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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⑪ 원주민 선교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한국교회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고 있다. 인구 비율이나 교세로 보면 우리가 더 많이 파송했다는 계산이 나온다.오대양 육대주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고 있다. 선교사들의 헌신과 수고를 격려하고 위로한다.문제의 탐색해외 선교라고 하면 대형교회나 도시 교회가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농어촌 교회는 자체의 존립도 어려운 여건이기에 해외 선교란 ‘꿈같은 이야기’로 치부된다.이러한 인식을 깨고 전남 무안의 시골 교회가 해외 선교, 그것도 원주민 선교의 선봉장이 되고 여러 교회들이 이 사역에 동참하는 아름다운 소식이 있다. 이들은 “농어촌 교회도 복음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 사역에 기쁨으로 동참하고 있다.사례의 탐구이 시리즈를 위해 먼 길을 찾아갔다. 목포까지 KTX로, 거기서 무안까지 승용차로 달려 예드랑그리스도교회 서규석 목사를 만났다.교회 목회와 대안학교를 운영하면서 농어촌 교회에 선교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서 목사의 이력이 이색적이다. 한국구화학교 교사로 6년간 일했고, 5년간 극단 ‘선교무대’를 이끈 사람이다.김남식(이하 김): 남들이 보면 전원생활을 한다고 할지 모르나 실제로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지나온 줄 안다. 이곳에 온 계기가 무엇인가?서규석(이하 서): 신학을 마치고 문화선교를 위해 극단 ‘선교무대’를 만들어 5년 동안 32회 공연하였다. 내가 제작·연출한 ‘새역사의 창조’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 사역 그리고 부활까지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교회가 없는 전남 무안으로 왔다. 그때가 1975년이니 벌써 43년이 되었다. 그러니 무안 사람이 되었다.김: 교회 개척을 어떻게 하였나?서: 연고지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예배를 드렸다. 또 내가 소속한 교단이 그리스도교회협의회여서 이곳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였다. 비닐하우스를 졸업하고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김: 연극 연출 겸 제작자에서 농촌교회 목사로 놀라운 변신을 하였는데 목회의 중심적 꿈이 무엇이었는가?서: 교회가 세계 선교의 중심지가 되게 하자고 꿈꾸었다. ‘땅끝까지 증인되라’ 하신 말씀대로 선교 모델 교회가 되고 싶었다. 또 농촌교회도 해외선교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불어넣고 함께 힘을 모았다.김: 그러니 시작부터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를 지향했다. 그때는 선교적 교회라는 이론도 없는 시대인데 선견적 이해가 있었는가 보다. 어려움이 많았을 줄 아는데 그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서: 교회 개척 10년이 되는 1984년부터 선교사 훈련을 시작하고, 1988년 해외선교 시작, 1989년에 선교사 파송을 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나아갔다.김: 선교학에서 신앙선교(Faith Mission)란 개념이 있다. 전략이나 방법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는 사역이다. 이것을 어떻게 전개했는가?서: 선교학의 이론이나 무슨 전략도 알지 못하고 ‘기도하고 선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세 단계로 발전한 것 같다. 첫 단계는 지역 선교로 지역 전도에 집중하여 교회 성장을 도모하였다. 다음 단계로 해외 선교였는데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를 선교지로 삼았다. 셋째 단계로 교육선교였다. 무안에 대안학교를 세우고 선교지마다 현지인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을 세웠다.김: 필리핀 선교부터 묻겠다. 그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이 되고도 남겠지만 필리핀 사역을 말해달라.서: 우리는 선교사의 직접 파송보다 현지인을 육성하여 자신의 동족에게 전도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세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산지족(山地族)을 위해 부족선교신학원을 세워 현지인 사역자를 양성하고 있다. 평야지대 사역을 위해 방가신학교라는 국제선교신학교를 세웠다. 주목할 만한 것은 26년 전에 민다나오에 고아원을 설립했는데 지금은 필리핀 최고의 고아원이 되어 있다. 필리핀 일반 고아원들은 교사 학생 비율이 1:25인데 우리는 1:7로서 가정형태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아이들을 대학까지 교육시키고, 현지인들이 설립한 교회가 350개다. 목회자 재교육을 위해 한국에 초청하여 3개월 교육 후 재파송한다. 이 사역에 20여 교회가 동역하고 있다.김: 귀한 사역을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떤가?서: 슬라웨시에서 사역한다. 이들은 한글을 국어로 채택한 부족이다. 이곳에 15만 평의 땅을 구입하여 〈예수마을〉을 만들었다. 법인 이름이 ‘예뜨랑’인데 한국에서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한다’의 약자로 만들었는데 인도네시아어로 ‘예뜨랑’은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란 뜻이란다. 이곳에서 제자훈련원, 농촌지도자훈련원, 고아원, 선교기념관을 세우려고 하고 현지인 스탭들이 사역하고 있다.김: 인도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서: 인도도 세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이팔에 샬롬신학교를 세웠고, 나가랜드에 예뜨랑 아카데미를 세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세우려고 단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또 시킴이라방다에도 아카데미를 세워 교육선교를 하고 있다. 시킴은 시킴불교본부가 있고 세계에서 제일 큰 부처가 있다. 현지인들이 학교를 세워주기를 요청하고 있다.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귀한 사역을 하고 있다. 선교의 표어가 무엇인가?서: 우리는 “주인(현지인)으로 주인되게 하라”는 것을 표어로 삼고 있다.기본에의 회귀농촌교회들이 하나님만 의지하여 ‘신앙선교’(Faith Mission)를 할 때 이런 결실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도하고 전파하니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적절하게 채워주신다는 참으로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전략이다.해외 선교는 도시 대형교회만의 사역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역이다. 연극인에서 목회자, 그것도 농촌에서 43년간 사역한 한 목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KTX안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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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31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⑩ 축도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예배는 ‘축도’로 예배를 마친다. 이것은 우리의 예배생활에서 일상화된 표현이다. 그러나 ‘성도’(평신도가 아님) 들이 혼란할 때가 있다. 축도를 할때, 어떤 교회에서는 ‘있을지어다’라고 하고, 또 어떤 교회에서는 ‘축원하옵나이다’라고 한다.모두들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교단마다 그들의 연구에 따라 결정된 것인 줄 알지만 어느 것이 맞느냐라는 의문을 제가할 수도 있다.문제의 탐색옛날에는 사용하는 찬송가에 따라 소속 교단을 분간할 수 있었다. ‘새찬송가’를 사용하면 장로교 합동이나 고신측으로 이해하였는데, 지금은 찬송가가 하나가 되었으니 축도로 구분할 지경이다.고린도후서 13:13대로 ‘있을지어다’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결정한 교단은 합동, 고신, 개혁, 대신 등 이른바 보수교단들이다. 그러니 축도의 형태로 교단의 색깔을 구분하는 세상이 되었다.사례의 탐구옳고 틀리고를 따지기 보다 어느 것이 성경적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있는 목포재건교회 정낙준 목사에게서 들어본다.김남식(이하 김): 교회예배에서 사용하고 있는 축도의 근거가 성경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정낙준(이하 정): 목사들이 축도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경구절은 두 가지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5-26). “주 여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고후 13:13).이 두 가지 축도(강복선언) 가운데 고린도후서 13장을 많이 사용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인 마틴 루터나 존 칼빈은 로마 가톨릭이 사용해온 바울의 축도보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아론의 축도(민 6:25-26)를 더 많이 사용했다.김: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축도가 기도인가? 복의 선언인가? 라는 문제이다. 여기에 따라 축도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는데 그 근거를 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정: 축도(benediction)의 문자적인 의미는 ‘좋은 것을 말함’이라는 뜻이다. 이 말의 핵심은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만일 축도를 ‘복의 선언’이 아닌 기도로 받아들이면 ‘축원하옵나이다’. ‘~을 원합니다’로 하게 된다. 하지만 제사장의 축도(민 6:24-25)를 보면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백성에게 사용한 말씀에서 ‘~을 원하노라’를 3번 사용했다. 