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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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 라틴 교부의 한 사람인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아누스(T.C. Cyprianus)는 도나투스 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 도나투스, 이 세상은 포도나무 그늘 아래의 나의 정원에서 본 것과 같은 아름다운 세상이지요. 그러나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이 높은 산에 올라 거친 대지를 바라본다면 당신은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요. 노상강도, 바다의 해적, 군대의 싸움, 도시의 현란하고 방탕함, 원형 경기장에서 환호하는 관중을 기쁘게 하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죽음의 결투, 자기 본위의 이기심, 잔인성, 화려한 지붕 아래 있는 고통과 절망 들... 도나투스, 이 세상은 악이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악한 곳이요’ 그렇다. 실로 키프리아누스의 말처럼 인간의 소욕대로 이 세상은 얻을 것 많고, 갖고 싶은 것 많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 안에서 말씀의 높은 산에 올라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악한 세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할 세상은 어떤 곳인가? 세상의 본질을 보자. 우리는 세상을 두 가지 방향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로 창조된 선한 창조물이며 우리들로 하여금 누리도록 선물로 주셨다는 것이다. 둘째, 세상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들의 다스림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반역하고 대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늘 이 두 관점을 적절히 적용하며 살아야 한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것에 관점을 두고 살아간다면 장미빛 에덴동산의 환상에 싸여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달려드는 마귀와 세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핍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두 번째 관점만 가진다면 늘 극단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악하다고 늘 불평하며 적대적인 태도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교회 밖의 모든 것 예컨대 하나님께서 인류 복지를 위해 일반 은총으로 주신 권력, 돈, 지식, 성 등은 다 부정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자고 말하면 곧 세상 지식을 앞세운다고 비난하며 세상의 통치자들은 모두 사단의 하수인이라고 말 한다. 상품이나 증권이 거래되는 시장도 도둑의 소굴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곳에 가까이 해서도 안되고 또 그러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 한다. 이에 세상과 평안히 지낼 수 있는 문제들에서도 괜한 충돌을 일으키게 되며 세상에서 스스로 소외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누구의 시각으로 볼 것인가? 세상을 보는 시각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나’의 시각이요. 다음은 ‘사람들’ 의 시각이며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각이다. ‘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어떤 상항에서도 내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시각을 가진 이들은 사물이나 사건을 볼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고민 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사람들이 본다면 뭐라고 할까? 이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좋아 보일까? 이렇듯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주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도와 반응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대다수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거나 혹 힘을 가진 사람들이 강압적으로 요구한다 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절대로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살려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 필자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 한다.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악에 대해 그 기준이 달라야한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눈을 기준으로 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눈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악한 일을 해도 사람의 눈에만 드러나지 않으면 된다고 하여 마음대로 행동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매사에 조심하고 거룩하게 살아야한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은 선행에 대해서도 그 기준이 달라야한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눈을 기준으로 하기에 사람들이 알아주는 한도에서만 선행을 하려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기에 어디서든 은밀하게 선행을 해야 한다. 고로 세상 사람들처럼 옅은 눈을 기준으로 일희일비 하는 얄팍한 삶을 살아갈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소극적으로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처럼 세상을 품고 살아야 할 것이다. 곧 죄악 된 세상을 미워하면서도 주 안에서 그런 세상을 사랑할 수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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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세상 보기와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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