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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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정통적인 마소라 사본이라 할지라도 본문이 손상되고, 필사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필사 과정 가운데 오류가 있어서 원 저자가 의도하지 않는 엉뚱한 번역이나 해석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사무엘상 13:1에 보면 개역 성경에서는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년에”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마소라 사본에는 “사울이 한 살에 그의 왕이 되었고, 이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되어 있다. 사울이 한 살에 왕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 필사자의 오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ESV는 “사울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는 그가... 살이었으며...”라고 번역하고 있다. 역자는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를 마소라 본문 상으로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필사자의 오류로 간주하고 그냥 빈칸으로 남겨두고 있다. 이는 어쩌면 정직한 번역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성경의 독자들은 그래도 확실한 나이를 알기를 원한다. 따라서 역본마다 각각 다른 숫자를 제의 한다. 본문에 대한 대표적인 다른 역본들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KJV “사울은 1년을 통치하고, 그리고 이스라엘을 2년 통치하였을 때에...”
ESV “사울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는 그가... 살이었으며... oo 이년 동안(... and two  years)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RSV, NAB)
LUT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 살이었고, 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 다.”
NASV “사울이 통치를 시작하였을 때 40세였고, 그는 32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NET “사울이 통치를 시작하였을 때에 30세였고,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다스렸다.”
NIV “사울을 30세에 왕이 되었으며, 42년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고대 역본 가운데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를 대부분의 칠십인역은 아예 13:1이 없거나 일부 칠십인역(LXX)은 30세, 그리고 시리아어 페쉬타 역본(Syr)은 21세로 번역하고 있다. 이를 볼 때 사무엘상 13:1은 고대로부터 본문에 대한 끊임없고 다양한 의견 제시와 토론이 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킹 제임스 역본(KJV)은 마소라 사본의 정통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필사자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보수적인 ESV, RSV, 그리고 NAB는 마소라 사본의 파손이나 오류를 인정하고, 마소라 전통에 따라 이를 수정하거나 임의로 고치지 않고 그대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루터 역본(LUT)은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공란으로 두고 다음 문장 통치 기간은 2년이라고 마소라 사본을 따르고 있다. 문제는 NASV는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를 40, NET는 42세, NIV는 30세로 번역하고 있는 점이다. NIV의 30세는 칠십인역 (LXX)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NASV과 개역한글판이 40세로 번역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엉뚱하다. 그리고 그의 통치기간에 대하여 대부분 2년으로 언급된 것은 13장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 때문이지만, 40년을 언급하는 것은 아마도 사도행전 13:21에 “그 뒤에 그들이 왕을 요구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년 동안 주시다가”라는 구절에 맞추어 사울의 재위 기간을 40년으로 마소라 본문을 수정하여 번역한 것 같다. 그러나 대한성서공회에서 발행한 한글 표준 새번역 1993년 판을 보면, 앞부분은 칠십인 역을 따라 사울은 삼십세에 왕이 되었다고 번역하고, 다음 문장은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마흔두 해가 되었을 때에”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상 13장의 사건은 사울이 72세가 되었을 때 일어난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이는 삼상 13장 본문의 상황과 맞지 않는 번역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느 번역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최초의 원본이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교회의 오랜 전통은 사울이 40세에 왕이 되었고, 그가 다스린 지 2년에 삼상 13장의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의 역자들이 이와 다른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위에서 열거한 역본들의 번역을 넘어선 새로운 것이 될 수도 없고, 또한 그러한 주장이 옳은지 확인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평신도들의 성경에 대한 혼란과 불신을 피하게 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개역성경의 번역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이와같이 전승의 과정 사운데 본문이 훼손되었거나 서기관들의 필사 과정 가운데 비의도적인 실수로 말미암은 오류가 있다. 이러한 오류를 교정하고 가능하면 원문에 가까운 독법(Reading)을 찾기 위한 본문 비평작업은 불가피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성경 번역은 역자의 신학과 신앙, 그의 활동 배경과 히브리어나 헬라어 본문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나 국어의 숙련도에 따라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번역자의 신학과 능력이 번역을 Control하고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성경 독자들은 여러 필사본과 번역본을 비교 대조하여 읽을 수 있다면 원래의 본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사본을 읽을 수 없는 경우 다양한 번역본이라도 비교하여 읽을 수 있다면 원본의 의미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번역본은 많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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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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