이는 하나님이 백성에게 내려주시는 복을 제사장이 선언하는 형식으로 나타났다.고린도후서 3장 13절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씀도 사도적인 축도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로 끝나지만, 이 축복의 내용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상대에게 명령하는 내용을 장엄한 태도로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두 성경구절은 ‘마땅히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는 선포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주의 신학에서도 축도를 복의 선언임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축도를 말씀에 대한 최종적인 봉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축도를 기도가 아닌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의 한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김: 그러면 우리 교회들이 가장 성경적인 축도를 시행하여야 하는 신학자들의 바른 해석과 각 교단에서 바른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었으면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정: 축도는 목사가 하나님께 성도의 복을 빌어주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복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선포이고 선언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는 축도를 할 때 복을 비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이루어 질 것에 대해 선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3장 13절로 축도할 때 종결어미를 ‘축원하옵나이다’ ,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등 기도형식으로 표현하기보다 복의 선언인 ‘있을지어다’로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김: 우리가 ‘축도’라고 하면 그 글자에 ‘기도’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에 ‘복을 비는 기도’로 이해하기 쉽다. 성경적 원리에 따른 바른 표현이 필요한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겠는가?정: 축도는 한자로 ‘祝禱’이다. 축복기도의 불임말로 사용한다. 한자로 보면 축도는 복을 빌어주는 기도이다. 복을 빌어 주는 기도로 사용할 때는 축복(祝禱)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럼 문법상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축도는 기도가 아니라 ‘복의 선언’, ‘복의 선포’라고 했기 때문에 축도의 종결을 ‘~있을지어다’로 해야 하는 것이다.축도에 대한 문자적 의미와 본질적 의미가 서로 상충되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들마다 주보에 표기할 때는 ‘복을 비는 기도’의 의미를 가진 축도로 표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러한 용어 개념을 목사 개인이 정리해서 사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총회적 차원에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총회적으로 개념을 정리해주면 목사들이 ‘복의 선언’이나 ‘복의 선포’로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기본에의 회귀이 문제는 교단의 문제인 동시에 목사 개인의 신학적 또는 신앙적 자세와 직결되어 있다. 한국교회에서 축도의 성격이 ‘복의 선언’인지 ‘기도’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강단의 혼돈이 우리 신앙생활의 혼돈으로 이어질까 염려된다.기독교TV 방송들을 통해 많은 교회의 예배들이 방영되고 있다. 보수교단에 속한 어느 목사는 설교 때에 ‘새번역’ 성경을 사용하거나 다른 번역본을 텍스트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본문을 비교 강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옳은 것일까? 인기를 위한 ‘튀는 행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예배 용어의 정비가 필요하다. 예배를 시작할 때 ‘묵도’로 시작하고 ‘축도’로 마치는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그래서 주보에 ‘복을 비는 기도’라는 의미를 가진 ‘축도’라는 표현을 하지 말고 ‘복의 선언’ 또는 ‘복의 선포’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예배학자들과 목회자들의 깊은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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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획
    2018-05-18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⑨ 성경적 설교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기독교는 설교를 통해 일어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설교는 예배의 핵심이면서 설교자들에게는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문제의 탐색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에서 회쳐지는 설교가 성경적이냐?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하기에 주저되는 것이 사실이다.오늘의 강단에서 전파되는 설교들 중에는 기복주의적 경향이 많아 모든 것이 축복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설교의 영향으로 성도들은 ‘복받기 위해’ 예수 믿는 기복주의자들이 되었다.설교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청중들의 기호에 맞추는 설교를 하게 되고 그 결과 기독교의 본질이 훼손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분위기에 대항하여 강해설교를 시도하는 목사들이 생겨났고 그 파급 효과가 컸다.이른바 ‘강해설교가’라고 자타가 선전하는 L목사, P목사 같은 이들은 외국의 강해 설교집을 번역 모방하여 설교를 하여 인기를 모았다. 이들은 그 설교들을 책으로 계속 출판하여 강해설교 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것이 한국교회 강단의 풍토였다.사례의 탐구목회현장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이것을 40년간 강단에서 강해설교를 한 목사가 있다. 외국 유학을 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아니고 성경을 탐구하여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 단어 빠짐없이 모두 강해하여〈신구약 강해전집 100권〉을 발간한 목사이다.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구 성덕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정년 은퇴하였고 지금은 대신대학교 목회훈련원장으로 섬기고 있는 윤희주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김남식(이하 김): 한 평생 강해설교를 하여 많은 설교자의 귀감이 된 것에 감사드린다. 한국교회 설교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윤희주(이하 윤): 지방교회의 목회자로서 한평생을 보낸 사람으로 전체를 평가하기란 조심스러우나 내가 보기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代言者)로서의 자세보다 자신의 신앙적 견해나 삶의 철학을 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성경의 의도를 전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본다.김: 어떤 집회에서 설교자가 성경 본문을 읽었는데 설교가 마칠 때까지 본문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고 자기자과 축복 이야기로 가득한 것을 보았다. 신학교 강의시간에 이 이야기를 하면서 ‘왜 성경본문을 읽었을까?’라고 물으니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다. 나의 정답은 ‘예배 순서에 있기 때문이다’고 하여 한바탕 웃은 바가 있었다.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는 것이 설교자의 소명인데 하나님보다 자기를 내세우는 풍토가 되었다.김: 한 교회에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를 모두 설교하였는데 어떤 계기로 이런 일을 하였는가?윤: 목회 초년생 시절에 설교 때마다 나의 부족을 절감하였다. 장기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앙이나 삶의 철학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심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서 시작하였다. 나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고 학교도 기독교계 학교를 다녔다. 교회의 분쟁들을 볼 때마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이런 분쟁들은 설교자가 성경이 아닌 자기 생각대로 전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회 전기간 성경을 권별로 강해하였다.김: 평생 강해설교를 하면서 어려움이 없었는가?윤: 내가 강해설교를 시작한 것은 1967년부터이다. 그 당시에는 성경연구를 위한 자료가 너무 부족하였다. 그리고 권별 강해를 계속하다보니 그 책에 대한 자료를 찾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특히 사람 이름만 계속 나오는 부분을 강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본보기로 보여주신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고 감격 속에서 말씀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다.