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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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할 주장을 지니지 않는 주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에 소개한 어록은 몽테뉴가 그의 <수상록> 2권 15장에서 인용하고 있는 피론의 말이다. 몽테뉴는 “‘쾌락이란 순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쾌락도 진정으로 즐거운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의견에 대해서 ‘아니다. 순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쾌락은 즐거운 것이다.’”하는 반대 의견도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서 위의 말을 인용했다는 것.  
피론의 제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어떤 판단에도 과오가 끼어들 가능성이 있기 마련이고, 그 과오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하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것이 스승 피론의 주장이요 가르침이었다는 것.  
당사자 피론은 기원전 334년 봄, 알렉산더가 4만의 군사를 이끌고 헤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넜을 때 동행했다는 3철학자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알렉산더가 원정을 나서면서 장병과 더불어 철학자를 동행했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지만, 대왕의 족하벌이 되는 칼리스테네스는 원정도중 바크토리아(오늘날의 아프가니스턴 근처)에서 살해되었고 아나크사르코스는 귀국 도중 키프로스 섬에서 참살되었다. 오직 피론만이 종군11년의 노고 끝에 겨우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전해주는 기록을 따르면, 피론의 철학은 알렉산더가 그리스에 공헌한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한다. 피론이 자신의 철학에 인도의 사상을 섞어서 그리스에 가지고 온 것을 두고 하는 말이고 보면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론은 다크시라 거리에서 자이나 사원의 승려와 사귀는가 하면, 바라문 승려들과 대화하면서, 자이나교, 불교, 힌두교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과 같이 마음을 고요하게 지님으로, 마음의 동요를 지켜야한다”는 피론의 사상은 인도철학에서 배워온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철학은 인도철학과 그리스철학의 융합이었던 셈이다. 피론의 사고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위해서는 먼저 “사물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를 파악해야 하고 “우리는 그 사물과 어떤 관계에 있으며, 그 관계가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피론은, “우리는 사물의 성질을 알 수 없다”고도 말한다. 우리는 사물을 우리의 지각을 통해서 알게 되는 만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고, 사물이 지각되는 양상에 따라서 달라지게 마련“이란 것이다. 요컨대 피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은 이렇다!”하고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이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우리와 사물과의 관계는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가.”라는 명제에 대해서 피론은 “사물과의 관계를 인정하면 사물에 대한 불필요한 집착이 해소되고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으면 “격정”에 휘말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의 중심인 것이다.
피론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왜 없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회의주의”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물을 너무 성급하게 “이렇다!”하거나 “저렇다!”하고 판단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신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바르다고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피론의 가르침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우리의 머리를 식혀서, 스스로를 사로잡고 있는 격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려면, 피론의 교훈이 더없이 요긴하리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반대의 논리를 가지지 않는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어떤 논리도 바르지 않단 말인가? 하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함으로서 우리는 오히려 피론의 손에 말려들어가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피론을 반대함으로 피론의 말에 찬성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버트란트 러셀이 말했다. “열정을 지닌 의견을 품게 되는 것은 언제나 그 의견에 그럴듯한 근거가 없을 때이다. 실제로 열정이란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의견에는 합리적인 확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척도일 뿐이다.”
  그렇게 말한 러셀은 피론의 회의론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무엇보다도 광신을 방지하는 약이 될 수 있는 말이라고도 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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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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