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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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적에 성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며 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문학 작품에 나타난 성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은 종족을 보존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관련된 긍정적인 면도 있고, 너무 국부적인 자극에 빠져들게 하는 부정적인 면도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2장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보면, 성은 하나님이 부부에게 부여한 창조의 질서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누가복음> 7:38)어도 이를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 릴 적에 나는 성에 대하여 편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집안에 대대로 내려온 가풍 운운하며 ‘중매 결혼’이라는 규범을 지켜 달라고 자식들에게 주문하였습니다. 나는 막내이고 어머니 말씀에 잘 순종하는 편이라 이 규범을 지지하였고, 나중에 장성하여 결혼도 중매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서서히 연애 바람이 사회에 불던 때인지라, 형이나 누나 들은 이 규범을 잘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
한 번은 혼자서 집을 보고 있는데 나의 누나인 H가 남자 친구인 M을 집에 데려왔습니다. 누나는 대문을 들어서더니 대뜸 날더러 번데기를 오원 어치 사 오라는 겁니다. 나는 형들의 연애를 익히 보아 왔던 터라, 내가 심부름을 다녀오는 동안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약간 짐작이 갔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어머니는 H가 남자 친구와 영화 구경을 간다고 하면 나를 딸려 보냈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에 나름대로 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누나에게 남자가 수작을 못 하게 하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 런데 H는 M을 데리고 집 안에 들어서더니, 대뜸 날더러 번데기를 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골목의 끝을 지나서 큰길가에서 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누나가 나 없는 사이에 ‘수상한 일(?)’을 벌일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에게 밀려 왔습니다. 시장 가까운 골목 안의 번데기 장수도 있는데, 그보다 먼 데서 사 오라는 누나가 나 없는 사이에 내가 상상하기 싫어할 행동을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땀까지 흘리며 뛰다시피하며 사 왔더니, H는 “으음. 빨리 갔다 왔네. 근데 번데기가 너무 조금이다. 가서 더 달라고 해라.”며 다시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누나에게 직접 대 놓고 “누나, 다른 때는 그러지 않더니 왜 그래?”하고 물어볼 수도 없고 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쏜살같이 번데기 장수에게 달려갔습니다. “누나가 이거 적다고 더 달래요.” 그랬더니 번데기 장수는  제대로 줬다고 하고 나는 빨리 번데기를 더 받아 누나한테 칭찬받아야 하는데 안 되어서 답답해 하는 사이, 옆에 있던 복덕방 영감이 “거, 아이가 더 달라고 하는데 더 주시지요.” 하는 바람에 번데기 한 숟갈을 더 얻어서 갖다 줬더니, 누나는 그제서야 M과 툇마루에 앉아 해해거렸습니다. 나는 누나가 왜 심부름 시간을 길게 잡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하였습니다.
세 월이 흘러 나도 성담론을 연구할 정도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성담론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시행착오를 겪은 적도 있었습니다. 한때 인터넷 카페에 <탁구 삼국지>를 재미있게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얘기가 너무 재미있다고 동호회원들이 우리집에 놀러온 적이 있지요. 달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가 무르익고 동호회장이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 정박사. 직장 끝나고 밤에 작업하실 때 힘드실텐데, 좀 길게 쓰세요.
이 말에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남의 부부 관계까지 밝히고 그러나?’ 나는 기분 나빠서 내내 말을 하지 않으니까 회원들이 슬슬 내 눈치를 보면서 일어섰습니다. 그래도 나는 확인할 것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대문간에서 동호회장에게 귓속말로 말했습니다.
- 아니. 남의 부부 관계까지 회식 자리에서 밝히고 그래요?
그러자 회장은 눈늘 멀건히 뜨고 한참 생각하더니, 말하였습니다.
-아하, 밤에 작업한다는 얘기요? 그건 그런 뜻이 아닌데, 정박사의 탁구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는데 짧으니 작업할 때 힘들더라도 길게 써 달라는 얘기였는데요?
그제서야 나는 회장의 얘기가 부부 관계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 는 이 사건 이후로 회개를 많이 하였습니다. 내가 너무 성담론에 심취하다 보니까 사소한 일도 성과 관련시키는 우를 범한다 싶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성담론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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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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