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이런 강해설교, 즉 성경적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윤: 급격한 변화나 숫적 부흥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나타나지 않았다. 3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신앙과 인격과 삶이 변하는 것이 보여지기 시작하였다. 질적 성장이 이루어지자 서서히 양적 성장도 동반하게 되었다. 그 결과 건전한 부흥과 견고한 신앙인으로 양육하게 되었다.김: 한 평생 강해설교를 실천한 설교자로서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보는가?윤: 본문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에스라 7장 10절에 나타난 에스라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성도들에게 가르치기를 결심했다고 하였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본받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나 자신과 가족이 먼저 큰 은혜를 체험하였다. 그후 교회가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김: 남들이 하지 못한 큰 일을 하였다. 〈신구약 강해전집 100권〉을 출간하였는데 그 소감은 어떠한가?윤: 처음에는 출판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친구들의 권유로 1986년에 첫 권을 출간하여 2005년에 마쳤다. 그러니 20년이 걸렸다. 의외로 좋은 반응을 받았고 독자들로부터 격려도 많았다. 그러니 ‘한국교회에 말씀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구나’라고 느꼈다.기본에의 회귀한 목회자의 꾸준한 성경적 설교는 설교자와 성도들 그리고 교회를 변화시킴을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설교는 강해설교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에스라의 방법’이어야 한다. 주석이나 남의 설교를 표절 또는 짜깁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연구하는 가운데 바른 설교를 해야 한다. 즉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우리 주변에 번영, 축복이 넘쳐나고 자기 지식이나 경험이 난무한다. 성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에 감염되어 ‘축복’이 아니면 설교가 아닌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성경적 설교로 돌아가자. 한평생 하여도 넘치는 자료들이 있지 않는가? 에스라의 자세를 한국교회에서 이루어 나가자.(자료 문의 010-7795-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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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0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⑧ ‘평신도’라는 용어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우리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사용하고 있는 ‘평신도’라는 용어가 과연 성경적이며 우리들이 그대로 사용해도 좋은 용어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문제의 탐색만인제사장론을 주창한 기독교회가 계급주의적 사고와 표현들을 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통용화 되고 있는 ‘평신도’라는 단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어느 목사가 ‘평신도를 깨운다’는 책을 내고 제자훈련을 시작하여 폭발적 호응을 받았다. 그 여파는 아니어도 이 용어가 한국교회의 계급주의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평신도’라는 용어는 성직자가 아닌 일반교인을 의미하는데 그러면 성직자는 ‘고(등)신도’나 ‘특(별)신도’인가? 그런데 근래에 와서 계급이 세분화 되어 ‘중직자’라는 단어가 생겼다. 목사는 성직자, 장로·안수집사·권사 등은 중직자, 서리집사와 일반 교인들은 평신도라는 3계급이 된 것이다. 앞으로 이것이 더 세분화될까 염려된다. 장교도 위관, 영관, 장군으로 나누어지듯이 성직자도 이렇게 나누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까?사례의 탐구의식있는 목사들 가운데 이런 용어의 사용을 바꾸자고 하는 이들이 많다. 그 중 부산 제2영도교회 신인범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신 목사는 개혁신학을 파수하고 실천하는 현장사역자이다.김남식(이하 김): 한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교회 용어 중에 성경적이 아닌 것이 많다. 그 중 하나가 ‘평신도’라는 용어이다. 이 어휘의 유래가 무엇인가?신인범(이하 신): ‘평신도’라는 어휘의 유래로 영어 단어 ‘Laity’는 ‘평신도’를 뜻하는 말인데, 헬라어인 라이코스(laikos)로 라오스(laos)에서 파생된 말이다. 즉 ‘일반백성’을 의미한다.김: 교회사적 측면에서 이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가?신: ‘평신도’라는 말은 주후 2세기 경 클레멘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때 처음으로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과 구별되고 직분 없는 자들을 ‘평신도’로 불렀다고 한다. 그 이후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성직자와 평신도’의 혼인에 대하여 언급하는 부분에서 사제와 대조시켜 ‘평신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 로마 가톨릭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김춘근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평신도 제도는 계급구조가 분명한 천주교에서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그 직위를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성직자 그리고 평신도로 나눈다. 또한 1950년대 가톨릭 신학자 핸드릭 그래머, 반 룰러, 이반 콩가르가 평신도 신학을 주창해 ‘평신도 개념’을 고착화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김: 그러면 ‘평신도’라는 용어가 성경에 나와 있는가?신: 평신도란 용어는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다. ‘평신도’의 어원인 라오스(laos)는 일반교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의미로 ‘백성 전부 혹은 교회공동체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라이코스’ 혹은 ‘라오스’라는 말은 사도행전 4장 10절에서 처음에는 이방인과 대조되는 구약백성으로, 그 후에는 사도행전 15장 14절에서 예수를 믿는 이방인을 포함한 새 이스라엘, 즉 신약교회를 가리키는데 사용됐다. 그렇기 때문에 ‘평신도’ 용어는 성경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김: 기독교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이 용어가 주는 문제점은 무엇인가?신: 교회를 계급으로 전제해 ‘목회자’와 ‘평신도’라는 개념으로 사용됐다. 교회는 직분이 있을 뿐이지, 상하계급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공동체의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섬기는 한 지체, 한 형제 자매이다. 주안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목회자’와 ‘평신도’라는 이분법으로 교회공동체의 조직을 구분하는 것은 교회의 참모습을 훼손하는 것이다.김: 그러면 성경에서 ‘평신도’라는 용어 대신 다른 용어를 사용하였는가?신: ‘믿음으로 의롭게 된 모든 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성도’(61회)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마 27:52).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행 9:41). 이외에도 수많은 성경에서 ‘성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을 지칭할 때는 ‘평신도’보다는 ‘성도’라는 용어가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김: 우리는 사제와 신도로 구분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잔재에서 벗어나 개혁자들이 주장한 만인제사장설을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를 계급화 하고 있는데,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신: 모든 성도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사제로서의 중재자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모두가 만인제사장(벧전 2:9)이 되기 때문이다. 만인제사장설에 근거해 볼 때에 기능상으로는 교역자와 성도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계급상의 구분이 아니기에 굳이 ‘평신도 용어를 사용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김: 용어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우리의 사상을 표출한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여야 할까?신: ‘평신도’란 말 자체는 성직자라는 개념과 구분을 지으려는 의도에서 생긴 말이고, 또한 구교의 잔재이고, 권위의 산물로 변질된 용어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평신도’ 대신에 ‘성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성경적이지 않을까?기본에의 복귀언어는 사상의 표현이다. 교회를 계급주의의 틀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하고, 이것이 더 세분화되어 가는 우리의 현실에서 ‘성경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중 성경적이 아닌 것을 고쳐야 한다.‘평신도’라는 용어를 ‘성도’로 바꾸어 사용하자. 이것은 성경적 신앙을 추구하는 기본이다. 교회는 계급이 아니라 직분이 있을 뿐이다. ‘성도’들은 각자의 직분에 충성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자.
