃)의 성전이다.“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계 15:5-6).기록된 말씀에서 하늘의 증거장막성전이 열리면 일곱 재앙(災殃)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온다고 하였다. 장막성전에서는 감람나무나 재림주는 결단코 나올 수 없다. 감람나무나 재림주가 장막성전에서 나온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성경 기록에는 두 감람나무(계 11:1~13)는 여섯째 나팔 둘째 화의 사명자로 나오는 자이다. 증거장막성전은 일곱째 나팔 후에 계11:15에서 열리므로 두 감람나무와 장막성전은 같이 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섯 째 나팔의 때에 나타낼 감람나무(계 11:13~14)가 일곱 째 나팔 때에 열리는 증거장막성전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전연 모르는 성경에 무지한 자들이 만든 교리라고 할 수 있다.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계 15:7).기록된 말씀에서 일곱 재앙을 가지고 나오는 일곱 천사에 대하여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일곱 천사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각각 하나씩 나누어준다. 장막성전에서 나온 자는 재앙에 재앙을 더하는 재앙을 받은 재앙의 사명자들만이 장막성전에서 출현할 뿐인 것을 알 수 있다. 신천지 이만희가 영원한 새언약 장막 성전에서 나왔다면 일곱 천사 중의 한 사람은 될 수 있으나, 장막 성전에서는 감람나무나 재림주는 나올 수 없다. 저주의 일곱 천사만 나올 뿐이다. 이는 재림주나 감람나무가 장막성전에서 나온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 1:14). 기록된 말씀과 같이 모든 천사는 부리는 영(종)으로서 구원얻을 후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지, 감람나무나 재림주 노릇할려고 하는 것은 성경을 거역하고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는 것이다(마 12:31~32).계16장 전장을 잘 읽어보라! 일곱 대접을 쏟는 일곱 천사의 재앙은 전무후무한 심판으로서(마 24:21), 일곱 천사의 재앙은 이 땅의 마지막 재앙이라고 하였다(계 15:1). 그러므로 증거장막성전을 비유한다면 핵무기를 보관하고 있는 창고에 비유할 수 있다. 핵을 사용할 수 있는 명령된 자의 명령을 받은 자만이 들어 갈 수 있는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증거장막성전에는 일곱재앙의 사명자만 나오는 재앙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증거장막성전 이름 그 자체가 재앙이다(계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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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01
  • 총회임원회의 치리권 행사 시비 소고 (상)
    권력의 총회 집중 장기화는 독재의 온상 총회 비상설체 조직은 반독재의 한 방편 정치총론 5에서 「장로회정치」란 “…지교회 교인들이 장로를 선택하여 당회를 조직하고, 그 당회로 치리권을 행사하게 하는 주권이 교인들에게 있는 민주적 정치이다. “당회는 치리장로와 목사인 강도(講道)장로의 두 반(班)으로 조직되어 지교회를 주관하고, 그 상회로서 노회, 대회, 및 총회 이같이 3심제의 치리회가 있다…”고 하였고, 정 제8장 제1조는 “…정당한 사리와, 성경교훈과, 사도시대 교회의 행사에 의한즉 교회치리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당회, 노회, 대회, 총회 같은 치리회에 있다(행 15:6)”고 규정하였으며, 동 제2조(치리회의 성질 관찰)는 교회 각 치리회에 등급은 있으나 각 회원은 목사와 장로 뿐이므로 각회가 다 노회적 성질이 있으며, 같은 자격으로 조직한 것이므로 같은 권리가 있으나, (즉 본질적으로 동등하지만), “그 치리의 범위(즉 통치권 행사의 범위와 한계)는 교회헌법에 규정하였다.” 즉 교인관계 통치권은 그 교인이 소속한 당회가(정 제9장 제5조), 경내의 목사와, 설립, 분립, 합병, 폐지 등 지교회를 관할하는 일은 소속 노회가(정 제10장 제6조) (대회제는 시행치 않음) 헌법과 도리 및 설립, 분립, 합병, 폐지 등 노회를 관할하는 일은 총회가 (정 제12장 제5조)하도록 직무와 직권을 각각 나누어 맡기되, “각회는 고유한 특권이 있으나”, 즉 맡겨진 직무와 직권은 타회에는 없어 행사할 수 없도록 해당 회에만 있는 고유한 권세이니, 동등한 타회는 물론, 상회의 간섭이나 침해를 당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처결할 수 있는 특권이 되게 하였으나, “순서대로 상회의 검사와 관할을 받는다.” 즉 고유한 특권을 가지고 치리권을 행사하는 치리회 구성요원인 목사와 장로도 인간적인 한계(약점)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오실(誤失)을 시인할 수 밖에 없어 3심제도를 원용하게 되니, 당회의 잘못은 노회가 바로잡고, 노회의 잘못은 대회 혹은 총회가 바로잡는다는 점에서는 각 치리회는 동등이 아니고 위계적(位階的)이니, 당회 위에 노회가 있고, 노회 위에 대회 총회가 있게 된다.