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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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가 자기를 속여 동침하고 자식을 잉태한 후 끌려온 그의 과부 며느리 다말에게 한 말이다. 이 세상 어디에 며느리와 시아비가 동침한 경우가 있으며, 그것도 시아비를 속여 자식을 임신하였는데 이 불륜의 며느리에게 “그는 나보다 더 의롭다”고 말하는 윤리와 도덕이 있겠는가? 더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이 여자의 후손 가운데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니, 성경의 윤리는 우리의 인습과 이성을 초월한 신비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고대 이스라엘의 결혼 제도와 혈통의 개념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시형제 결혼에 대한 규정은 고대 근동의 주전 14-13세기의 힛타이트나 주전 15세기 경의 누지 등에서 발견된 문헌에서 발견된다. 이들 문헌에 보면 과부 며느리는 결혼 때에 시아버지가 돈을 지불하고 샀기 때문에 죽은 남편의 재산이며, 남편이 죽은 이후에도 그 여자는 계속 가족의 재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며, 그 여자도 계속 남편의 집에 남아 있으므로 여생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개념으로 시행되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결혼으로 남편의 대를 잇도록 하는 것이 의무이며 남편이 자식이 없이 죽었을 경우 남편의 형제들은 한 골육이기 때문에 남편의 대를 잇는데 있어서 형제는 남편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리하여 아들이 없는 과부는 그의 시부가 정해준 시형제와 결혼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시형제결혼(levirate marriage)에 대한 규정은 신명기 25:5-10에 있으며, 여자는 결혼함으로 남편에게 자식을 낳아주어야 하는 계약적 의무를 더 강조한다.
다말의 남편 엘이 자식이 없이 죽자, 그의 시아버지 유다는 그의 둘째 아들 오난에게 명하여 그의 형수와 동침하게 하였다. 그러나 “오난은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고 그의 형수에게 들어갈 때마다 자기 형에게 씨를 주지 않으려고 땅에 사정하였다”(창 38:9)고 했다. 오난의 형에게 상속자가 없는 경우에는 자기가 당연히 장자로서의 명분과 유산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지만 형에게 상속자가 생길 경우 자기는 여전히 아버지 유다의 둘째 아들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당시의 풍습에 의하면 맏아들은 가문의 대표자가 되고 아버지 재산의 절반을 상속받으나 남은 형제들은 아버지 재산의 남은 절반을 함께 나누어 받았다. 따라서 형에게 자기로 말미암아 상속자가 생길 경우 자기는 결과적으로 손해만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오난은 형수가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의도적인 피임 방법을 쓴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 일을 악하게 보시고 그를 죽이셨다. 이제 다말의 시아버지 유다는 셋쩨 아들 셀라를 그의 큰 며느리와 동침시켜 그의 상속자를 얻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유다는 이미 다말과 동침한 두 아들을 잃었기 때문에 셋째 아들마저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리하여 유다는 셀라를 다말과 동침시키지 않고 오히려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어 셀라가 자라기까지 과부로 살라고 하였다.
여러 날이 지난 후 아내를 잃은 유다는 친구를 찾아가는 도중 길가에서 창기를 만나 동침하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 창기로 변장한 그의 며느리 다말이었다. 다말은 그의 시아버지가 온다는 말을 듣고 계획적으로 일을 꾸민 것이다. 그의 시아버지가 막내 시동생 셀라가 장성하였음에도 자기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다말은 임신하게 되었고, 이 사실이 알려져 다말은 시아버지 앞에 끌려 나와 불에 태워질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 다말은 자기를 임신하게 한 사람이 자기 시 아버지인 것을 증명하는 지팡이와 도장과 끈을 내보였다. 이것을 본 유다가 “그 여자가 나보다 더 의롭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창 38:26)라고 말했다. 유다는 다말이 자기보다 의롭다고 말한다.
유다가 시아비를 속이고 임신까지 한 이 며느리의 패륜적인 행위를 가리켜 자기보다 의롭다고 칭찬을 하고 있다. “그 여자는 나보다 의롭다”(26)고 번역하고 있는 데 좀 더 문자적인 번역은 “그 여자의 의는 나보다 낫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이 여자의 “의”란 무엇인가? 우선 다말의 행위를 비난하기 전에 유다가 먼저 다말을 속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다는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며 그의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할 때 까지 과부로 지내라고 명하고 있는 데, 유다는 처음부터 다말을 셀라에게 줄 생각이 없었다(38:11). 유다가 장성할 때까지라고 시간을 정해서 말하는 것을 보면 셀라가 장성하면 줄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셀라가 장성한 후에도 유다는 다말을 부르지 않았다. 다말이 유다를 유혹할 계획을 세운 것은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는데도 그(유다)가 자기(다말)를 그(셀랴)의 아내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14)라고 적고 있다. 다말은 자기 시아버지 유다에게 속은 것을 알았다. 여기서 “보았다”라고 번역하고 있는 히브리어 “라아”()라는 말은 단순히 본다 (to see)는 말이 아니라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유다는 처음부터 다말을 속인 것이다. 따라서 다말이 창기로 변장하여 그의 시아비 유다에게 접근한 것은 유다의 속임수에 대한 보복이라고 할 수 있다. 유다는 다말이 내놓은 유다의 범죄에 대한 모든 증거물 앞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다가 그의 며느리를 향하여 “너는 나보다 의롭다”고 하는 말은 보다 깊은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말은 아내로서 자식을 낳아야 하는 남편에 대한 계약적 의무를 이행하려고 했다. 당대에 결혼은 계약이었다. 유다와 그의 아들 오난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복을 고의적으로 거역하는 행동을 하는 반면, 다말은 보다 적극적으로 아내로서의 언약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이를 믿자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점에서 유다도 다말을 의롭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창조시에 하나님의 뜻은 인간들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세상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다와 그의 아들, 오난은 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거역하고, 자식을 낳지 않으려고 한다. 불의한 것이다. 유다는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창조의 원리로나 불의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다말의 몸에서 베레스에 이어 보아스,  이새, 그리고 다윗을 낳게 하신다(룻 4:18-22). 결국 다말의 후손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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