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k-a.jpg
 중국 명나라 때 지행합일을 주장해 양명학을 발전시켰던 왕양명의 이야기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산적, 마적 등으로 인해 폐해가 심했다. 왕양명은 그들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받고 강서 지방으로 갔다. 그때 한 사람이 왕양명을 찾아와 진중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위병이 그를 가로막으면서 왕양명이 강의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고 막아섰다. 그러자 그는 ‘아니, 선생님께서 그럴 겨를이 있으십니까’라며 따졌다. 이때 위병은 강의는 날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의가 끝난 왕양명에게 ‘적도들이 언제 역습할지 모르는 이 위험한 중에 유유히 강의만을 하고 계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라며 묻자 왕양명은 이렇게 대답했다. ‘산중의 적은 무찌르기는 쉬운 일이나 마음에 있는 적은 무찌르기가 어렵다네. 그러기에 나는 매일 내 마음을 향해 도를 강의하고 있는 것 일세’
왕양명은 왜 그의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 했을까? 사람의 마음은 사고의 중심지며 의식의 원천으로써 선악의 근원지가 되기 때문이다. 즉 생을 지배하는 중심지이다. 헌데 우리는 하루에도 이러한 두 가지 마음 즉 미움의 마음이 지배하는가 하면 사랑의 마음이 생기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생기는가하면 섭섭한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이렇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면 저렇게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믿음과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심이 생기는가 하면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겠다는 마음이 불쑥 들기도 한다. 만일 이렇게 기압골의 영향에 따라 발생하는 마음의 변화를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일 수 없는 정신 분열증 환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말씀 하신다(약 4:8). 두 마음이란 하나님과 더불어 세상과 벗하려는 마음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는 마음(눅 16:13)을 말한다. 따라서 마음을 성결하게 한다는 것은 이러한 두 마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따르고 좇는 거룩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 중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좇아 하나님과 함께 재물도 동시에 섬기려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 많다. 곧 영혼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한편 세상의 쾌락과 축복을 얻기 위해 적당히 세상과도 짝하려 한다. 인간적으로 볼 때 대단히 지혜로운 것 같아도 착각이요, 더 나아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두 마음을 감찰 하신다.(살전2:4) 감찰하다는 헬라 원어로 ‘시험하다, 검사하다‘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참된지 그릇되지를 알아보기 위해 시험하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옳고 그름을 분변하시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행실을 지켜보시고 계신다(대상 28:9, 렘 12:3). 그렇다면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께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까? 주님의 선한 마음을 본받아야한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주님의 마음은 첫째 겸손한 마음이다(마 11:29). 주님은 본래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낮아져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창조주로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들을 섬기는 삶을 사셨고 그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셨다. 이것이 바로 겸손의 극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성육신과 희생의 겸손을 본받아 늘 낮은 자리에 설 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한다.
둘째 착한 마음이다(행 10:38). 주님의 행하신 모든 일은 다 착한 일이다. 병자를 고치시고 영혼을 구원 시기셨으며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다. 착한 일은 착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만이 할 수가 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주님의 행하심을 보고 우리들도 착한 마음을 가져야한다. 독한 마음은 성도들 마음에 합당치 않다. 주님처럼 착한 마음을 지니고 어려운 이웃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셋째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다(벧전 2:21). 주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받는 고난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도 십자가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님마음을 본받아야한다. 주님의 은혜만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는 마음이다(빌2:7). 주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지만 이 세상에 오셔서 오직 사랑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만을 행하셨다. 또한 사욕도 없으셨다. 이 땅의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영광이나 정치적인 야망이 조금도 없으셨다. 무덤도 타인의 무덤을 빌리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주님의 빈 마음을 가진 목회자와 장로와 성도를 원하신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