그런데 당회, 노회, 대회는 회무처리를 위해 아무 때든지 회집할 수 있고 (즉 정기회는 물론 임시회도 회집할 수 있고), 일을 마치면 폐회하였다가도 다시 개회할 수 있는 상설체조직이지만, 총회는 오직 해마다 9월 셋째주일 후 월요일 오후 2시에 회집되어 회무가 필하기까지 불과 5, 6일의 회기 중 회무를 마치고 폐회하면, 회장은 회가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고 파회(罷會)를 선언하게 되니(정 제12장 제7조), (“총회는 상설체조직<Permanent body>이 아니므로 폐회로 해산되고, (Sine die) 익년 총회를 새로 회집한다<429문답 ⑧>), 혹시 정회(停會)하였으면 속회는 할 수 있으나, 폐회로 파회된 후에는 같은 해에는(총회가 없어졌으니) 다시 회집하지 못한다. 다른 치리회의 구성요원인 회원이나 총대는 다른 분으로 바뀔 수는 있으나 항상 있게 되니, 항상 있는 구성요원들로 구성되어 항상 있는 조직체(즉 상설체조직)가 되지만, 유독히 총회총대의 임기는 총회가 개회하였다가 파회되기까지의 한시적이니, 폐회하면 구성요원의 임기가 만료되는데 총회가 어떻게 있겠는가? 그래서 회기 중에만 총회가 있다가 폐회되면 없어지는 회, 즉 비상설체 조직이라고 하는 말이다.그러므로 총회 파회 후에 일어나는 온갖 의안은 꼬박 1년을 기다리게 되어 긴급한 일과 중대한 의안 등을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처결을 할 수가 없게 되겠는데, 왜 총회를 비상설체 조직으로 하는 체제에 매이게 되었는가?장로회정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독재 체제에 항거하고 일어난 종교개혁의 산물이다. 그런즉 총회의 권력집중과 장기화로 또다시 1인 독재나 집단독재화 배격이 그 이유의 중심이니, 결국 총회 파회 후의 온갖 의안을 꼬박 1년을 기다릴 수는 있어도 (긴급한 일과 중대한 일이 시이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게 되는 폐단은 감수(甘受)하면서라도) 총회가 1인 독재화 또는 집단 독재화되기 쉬운 권력의 총회집중 장기화를 용납해서는 아니된다고 함이 체제적 입장이다.헌법에 규정된 교회회의는 치리회는 물론, 부속 각회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조직하며 어떤 일을 행하게 되는지 자세히 규정하고 있으나, 총회임원회는 치리회도 아니요 부속 회도 아니니 어떻게 조직하며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규정이 없다. 그리고 치리회가 치리권을 행사한다는 말은 교회를 다스리는 치리회의 의안은 치리권에 의해서만 처결된다 함인데, 총회규칙 제7장 제24조(임원회)가 “1. 총회가 파했을지라도 총회수임 사항을 위하여 임원회를 가동할 수 있다. 2. 총회로부터 수임 받은 안건처리를 위하여 임원 2명 이하가 포함된 소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단, 임원은 2개 이내의 소위원회 위원이 될 수 있다”고 치리회(당회, 노회, 대회, 총회)가 아닌 임원회가 교회를 다스리는 총회의 의안(물론 수임사항을 가리킨다)을 처결하게 하였으니 그 규칙은 “…정당한 사리와 성경교훈과 사도시대 교회의 행사에 의한즉, 교회치리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당회, 노회, 대회, 총회같은 치리회에 있다”(정 제8장 제1조)에 반하는 위헌적 규칙이라 할 것인데, 그래도 그 규칙을 따르는 일이 옳겠는가? 그리고 총회는 불과 5일 안팎의 회기 중에만 총회의 의안을 처결하고 산회하는 수명이 짧은 회이지만, 총회가 임원회에 맡긴 수임사항은 총회 파회 후에도 그 수임사항 처결이 끝나기까지 계속하여 처결할 수 있게 하였으니, 사실상 회기에 제한 없이 1년 내내 개회와 정회와 속회와 폐회를 되풀이 할 수도 있는 수명이 긴 회이다.그리고 총회는 전체 총대들의 회집이니 규모가 커 복잡한 회이지만, 총회파회 후 처결하도록 임원회에 맡긴 수임사항은 총회장과 함께 회기 중 회의실무(즉 회장은 의장이 되고, 서기는 문서수발 등 행정사무를, 회록서기는 회의록 작성을, 회계는 금전출납 등등)를 행하던 임원들만의 회집이니, 단출하여 복잡한 것이 없으며, 뿐만 아니라 원임 원과 원임원을 돕는 부임원 등 위계가 분명했던 임원들의 회집이니 그런 관계가 없는 일반 회원들의 회의보다 원임원들의 뜻대로, 나아가서는 회장의 뜻대로 처결되기가 십상이 아니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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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9
  • 특별기고 /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의 비성경적인 교리의 정체를 밝힌다-2
    1. 신천지 교회의 간판이만희씨가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교권을 세운 그 자체가 재앙(災殃 : 온갖 불행)이다.이는 유재열 씨가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현재 남서울대공원 어린이 놀이터 자리)에 ‘증거장막성전’이라는 교회를 세우고 아버지 유인구와 유재열이 두 증인 두 감람나무로 출현한데서 비롯되었다. 이후 이만희는 홍종효와 짝하여 두 증인 두 감람나무로 출현하여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라는 교권으로 교회를 시작하였다. 이유는 이만희씨는 자신의 저서 계시록의 진상(1985년 12월 12일 초판 발행)181쪽, 계 12:1~2절에 기록된 해를 입은 여자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였다. 해를 입은 여자는 유재열 장막성전의 교주를 칭한 것이다. 유재열의 부친인 유인구의 자칭 ‘임마누엘’이름은 하나님께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아들 유재열에게 ‘삼손’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삼손’이라는 뜻은 성서어원사전에 작은 태양이라고 하였으므로 해는 삼손 유재열이요, 해를 입은 여자의 아들은 이만희 자신이라고 자신의 저서 계시록 진상 181쪽에서 주장하였고, 이만희의 최초의 저서 세계 종교 관심사 창세 이후 ‘최대의 희소식’ 30쪽 증거장막성전 출현 제목 아래 14째 줄에서 증거장막성전은 영원한 새언약의 장막이라고 하였다(계15:5).