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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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적 유비를 이야기 하면서 이리안 자야에서 선교사로 섬겼던 돈 리챠드슨을 빠뜨릴 수 없다. 20세의 청년 이었던 돈이 해외선교사로 헌신한 것은 1955년 프레이리(Prairie)성경학교의 한 예배 때였다. 그는 막연히 어디로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뉴기니아의 식인종에게로 가겠다는 뚜렷한 비젼을 가진 젊은이 였다. 그곳 학교는 해외선교를 꿈꾸는 학생들이 입학하여 소명을 받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가진 캐롤 스더스트롬(Carol Soderstrom)과 돈은 결혼을 하고 1962년 SIL(Summer Institute of Lingustics)을 마치고 뉴기니아로 건너갔다.

  뉴기니아에 도착한 그들은 싸위족(Sawi) 속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문제는 그들이 사역하고 있는 싸위족은 배반,배신을 이상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식인습관과 해골사냥의 풍습이 복합된 문화를 가진 부족이었다. 이러한 잔악성을 지닌 환경 외에도 눈앞에 펼쳐진 정글과 독사와 악어 그리고 살인 지네야 말로 한발자국도 쉽게 띨 수 없는 환경이었다.

  돈은 말을 배우고 싸위족과 친밀해 지고 나서도 예수님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또 하나의 난제임을 깨달았다.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해와 그들이 알고 있는 복음의 내용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크나큰 간격이 두 세계의 이해를 완전히 갈라놓은 것을 느겼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인간들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 되셨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예수님은 부족한 사람이고 타인을 속이는 가롯 유다는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싸위족을 둘러싸고 있는 해남, 카무르, 요휘 부족들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최대의 영웅이었고, 이를 위해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타인을 얼마나 잘 속이느냐가 관건 이었다.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속이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것이 일이었다. 예수님의 은혜인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서 선교지에 왔지만 현실은 부족들 간에 처절한 전쟁만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성육신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는 복음이 들어 갈 수 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위해 구속의 유비를 발견하고 적용하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자책감에 시달리던 돈과 아내는 그들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돈의 가족이 선교지를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 부족들은 깜짝 놀라서 보족간의 회의를 열고 서로 화해를 하겠다고 하였다. 돈은 참으로 기뻐하면서 부족들의 화해를 보기로 하였다. 아침이 되자 싸위족은 특별한 평화 의식을 거행 하였다. 싸움으로 점철된 부족들 간에 아이들을 교환 하였다. 그들의 문화 에는 교환된 아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평화가 유지 되었다. 누구의 아이를 보낼 것인가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이를 가진 부모님은 새파랗게 질려서 자신들의 아이가 아니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이이가 선택되었고 다른 부족에게 보내졌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른 부족에게서 한 아이를 데리고 왔다. 드디어 두 부족들 간에 평화가 수립되었다.

  돈은 이 사건을 통해서 중요한 유비를 발견하게 되었다. 싸위족들에게는 자신들이 가진 문화적인 방법으로 약속의 신실성을 실천 하였다. 누구라도 적에게 자기 아들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이러한 사건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희생하신 뜻을 싸위족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유비가 되었다.

  돈의 선교전략은 복음과 문화의 사이에서 많은 노쟁을 불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돈은 현대의 어떤 선교학자 보다도 성경에 깊이를 둔 선교사였다. 초대교회의 선교사였던 바울은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복음증거를 위해서 구속적 유비가 필요함을 수없이 가르치셨다. 예를 들면 원주민의 언어 중에서 하나님 이라는 용어를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방인 개종자들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윈리들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라는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날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이론이다.

  돈 리챠드슨이 선교지에서 “화해의 아이”를 경험하고 만들었던 이론인 구속적 유비는 오늘날 한국선교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론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단일문화권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기 때문에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하였다. 이러한 우리에게 “화해의 아이”가 준 교훈은 문화의 벽을 넘는 선교사의 발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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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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