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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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성서 번역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을 앞당기게 했다는 주장에 당장 고개를 끄덕여 줄 이가 있다면, 그는 남달리 깊은 영성을 지녔거나,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를 둘러싸고 있던 당시 러시아의 속사정을 소상히 연구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죽음은 상당한 신비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운명한 것은 1881년 1월 28일 오후 8시경. 쉰아홉 해의 파란 많았던 생을 마감한 것이다. 사인은 폐동맥파열로 진단되었고, 그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아내와 친구들이 그의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평범해 보이는 그의 임종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는 사건으로 기억되는 데에는 이상하게도 러시아의 문인들 중에는 평안하게 제명을 살다간 이들이 많지 않았다는 징크스가 한 몫하고 있다.
푸시킨과 레르몬토프는 결투로 죽었고, 고골과 가르신은 미쳐서 죽었다. 가출해서 죽은 톨스토이는 그렇다 치고, 자살한 문인들이 있는가하면 숙청되어 처형된 이도 있는 터에, 59세의 나이이긴 해도 가족과 친지가 지켜보는 병상에서 조용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받은 최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작품에서 남달리 등장인물들의 최후를 비정상적으로 엮어갔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정작 자신은 평온한 죽음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어떤 인과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문호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각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가 죽기 13시간 전, 우연이라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나 미스터리한일이 있었다. 오전 7시경, 문호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곁에 있는 아내 안나 에게 겨우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오늘은 죽을 것 같아요.”하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의 만년에 자주 그랬던 것처럼, 성경으로 점을 치겠노라고 했다.  아내는 손때로 찌들은 낡은 성경을 그의 머리맡에 갖다 놓는다. 그 성경은 30년 전, 청년 도스토예프스키가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죄수로 시베리아로 호송되는 도중 드보리스크에서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의 아내들이 건네준 바로 그 성경. 1823년판 러시아어 역 <신약성경>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손을 뻗어 책갈피를 넘겼다. 펼쳐진 쪽은 마태복음 3장 끝 부분에서 4장에 걸쳐 있었다. 성경 점을 칠 때에는 펼쳐진 왼편 쪽 위쪽에서 훑어 최초로 나타나는 “예수의 말씀”을 점괘로 쓰게 되어 있었다. 그가 받은 점괘는 <마태복음> 3장 14-15절로, 세례요한이 예수로부터 세례 요청을 받고 사양하는 바로 그 구절이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안나가 여기까지 읽자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만 읽으라는 눈짓을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지금은 말리지 말라. 즉 내가 죽는 다는 뜻이지...” (러시아역에서는 “허락하라”를 “말리지 말라”로 번역하고 있다.)
우리말 역본이나 영어역본에서는 “지금은 말리지 말라”라는 번역은 찾아볼 수 없다. 대체로 “이제 허락하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인 것은, 러시아판 신약성서 모두가 그렇게 번역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교롭게도 유독 1823년판에서만 그 구절이 그렇게 번역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죽음을 앞 둔 문호가 성경 점을 친 성경책이 1823년 판이 아니었다면 그의 죽음은 연장될 수 있었을까? 사후에 그의 장서목록을 검토해본 결과 그에게는 1862년 이후의 개정판을 포함해서 여러 종류의 성서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 되고 있다. 만약 다른 책으로 점을 쳤다면, 그래서 “말리지 말라” 가 아니라 “허락하라”로 읽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은 적어도 수년간 연장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까. 그랬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애독자들이 그렇게 아쉬워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도 써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안나 부인이 <회상록>에 기록하고 있는 이 일화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바로 그 성경을 준 폰 비지나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써 보낸 적이 있었다. “설사 진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다할지라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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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가 죽기 직전에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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