    • 해설/기획
    • 특별기획
    2018-04-25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⑥ 해외선교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한국교회의 해외선교는 세계가 놀랄 정도이다. 2017년말 현재 파송선교사가 3만 명을 육박할 정도이다. 여기에 등록되지 않는 자비량 선교사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이다.많은 한국교회들이 선교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직접 파송하지 못하면 협력선교를 하고 있고, 평신도들의 단기선교도 서서히 정착되고 있다.문제의 탐색선교사역에는 헌신, 정책, 지원 등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단순한 열심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선교사 후보생을 선발하고 훈련해야 하며, 교단이나 선교본부의 선교정책이 수립되고, 여기에 따라 지교회 또는 교인들의 물심양면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개교회의 차원에서 선교사역을 묵묵히 실천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헌신이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를 바랄뿐이다.사례의 탐구선교사역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한 사례를 살핀다. 소속 교단의 특성상 선교사 파송은 선교회 차원에서 하지만 현지인을 위한 선교사역을 하는 순복음강남교회 최명우 목사를 만났다.김남식(이하 김): 대형교회들이 자기 교회 이름을 건 파송선교를 하는데 강남교회에서는 현지인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어 감사하다. 해외선교사역의 의미를 어디에 두는가?최명우(이하 최): 선교란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축복이다. 선교는 교파나 교회확장이 아니라 복음선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 건설과 확장에 그 목표를 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며 우리가 받은 축복을 나누는 헌신의 사역을 하고자 한다.김: 여러 분야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데 그 특성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최: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선교사역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선교사 파송은 선교회에서 일괄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첫째는 의료선교이다. 지금까지 7년째 이 사역을 하고 있는데 네팔, 인도 벵갈 지역, 필리핀, 캄보디아 등지에서 사역하였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가장 정성 쏟는 사역이다.둘째는 해외 성회이다. 교단의 특성상 우리는 성회를 소중히 여긴다.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등지에서 성회를 인도하고 현지 목회자들을 재교육하고, 지교회를 설립한다. 셋째는 국내 외국인 사역이다. 우리 교회가 시내 도심지에 있기 때문에 다민족을 대상으로 한 사역을 한다. 외국어 예배를 드리는데 현재 영어, 중국어, 일본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또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주일학교(English Sunday School)을 개설하여 외국인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김: 의료선교가 핵심이라고 하였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역하고 있는가?최: 우리 교회는 7년째 의료선교팀을 파송하고 있는데 매년 4월에 간다. 참가인원은 약 40명 정도인데 의사, 약사, 간호사, 한의사 등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병원에서 휴가를 내고 이 사역에 헌신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여기에 미용선교팀이 동행하여 현지인들의 머리 손질, 지압 등을 한다. 또 어린이 사역팀이 함께 가서 어린이 주일학교를 개설하여 가르친다.김: 이들의 경비는 어떻게 감당하는가?최: 현지 체류비는 교회가 지원하고 여비와 기타 경비는 본인 자비량이다. 의사나 약사, 간호사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재능을 기부하는 자세이다. 수많은 의료장비를 싣고 가고 열악한 현지 여건 속에서 섬김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볼 때 무어라고 감사해야 좋을지 알 수 없다. 또 현지에서 빈민가 선교를 실천하는데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한다.김: 올해의 사역 계획은 어떠한가?최: 올해는 작년에 갔던 인도 벵갈룰러 지역으로 간다. 작년에 이 지역에서 사역하였더니 그 인근 지역에서 자기네 지역에도 와 달라는 요청이 여러 곳에서 있어서 앞으로 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섬기려고 한다. 감사한 것은 작년에 이 지역에 지교회를 세워 지원하고 있기에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올해는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40여명이 현지에서 섬기게 된다.김: 청년들의 단기선교도 활기있게 실천되고 있는 줄 아는데 이들을 어떻게 훈련하는가?최: 교회 청년부를 중심으로 매년 10개의 단기 선교팀이 선교현장에 투입된다. 이것은 복음선교와 선교사 후보자 예비훈련이라는 차원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의료선교를 위해 교인들의 기도 후원과 각종 물질 지원은 선교사역에 큰 힘이 되고 있다.김: 앞으로 복음선교의 방향을 어떻게 계획하는가?최: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으나 우리는 간단한 원리를 택한다. 예수님의 삼중 사역을 본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성회), 병든 자를 고치고(의료선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주일학교). 부족하지만 성경적 원리를 적용하려고 하며, 현지 선교사들을 지원하려 한다.기본에의 복귀선교의 의미가 변질되어 가는 세태이다. 목사와 장로 또는 그리스도인들이 해외에 나간다고 다 선교가 아니다.우리는 선교와 관광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병든 자를 치료하는 진정한 사역에의 복귀가 필요하다.우리의 삶이 복음적이어야 하고 우리 교회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로 변하여야 한다. 이것은 물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헌신과 열정으로 되어져야 한다.문제 많은 한국교회가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선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른바 ‘선교사업가’도 있고 ‘선교모금가’도 있다. 선교비를 번다고 국내에서 까페를 경영하는 선교사(P.)도 있다.우리는 이들을 보지말고 이름없이 빛도 없이 선교현장에서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적은 정성이라도 모아 지원해야 한다.선교사역은 한국교회의 축복이요 희망이다. 해외여행이 아닌 선교, 관광이 아닌 진정한 선교가 되어지도록 우리 모두 모든 족속을 제자삼기위해 땅 끝까지 가자(마 28: 18-20, 행 1:8).
