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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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필자의 나이도 어느새 노년에 접어들었네요. 거울을 보면 주름살이 늘고 얼굴이 까칠한 것이 노년티가 확연히 납니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인데, 세월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가네요. 그나마 안정된 주거 공간에서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젊은 시절 절약 탓이 아닌가 합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젊은 시절 고생이 노년이 되니 보약이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고교 동창들을 만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하는데 로마 병정 머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희 부부는 맞벌이였습니다. 더구나 아내가 지방으로 전근을 가면 주말 부부가 되어야 하였지요. 내 나이 삼십 대에 부부간에 떨어져 지낸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부부 사이의 정情은 사랑의 욕망을 불태우지요.
어떤 날은 저녁 10시가 넘자 아내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더군요. “보고 싶다. 나 오늘 밤 당신을 보러 가야겠다.” 그리고 차를 몰아 원주에 있는 아내에게로 향하였습니다. 한겨울이라 차창 밖으로 세찬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고, 차도 강풍에 약간 흔들렸습니다. 톨게이트를 벗어나기 전에 날씨가 염려되어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집안의 따뜻한 아랫목을 생각하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제쳐 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갈까 말까를 반복하다가 그냥 속도를 내기로 하였습니다. 문막 근처를 지나는데 달빛에 하얀 것이 어른거리데요. 시속 140킬로미터 속도를 줄이려 하였으나, 이미 빙판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가 미끄러져 다리 난간에 거의 닿을 뻔하였습니다. 헤트라이트를 끄고 창밖을 바라보니, 다리 아래로는 수십 미터가 넘는 낭떠러지였습니다. ‘야 이거, 삶과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로구나.’ 조금만 더 차도를 벗어났더라면, ‘아내를 그리워하여 시속 140킬로로 차를 몰던 남자, 강물 위로 추락하다’란 기사가 날 뻔하였습니다. 그제서야 몽롱한 상태에서 벗어나 조심스럽게 차를 몰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간호 장교.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위병소에 도착하니 시계는 12시를 훌쩍 넘었습니다. 위병에게 늦게 온 이유를 구차하게 늘어 놓고 아내를 호출하였습니다. 아내가 부시시한 눈으로 병원 문을 나서면서 좀 일찍 올 것이지 밤중에 웬일이냐며 하품을 하네요. 머리만 긁적이다가 모텔로 향하는데, 그 날 따라 대학 수능 시험 전 날이라 모텔마다 방이 없다네요. 할 수 없이 찾고 찾다가 시내 변두리의 욕실도 따로 없는 여인숙에 여장을 풀었는데, 아내는 샤워도 제대로 못했다고 투덜대데요. 부랴부랴 부부간의 사랑을 하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새벽에 차를 모는데, 전 날 밤 죽을 뻔했던 다리를 지날 때는 운전을 하면서도 내 목을 만져 보게 되었지요.
주말이 되어 아내가 집에 와서는 갑자기 내 머리를 깎아 주겠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절약해야 나중에 조금 우둔한 우리 아이가 컸을 때 과외비라도 더 보탠다는 겁니다. 할 수 없이 파란 보자기 위에 고개를 내밀었더니, 아내가 여학생 단발 머리처럼 머릿결 끝 부분만 겅둥겅둥 자르데요. 속으로 아내의 검약 정신에 감탄하며 월요일에 출근을 하는데, 버스에서 내 뒷자리에 앉은 여학생들이 깔깔대며 웃으면서 “로마 병정 머리다.”라며 킬킬거렸습니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는데, 동료들이 내 옆을 지나면서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였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옆자리에 앉은 동료에게 물었더니, “정선생. 거울을 좀 봐요. 정선생 머리가 꼭 로마 병정 머리 같애.” 그러면서 클클클 웃어댔습니다.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 가서 내 옆모습을 보니 ‘로마 병정’ 얘기가 나올 법도 하였습니다.
엊그제 미국에 간 딸아이가 사위 머리칼을 깎아 놓고는 그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딸아이의 손재주가 있어서인지 머리 밑부분을 면도기로 돌려 깎은 흔적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딸아이가 어떻게 가족 이발까지 생각하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여 보니, 우리 부부의 절약 정신을 닮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우리 부부는 나의 박사과정 학비를 대느라고 절약을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마트에 들렸더니 평소에 칠천 원 하는 수박이 조금 작다고 삼천 원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수박 한 통을 사서 들고 거실에 갖다 놓았더니, 아들 놈은 그걸 처음 보았던지 축구공인 줄 알고 발로 차면서 축구 놀이를 하였습니다. 그걸 보고 킬킬거리며 웃고 있는데, 조금 있다가 아내가 수박 한 통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거실에 놓여 있는 수박을 보더니 아내가 대뜸 나에게 물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이거 얼마 주고 샀어요?” “삼천 원.” 그러자 아내가 “나도 이거, 삼천원 주고 샀는데, 우리 부부는 왜 이렇게 검약하는데 선수지.” 하면서 하하 호호 웃는 것이었습니다. 절약하는 습관은 가족끼리 서로 닮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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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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