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과 12일 양일간에 걸쳐 중국과 한국 두 나라에서 각각 중대한 사법 관련 결행(처형), 또는 판결 등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이른바 상하이(上海) 푸단대(復旦大) 의과대학원생 독극물 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린썬하오(林森浩, 29세)에 대한 사형집행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경북 상주(尙州) 농약 음료 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박 할머니(82세)에 대한 유죄 판결, 곧 ‘무기징역’ 선고가 있었다.
중국 상하이의 경우, 피의자 린썬하오의 부친이 그 아들을 살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겠는데, 피해자의 부친이 자기 아들을 죽게 만든 피의자는 법의 엄한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로 일관하면서 관용 베풀 자세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일도 사법부의 처형 결행을 수월하게 만든 한 요인이 아니었나 판단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그 사건의 진범이 린썬하오란 사실에 대하여 의심하는 바가 전혀 없었다는 바로 그 점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남은 문제는 고작 형량 경감 여부였으리라 보이는데, 결과는 재판부가 일벌백계 태도를 보였다는 것으로 우리는 그 최종 형량을 받아들이게 된다. 경북 상주의 경우, 무기징역은 사형집행보다 나을는지는 몰라도 남은 가족 식구들의 처지에서 볼 때 그 형량은 사형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데, 82세 고령 할머니가 그 형량(무기)대로라면 언제 살아서(출소해서) 식구들과 만나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으로 예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워낙 세인들의 관심이 컸었고, 그 귀추에 대한 관심 역시 큰 것이었으므로 이 무기징역 판결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임도 능히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무기징역 판결이 막 내려졌을 때, 곧 선고 초기(직후)에는 7명의 배심원들도 전원이 유죄로 평결한 것을 보면 ‘유죄로 볼 수밖에 없는 사건’인가 보다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흐르고 나서는 여전히 께름칙한 마음 한 구석을 지워버리지 못하고 있다. 과연 검찰이 개진한 각종의 유죄 논리는 온당한 것이었는가? 그 검찰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죄(무기)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한 점 부끄럼 없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 보아도 될까? 재판부의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른바 국민참여재판 제도 속의 배심원들은 흔들림 없는 양심에 따른 평결을 내린 것으로 보아 틀림없을까? 이런저런 여러 가지 생각들로 마음이 편치 않은 게 사실이다. 마치 나 자신이 그런 께름칙한 판결에 동참한 처지라도 되어버린 듯한 찜찜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나 할까.
일부 여론을 종합해 보면, 이번 재판은 “제3자의 범행 가능성이 없으니 피고 당신이 죄인이오.” 식의 판결이었다고 하니, 이 너무도 안일한 판결이 아닌가. 오늘의 형사재판은 여러 가지 확고한(물적) 증거로 인해 피의자 역시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내가 범인이오.” 하고 자인할 때 유죄 판결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박 할머니는 줄기차게 자신은 마을 친구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하며, 검찰 역시 뚜렷한(물적) 증거는 내놓지 못한 채 고작 정황 증거만을 가지고 유죄임을 역설했다고 하니, 이것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다시 말해, 물증은 없이 심증만을 가지고 그를 죄인으로 몰아세운 셈이라 하겠으니, 이것이 바로 현대적 판결 수준에 못 미치는 전근대적 판결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를테면 중세의 ‘마녀 사냥’식 판결 말이다. 그래서인지 변호인이 이렇게 변론했다고 하는데, 경청할 만한 구절인 것 같다. “피고인이 범인이라면 악마이거나 사이코패스로 검찰이 정신감정을 의뢰했어야 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것은 재판부에서조차 판결을 내릴 때 피고인의 범행 동기를 전혀 언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판결도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믿고 있다. 설사 아홉 명의 범인을 놓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시민을 억지로 잡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박 할머니가 죄인이 아님을 우리가 확증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를 또한 죄인으로 확증할 수 없는 이상, 그에게 유죄의 너울을 씌우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범죄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관련 인사들은 알아둬야 할 것이다. 과거에 행해진 그런 유(類)의 유죄 판결이 오늘에 와서 무죄로 판정된 게 어디 한두 가지던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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