    • 해설/기획
    • 특별기획
    2018-03-29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⑤ 예배의 개혁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교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예배의 진정한 모습을 찾는 ‘예배의 개혁’이 필요하다.문제의 탐색현대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의 변질을 염려하고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기보다 인간들의 이벤트가 되었고 심지어는 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하기에는 많은 문제들이 노출되고 있다. 사람들을 향한 경배와 축하의 시간이 되는 모습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사례의 탐구예배의 개혁과 회복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그 중 김남준 목사를 만나 본다. 그는 안양의 평촌이라는 지역에서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이다. 한때는 신학대학의 교수로 전념하며 살았으나 잃어버린 양에 대한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품고, 1993년 지금의 열린교회를 7명의 성도들과 함께 시작하였다. 그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은 그를 5천여 편이 넘는 설교를 한 설교자로, 또 어떤 사람은 교수로 기억하나 그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한 마리 어린 양이다.”김남식(이하 식): 바른 목회를 실천하며 예배의 개혁을 외치고 또 실천하는 김 목사가 본 현대 한국교회 예배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보는가?김남준(이하 준) : 한국교회를 위협하는 것은 이단이 아니라 세속주의이다. 현상적으로는 교회의 도덕적 수준이 저하되는 것을 말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인간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예배에도 그대로 나타난다.“예배가 좀 더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길고 지루해요”, “이런 예배는 시대에 뒤떨어져요” 라는 성도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예배개혁(?), “착하게 살면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주의 종을 잘 섬겨야 복 받습니다.”라는 설교단의 선포는 인간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로인해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만족이 그 목적이 되어 버렸다.식: 그러면 바른 예배란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준: 예배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방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더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는 분이 아니기에 인간이 피조물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그 일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자신의 추악함에 절망할 수 없고, 그 누구도 하나님의 존재적 초월성 앞에 엎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가 바른 예배이다. 하나님을 만날 때에야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돌보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을 수 있다. 그리고 받은 바 은혜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식: 바른 예배를 회복하는 방안이 무엇이라고 보는가?준: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먼저, 예배는 진리 안에서 드려져야 한다. 진리의 원천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당신을 알리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 시간에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퍼져야 한다. 또한 예배는 성령 안에서 드려져야 한다. 예배당에 울려퍼지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성령이 역사하실 때 그 말씀은 신자들의 마음 안에 들어와 능력 있게 역사하기 때문이다.식: 이러한 바른 예배가 우리 교회들에 확산되어야 하는데 그 길이 어떠한가?준: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위해서는 예배 시간에 장엄한 진리가 선포되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설교자는 성경 진리를 부지런히 탐구할 뿐만 아니라 그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은 죽고 진리는 살게 함으로써 온 몸으로 진리를 선포하여야 한다. 또한 성도 개개인은 예배 중에 울려퍼지는 말씀을 깨달으려 힘쓸 뿐 아니라 진리대로 살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진리를 따라 살 때 그 진리는 진정으로 그 사람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노력만으로 바른 예배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배에 하나님이 임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삶과 존재를 하나님이 받으심직하게 빚지만 여전히 불결한 죄인일 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그 예배에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사모하여야 한다.식: 예배의 소중함이 퇴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을 살려나가야 한다.준: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있다. 예배를 통해서 위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고, 또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그뿐 아니다. 내가 이 땅에 있는 이유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또 올바른 삶을 살아갈 힘도 예배를 통해서 얻는다.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은 성도들의 삶을 통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니, 예배는 신앙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그래서 교회의 가장 큰 영광은 교회의 재산이 아니다. 모이는 교인의 수도 아니다.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곳에 모였을 때 하나님이 잊지 않고 찾아오셔서 그들을 만나주시는 것, 이것이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교회의 영광이다. 그때 그 교회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한 교회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기본에의 회귀김남준 목사의 예배에의 애절한 열망을 들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것인가? 스스로 돌아보자.하나님 중심의 예배로 개혁될 때 한국교회가 살아난다. 우리 모두 마음모아 참예배를 드리는 기본에의 복귀를 실천하자.