이와 같은 이유로 이만희는 유재열(삼손)의 아들로서 유재열의 영적 어머니가 두 증인 두 감람나무로 나올 때에 ‘증거장막성전’의 간판을 머리에 이고 나온 것 같이, 이만희 또한 ‘증거장막성전’이라는 간판을 머리에 이고 두 감람나무 두 증인으로 증거장막성전이라는 교회의 이름으로 홍종효와 함께 두 증인 두 감람나무로 출현한 것이다.이만희가 계 15:5을 인용하여 장막성전을 쇠하여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새언약의 장막성전이라고 하였으나 성경 어디에도 증거장막성전이 영원한 새언약이라고 기록된 곳이 없다. 계 15:5절에서 8절에 15장의 내용이 끝이 나는데 영원한 새언약이라는 기록이 전무한데, 왜 영원한 새언약이라고 하였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2. 장막성전의 시작 장막성전의 역사는 1966년 2월 17일, 유인그를 따르는 여덟 사람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청계산에 들어가 초막을 짓고 성령으로부터 양육을 받았다고 주장하므로서(사 1:1~4)시작되었다.그 여덟 사람은 1965년 말에 호생기도원의 자칭 재림주 김종규로부터 나온 자들로 당시 과천면 하리 삼거리에 있던 유인구의 집에서 다락방 기도회로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유인구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며 일곱 사람과 함께 청계산으로 들어갔다. 그들 중 신종환씨와 신광일씨는 부자 지간이고, 또 유인구씨와 유재열씨도 부자지간이며, 그리고 신종환씨와 유인구는 처남 매부지간이다. 당시 유인구씨는 경기도 과천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신광일은 17세 시골 총각이었으며, 유재열은 성남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어머니를 따라서 방언을 받는 등 신비를 체험하고 신앙에 뛰어든 17세 소년이었다. 3. 유재열 장막성전 일곱 천사의 양육 과정유인구를 따라서 청계산에 들어간 일곱 사람은 초막에 거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영들에게 백 일간을 말씀으로 양육받았다고 주장한다. 유인구는 성령으로부터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아 나머지 일곱 사람을 말씀으로 양육했다. 그는 성경과 성경을 연결하여 말씀을 가르쳤으며, 성경 외에 다른 책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양육자 유인구를 비롯한 여덟 사람은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들 중 그나마 신앙을 했다는 자도 호생기도원에 들어가서 방언을 받고 잠시 머문 것이 믿음생활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성경을 가르치기는커녕 배우기도 힘겨운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백지와도 같은 그들을 택하시어 말씀으로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여덟 사람은 자신들이 양육을 받는 동안 초막에 가족이라도 절대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모세 장로 신종환의 부인이 음식을 해서 초막에 갔다가 갑자기 입에서 피가 올라와 초막에서 내려온 일이 있었다. 이 일 후로는 양육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허락된 자 외에 누구도 100일 기도하는 초막을 접근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백일간의 양육이 끝난 후 여덟 사람은 칼로 동맥을 자르고 오른손 바닥에 십자가를 그어 하나님과 피로 언약하고 그 피를 링거 병 두 개에 담았다. 하늘의 명령에의 따라 유인구와 신종환은 특별히 동맥을 두 번 잘라 피를 받았다(호 6:7, 히 9:18)고 한다. 4. 7천사의 영명 하나님께서는 유인구를 중심으로 여덟 사람과 언약한 후 유인구(임마누엘)로부터 영명(靈名)과 사명을 내렸다. 영명은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유대인의 영을 보고 그 영의 이름을 부른 것이었기에 모두 유대인의 이름으로 새이름을 받았다. 유인구는 임마누엘 왕, 신종환은 모세라는 이름으로 제사장으로 임명하였고, 김창도는 미가엘, 정창래는 사무엘, 백망봉은 솔로몬, 신광일은 여호수아, 유재열은 삼손, 여자 김영애는 디라라는 영명을 주었다.5. 언약궤 안에 있는 언약서언약서는 그들이 영계의 음성을 듣고 기록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나는 일반 선지자의 영이 아니요 여호와의 성신이니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곧 법이니라. 나는 임마누엘 왕에게 명하겠으니 임마누엘 왕은 천사들에게 명하고 천사들은 백성에게 명하라. 백성들은 천사들에게 순종하고 천사들은 임마누엘 왕에게 순종하고 임마누엘 왕은 나에게 순종하라. 이 언약과 선지자와 사도들로 전한 약속을 믿고 지키면 삼년 반(1,260일) 안에 약속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줄 것이고 지키지 아니하면 머리 위에 준 것(영)을 거두리라”(계 3:2, 2:5).6. 