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작금의 한국인은 어느 때보다 좋은 집에다, 집집마다 자동차를 한두 대씩 가지고 있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살지만 행복하지 않다.
미국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지난달 유엔지정 ‘세계 행복의 날’(3월 20일)을 맞아 세계 143개국의 행복 순위를 공개했다. 한국인의 행복감은 59점으로, 이스라엘과의 긴장으로 매일 불안에 떠는 팔레스타인과 같은 115위였다. 오히려 매일 폭탄테러가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101위)보다 훨씬 낮았다.
이번 갤럽이 조사한 개인의 행복감은 ① 어제 잘 쉬었는가. ② 존중받았는가. ③ 자주 웃었는가. ④ 재미있는 것을 배우거나 했는가. ⑤ 얼마나 즐거웠는가 등을 물어 이 답에 점수를 매겨 수치를 산출한 것이다. 이 물음은 지극히 소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적었을까. 이유는 경쟁심 때문이다. 경제발전으로 잘 먹고 잘 살면 국민행복지수(GNH)도 높아질줄 알았는데, 왜 2만5천불 시대에 이른 개인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사회 구성원의 경쟁심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물질적 풍요는 가져왔지만, 개인의 행복감을 충족시키지는 못한 탓이다.
개인의 행복감은 종교적 신념에서부터 온다. 그러나 한국인의 종교는 철저히 기복주의여서 종교가 오히려 개인의 욕망을 부추길 뿐, 소시민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구원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 역시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는 기복주의에 빠져있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인도하신다’는 확신에 찬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 국가인 부탄이 행복한 나라이고, 철저한 인종적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도인들이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저들의 신앙의 힘이다.
어느 사회나 가정이 행복하고 자식이 잘되고 무병장수하며, 재물과 부귀와 출세를 바라는 현세적인 기복행위는 있다. 그러나 종교는 이 현세적 삶의 조건을 떠나 구원한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곧 주님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한 의미이다. 한국교회 6만 강단에서 기복주의를 몰아낼 때, 비로소 한국인의 행복순위가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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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행복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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