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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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에 형들이 신문에 난 한 고등 학생의 주검을 보고 분노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그때의 정황을 들여다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에 분노한 마산의 학생?시민들은 부정 선거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하였습니다. 경찰이 폭력으로 탄압하자 잘 조직되지 못한 시위는 곧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러나 4월 11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당시 마산 상고 1년, 17세)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민중의 분노는 다시 폭발하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마산 시위를 “공산당이 들어와 뒤에서 조종한 혐의가 있다”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저항이 누그러들지 않자 이승만 정권은 정치 깡패를 동원하여 4월 18일 평화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는 고려대 학생들을 구타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쟁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전 날의 테러에 분노한 서울의 학생·시민들은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웠고, 분노한 시민들은 마침내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몰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경찰은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피의 화요일’을 만들었습니다. 그 뒤 항쟁은 부정 선거 반대를 넘어 이승만 퇴진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혁명은 학생과 시민 들이 광복 후 한국 사회에 쌓여온 모순에 맞서 싸운 것이기 때문에 독재 정권의 타도에 그치지 않고 민주?자주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어릴 적 보았던 형들의 분노를 돌이켜 보면 나는 개인에게도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인에게는 불의에 저항하는 양심이 있는 것이지요. 그 양심은 언제나 인간 심리에 놓여 있다가 진리에 어긋난다 싶으면 가차없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지요.
내가 직장을 처음 잡았던 80년대 초에 옆 자리에 있던 동료인 E가 갑자기 짐을 싸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다른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냐고 E에게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수그린 채 “개인 사정 때문”이라는 짤막한 말만 남긴 채 떠나갔습니다. 몇 개월 후 나는 그가 직장을 떠난 것이 자의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군부 권력이 정권을 잡고 있을 무렵에 그는 회식이 끝나고 택시를 타고 가다가 당시 정권의 위선을 비판하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었던 운전수가 모범 운전사 자격이 되는 상점을 받기 위해 그대로 S경찰서에 신고하는 바람에, E는 그만 안정된 직장을 잃고 말았던 것이지요. 물론 E의 술주정이 섞이긴 했겠지요. 그러나 사석에서 말한 것까지 통제를 하는 권력을 보고 나는 개인에게도 힘이 있어야겠다는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 가운데 하나가 불의에 저항하는 양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남북 투쟁 시대에 유다 왕국의 아사왕 이야기는 나의 양심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비야의 아들인 아사왕은 41년간 유다 왕국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한때 그의 어머니의 우상 숭배를 꾸짖고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들을 찍어 불사를 정도로, 여호와 앞에서 온전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는 58만 명의 군대로 100만 명의 세라 군대를 물리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전략을 폈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 전략이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의 성전으로 예배 드리러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국경에 라마성을 건축하려 하자, 이스라엘 후방에 있는 아람왕에게 뇌물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공격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 전략의 성공으로 아사왕은 라마성에 있던 건축 재료들을 가져다가 자신의 나라에 게바와 미스바 두 성을 건축하였습니다(<역대하> 16:6). 이는 외교 정책으로 보면 아주 멋진 세상 지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하나니가 아사왕을 찾아가 책망합니다. 하나니의 책망은 이렇습니다. 아사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서 이스라엘의 바아사를 이기고 다메섹까지 영토를 넓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 세상 지혜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의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계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이것 또한 개인에게도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의 진리가 있습니다. 외딴 섬의 기암 절벽에서 자라나는 풍란의 기氣가 있는가 하면, 시멘트 바닥의 틈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이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가 있는가 하면, 개로 태어난 동물도 있습니다. 연안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심해에서만 사는 물고기도 있습니다. 존재나 사물마다 살아가는 이치가 있는 게지요.이 가운데서 인간이 살 맛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정情이 진리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정이 지구 곳곳에 듬뿍 자라 누구나 행복을 누리는 삶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시골에 가면 평상에 앉아 나그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노인의 정, 직장 생활의 노고를 위로해 주는 직장 동료의 정, 아름다운 세계를 가꾸어 나가는 작가의 정들이 만나 평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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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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