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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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중세의 미신 가운데 ‘마녀사냥’이 있다. 마녀사냥은 15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마녀재판’이란 이름아래 광범위하게 연출된 인간 확대이다. 당시 기독교 국가로 자처하던 영국·아일랜드·스코틀랜드·스페인·독일·프랑스·벨기에·네들란드·룩셈부르크·스칸디나비아에서 벌어진 이 종교재판은 전적으로 국가의 관장 아래 교회가 저지른 살인 행위이다. 마녀재판은 1497년부터 종교개혁이 한창 무르익었던 1669년까지 무려 300여년 동안 지속되었다. 오늘날 어떤 학자도 이 형언할 수 없는 인간 확대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
◇16세기 말 마녀사냥은 이미 유럽 전역에 걸쳐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1557년에 툴루즈에서 40명이 화형당했고, 1582년에는 아비뇽에서 18명이 화형당했으며, 1581-1591년에 로렌 지방에서만 900명이 마녀로 몰려 형을 선고받았고, 1609년에는 400명이 화형당했다. 독일에서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반에 수천명이 화형당했다. 1631-1636년 사이 밤베르크에서 1,600명, 뷔르츠부르크에서 757명이 화형당했다. 여기에는 3-15세의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죽임을 당한 여성만 최소한 10만명 이상에 이른다.
◇영국에서는 ‘마녀사냥꾼 장군’으로 불린 매튜 홉킨스라는 변호사가 마녀를 찾아내는 전문가로 활동했다. 그는 마녀를 찾는 댓가로 한 명당 6파운드를 받았다. 이를 통해 한 해에 보통 1,000 파운드 이상을 벌었다. 홉킨스의 마녀 판별로 베리세인트에드먼즈라는 곳에서만 68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그는 마녀로 의심되는 여인들의 옷을 벗기고 온몸을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면서 악마의 표지를 찾았다. 고통에 민감해진 부분이 바로 악마의 손이 닿은 곳이라고 판별했다. 또 마녀로 의심되는 사람을 연못에 던진 후 떠오르면 마녀로 판결했다. 홉킨스를 추종하던 무리들은 이제 마녀에 대한 전문가로 여겨져 이웃 도시로 불려다니며 마녀를 가려내는데 앞장 섰다. 마녀로 몰려 밀고되면 당국이 이를 은밀하게 심리했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고문 끝에 마녀로 판결되었다. 마녀의 재산은 몰수해 밀고자와 재판부가 반반씩 나누었다.
◇홉킨스 무리들의 마녀 감별은 ‘골’이라고 그 이름이 알려져 있는 한 사제가 설교단에서 홉킨스를 공격하면서 영국에서 마녀를 고문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비난받았다. 이로서 홉킨스는 갑자기 인기를 잃었고, 성난 군중이 그를 붙들어 연못에 쳐박자 은퇴하여 그동안 번 돈으로 먹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그해 결핵으로 죽었다. 홉킨스 무리의 마녀 감별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직업적 이단 감별사들의 행태와 너무 닮았다. 한국교회에도 4인방 또는 5인방으로 불리우는 직업적 이단 감별사들은 자신들이 이단 감별의 전문가로 자처하면서 그것으로 직업을 삼고, 한국교회로부터 수천수억원에 이르는 ‘이단대책비’를 거두어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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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미신 ‘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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