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한 한국교회가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배경에는 세속주의와 물량주의에 그 원인이 있지만, 분열과 분쟁을 가져온 실제적 상황에는 한줌도 안되는 세속적 이익을 노린 교회연합운동의 얼치기 직업군들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 명예욕에 찌든 대교단 지도자들의 이기주의가 맞물려 벌어지고 있는 현상인 것이다.
70~80년대 민주화와 평화통일 세력으로 화려한 이력을 가진 교회협(NCCK)은 왜 약화되었으며, 보수 기독교 세력을 대변하던 한기총은 왜 분열했는가? 그로인해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상징인 ‘부활절연합예배’마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한국교회는 1천만명의 교인, 6만 개의 교회, 12만명의 목사 등 참으로 큰 종교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럼에도 사회로부터 얕잡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연합과 일치에서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큐메니칼 운동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 없이 300개가 넘는 교단을 어떻게 한 목소리로 묶어 낼 수 있겠는가. 에큐메니칼은 교회는 ‘하나’라는 교회론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바탕한 양보와 아량에 있다. 양보와 아량의 정신 없이 교단간 연합과 일치는 불가능하다.
본보는 지난 25년동안 그 편집방향과 논조가 한번도 바뀐 일이 없다. 오로지 사시대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라”는 원칙을 지켜왔다. 그럼에도 때때로 어떤 이는 왜곡되었다고 불평을 토하고, 또 어떤 이는 사법당국에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이는 신문을 끊으라고 소리지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 기사에 이해관계가 얽힌 독자가 받아들이는 감정이 달랐을 뿐이다. 본보의 편집방향은 보편적 한국교회의 유익에 있다.
본보는 특정교단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이단옹호지’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본보의 기사 중 어느 부분이 이단을 옹호한 것인가를 제시해 보라는 요구에는 아무도 그 증거를 내어놓지는 못했다. 다만 그 교단에서 이단이라고 한 개인이나 집단의 광고를 실었다거나, 그들의 집회를 소개했다 등 자신들의 마음에 안드는 단순보도를 문제 삼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특정교단의 일방적 결의만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교계언론으로서의 사명과 임무는 부정하는 교계 풍토에 때로는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본보는 이 걸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기도와 적극적 후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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