장막성전을 세움하나님과 피로 언약한 여덟 사람은 영명과 사명을 받은 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청계산 기슭 막계2리에 초가삼간을 빌려 하나님의 계시대로 “장막성전”이라는 간판을 달고 매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출 25:8, 계 13:6).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바쳐 성전 곧 성막을 지었다. 성전 공사는 학개서 2장 말씀을 근거로 1966년 6월 1일에 시작하여 1966년 6월 24일에 마쳤다고 주장했다.◎ 참고행4:12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였으므로 예수의 피 외에 인간의 피는 원죄가 있는 죄인의 피이므로 이들 여덟명의 피는 예수의 보혈을 대적한 악마의 영을 받은 피로서, 하나님과 언약한 피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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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9
  • 권 제45조와 제100조와의 관계 고찰
    목회사역 못해도 생활비 받는 정직 상소 담임목사무흠 원신분에서 재판받는 원심파기 환송심 피고 <정직된 상소인의 권리>목사 A씨가 노회재판에서 정직판결을 받고 담임까지 해제를 당하게 되니, 판결 후 10일 이내에 상소통지서와 상소장, 상소이유설명서 등을 갖추어 노회서기에게 제출하였는데도, 교회에서는 매월 지급하던 생계비를 끊고 어서 교회를 떠나라고 하는데, 목사 A씨는 권 제6장 제45조의 규정 (“…담임목사를 정직할 때에 그 담임까지 해제할 수 있으나, 상소한다는 통지가 있으면 그 담임을 해제하지 못한다”)대로 내가 이미 상소통지서를 노회서기에게 접수시켰으니, 지금도 이 지교회 담임목사 그대로이니, 군소리 말고 어서 생계비를 가져오라고 할 뿐 아니라, 노회가 보낸 설교자를 밀어내고 A 씨가 강대상에 올라 예배를 계속 인도한다면 그것이 옳겠는가?첫째로 목사 A 씨의 주장을 본다. 노회재판에서 정직 판결로 담임이 해제되자, 판결 후 10일 이내에 상소통지서와 상소장, 상소이유설명서를 노회서기에게 접수 시켰으면 상소는 성립되었고, 상소되면 담임을 해제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그가 지금도 담임목사란 주장은 옳다. 그러나 정직으로 목사구실을 하지 못하는 목사가 되었는데도, 노회가 보낸 설교목사를 밀어내고 정직목사 A 씨가 계속 교회에서 예배를 주관하겠다고 하는 일은 또 하나의 범법행위가 된다. 권 제9구장 제100조가 “상소를 제기한다 할 때에는 하회에서 결정한 것이 권계(훈계 수준의 벌)나 견책(책망하는 수준의 벌)이면 잠시 정지할 것이요, 그 밖의 시벌(즉 정직, 면직, 수찬정지, 제명출교의 벌을 가리킨다)은 상회판결 나기까지 결정대로 행한다”(1922년 판은 ‘시행해야한다’였다)고 하였으니, 혹시 상회에서 무죄판결이 난다고 해도, 상회가 그렇게 판결하기까지는 노회의 판결(정직, 면직, 수찬정지, 제명출교를 가리킨다)대로 벌 아래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그러므로 정직목사 A 씨가 정직 벌 아래 있으면서도 노회가 보낸 설교목사를 밀어내고 자기가 여전히 이 지교회의 담임목사라고 강단에 올라 예배를 주관하는 일은 권 제9장 제100조에 반하는 또 하나의 범행이라고 하는 말이다. 그가 정직되었을망정 후 10일 이내에 상소하여 담임해제를 면하게 되어 A목사의 말 그대로 나는 여전히 이 지교회의 담임목사란 주장은 옳다. 그러나 담임목사의 구실은 할 수 없도록 정직으로 묶였으므로 목사직의 사역은 일체할 수 없는 담임목사란 말이다.이제는 목사 A씨가 어떻게 그 교회에서 목사일을 하게 되고, 그 교회가 어떻게 목사 A씨를 우리교회 목사가 되게 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자. 공동의회에서 출석 3분의 2 이상의 가표와, 입교인 과반수의 찬동으로 목사 A씨를 노회에 청빙할 때, 청빙서에 매월 생활비○○원을 드리기로 서약했고, 노회가 이를 허락하고 목사위임식을 행하였는데, 그때 목사에게는 “…충심으로 목사의 직분을 다하고, 모든 일에 근신단정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에 부합하도록 행하며, 목사로 임직한 때에 승낙한 대로 행하기로 맹세하느냐?”는 물음(정 제15장 제11조 1) 등에 대하여 “예!”라고 맹세했고, 그때에 교인들에게는 “…④ 여러분은 저가 본교회 목사로 재직 중에 한결같이 그 허락한 생활비를 의수(依數)히 지급하며, 주의 도에 영광이 되며, 목사에게 안위가 되도록 모든 요긴한 일에 도와주기로(본래는 조급(助給)하기로 하였는데, 60년 판에서 이렇게 바뀌었다) 맹세하느냐?”(동 제11조 2)라는 물음에 예!라고 맹세하였다. 목사와 지교회의 목회적 관계는 이와같은 맹세가 뒷받침하고 있다.그런즉 목사에게 매월 지급하던 생계비를 끊고 교회를 떠나라는 일은 스스로 하나님 앞과 교회 앞에서 행한 맹세를 어기는 불법이 된다. 목사 일도 못하는데 왜 생계비를 지급해야 하는가? 목사가 고의로 목사일을 안 본다고 해도 모를 터인데, 목사직 정직으로 막아 놓아 못하는 것이고, 상소로 담임해제를 못하게 되어 여전히 담임목사 그대로이니, 담임목사에 대한 교회의 의무도 맹세한 그대로 행함이 마땅하다고 하는 말이다. <정직 파기환송 후의 피고의 신분>여기서 또 한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정직목사 A씨가 상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노회로 환송되어 재판을 다시 받게 되었을 경우, 목사 A씨는 정직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느냐? 