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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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선교사로 활동한 한 여선교사가 중보기도에 대하여 이런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교활동 당시 중국은 공산화되었고 그녀가 거주하던 작은 마을에도 공산군이 들어왔다. 선교사들은 감금된 채 식량과 의료 혜택이 끊기고 우편물마저 차단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다. 그들은 다만 하나님의 도움만을 바랄 뿐이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선교사들을 억압하고 제한했던 많은 규제와 제한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식량과 의료혜택이 재개되고 공산군들도 선교사들을 호의적으로 대하였다. 또 선교사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도 허락되었다. 선교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온 한참 후 그들은 오하이오에 있는 한 작은 교회의 성도들이 사랑하는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며칠 밤을 세워가며 철야 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하이오의 교인들이 밤을 세워가며 기도할 때가 중국에서는 아침이었으며 바로 그때부터 선교사들의 모든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하이오의 교인들이 선교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했듯 지금 이 땅의 성도들도 민족을 위한 중보 기도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보자의 기도를 생각해 보자. 중보자란 쉽게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서로 분리된 존재들을 연결시켜 주거나 조정해 주는 것을 말 한다. 한 예로 공인 중개사는 부동산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을 연결해 준다. 서로의 이해가 엇갈릴 때는 공정한 입장에서 서로 유익이 되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하찮게 보이지만 참 중요한 일이다. 중개사가 없다면 파는 자와 사는 자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공인 중개사만이 할 수 있다. 중보기도란 전능하신 하나님께 어떤 사람을 연결해 주고 부탁드리는 일이다. 즉 누군가에게 잘못과 실수가 있을 때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주고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대신 간구하여 얻게 해주는 행위인 것이다. 이런 일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권세를 얻은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다. 성경에서 ‘중보자’(Mediatdr)란 범죄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의 단절 관계를 이어주는 이를 가리킨다. 물론 성경은 참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라고 선언하고 있다.(딤전2:5) 모든 그리스도인도 완전치는 않지만 일면 중보자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창18:22~33), 모세(민14:11~20) 욥(욥42:7~9), 아모스(암7:1~6) 등 중보자의 역할을 잘 감당했던 신앙 위인들이 많다. 이러한 기도의 능력을 알았기에 바울은  중보 기도를 권면하였다.(딤전2:1~2, 엡6:18, 살후3:1) 이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에 직면한 악한 이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려 할 때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호소할 중보자를 요구 하신다.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불신자들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야한다. 멸망으로 치닫는 어두운 이 세상의 죄악을 사하여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하며 세상을 향하여는 하나님 사랑과 공의를 선포하며 더욱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강력히 선포하여 그들로 죄악에서 돌이키도록 요구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종말의 때에 죄악 된 세상과 멸망당할 불신자들을 위해 눈물 흘려 중보하는 기도를 귀히 여기실 것이다. 고로 중보기도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이자 특권인 중보 기도에 열심을 냄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만천하에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간구한다. 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기쁘게 들으시지 않으실 것이다. 혹시 기도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간구라면 돌이켜야 한다. 먼저 이웃을 위하여 간구해야한다. 믿음이 연약한 이웃을 위해, 육신이 병들거나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 간구해야 한다. 참된 기도는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성장시키지만 잘못된 기도는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자신까지도 망하게 한다. 종교 개혁의 선두 마차 마틴 루터는 ‘남을 위해 드리는 중보 기도는 우리를 파멸시키는 이기주의의 속임에서부터 우리를 정화시켜 줄 수 있다’고 말했고 또 기도의 거성 에즈라 바운즈도 ‘타인을 위해 중보 기도한다는 것은 고귀한 영혼과 순결하고 고상한 동기와 이타적인 마음과 열렬한 정신과 신성한 기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실로 서로를 위한 기도야말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귀중한 방편이 됨은 물론이다. 우리가 주안에서 한 몸이라는 사실을 그 무엇보다도 깊이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고로 성도들은 기도 제목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뿐만 아니라 또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하자. 중보기도에는 하나님의 역사함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의 부자나 권력자들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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