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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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가 유난히 가부장적 체취를 풍기기 때문일까,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프로테스탄트들은 야고보서를 한 옆으로 밀쳐놓기를 아쉬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야고보의 경고가 바로 “나” 혹은 “우리”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 그의 말에 귀를 닫아버렸으면서도, 어쭙잖은 신학을 내걸어 자위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하고 뉘우칠 수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일 것이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야고보서 3:1) 이 글을 앞에 하고서도 고개를 처들 수 있는 설교꾼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것은 분명하다.   
휴머니즘이란 말은 흔히 인간적이란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됨됨이가 넉넉해서 밥이라도 잘 살라치면 “그 사람 인간적이다.” 하고 말해주는 것처럼. 그러나 휴머니즘은 그런 차원의 말은 아니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 휴머니즘이란 단어가 인간애를 가리키는 필란트로피스(Philanthropists)와 구별되어 쓰이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휴머니즘이 필란트로피스보다 상위개념이라고 한다면 어폐가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은 “휴머니즘”이 있고서야 “필란트로피스”도 성립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자신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짐승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곧 휴머니즘이었기에. 동물들을 이기기 위해서 할 수 있던 일은 기껏 주술행위뿐이었던 원시인이, 스스로의 지혜와 전술과 의사소통을 통해서 짐승을 극복할 수 있게 된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이 곧 휴머니즘이었던 것이다. 한 때는 동물을 그들의 조상으로, 심지어는 신으로 섬기기도 했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조령동물신(祖靈動物神)으로부터 탈피하여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 되었고, 그 바탕이 곧 “말(로고스)”이라 믿었던 것이다.    
조령동물신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은 이제 인간의 모습을 띈 신을 발명해낸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만들어 놓은 신상들은 한결 같이 실제 인간보다 크고 아름답고 힘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신들에게 성격을 설정해주고 걸 맞는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로고스였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어온 히브리 그리스도교의 전통이 “로고스가 참 사람이 되었다”하고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문화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말(로고스)”이 너무 경박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 그리스도교회의 강단에서 난무하고 있는 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한탄을 들어온 지가 이미 오래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대언은 고사하고 제대로 휴머니즘의 차원이라도 유지해주었으면 하는 느낌을 어찌하랴!     
야고보는 말의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3:5) 말의 피해도 엄청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여가며.  
바벨탑이 무엇이던가. 한 무리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여겨, 그들이 생각  대로 사상의 통일을 이루려고 기술력과 경제력을 총동원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마땅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바벨탑은 흉한 몰골을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지는 가 싶었다. 그러나 악마는 그냥 주저앉으려 하지 않았다. 중세의 가톨릭교회와 소련의 공산주의자와 독일의 나치스가 바벨탑의 흉내를 내었다. 오늘에도 많은 세력들이 그 유혹을 물리치려 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야고보의 충고는 날카로우면서도 모든 사정을 헤아려 품고 있는 경구이다.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하는 경구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야고보는 “여러분이 아는 대로”라는 부사절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야고보서 3장 2절: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충고는 이어진다. “여러분의 마음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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