아니면 정직판결한 원심이 상소심에서 파기되었으니 그 사이는 권 제9장 제100조(즉 권계와 견책은 잠시 정지할 것이요, 기타 시벌<즉 정직, 면직, 수찬정지, 제명출교의 벌을 가리킨다>)에 묶여 정직 벌 아래에 있었지만, 상소심에서 그 원심(노회가 판결한 정직 벌)이 파기되어 이제는 노회가 A 목사를 피고로 고소한 고소장을 접수하여 재판을 시작한 그 원점에서 재판을 다시하게 되었으니, 총회의 상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기까지의 정직 상태에서 벗어나 종전과 같이 A 교회를 시무하면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말이다.결국 어떤 의미에서는 총회의 상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다시 재판하라고 환송판결이 나기까지의 기간 동안의 권 제9장 제100조에 따르는 정직 상태에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억울한 정직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으나, 교회재판은 상회인 총회나 대회재판은 물론, 하회인 당회와 당회의 상회인 노회재판에 이르기까지, 치리회의 이름으로 판결하지 못하고 반드시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직권과 그의 명의로…”(예배모범 제16장~17장)판결하여 시벌하며 해벌하게 되었으니, 일단 판결이 났으면 억울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주님께 순복하는 자세와 태도를 가지는 것이 옳다고 하는 말이다.끝으로 재판사건을 맡아 재판하는 재판국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면직과 제명출교 등 중벌하는 일이 왜 이렇게 항다반(恒茶飯)처럼 되어가는가? 교계가 타락하여 평신도도 성직자도 중죄를 범하는 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직권으로 판결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재판국의 권위와 위세를 내세워 범죄에 적합한 판결을 하지 아니하고 중벌, 중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상황은 혹 아니겠는가? 반드시 중벌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나? 더 가볍게 판결할 수는 없는 사건이었나?(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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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05
  • 법에 의한 통치에 관한 소고-4
    총회에는 원치리권 없어 고소 못 받는 장로회정치교인의 원치리권은 당회, 목사의 원치리권은 노회 (승전) 《고소가 어떻게 총회의 직무인가?》권 제4장 제19조에 의하면 “목사에 관한 사건은 노회직할에 속하고(목사를 피고로 하는 고소는 그 목사의 소속노회에만 할 수 있고… 필자 주:), 일반신도에 관한 사건은 당회직할에 속하나 (일반신도를 피고로 하는 고소는 그 신도의 소속 당회에만 할 수 있고… 필자 주:) 상회가 하회에 명령하여 처리하라는 사건을 하회가 순종하지 아니하거나, 부주의로 처결하지 아니하면, 상회가 직접처결권이 있다”고 하였고, 교회정치 문답조례 212문답은 “교인에 대한 원심권(原審權)은 어느 치리회에 속했느냐? 교인에 대한 원심권은 당회에만 있다. 교인의 투표로서 교회를 다스리지 못하며, 이런 권리는 상회에도 없고, 모두 당회가 행사할 권한으로 귀속된다.…” 또 430문답은 “총회에 어떤 치리권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하여 “상고를 받지 아니한 이상, 교회와 목사에 대한 원치리권(직접 통치권… 필자 주:)이 없다. (Presbyterian Digest pp.127, 277, 본서 438~440문답 참조). 또 405 문답은 ”…목사의 원치리권이 노회에 있는 것처럼, 치리장로나 교인의 원치리권은 당회의 있은즉(Presbyterian Digest pp.191~192) 대회는 이런 원치리권이 없고, 오직 노회로부터 위탁판결이나 고소 혹은 상소나 상고가 있어야 이를 심리할 수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정 제12장 제4조 총회직무」에 “…헌의와 청원과 상고와 소원과 고소와 문의와 위탁판결을 접수하여 처리하고…”에서 「고소」가 들어간 것은 1964년 판의 오류였는데, 그것이 지금은 정당한 법처럼 총회가 고소를 받아 처리하고 있으니, 권 제4장 제19조가 규정한 재판관할을 위반하고 있다.고소를 받을 수 있는 치리회는 둘이니, 장로, 집사, 권사, 전도사, 전도인, 세례교인은 소속 당회 뿐이고, 목사, 당회장, 시찰장, 노회장, 총회장 등등 어떤 직분을 가졌던지 그 목사의 소속노회 외에는 고소를 받을 치리회가 없다. 다만 노회는 당회판결의 상소를 받을 수 있고, 대회는 노회판결에 대한 상소를 받게 되니, 당회가 1심, 노회가 2심, 대회가 3심으로 최종심의회가 되나, 다만 헌법과 도리계쟁사건은 총회까지 올라가는데, 이 사건은 목사가 피고로서 노회가 1심이요, 대회가 2심이요, 총회가 3심으로 최종심의회가 되는데, 지금은 대회를 시행하지 않고 있으니, 노회판결이 모두 총회에 상소되는데, 목사는 노회가 1심 총회가 2심이니 절름발이 3심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또 332문답은 목사를 어떻게 다스리느냐? 는 물음에 “목사는 당회 관하에 있지 아니하며, 대회나 총회의 원치리권 하에 있지도 아니하고, 오직 노회의 관할하에 있으니 목사의 자격과 신분 및 임지와 품행과 직무관리 등 모두 노회가 주관하며, 또한 목사가 피소되었으면 노회가 심리 판결해야 한다.(권 제4항 제19조)” 따라서 교인은 당회에서, 목사는 노회에서 재판하도록 규정되고, 이 규정은 그 치리회의 고유한 특권이기도 한데 어떻게 총회가 고소를 받아 심리의 대상으로 삼는가?