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만국 장로교회가 채택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믿음의 은혜는 선택받은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영혼이 믿어 구원에 이르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심령 속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제14장)라고 했다. 즉 인간의 구원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 믿음을 결코 인간들이 스스로 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성경을 보고, 같은 신앙을 가진 기독교 안에도 믿음과 구원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논쟁이 계속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쟁이들은 모이면 말이 많다”고 하는 것 같다.
개신교회는 믿음으로 신앙의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믿음은 기본이고, 거기에 행함이 있어야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구원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또는 거절할 수도 있다는 자유의지를 내세운다.
가톨릭은 인간은 원죄로 인해 “원초적 거룩함과 의로움을 박탈당했지만 인간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제405조)라고 믿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선행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 구원적 신앙이 아니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행(信行)에 있어서 가툴릭이 개신교보다 적극적이고 윤리적일 것 같은데, 그 열매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 그리스로부터 벌어지고 있는 유럽사회의 디폴트 가능성은 모두가 가톨릭 국가나 정교회 등 구교권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체로 종교개혁을 거치지 않은 구교권 사회가 윤리성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성이 게으르고 근면성실하지 않으며, 이웃에 대한 책임의식이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범죄 이후 인간의 상태는 전적으로 타락되고, 전적으로 부패되고, 영적으로 전적 무능해졌음으로 인간의 선행이 구원에 공로가 될 수는 없다고 믿는 개신교권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은총이 강조되고 있어 윤리성이 강하다. 이는 구원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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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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