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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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어느 때 보다 웰빙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른 아침 새벽 기도를 마치고 가까운 산이나 공원을 가보면 나보다 일찍 운동하러온 사람들로 언제나 만원이다. 생활체육을 하는 팀이며 축구팀 또는 단호흡 파룬궁 신자들이 단체로 모여 기를 묵상하는 모습들은 한편 신선하게도 보였다. 모두가 웰빙 시대의 단면을 보게 된다.
잠시 있다 사라질 육체의 건강을 위해 저렇게 이른 아침 공원에 나와 자기의 체질에 맞는 운동을 하는데 영원히 살아야 할 영혼을 위한 웰빙은 없을까?
뒤로 걷는 분이며 뚱뚱한 몸을 풀기 위해 운동기구에 매달려 사력을 다한다. 이렇게 육체의 건강을 위해 음식을 고루 섭취하는 일과 몸에 맞는 운동으로 체중을 감소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영혼에 맞는 웰빙은 없을까?
성경 다니엘 5:22-3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벨사살을 페하심으로 바벨론이 멸망하고, 페르시아에게 나라가 넘어간 것을 알 수 있다. 벨사살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달아 보셨을 때 함량 미달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다니엘은 왕은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여전히 건재하였다고 소개한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 볼 때 함량이 충분했던 인물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당신의 저울에 달아 보신다.
어떻게 하면 존재의 무개를 더할 수 있을까? 세상의 저울은 무거울수록 무개는 더 올라가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저울은 그 반대로 비울 수록 무거워진다. 욕망과 교만을 버리면 무개는 더 무거워진다. 인간의 욕망은 본능에 의해 다스림 받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우리를 리드한다. 사자는 배가 부르면 그만 먹는 본능의 명령에 따라 영양이 코앞을 지나도 멀 둥 말 둥 쳐다보고 있어 영양이 안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그 본능 지배마저도 거부하게 하여 재벌소리 듣는 자들이 더 많이 가지겠다고 가족끼리 작전을 하듯 소송 싸움을 하는 것을 본다.
어제는 해양의 나라인 영국에서는 옛 향수를 못잊어 하던 기득권 층의 반란에 어렵게 형성된 유럽연합이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자족하는 마음이 없는 한 세상의 그 누구도 만족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 어떤 처지나 환경에서도 만족할 수 있다. 타락한 영혼은 욕망에 매달려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를 원망하며 내일을 염려하는 가운데 주어진 삶을 허비하며 불행의 나락으로 미끄러져 빠져 들어간다.
그러나 감사하는 영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축복받은 삶을 누리게 된다. 보라매공원의 운동장을 걸으며 우거진 나무의 모습을 보며 산소 공장에서 뿜어 나오는 공기를 마시니 막힌 담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하다.
비둘기들이 잔디에서 잔디 씨를 쪼아 먹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다 준비해간 빵조각을 날리니 떼를 지어 날아든다. 적은 것을 통해 비둘기들의 고맙다는 날개를 친다.
감사의 마음으로 현실을 보는 사람은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찾고 행복이란 세 잎 클로버를 찾는 자들이다. 네 잎 클로버를 찾아 이리 저리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네 잎 클로버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세 잎 클로버가 발 한가운데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돌아보면 모두가 주님의 은혜인데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움켜쥐려고 동분 서주했던 자신의 몸집이 너무 커진 것이 아닌가?
나는 교포 선교한다고 하면서 베풂의 영성보다 좀더 선교의 확장이란 명분으로 몸집을 불리려는 뚱보의 몸집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베풂으로 받는 기쁨은 받을 때보다 더 크고 더 진한 감동을 체험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나는 영혼의 무게가 얼마인가? 욕심의 무게는 줄이고 감사와 긍휼 베풂의 무게는 올려야겠다. 하나님의 저울에 나의 영혼의 몸무게와 믿음의 척도는 어떻게 비칠까? 생각하며 링주위를 도는 가운데 5바퀴를 돌았다. 영혼의 웰빙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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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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