이제 오류(誤謬)의 위력에 속고 있는 총회의 현실을 살핀다고 하면, 2010년 제95회 총회부터 2015년 제100회 총회까지 총회회의결의 및 요람에 나타난 대로 총회가 잘못 들어간 헌법의 규정대로 직접 고소를 접수한 건수는, 2010년 제95회 총회에 접수된 고소건 중 경기○○노회 김○○ 씨의 고소건, 증경총회장 한○○ 유○○ 및 서○○ 씨의 고소건, 중○○노회 강○○, 손○○ 씨 고소건 등 각하되거나 기각되었으나(2010년 제95회 총회회의결의 및 요람 pp.65~66), 재판국의 심리판결이 총회에 보고가 채택된 고소건은 중○○ 노회장 김○○ 씨가 위탁청원한 원○○ 씨 외 1인이 제기한 정○○ 씨 외 4인에 대한 고소 및 진정건이요(동 총회회의결의 및 요람 p.86), 2011년 제96회 총회에 접수된 고소건 중 절차 하자 및 서류미비로 반려된 건이 함○노회 중○교회 김○○ 씨의 함○노회의 중○교회 김○○ 씨 외 3인에 대한 고소건이요(동 총회회의결의 및 요람 p.62), 경○○○노회 김○○ 씨의 고소건은 교단을 탈퇴하였으므로 각하되었으며(동 p.85), 2012년 제97회 총회에 접수된 고소건 서울○노회 이○○ 씨의 서울○노 회 석○○ 씨 외 6인에 대한 고소건이 절차미비로 각하되고(동 총회회의결의 및 요람 p.66), 서○노회 박○○ 씨 외 2인의 서○○노회 이○○ 씨에 대한 고소건은 재판국에서 심리 판결하여 보고가 총회에서 채택되었으며(동 총회회의결의 및 요람 p.88), 2013년 제98회 총회에 접수된 고소건은 황○노회 박○○ 씨의 황○노회 김○○ 씨 외 9인에 대한 고소건, 동 씨의 한○○ 씨 외 1인에 대한 고소건, 동 씨의 김○○ 씨 외 1인에 대한 고소건이 접수되었으나 기각되고,(동 총회회의결의 및 요람 p.69), 동○○노회 충○교회 장승규 씨 외 3인의 동○○노회 김○○ 씨에 대한 고소건, 등은 재판국의 판결보고가 총회에서 채택되었으며, 2014년 제99회 총회에서 접수된 고소건은 수○노회 강○교회 박○○ 씨 외 4인에 대한 고소건과, 동○○노회 사○○교회 김○○ 씨 외 2인의 동○○노회 오○○ 씨에 대한 고소건(동 총회회의결의 및 요람 pp.69~70) 둥이 접수되었고, 2015년 제100회 총회에서 접수된 고소건은 수○노회 강○교회 박○○ 씨 외 2인의 수○노회 송○○ 씨 외 4인에 대한 고소건, 진○노회 황○○ 씨의 진주노회 권○○ 씨에 대한 고소건, 평○노회 조○○ 씨의 평○노회 이○○ 씨에 대한 고소건 평○노회 조○○ 씨의 평○노회 이○○, 신○○, 김○○, 이○○, 유○○, 박○○, 정○○, 윤○○, 박○○, 현○○, 이○○, 허○○, 황○○, 박○○ 씨 등12인에 대한 고소건 외에도, 충○노회 윤○○ 씨의 이○○ 씨 외 20인에 대한 고소건 (동 총회회의결의 및 요람 p.120) 등 6년 동안에 접수된 고소건이 도합 37건이니, 한 회기에 평균 6건이요, 총회재판국에서 심리 판결한 보고가 총회에서 채택된 건수만도 6건이니, 해마다 한 건 씩 총회가 고소를 직접 받아 심리 판결한 보고가 총회에서 채택되고 있는 상황이다.오류(誤謬) 착오의 위력인가? 준법정신의 발로인가? 1964년부터 헤아려 벌써 54년 동안이나 속아 적용되고 집행되고 있는데, 헌법 개정은 거듭하면서도 오류 규정은 왜 바로잡지 못하는가? 교단의 이른 바 법통(法統)들이여! 법통(法通)들이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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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1
  • 법에 의한 통치에 관한 소고-3
    국의 재산권 판결, 예외로 한다는 단서는 위헌규정복잡다단한 대법원 관계 판례에는 왜 눈을 감나? (승전) 《총회재판국 판결의 효능 관계》“권 제13장 제138조 총회재판국의 판결문은 총회에 보고하기 위한 것이며, 총회가 채용할 때까지 당사다 쌍방을 구속할 뿐이다. 다만 재산권에 관한 판결은 예외로 한다”.총회는 물론 상정된 안건을 직접 토의하여 처결하기도 하거니와, 회의법상 「위원회 심사의 원칙」에 따라 소위원회(혹은 종류별 소위원회격인 상비부)를 구성하여 전체회의에서 결의가 용이하도록 예비적이며 준비적인 심의를 맡기고, 그 결과를 보고하게 하여, 그 보고를 토대로 전체회의에서 다시 토의하여 가부를 결의하는 방도를 취하고 있다.총회재판국도 이처럼 예비적이며 준비적인 심의를 맡겨 전체회의에 보고하는 상비부(총회규칙 제3장 제9조 ⒁)중 하나이니, 맡겨진 사건에 대하여 처결하였으면 아직은 총회의 결의가 아니고 상비부인 재판국의 결의, 즉 준비적이며 예비적인 결의에 불과하니, 총회결의로서의 효능을 가질 수 없으나, 법은 “총회재판국 판결은 총회가 채용할 때까지 당사자 쌍방을 구속할 뿐이다”고 하였는데, 구속이란 총회에 감방도 없거니와, 감방에 가둔다는 뜻이 아니고, 현상을 그대로 묶어 둔다는 뜻이다.그리고 총회재판국이 보고하면 권 제13장 제141조의 규정대로 “총회는 재판국의 판결을 검사하여 채용하거나(잘 되었다고 그대로 받아 총회의 판결이 되게 하거나), 환부하거나(즉 판결한 총회재판국에 다시 재판하라고 돌려보내거나), 특별재판국을 설치하고 그 사건을 판결 보고하게 한다.” 그리고 제9장 제99조는 상소심의 처리절차 규정에서 “…상회는 하회 판결이 적합한 줄로 인정할 것이요 (즉 상소를 기각할 것이요), 상회는 하회 판결을 취소하든지, 변경하든지 하회로 갱심(更審)(다시 재판하게 하든지) 편의대로 할 것이요”라고 하였으니, 원심을 파기하고 환송하기도 한다.그런데 개정헌법은 총회재판국 보고에 대하여 총회가 어떻게 결정할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직은 총회의 결의가 아니고 상비부의 예비적이며 준비적인 처결에 불과한 재판국 판결을 가지고서) 개정헌법이 “총회재판국의 판결문은 총회에 보고하기 위한 것이며, (총회재판국 판결이 아니고 「판결문」으로 한 것도 어색하다) 총회가 채용할 때까지 당사자 쌍방을 구속할 뿐이다…”란 규정에 군더더기 이기는 해도 재판국 판결을 총회의 판결로 여기는 상황을 감안할 때에는 잘되었다고 해야 하겠는데, 거기에 덧붙이기를 “다만 재산권에 관한 판결은 예외로 한다”고 신설하였는데, 앞뒤가 맞지 아니한다.