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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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읽다 보면 욥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시험을 받았지만 믿음으로 너끈히 승리하는 삶 말입니다. 인간은 역경을 극복할 때 더 멋있는 것 같습니다. 베토벤도 귀머거리를 극복하였을 때 그 유명한 「심포니 5번」이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고뇌를 뚫고 오르는 환희가 담긴 음률 말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다 가난을 겪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지하 자원이 적고 산이 많은 땅덩어리와 숱한 가뭄과 홍수로 인하여, 선조들이 보릿고개를 누구나 겪지 않았습니까?
필 자도 대학 시절 가난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대의 겨울은 지금 생각하면 매우 추웠던 것 같습니다. 1970년대에는 연탄 보일러를 놓는 것도 돈이 든다고 해서 구들장이 있는 방 안에서 창호지 틈으로 들어오는 외풍으로 인해 두꺼운 스웨터를 껴입고 견뎌야 하였지요. 저희 집은 성냥갑 같은 이층이었는데, 그나마 이층은 마룻바닥이었습니다. 나의 방은 그 이층에 있었는데, 석유 파동이 있던 때인지라  석유 난로를 피우는 것도 망설여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구들장이 있는 아래층의 좁은 방 안에서 아랫목에 이불을 펴고 둘러앉아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곤 하였지요. 그때 나의 아버지는 42년간의 교직 생활로 마련한 퇴직금을 사기꾼에게 다 날렸습니다. 찬 바람과 함께 집안에 갑자기 가난이 몰려왔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물려 준 낡은 시계와 혁대를 몸에 지니고 학교에 가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시계는 시계줄 도금이 벗겨져 있을 정도로 낡았으며, 혁대는 가죽 껍질이 벗겨져 흉측해 보이기까지 하였지요.
 가 끔 대학에서 치러지는 학술 경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나는 형에게서 양복을 빌려 입어야 했습니다. 나는 178센티미터의 키인 몸매에 172센티미터 키인 형의 양복을 억지로 꿰맞춰 입고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친구들은 양복이 너무 작아 찰리 채플린 같다며 차라리 잠바를 그냥 걸치고 나오지 그랬냐고 귀띔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에게 옷이 없다는 것을 안 누님이 독일에서 청바지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바지는 여자용이어서 나에게 너무 작았습니다. 의류 공장을 운영하는 선배에게 물어 보았더니, 여자 청바지는 남성용에 비하여 가랑이 높이를 2.5인치 더 높인다네요. 그러니 독일에서 온 청바지를 입은 탓에 나의 거시기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어떨 때는 너무 거시기의 동그란 부분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였지만, 새 옷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정 교사 생활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지요. ‘이러다가 애도 생산하지 못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가끔 들었지만, 참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대학 4년은 그 때문에 매우 아프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이 제 와서 생각하여 보니 그 가난은 나에게 역동적인 의지를 심어 준 것 같습니다. 필자가 오늘날 진정성 있는 평론가로 평가받게 된 것도 그 시절 가난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련과 역경은 그것을 극복하는 강한 정신적 에너지를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친 광야 생활을 거쳐 ‘가나안’이라는 이상향에 가 닿을 수 있었지요. 그때 모세라는 지도자의 지도력이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데 한 몫을 하였지요. 그 모세도 광야에서 목동 생활이라는 단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였지요.
우 리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험난한 역경을 거쳐 온 것 같습니다. 7,80년대에는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는 말씀과 같은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철학이 맞아떨어져 교회 부흥과 고도 경제 성장이라는 동반 성장이 가능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와 함께 교회 부흥이 일어난 것은 순전히 가난이라는 역경을 극복하겠다는 성도들의 믿음과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요즈음 큰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요즘 성가대에서 찬양을 열정을 다하여 부릅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주님께 기도하여 봅니다. “하나님, 저 예뻐요?” 그러면 주님이 대답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어려운 시절 가난을 극복한 너를 내가 잘 안다. 애썼다.’
한 해가 또 시작됩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푸른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 되면 결실의 열매를 맺고 겨울이 오면 흰 눈의 축복을 받는 한 해가 또 시작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지요. 이와 같은 계절의 순환과 인간의 생로병사가 다 하나님의 계획하에 전개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주님이 동행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에게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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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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