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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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건축가가 여행 중에 본 아름다운 건물들을 모두 종합하여 자신이 살 집을 한 채 지었다. 그 집은 화려한 바로크식 건축 양식을 최대한 모방 했고 실내는 규모 있고 다양하게 꾸며 동양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한마디로 그 건축가가 희망해온 아름다운 집이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집이었다. 마침내 온 가족이 꿈에 그리던 ‘궁전’ 으로 이사하였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들이 누린 기쁨도 잠시 뿐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별 다른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불행의 먹구름은 점점 더 짙어만 가 아내의 죽음에 연이어 그의 두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끔찍한 일을 당하자 그는 으리으리한 그 집이 무서워졌고 하루 빨리 그 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는 집을 헐 값에 팔았고 그 곳엔 다른 사람이 이사 와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집에 이사와 살던 사람들도 하나, 둘.. 분명한 이유도 없이 싸늘한 시체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건물이 세워진지 7년 동안 여러 구의 시체가 나온 것. 7년 채 되던 해 당시 집주인이 관계기관에 의뢰하여 사인을 규명한 결과 건물 밑을 흐르는 하수구에서 새어나온 독이 그 집의 벽으로 스며들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이유로 그 집에 기거하던 사람들이 죽어갔던 것이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명예와 권세와 재물과 쾌락의 달콤한 죄악의 독을 마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죄에 대해 일종의 불감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죄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은듯하다. 언제나 자신을 속이고 그럴듯한 핑계를 찾으려 한다. 이 정도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죄는 아니라고 여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는 좋은 말씀도 많지만 기독교와 교회 자체에는 왠지 거부감이 든다’ 그리고 그 이유라는 것이 지금까지 법 잘 지키고 별다른 문제 없이 사는 자기들을 향해 항상 죄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죄를 짓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 죄 없는 사람들은 모두 교도소에 있다’ 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법은 도덕의 최소 부분만을 요약해 놓은 것일 뿐이다. 사람의 양심도 완전한 것 같지만 실상 그 사람이 속한 문화와 그가 가진 생각이나 지식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고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또 사람에게는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본능이 있어서 아무리 자기가 큰 죄와 실수를 저질러도 얼마든지 이유를 들어 합리화시킬 수 있다. 때문에 사람의 법이나 양심, 혹은 자기 생각에 비추어 볼 때 옳은 것조차도 결코 완전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무리 법과 양심, 혹은 자기 생각에 비추어 옳은 것조차도 결코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처럼 인간의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기준에 비추어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으로 교만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의를 완전하게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임을 기억하며 그분의 앞에서 부지중이나 무심중에 짓는 죄를 깨닫고 자복하고 회개하여야 한다.
17세기의 유명한 화가였던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이다. 렘브란트는 네델란드에서 출생했다. 그는 루벤스와 함께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대가로 어린 시절부터 그 명성이 높았다. 그의 그림을 사기 위해 전 유럽의 귀족과 부호들이 암스테르담으로 모여들었다. 그에게는 넘치는 부와 사랑스러운 아내 그리고 샘솟는 재능이 있었다. 부러울 것이 없는 그는 사치와 방탕이라는 덫에 너무도 쉽게 걸렸다. 이런 그를 경건한 프로테스탄트인 처갓집 사람들이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렘브란트는 이런 사실을 알고 처갓집 식구들을 조롱할 목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한 탕자라는 그림을 그렸다. 피아노를 앞에 두고 그의 무릎 위에 않은 아내와 그림 밖을 향해 와인 잔을 치켜들며 건배를 제의하는 렘브란트의 모습은 탕자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오래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사치와 방탕으로 인해 많은 재산을 다 날리고 아내도 일찍 죽었다. 인기가 떨어져 그의 그림을 원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뿐이었다. 렘브란트는 말년의 죽음을 앞두고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붓을 들었다. 그리고 그 자신을 모델로 ‘돌아온 탕자’를 그렸다(눅 15:20).
탕자의 모습을 보자. 허름한 옷을 입은 앙상하게 마른 청년이 무릎을 꿇고 한 노인의 품에 안겨 있다. 안고 있는 아버지는 아들을 향한 오랜 기다림에 얼굴 가득 주름살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눈은 아들을 다시 찾은 희열과 아들의 비참한 모습으로 인한 안쓰러움이 교차되어 있다. 또한 아들만큼이나 앙상하게 마른 노인의 손은 고생으로 군데군데 빠져버린 아들의 짧은 머리를 꼭 안고 있다. 마치 이제 다시는 빼앗기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단을 보여주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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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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