    • 해설/기획
    • 특별기획
    2018-03-21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④ 복음전도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옛날 우리 교회의 벽에는 “엎드려 기도하고 일어나서 전도하자”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지금처럼 유행하는 전도훈련이나 강습도 없이 글자 그대로 기도하고 나가서 전도하는 소박한 방법이었다.문제의 탐색세월이 흘러 다양한 전도기법이 소개되고 있지만 교회성장은 뒷걸음치고 있고 교회를 향한 안티그룹의 비판은 도를 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가 ‘개독교’로 조롱받고 ‘목사’가 ‘독사’가 된 안타까운 현실이다.현대인들이 죄악으로 완악하여 전도가 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교회가 해이해져서 전도하지 않는 것인가? 아마 이 두 가지 모두가 정답일 것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교회들이 요란한 이벤트에 관심이 솔리고 나가서 현장전도를 하는 일에는 외면하였다.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역에 대해 우리의 각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전도를 등한시하는 풍조속에서 전도와 선교에 집중하는 교회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사례의 탐구전도가 되지 않는다고 힘들어 할 때 전도를 통해 교회성장을 도모하며, 또 해외선교를 도모하는 안양 동부교회 김동권 목사를 만났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은퇴하여 대접을 받을 나이에도 현장전도를 하고 있는 김 목사는 그 교회를 개척하여 36년째 시무하고 있다.김남식(이하 남): 김 목사를 볼 때마다 ‘전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느낌이 든다. 또 현장전도에 집중하고 있으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전도에 올인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김동권(이하 동) : 부족한 것이 많으나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믿고 노력하고 있다. 목회 초년시절에 전도의 한계를 절감하였다. 마음은 뻔한데 전도가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이른바 복음의 체험을 했다. 알고 있던 복음이 믿음의 고백되고 그러자 나의 메시지가 달라졌다. 사람이야 그대로 인데 메시지가 변화하니 전도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도행전적 교회 모델’을 이루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남: 그러면 전도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원시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것인가?동: 사람들마다 여러 가지 전도방법이 있겠으나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린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하는 방법은 삼 단계로 된다. 첫째, 현장의 이해이다. 이렇게 말하면 전도자나 전도지역에 대한 연구로 이해하기 쉬우나 나는 이것을 ‘복음의 이해와 체험’으로 본다. 전도자가 먼저 복음을 이해하고 이것을 체험해야 바른 전도를 할 수 있다.둘째, 현장 실천이다. 전도란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논리의 제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현장에서 전도 대상자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이 일에는 목회자가 선봉에 서야 한다. 교인들에게 전도하라고 하면서 목회자는 현장에 나가지 않는 것을 많이 본다. 이건 아니다. 목회자가 현장에서 앞장서야 한다.셋째, 현장의 확장이다. 전도라고 하면 자기 교회 부흥에 집중하는데 우리의 전도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초점을 둔다. 그러니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남: 그러면 구체적으로 전도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가? 김 목사가 몸으로 실천하는 전도방법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라.동: 이건 이론화라기보다 나의 경험을 정리한 것이다. 나의 설명을 김 박사가 욧점을 정리해 준 것을 토대로 말한다.첫째, 파상의 원리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원리이다. 복음이 예루살렘→온 유다→사마리아→땅끝까지 번져가는 파상의 원리가 전도에 적용되어야 한다. 목회자→부교역자→중직자→평신도로 퍼져 나간다. 우리는 이것을 실천하고 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전도의 열정이 핵심이다.둘째, 자비량 원리이다. 우리 교회는 매월 많은 헌신자가 전국 각지에 나가 전도를 실천한다. 3박4일간 전도하는데 일체 경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자비량 전도이다. 또 헌신하는 성도들이 교회 주변의 지역전도를 하고 있다.셋째, 결실의 원리이다. 우리는 전도할 때 ‘우리 교회에 오라’고 하지 않는다. 가까운 교회에 가기를 권한다. 우리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관심을 모운다.남: 나는 동부교회를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이다. 2015년에 전국 각지에서 많은 결신자를 얻은 것을 알고 있다. 김 목사의 지론은 전도사역에 목회자가 앞장 서야 한다고 하는데 좀 더 이야기해 보자.동: 목회자는 기도와 전도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집사를 세울 때 사도들의 사역을 나타낸 말이다. 나는 좀 무식하게 원리적 사역을 꿈꾼다. 목사로서 기도와 전도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야 평신도들이 따라온다.남: 한국교회에 전도의 열의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 교회가 복음화되고 기본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동: 한국교회의 체제를 ‘선교적 교회’로 바꾸어야 한다. 싸우고 비판하는 일을 지양하고 복음전도에 우리의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 교회성장은 저절로 되어질 것이다.기본에의 회귀우리는 전도를 논하면서 전도 실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양 동부교회는 여러 가지 악조건을 이겨내며 전도와 선교에 올인하여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고 1만여 명의 교인이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다.전도는 구호가 아니다. 전도란 ‘은혜의 선포와 정의실현’(Preaching Grace and Doing Jutice)이다(김남식 번역, 「복음전도」참조). 전도란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이며 축복이다. 문제는 이것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데 있다.한국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만들고, 목회자의 가방 속에 전도지가 있는 그런 소박한 교회가 되어지기를 꿈꾼다. 이것이 우리 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논리가 아니라 현장의 실천으로 살아있는 복음을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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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7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③ 성경읽기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 신앙양태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나가서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자의 생활 스타일로 자리잡고 불신자들에게도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로 정착되었다.문제의 탐색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들의 믿음의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성경읽기에 힘을 쏟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 이류가 어디에 있을까?첫 번째는 한국교회 설교의 변질이다. 기복주의와 성공주의를 설파하는 이른바 번영신학이 판을 친다. 강단의 변질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형태를 바꾸어 놓았다.교회에 갈 때 성경책을 가지고 가지 않고 스마트폰의 성경을 보거나 아니면 강단 위의 대형스크린에 나오는 성경 구절을 본다.두 번째는 사회 풍토의 변화이다. 책읽기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출판계나 문화계에서 아우성칠 정도이다. 일반 교양서적도 읽지 않는 판국에 성경읽기는 사라져가는 미풍양속 정도가 되고 말았다.이런 양상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삶의 태도를 찾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다. 비록 성경읽기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루터기의 새순과 같은 신자들이 있어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기본자세를 지키고 있음이 소종하다.사례의 탐구말씀대로 믿고 살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말씀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다. 이런 말씀 운동을 전개하고 실천하는 교회의 지도자를 만났다.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보통 백파라고 부른다) 소속의 한 소도시 목사이다. 그는 기독교계 고등학교와 법과대학을 마치고 미국유학을 하였다. 그 교단의 특성이 성경대로 믿고 살아가며 날마다 성경읽기에 집중하고 있기에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김남식(이하 김): 예수교장로회 총공회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또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 질문하는 것은 교단의 역사나 교리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생활인 성경읽기에 대한 것이다. 