앞에서는 “총회재판국의 판결문은 총회에 보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 놓고, 뒤에서는 재산권에 관한 판결은 예외로 한다”고 하여 총회재판국의 재산권에 관한 판결은 총회에 보고하지도 아니한 채, 그냥 총회의 판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되게 하였으니 말이다.위원회 심사의 원칙에 대한 몰이해라고 해야 할까요? 총회재판국의 위상은 마치 총회이기나 한 것처럼 한껏 높였으나, 총회에 대해서는 일개 상비부인 것처럼 끌어 내렸으니, 총회 모독이요, 총회 농락이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우길 수가 있겠는가?교회재산에 대한 분규사건이 대법원에서 남긴 판례만 해도 1950년대에는 「교도들의 합유」 (대법원 1957. 12. 13. 선고 4290 민상 185 大民原 27집 p.766, 대법원 58. 8. 14. 선고 4289 민상 569 大民原 29집 p.215, 대법원 59. 8. 27.선고 4289 민상 436)라고 판결하더니, 1960년대에 와서는 「교도들의 총유」로 바뀌고 있다(대법원 1967. 11. 28. 선고 67다2202판결 大民原 121집 p.568, 대법원 67. 12. 18 선고합67다2202판결 大民原 122집 p.929, 대법원 68. 11. 19 선고 67다2125판결).합유의 전제는 합수적 조합이요, 총유의 전제는 비법인 사단이니, 대법원의 교회관이 발전되었다고 보아야 하겠는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재산을 「교인들의 총유」로 보는 입장은 계속되고 있거니와, 교단 분열에 따라 대법원은 한교단의 양분으로 보기 보다는 원교단과 원교단에서 이탈한 자들로 구성된 새교단으로 이렇게 둘이 된 것으로 보아 왔다(대법원 제4부 78. 10. 10.선고 78다716 판결, 대법원 제2부 73. 1. 16선고 72다2070 판결).그리고 이탈자들로 이루어진 교단에 교회재산과 함께 이속(移屬)하려고 하면 “…교인총회에서 전원일치의 의결을 좇아서만 이속(移屬)이 가능하되, 교회재산은 원소속 교단에 잉속(仍屬)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해 왔다. 결국 교회재산은 원소속 교단의 소유라는 뜻이었다.그후 1985년 이후에는 종래의 입장과는 달리 “분열 전 교회의 재산인 교회당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분열 당시 교인들 양측이 다 사용 수익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판결하고 있다.(대법원 1985. 2. 8. 선고 84다카730 판결, 대법원 88. 3. 22. 선고 86다카1197판결, 대법원 제3부 85. 2. 8.선고 84다카819판결, 대법원 85. 9. 10.선고 84다카1262판결, 대법원 제1부 89. 2. 28.선고 87다카3162판결) 그러면서 “…교회권징은 사법심사의 대상 밖에 있고, 그 효력과 집행은 교회 내부의 자율에 맡겨진 것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교회에 소속된 목사나 교인에 대한 관계에서 그러한 것이고, 그 소속을 달리하는 목사나 교인에게 대하여서까지 그 효력이 미친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 판결이니, 갈라진 두교회는 한 교회당 안에서 계속 싸울 수 있다는 상황에 이르게 되어 있었다.그러다가 2006년에 이르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전의 판례를 변경하여 “…소속교단에서의 탈퇴 내지 소속교단의 변경은 사단법인 정관 변경에 준하여 의결권을 가진 교인 ⅔이상의 찬에 의한 결의를 필요로 한다… 의결권을 가진 교인 ⅔에 이르지 못한다면 종전교회의 동일성은 여전히 종전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상태로서 유지된다. 따라서 교단변경 결의에 찬성하고 나아가 종전교회를 집단적으로 탈퇴하거나, 다른 교단에서 가입한 교인들은 교인으로서의 지위와 더불어 종전교회 재산에 대한 권리를 상실하였다고 볼 수 밖에 없다…”(2006. 4. 20. 선고 2004다37775 전원합의체 판결)고 이처럼 복잡다단한데, 법규 외의 예외규정을 신설하여 총회재판국의 재산관계 판결은 총회의 판결이 되게 하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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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7
  • 법에 의한 통치에 관한 소고 ②
    국(부)원 3분의1씩 개선돼도, 국(부)은 상설(비)되는 연조제판결의 최소 변경을 구하는 것이 상소인데, 부전이 판결인가? (승전) 《총회 상설재판국 곡해》국가는 국과 권력의 작용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어 각각 별개의 기관에 이것을 분담시켜 상호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3권분립 체제이지만, 치리회(당회, 노회, 대회, 총회) 회의정치 체제인 장로회정치는 동일한 치리회의 구성요원인 목사와 장로가 행정회로 회집하여 행정권을 행사하고, 재판회로 회집하여 권징권을 행사하는 양권일체 체제이다.다만 당회는 재판국이 없고 재판회에서 직접 재판하지만, 노회, 대회, 총회는 재판회로 회집하여 노회, 대회, 총회 당석에서 직접 재판하거나, 재판국을 구성하여 재판사건 처결을 위탁하고, 처결결과를 본회의에 보고하여 최종적으로 처결하는 방도를 취하게도 한다(권 제13장 제117조, 제124조 2, 제134조 2.).