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땅이 아무리 넓다 해도 이렇게 넓을 수가 있으랴? 하는 마음뿐이었다. 사람들도 자이언트 족속 같아 보였고, 저들이 키우는 말마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 같았다. 이렇게 넓은 땅을 경작하려면 한 번 들에 나아가 추수를 마치기까지는 집에 들어오질 못하였다. 들판에 초막을 짓고서 모든 가족과 마을 인구가 거기서 살아야 했다. 가을걷이가 끝이 나야 비로소 마을에 들어와서 장가들고 시집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들이 넓은 마을에서는 한 마리의 소나 말로는 땅을 기경할 수 없어서 여러 마리가 한 조를 이뤄 밭을 갈아엎었다. 쟁기를 잡은 농부는 네 마리, 혹은 여덟 마리 소를 잘 다뤄야 일을 기간 내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천사들이 돌들을 각 나라에 분배하려고 보자기에 싸서 날아가다가, 한 귀를 놓쳐서 쏟아진 것인지는 몰라도, 그 땅에는 돌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이런 땅은 한 마리의 짐승으로 경작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적어도 두 마리라야 비로소 땅을 기경할 수 있다. 마태복음의 강령은 ‘너희는 먼저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다.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세우려면 사람들에게 전하고 학습시켜서 실천력을 높여야만 한다. 바로 이 책무가 제자들의 멍에였다. 유대인에게 평생 걸어야할 길이고, 목에 메고 일궈야 할 책무가 율법이었듯이, 제자들이 평생 씨를 뿌리며 추수해야할 책무는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학습시키시고 본을 보이신 ‘하나님나라의 복음’이다.멍에는 한 마리가 메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가 함께 메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강원도에서는 산이 험악해서 두 마리로 밭을 갈아야했다. 남녘에서는 두 마리로 가는 것이 번거로워 한 마리로 가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우리가 읽는 복음서의 멍에는 쌍봉 멍에이다. 적어도 두 마리로 밭을 갈려면 숙련된 소를 안에 두고, 수련 받는 소는 바깥에 세우고 밭을 간다. 여기서 안소는 예수님이시고, 바깥 소는 우리 자신일 것이다. 밭의 고랑을 고르게 맞추려면 농부의 지시나 목표 설정을 잘 알아서 인지해야 한다. 먼 산을 바라보질 않으면 밭고랑이 삐뚤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걸음도 잘 맞추고, 호흡도 맞추고, 힘도 적당하게 맞춰 갈면,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넓디넓은 밭은 모두 기경된다.
우리가 예수님과 목표 설정이 같고, 예수님과 스텝을 잘 맞추면 일하기가 상당히 수월하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힘이 세다하여 자신의 힘대로만 한다면 다른 한 쪽은 넘어진 상태로 끌려가기 마련이다. 실제로 천국사역은 관계적인 성격을 띠었다. 머리도 잘 맞아야 하지만 정서적으로도 교감이 되어야 하고, 물리적으로도 조화를 이뤄야 하고, 성령께서도 단비를 때맞춰 내려주셔야 한다. 개인과 집단의 정서와 지능도 향상시켜야 하지만, 성령의 은사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이다. 담임목사가 안소이고 부목사가 바깥 소라면 예수님이 농부가 될 것이리라. 들판에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과 골짜기에 흐르는 물, 같은 목표, 공감 있는 소통, 약자의 발걸음에 발을 맞추는 배려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더욱 비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교회는 몹시 황폐해졌다. 우리 사회가 건국 이래로 실업과 인구부족, 집단이기주의와 황제노조라는 깊은 질병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이, 교회 역시 이와 다르질 않다. 갑 질이란 것이 제도적으로 단단하게 요새화된 곳이 교회이다. 담임목사는 위임하면 평생직이 되는 반면, 부목사나 전도사는 그 교회를 떠나는 날까지 임시직이다. 마치 ‘노예계약’이라 하면 딱 맞는 말이다. 목사 안수가 한동안 움찔하고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 같더니 잠시뿐이다. 안수를 받자마자 내쳐지는 것이 일상이고, 조금 나은 곳은 한 이삼년 사역한 후에 헌신짝처럼 내쳐진다. 목회자의 터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한 교단지가 밝힌 부목사의 실태를 보면 앞이 깜깜하기만 하다. 한 교단에서만 임지를 잃은 무임목사가(2015년 12월 현재) 1500명에 육박한 것이다. 노동 인구가 2,3%만 넘어도 일용직 임금이 형편없이 추락하는데, 오늘날의 목회자의 가치는 사회적으로도 가장 낮은 처지가 된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는 한국교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청 된다. 남아도는 목회예비군 인력을 정예화하고, 단단하게 복음으로 재무장 시키려면 꽤 많은 비용이 들것 같아도 실제로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국교회 지도자 여섯 분이 만나면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담임목사라 하더라도 3년이 지나면 사임을 하는 사례들이 빈번해졌고, 교역자 부인 역시 밤늦도록 일을 해야 하는 이 현실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