성경읽기의 필요성이 무엇이라고 보는가?이공회(이하 이) : 내가 소속된 교단은 성경 제일과 성경 전부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목회자 양성의 기본이 된다. 목회자 양성과정(신학과정을 말함)에 입학할 때 성경 20독이 원칙이며 졸업할 때까지 100독을 필수로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살자는 것이다. 신앙 있는 교인들은 1년에 10독은 흔히 있고 원로 교인들은 수백 독을 하는 것이 예사이다.김: 그러면 성경읽기 운동의 실제적 모습은 어떠한가이: 초등학생은 1년 1독, 중고생은 1년 1.5독, 일반인은 1년 5독을 기본으로 지도하고 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매장에 1개 문제를 적은 연경지를 사용하도록 권하며 문제는 초등학생도 쉽게 적을 수 있는 간단한 질문을 통해 성경 본문에 집중하게 한다. 이 연경지는 일제강점기에 선교사들이 통신강좌로 교인들을 가르치던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문답지를 적으며 읽는 것을 ‘초등강’이라고 하고, 문답을 외우는 것을 ‘고등강’이라고 한다.목회자의 경우는 60여 가지 주제로 1주제 1독을 원칙으로 하며 40독은 자유읽기이다. 60주제는 공통 주제이며 이후 이런 식으로 성경을 평생 읽게 되면 성경 본문에 충실하게 된다. 목회자의 설교는 성경과 성경의 실행한 경험만을 전하고 다른 언급은 거의 하지 않는다.김: 일반 교회에서 생각지도 못할 방법이다. 그러면 오늘과 같은 번잡한 세상에서 효과적인 성경읽기의 방법이 무엇이라고 보는가?이: 많은 이들이 성경공부의 방법론에 매달리다보니 변질할 우려도 있다. 성경읽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성경일기를 권한다. 성경을 읽기 위해 기간을 특정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경우도 거부하지 않으나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속에서 성경을 읽는 것이다. 학생은 학교공부를 하면서, 성인은 직장일을 하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꾸준히 성경을 읽는다.둘째, 읽은 말씀의 실천이다. 지식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삶에 적용한다. 그리하면 심령의 변화가 생기고 생활의 성화가 이루어진다.김: 성경연구에 대한 책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 우리 교회가 어떻게 지도해야 할 것인가?이: 어렵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먼저 강단에서 ‘말씀한’을 바로 선포하고, 가정예배를 드리며 성경 읽는 것을 생활화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 목회자들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매일 육신의 양식을 먹듯이 영의 양식인 성경을 먹게 해야 한다. 우리는 평범한 것은 외면하고 어려운 것만 찾고 있다.기본에의 복귀그리스도인은 모든 책의 근원인 성경을 먹고 산다. 성경은 음식이 인간의 몸에 영양분을 주듯이 거룩한 공동체에 영양분을 준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성경을 배우거나 연구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흡수한다. 그것을 우리의 삶으로 가져와 물질대사를 시켜서, 사랑의 행위를 하고 시원한 물을 대접하게 하며, 온 세상에 선교가 일어나게 하고, 치유와 전도를 일으키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의를 행하게 하고, 성부 하나님을 경배하며 두 손을 들어 올리게 하고, 성자와 함께 밭을 씻기게 한다(계 10:9-10).성경은 기독교 영성에서 일차적인 텍스트이다. 기독교 영성은 온전히 성경 텍스트에 뿌리박고 있으며 성경 텍스트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의 개인적인 영성생활은 자신이 좋아하는 텍스트들과 개인적인 상황의 임의적 조합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 텍스트와 일치하는 성령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개인적 영성을 형성하는 일을 우리 자신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우리 안에 심겨진 계시된 말씀을 따라서 성장한다.그리스도인을 형성하는 텍스트로서 성경의 강력한 지위가 도전받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러 세기를 지나오면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는 방침을 찾고 인도를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선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시종일관 그러한 방법들을 거부했고, 이 권위 있는 성경을 계속해서 굳건하게 붙잡았다. 오늘의 우리도 성경읽기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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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획
    2018-02-22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② 주일성수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주일성수’는 추억의 단어인가? 주일에 대한 한국교회의 이해는 하나의 꿈이 되어 가고 있다. 주일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인가, 아니면 놀고 쉬는 날인가?문제의 탐색소속된 교회에 따라 주일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졌으나 지금은 주일성수를 설교하고 가르치는 교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어느 교회의 주일낮예배 설교를 한 후 그 교회 목사와 장로들이 강사라고 차에 태워 어느 식당으로 가려고 한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필자는 그 교회 목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는 주일에 식당에 가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식당이 있는 듯한데 거기서 점심을 먹지요”. 나를 쳐다보는 느낌은 ‘고루한 율법주의자’를 보는 것 같았다. 장로들은 자기네끼리 수근 대다가 모두 함께 교회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이것은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부족함이 많지만 어릴 때부터 주일성수를 배우고 실천하였기에 늙어도 그 가르침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주일성수’의 한계가 어디까지냐? 라는 질문에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다. 주일성수를 주장하면 지금은 복음의 시대이니 율법은 폐지되었다고 하는 이도 있고, 또 성경이 말하는 안식일과 주일이 다르다고 해박한(?) 신학이론을 전개하는 이도 있다. 과연 그럴까? 다원화된 사회일 수록 성경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사례의 탐구많은 교회에서 주일성수를 가르치고 있으나 ‘재건교회’는 주일성수와 바른예배를 그들의 신앙적 푯대로 삼았다. 그들의 엄격함이 일부 교회에서 배척받기도 하였으나 그들의 순수한 신앙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유치부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재건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여 재건교회의 목사가 되고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재건신학원 원장으로 있는 정정민 목사(재건부평교회)에게서 주일성수의 방안을 듣는다.김남식(이하 김) : 재건교회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어떤 이들은 극우파나 심지어는 이단 정도로 생각하는 이도 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그 노력을 소중히 여긴다. 정 목사에게 성경이 가르치는 주일성수가 어떤 것인지 묻겠다.정정민(이하 정) : 재건교회에 대한 이해 부족은 지금까지 피부로 느껴왔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신약교회에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한 날은 유대인의 안식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의 날 즉 ‘안식 후 첫날’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전통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주일에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이다. 이것은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삶의 전부를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다.김: 앞에서 잠깐 말했듯이 재건교회에 대한 오해들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무지의 산물이라고 본다. 내가 알기로는 재건교회는 철저한 예배와 주일성수를 강조하여 왔다. 재건교회의 주일성수 운동에 대해서 말해달라.정: 재건교회는 일제하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수난 당한 수진성도(守眞聖徒)들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이들은 주일예배와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온 힘을 바쳤다. 초창기 지도자들은 목숨을 걸고 이것을 지켰다. 여기에 문제점들이 생겼다. 주일을 율법적으로 지키다가 보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하는 경우가 있었다.