그런데 노회는 재판사건이 있을 때에만 재판국을 구성하였다가, 사건이 종결되면 재판국이 더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 소멸되니,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사건에 임했을 시에만 있는 재판국이니 임시재판국이요, 대회, 총회재판국은 일반 상비부 중 하나로(총회규칙 제3장 제8조 ⒁), 연조제(年組制)로 조직하게 되니, 해마다 국원이 3분의 1씩 개선되기는 해도 국은 항상 그대로 있게 되니, 항상 설치하는 재판국이라고 해서 상설재판국이라고 불리게 된다.그런데 상설재판국이면 세상 나라의 사법부처럼 어느 때든지 항상 재판할 수 있어야 하겠는데, 법이 총회재판국은 총회가 결의해서 “위탁받은 사건만 심리 판결한다” (권 제13장 제134 조 2)면서도, 총회는 해마다 9월에 한번 모였다가 파회하니, 총회 위탁 대신에 헌의부 실행위원회 위탁으로 대체하도록 총회규칙을 바꾸어, 총회결의는 커녕 총회가 회집되기도 전에, 총회 모르게 총회재판국이 재판할 수 있게 하더니, 2011년 제96회 총회에서는 제94회 총회 이전대로 환원의 건은 규칙은 수정하고 헌법대로 하기로 가결하다” (2011년 제96회 총회회의결의 및 요람 p.65)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400만원을 납부하면 여전히 총회 모르게 총회재판국 이 재판하고 있으니 이것이 웬 일인가?《부전지(附箋紙) 상소》권 제9장 제94조 “3. 상소인이 소속된 하회가 상소인의 상소통지서 접수를 거부하면 부전(附箋)하여 상회에 상소할 수 있다.”고 개정헌법이 신설하였는데, 부전이란 정식문건이 아니고, 문건에 주(註)를 붙이는 작은 쪽지를 가리킴이니, 교회 행정에서 주로 쓰이는 것은 지교회가 노회에 상정할 모든 안건을 직접 노회에 제출하지 못하고, “…지교회 및 미조직교회를 시찰하고 모든 일을 협의하여 노회의 치리하는 것을 보조하는…” (정 제10장 제6조 9) 시찰위원회의 협의를 거쳐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런데 간혹 협의 중 경유하기에 부적당하게 여겨지는 문건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적은 작은 쪽지를 붙여(즉 부전하여) 반려하게 되고, 부전도 없이 그냥 반려하면 당사자가 시찰위원회에서 반려된 사실을 적은 쪽지를 직접 붙여 노회서기에게 제출하면, 노회서기는 시찰위원회를 거친 사실을 확인하고 문서를 접수하게 된다.교회행정에 있어서 부전을 붙이는 경우가 또 있을는지 모르나, 필수적인 경우는 시찰 경유관계에 국한되는 것 같다. 그런데 개정헌법에서 “상소인이 소속된 하회가 상소인의 상소통지서 접수를 거부하면 부전하여 상회에 상소할 수 있다”고 신설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상소통지서와 상소이유 설명서(권 제9장 제96조) (개정헌법에 “상소통지서 접수를 거부하면…”에 상소이유설명서가 빠진 것도 오류이다) 접수를 판결하회서기가 접수를 거부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문서접수를 거부하면 등기 배달증명 우편으로, 혹은 내용증명 우편으로 발송하면, 발송일에 우체국 소인(消印)이 찍힐 것이요, 그렇게 되면 그 소인이 ‘하회판결 후 10일 이내(권 제9장 제85조)인 것이 확인되면 상회가 사건을 처결하게 되겠는데, (즉 “상소가 제기되면 하회는 그 사건에 관한 기록과 일체서류를 상회에 올려 보낼 것이니, 올려 보내지 아니하면 상회는 하회를 책하고, 올려보낼 때까지 하회의 결정을 정지하게 한다” (권 제9장 제101조)가 될 터인데, 부전상소가 웬 일인가? 법은 “…판결을 취소하거나 변경하고자 하면 상소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고… (권제9장 제94조)라고 하였는데, 부전지가 판결인가?그리고 우체국 소인에 대해서 전국 노회들이 임시노회를 소집할 때에 “…개회 10일선기하여 관하 각 회원에게 통지하게”되니(정 제10장 제9조), 소집통지서를 우송(郵送)하였는데, 10일 선기되는 날에 우체국 소인이 찍혔으면 정당한 소집으로 인정해 왔으니, 교회행정상으로는 배달일자 기준이 아니고, 발송일자 기준이었으니, (즉 배달주의가 아니고, 발신주의를 취해왔고) 우체국 소인을 일자에 대한 증거로 삼아 왔다.당회판결에 대하여 원, 피고는 노희에 상소할 수 있고, 노회가 상소통지서 등 접수를 거부하면 부전지를 붙여 상회에 상소하면 총회가 당회판결을 취소하거나 변경하게 되겠는데, 이것이 옳겠는가? 법은 「치리회의 성질과 관할 규정」(정 제8장 제2조 1)에서 “…순서에 따라 상소함이 가하며…”라고 하였으니, 당회의 판결은 노회에 상소하고, 노회에 판결은 대회 혹은 총회에 상소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당회판결을 노회가 받아 처결하지 아니하고 총회가 받아 처결하도록 하는가? 장로회정치는 “…당회는 치리장로와 목사인 강도장로의 두 반으로 조직되어 지교회 주관하고, 그 상회로서 노회, 대회 및 총회 이같이 3심제의 치리회가 있다(정치총론 5)…”고 하였는데, 대회제를 시행하지 아니하므로 목사는 노회가 1심, 총회가 2심으로 그치게 되는데, 이제는 부전지 상소 때문에 일반신도도 당회가 1심, 총회가 2심으로 그치게 되고 목사의 고소를 노회가 접수하지 아니하여 부전지를 붙여 총회에 상소하면 목사는 총회 단심(單審)으로 그치게 되겠는데, 왜 이렇게 3심제도인 장로회정치 체제마저 뒤죽박죽을 만드는가? 이렇게 되게 하려고 「부전지 상소」규정을 신설 하였는가? 아니면 해 놓고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보아야 하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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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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