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1.jpg
옛날, 이탈리아 피렌체에 라니에로라는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남달리 힘이 센 그는 성품이 난폭해서 싸움이라면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 아내 프란체스카도 남편의 난폭을 견디다 못해 끝내 친정으로 도망 가버리는데... 거칠고 지기 싫어하는 사나이 라니에로도 아내 사랑만은 남달랐던지, 이래저래 달래 보았으나 아내는 집으로 돌아와 주지 않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용병이 되기로 작정한다.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면 전리품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피렌체의 대성당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 갖다 바친다면 신앙이 깊은 아내가 돌아와 줄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아내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사나이는 공적이 모자란다고 여겼던지 그때 막 바람 불기 시작한 십자군 전투에 참여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슬람으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전투에서 크게 공을 세운 그가 보상으로 예루살렘 그리스도의 성묘를 밝히고 있는 횃불에서 불씨를 얻어 자신의 등에 옮겨 붙일 수 있는 특전을 허락받게 된다. 당시 그것은 가장 소중한 전리품이었던 것이다. 사나이는 그 등불을 멀리 이탈리아까지 모셔갈 작정을 한 것이다.
동료들은 입을 모아 반대했다. “아무리 힘이 센 자네라할지라도 그 등불을 들고 가서 피렌체의 성모마리아상 앞에 바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놀려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동료들의 빈정거림에 화가치민 사나이는 오히려 절대로 불을 끄지 않고 피렌체까지 등을 가지고 가겠노라 장담하고 나선다. 예루살렘에서 피렌체까지, 그렇게 등불을 끄지 않고 옮겨가는 세상에서 드문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막상 여행은 장사 라니에로에게도 생각했던 만큼 수월한 일은 아니었다. 거꾸로 말 등에 올라앉아 외투로 바람을 막으며 천천히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도적을 만난다. 여느 때라면 말에서 뛰어내려 한주먹 먹이면 만사가 해결될 일이었으나 등불을 지키자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도둑이 달라는 대로 아끼던 말과 갑옷을 내주고는 너덜너덜한 옷을 걸치고 말라빠진 말 등에 흔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놀림은 날로 심해갔다. 당장 말에서 뛰어 내려 본때를 보여주고 싶지만 등불을 지키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등불을 모셔가는   라니에로의 여행은 이어졌다.  
여행을 통해서 사나이는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인생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아주 약한 바람에도 쉬 꺼져 버릴 것 같은 가냘프기 짝이 없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많이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같이 타오르는 분을 참아야 하는 것이 분하고 서글펐다. 그러나 분노와 증오로서는 그 작은 것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터득해가게 된 그는 가장 싫어했던 굴욕도 참아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마저 깨닫는다. 그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곧 꺼져버릴 것 같은 작은 등불을 지키며 한발 한발 나아가는 나그네 길을 통해서 그는 점차로 변해가고 있는 스스로를 느끼게 된다. 다툼보다는 평화를, 거침보다는 온유를, 미움보다는 용서를 소중히 여기며, 연약한 것을 돌보는 사나이로, 그는 변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등불이 남달리 우람한 한 사나이를 그렇게 바꾸어갔다는 것이 <횃불>이야기의 골자.
“등불이 꺼진들 부싯돌만 있으면 곧 되살릴 수 있을 터인데...” 사나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예루살렘의 불과 피렌체의 불이 다를 것이 무언가”하고 말할 줄도 몰랐다. 그 우직스러움이 가냘픈 등불을 그 등불 그대로 지켜올 수 있었으리라. 우직함은 어느 틈엔가 온유함으로 바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림절을 맞으며 <횃불>을 되씹는 것은 어느 틈엔가 우리에게서 없어져가고 있는 그 무엇이 아쉬워서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림절은 잃어버린 그 무엇을  되찾게 하는 계절일 지도 모르고.
셀마 라겔뢰프(Selma Ottilia Lovisa Lagerl?f, 1858-1940)는 스웨덴 출신의 여성작가. 풍부한 상상력과 모성적 애정을 바탕으로 많은 작품을 낳았다. 청소년이 읽도록 썼다는 <닐스의 이상한 여행>이 특히 많이 알려진 것은 190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횃불>은 그녀의 <그리스도 전설 집>에서 옮겨온 것.  
enoin34@naver.com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대림절(Advent)을 위하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