또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 전에는 주일에 차를 타지 않고 두세 시간을 걸어서 교회당에 갔으나 버스나 차를 이용하게 되자 주일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하여 일종의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 라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도록 가르치고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김: 여기에 하나의 문제가 제기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주일성수를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문제이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정: 주일성수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실행지침을 만들면 율법적 규정이 될 위험성이 있고, 그런 규정이 없으면 사람들이 자기 욕심과 편리대로 나갈 것이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기에 예배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예배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김: 내 경험에 의하면, 나는 미국 남부지방의 보수적인 남장로교 계통의 신학교에서 공부했는데 그들의 주일성수 방법을 유심히 보았다. 하나님의 날이기에 온 식구가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고 제일 좋은 음식을 주일에 먹었다. 그러니 어릴 때부터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고, 제일 좋은 날’이라는 인식이 심어지는 것을 보았다.정: 우리도 실제적인 방안을 만들고 이것을 가르쳐야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는 사역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기본에의 복귀필자는 모르는 성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문의사항은 복음과 율법의 관계인데 자기 교회 목사는 오늘의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함을 입었으니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며 주일예배 후에 장로들과 골프를 치러가고 같이 술을 먹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필자는 대답하기를 “우리는 복음의 자녀이다. 그러기에 성경의 가르침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율법폐지론자들이 아니다. 율법주의는 반대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지키도록 해야 한다.”장시간의 전화를 통해 교회에 침투해 있는 이른바 ‘반율법주의’ 또는 ‘율법폐지론’의 주장을 실감하였다.주일은 주님의 날(Lords Day)이다. ‘일요일’이 아니다. 일부 교회 주보나 기관 광고에 버젓이 ‘일요일’로 표기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의 날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신앙적 노력이 절박한 시대이다. ‘주일성수’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기본적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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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9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① 가정 예배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이번 주부터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문제의 탐색우리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이 무엇일까? 그것을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가장 평범하고 기초적인 데서 찾으려고 한다.‘가정 예배’ 혹은 ‘가정 목회’는 가장 절박하면서도 하나의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가정 해체”이다. 이혼이 보편화 되고 이것을 문제 삼는 것조차 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현실이다.이런 양상이 교회 안까지 들어와 가정해체의 심각성에 대한 설교가 사라지고 심지어 목회자들조차도 이혼하고도 목회를 계속하는 비극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을 치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가정 예배’ 혹은 ‘가정 목회’를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가정 예배가 실천되지 못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바쁜 사회생활과 자녀들의 학업 등도 이유가 된다. 정말 이것 때문일까? 핵심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약4:8)보다 세상을 가까이 하기 때문이 아닐까?사례의 탐구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가정 목회를 강조하며 성경공부와 가정 예배 캠페인을 벌리고 있는 강안삼 장로를 만났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자랐고 오랫동안 가정사역운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컴파스 미니스트리”(갓 패밀리-God Family) 라는 사역의 대표이며, 미국의 가정사역기간인 Focus on the Family의 한국대표로 지난 22년동안 극동방송을 통해 컴파스 칼럼을 방송하고 있다. 그를 통해 ‘가정 목회’의 중요성을 들어본다.김남식(이하 김) : 오랫동안 묵묵히 귀한 사역을 하고 계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 이 사역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강안삼(이하 강) : 방송일과 사업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가정의 중요성을 절감하였다. 이 사역을 하게 된 구체적 이유는 첫째는 그리스도인의 변화와 삶의 열매를 위하여, 둘째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성숙을 통해 새로운 교회부흥을 가져오기 위하여, 셋째는 가정과 교회의 동역을 위해서이다.김: 그렇다면 컴파스 미니스트리는 성령을 통하여 개인이 변화되고 교회가 부흥하는 사역, 즉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동역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사역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강: 컴파스 미니스트리는 크게 두 개의 기둥으로 형성된다. 하나는 ‘날마다 성경’운동이다. 바이블 컴파스 교재의 도움을 받아 성도들이 성경 66권을 스스로 묵상하고 연구하는 말씀운동이며, 말씀의 능력으로 믿는 자가 변화되어 사랑하고 제자 삼는 삶의 열매를 맺는다. 날마다 성경운동은 전 교회적으로 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다.다른 하나는 ‘가정 목회’운동이다. “내 가정을 작은 교회로” 라는 표어대로 아버지가 자신의 가정을 작은 교회로 삼아 목회하는 가정목회운동이다. 이것은 교회의 중요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중심목회에서 교회와 가정중심목회”로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김: 자칫하면 “가정교회운동” 과 혼동할 수 있는데 이 사역은 가정을 통해 교회를 살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니 “교회는 큰 가정, 가정은 작은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강: 그렇다. 가정과 교회는 부름받은 사역 공동체이다. 가정이 삶의 공동체라면 교회는 말씀과 교제 공동체로서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한 몸 공동체로 바른 신앙인 양성의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가정 목회의 6가지 기둥으로 가정예배, 자녀 제자양육, 은사사역, 불신 가족 구원, 이웃 가정전도, 이웃봉사 사역을 들 수 있다.김: 가정예배는 우리 신앙생활에 기본으로 매우 중요한데 현대사회의 분주함과 우리 신앙의 나태로 인하여 이제는 사라진 단어가 되고 말았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회복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이다.강: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으나 핵심적인 것은 아버지의 신앙적 결단이다. 이것이 성공적인 가정 예배의 주춧돌이다. 가정의 지도자인 아버지가 예배를 인도하고, 아버지가 불신자인 경우 어머니가 인도한다. 예배와 가족 사이에 대화가 있어야 한다.김: 일본 고베에서 목회하는 일본인 친구 목사 집을 방문하면 그들의 가정 예배에 참여한다. 6명의 자녀와 함께 드리는 가정 예배는 말씀을 듣고 그들의 삶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40년 가까이 서로 왕래하며 가정 예배의 소중함가 효과를 절감하였다.강: 가정 예배 효과는 먼저 아버지의 영적 지도자로서 권위를 회복시키고 가정에 영적 질서를 확립한다. 나아가서 가정 예배는 말씀에 순종하는 가족들의 변화, 불신 가족 구원, 또 교회능력 회복과 직결된다.기본에의 복귀전에는 가정예배가 그리스도인 가정의 표시였다. 그러나 오늘의 와서 이것이 사라지고 있음이 안타깝다. 우리 안방을 점령하고 있는 이른바 ‘막장드라마‘를 보라. 가정은 해체되고 돈과 욕망의 유령들만 판을 친다. 또 아버지의 권위는 여지없이 붕괴되었다. 지금 상영 중인 드라마 제목만 보아도 ‘밥상 차리는 남자’ ‘살림하는 남자’ ‘개밥 주는 남자’등등이다.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 회복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내가 어떻게 예배를 인도하냐’고 한다. 가정 예배를 위한 참고 자료들은 많다. 그것을 사용하면 된다. 위에서 말한 ‘바이블 컴파스’는 성경 66권을 스스로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교재이고 가정 예배를 위해서는 월간 ‘컴파스 가정예배지’가 예배 인도자의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아무리 바빠도 밥을 먹듯이 가정 예배를 우리의 영적 양식을 먹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시작이 반이다.” 미루지 말고 시간을 정해놓고 가정예배를 드리자. 식구들이 다 모이지 못하면 모인 사람부터 시작하자<컴파스미니스트리 02-461-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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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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