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09(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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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가톨릭의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가운데에 의전용 차량을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의논이 많았다. 마지막에 가서는 모 회사의 S 차량이 낙점 되어서, 사람들은 정말 그분이, 우리 평민들이 타고 다니는 차를 타는 줄로만 아는 이들이 많았다. 국가적 이득과 한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 차량을 의전용 차량으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익이 되었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들은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지만 성직자들이라고 한다면 생각이 많이 달라지리라는 판단이 든다.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 처사가 일반 신도들의 눈을 가린, 깊은 신앙심을 이끌어내는 일에는 실패를 야기하진 않았는지......,
의전용으로 특별하게 제작되어 나온 차량은 세계 유일한 고가품으로, 말이 소형차이지 결코 소형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명예와 국가적인 위엄에 걸맞게 특수하게 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용이라하면 아마도 이 세상에 가장 고가인 차량과 맞먹는 인력과 기술과 시간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마차를 타는데, 전통적으로 세상에서 유일한 고가의 비용을 들인 의전용 차량을 탔다면, 아마도 전통을 따르느라고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허지만 오늘의 종교가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의전과 전례에 숨어버린 후로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드리질 못하였다. 오히려 세속적인 인기와 권력과 명예심에 고양되어서 본래의 자리를 떠나버린, 예수를 못 박아서 십자가에 매어단 그 당시의 사제들과 다르지 않게 된 것이다.
영국에서 오랜 동안에 지구촌의 수많은 신도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존 스토트 신부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그가 떠나기에 앞서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유작이 있는데, 그의 평생의 삶과 신학과 믿음을 대변하는 글들이 간단하게 압축되어져 있다. 우리말로는 ‘제자도’라고 번역되었으나, 원제는 “The Radical Disciple”이다. 이 책은 마치 영국인의 신앙심을 구원선에 비유한다면, 마치 배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추와 같은 느낌을 같게 된다. 지난 20세기의 영국인들의 삶을 안전하게 인도해준 거대한 균형 잡힌 크루즈 선이라고 할까나?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누구나 안전감과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2차 대전에서 영국이 독일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외적 요인 보다는 저들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차이 때문이란 것이었다. 존 스토트가 말하는 교회란, 거친 바다에서 맥없이 넘어져 침몰한 세월호 같은 류의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인가 분당의 W 교회의 목사님이 이웃교회의 헌신예배에 오셨는데, 간편한 차를 몰고 들어오는 것을 청년들이 보고서는, 다들 ‘역시 저러니까......,’ 하였다는 소릴 들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몸집을 너무나 키웠다. 아무도 우리 교회가 이렇게 커질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갑작스레 커지는 바람에 아무도 이 사이즈와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설계를 하질 못하였다. 세월호를 제작하고 운행하는 책임자들이 오로지 돈에만 마음을 빼앗겼던 것처럼, 우리는 사람들이 운집하여 밀려들어오는 것만 좋아하였다. 한국교회는 이만한 구원선을 운행할 수 있는 항해도나 엔진이나 운영진이 부재하다. 크루즈 선을 운행하는 책임자라면 당장에 내릴 수 있는 조치란 무엇일까?
아마도 세월호의 사고 기록과 전복의 요인들에서도 밝혀진 바와 같이, 무게 중심에 맞추어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인원과 물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어네스트 섀클턴이 남극 탐험 중에, 배가 부빙에 갇혀서 깨어지자, 모든 승무원들이 탐험대장 섀클턴의 지시에 따라서 ‘인듀어런스호’를 버리고 하선한다. 감당할 수 있는 짐만을 갖추고는 미련 없이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게 되는데, 살아서 돌아오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우리 한국교회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 하는 교회와 고향을 버리고, 심지어는 가족들마저도 챙기질 못하고 야반도주하다시피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가족들이 흩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먹고 잠자고 입을 것도 없어서 사경을 헤매었으나, 그 때 살아남은 신앙인들은 다시금 조국과 교회를 일으킬 수 있었다. 바울이 금고상태에서 로마로 가는 배에서 하던 말을 기억해야 한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바다에 버리고, 배도 버려야 한다.” 그 후 저들은 살아서 로마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살리려는 의지가 있다면, 시간적으로 선택권이 많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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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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