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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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움, 매력, 열정은 라헬 몫이지만, 강하고 친밀한 끈, 다시 말해서 성실하고 지속적인, 그래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랑은 레아의 몫이었다.” 
랍비 아딘 스타인잘츠(Adin Steinsalts 1937~ )의 해설에 대해서 평균적인 유대인들은 공감을 표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눈의 아들 여호수아나 사울과 같이, 한 때 강력한 인상을 심었어도,  단명하거나 허무한 일생을 살다간 라헬의 자손들 보다는,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여 다윗의 가문을 이어온 레아의 자손을 꼽는다는 말일 터. 그러나 레아가 족장들의 처첩들 중 가장 불행했던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창세기>에서 레아는 라헬의 언니로 등장한다. 그런데도 야곱이 쌍둥이 형에서의 노여움을 피해 외가의 땅 하란으로 왔을 때,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쪽은 언니 레아가 아니라 동생 라헬. 우리가 대하는 대부분의 <창세기>는 ‘라헬의 눈빛이 레아의 것보다 훨씬 빛나고 매력적’이라 번역하고 있지만, 그 대목을 ‘레아의 시력에는 결함이 있다’로 읽을 수도 있단다.  그래서 양들을 이끌고 우물가로 가는 일은 동생 라헬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야곱이 언니 레아 보다 동생 라헬을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고, 야곱과 라헬이 첫 눈에 서로 반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운명이 정해놓은 수순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모든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레아가 야곱의 첫째부인이 된다. 거기에는 야곱의 외삼촌이자 레아와 라헬의 아비인 라반의 음모가 끼어들기는 했어도, 신방에 들어온 여인이 7년이나 기다리던 라헬이 아님을 알아차리지 못한 야곱의 실수인들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적어도 고대인의 운명론을 탐탐하게 여길 수 없어하는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레아가 야곱의 첫 부인이 된 책임은 야곱 자신이 질 수밖에 없는 노릇. 
레아에게는 동생 라헬이 지닌 그런 매력이 없기에 라헬처럼 야곱과 더불어 천의무봉의 애정을 즐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야곱의 사랑을 얻고자 그녀의 모든 것을 바치고 수모를 인내할 수 있을 뿐이었다. 슬픈 여인 레아는 막무가내로 야곱을 차지하려했다. 그녀의 자식들조차도 그녀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 어쩌면 많은 유대인이 라헬보다 레아를 받들려하는 데에는, 그녀의 슬프고도 인고에 찬 일생에 대한 동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야곱이 무려 7년 동안의 종살이를 마치고 고대하던 첫날 밤을 치를 때,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쁜 라헬이 아니라, 못생긴 언니 레아를 신방으로 들여보냈고, 야곱은 레아와 황홀한 ‘밤’을 보낸다. 그것은 야곱의 실수이기도 하지만, ‘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는 것이 토마스 만의 익살이다. 만은 그의 명작 <요셉과 그의 형제>에서 ‘밤’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니까 야곱의 실수는 역사상 처음 있은 일이 아니라는 것. 이집트 신화에서, 아눕(그리스 이름으로는 아누비스)의 이야기에서 그것을 증명하려한다. 아눕은, 아버지 우시르가 아내 에세트를 찾아간 다는 것이, 어두운 ‘밤’이라 엉뚱하게 동생 세트의 아내 넵토트와 동침한 결과로 태어난 아들이란 것. 그 모든 것은 ‘어둠’ 탓이었다는 것.
“밤에게는 집착이란 것이 없지 않는가. 낮이 일깨워주는 편견이란 밤이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거든. 밤이 어떤 진실을 아느냐고? 여자의 몸이라는 게 다 같아서,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생산하기에는 그만한 게 없다는 게 진실이지. 여자가 구별되는 건 얼굴뿐. 그런데도 얼굴만 보고 이 여자한테서 자식을 생산해야지, 저 여자한테서는 자식을 생산할 생각이 없다는 둥 지껄이지. 그런데 얼굴이란 온갖 착각과 상상으로 가득한 낮의 얼굴이거든. 하지만 진실을 아는 밤 앞에서 그 얼굴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1권 6부 역겨운 것)” 
얼굴과 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했다. 밭은 씨를 뿌리기만 하면 되는 것. 그 씨가 르우벤이란 힘센 장사를 태어나게 했을 뿐. 급한 성질 탓에 ‘마구 쏘아 대는 물’, ‘아무데서나 넘치는 물’이라 불리던 그도 아버지의 첩과 잠자리를 함께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패일언, 결국 야곱 곁에 묻힌 것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다. <창세기>가 읽히는 것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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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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