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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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서는 제임스 부록의 사라왁 선교를 다루어 보았다. 정치와 선교는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비록 사라왁은 영국인에 의해서 지배되었지만 기독교선교는 이러한 정치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발전되어 지기도 한다. 사실 현대선교를 진행하면서 서구의 제삼세계에 대한 정치적 지배는 나름대로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사라왁 선교의 역사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챨스 존슨 부룩(Charles Johnson Brooke)은 제임스 부룩의 조카로 1852년 처음으로 룬두(Lundu)지역을 다시리는 통치자로 임명받으면서 제임스 부룩을 도와 사라왁을 다스렸다. 1863년 제임스 부룩은 건강악화로 영국으로 돌아가고 1868년 제임스 부룩이 세상을 떠나면서 챨스 부룩이 공식적으로 사라왁의 왕으로 임명받아 1917년까지 49년동안 사라왁의 제 2대 White Rajah로 통치하게 된다.
사라왁의 통치권을 공식적으로 이양 받던 1968년은 13년이나 지속되는 이반족과의 대립도 1857년 중국인들의 반란도, 그 다음해인 1859년 말레이족의 반란도 모두 제압되고 정치적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였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많은 여려움을 겪는 시기였다. 일반적으로 챨스 부룩의 통치를 세단계로 나누어 보는데 첫 번째는 처음으로 룬두지역을 다스렸다. 1852년부터 공식적인 왕으로 임명되기 전인 1865년까지로 이시기는 헤드헌터(Head Hunter)들을 소탕하는 시기였고 두 번째 단계는 1865년부터 1878년까지 다약족을 이용해 나라의 반란을 진압하는 단계였고 세 번째는 1878년에서 1917년까지로 나라를 어지럽혔던 모든 위협들을 종식하고 정치적 주도권을 취득하고 경제적 성장을 도모하는 단계이다. 결국 제임스 부룩과 챨스 부룩이 사라왁을 통치한던 시기에 지금의 사라왁의 영토까지 확장하게 되었고 이는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독교 선교에 대한 그의 정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는 교회와 정부는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교회가 점점 그 세력이 커짐에 있어 정부에 도전하는 단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고 정치와 종교를 완전 분리하여 정치는 정치에 종교는 종교에만 몰두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로, 무슬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제임스 부룩과 다르지 않았다. 말레이족에 대한 개종에 대해서는 사라왁 정부가 종교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보았으며 기독교 선교로부터 말레이족들이 개종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나갔다. 셋째로 챨스 부룩은 말레이족과는 달리 다약족의 개종에는 좀 더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마치 제임스 부룩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을 안정화하는 수단으로 기독교 선교를 이용한 것처럼 다약족의 기독교로의 개종은 그의 정치적 권한을 더욱 견교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넷째로, 제임스 부룩 시기에는 사라왁의 선교가 성공회 교단에만 허락되어진 반면 챨스 부룩 시대에 이르러서는 선교의 문이 가톨릭과 감리교까지 확장되었다. 이에 챨스 부룩은 각 교단별로 지역을 할당하여 선교지를 배분하였다. 이는 챨스 부룩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사라왁 전역에 기독교가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가톨릭이 사라왁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81년이며 1879년에서 1981년 3년동안 성공회 주교의 공백시기였다. 챨스 부룩은 성공회 주교의 공백이 길어지고 라장강 유역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가톨릭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챨스 부룩 정부는 가톨릭 선교회가 라장강 유역의 선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자 성공회교단에게는 사라왁의 제1, 2 구역(First and Second Division), 그리고 가톨릭은 제3구역(Third Division)을 할당하였다. 하지만 가톨릭교단의 본부와 학교는 제 1구역의 쿠칭지역에 설립하도록 허락하였다. 한편 천여명의 기독교인 푸짜오 중국인(Foochow Chinese)들이 라장강을 따라 제 3 구역인 시부지역으로 이주하게 되고 제임스 후버(James Hoover)선교사가 파송을 받아 시부로 들어와 이들을 돌보게 된다. 결국 챨스 부룩은 가 감리교단을 중국인들을 위해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고 그것을 통해 농업발전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챨스 부룩은 사라왁의 기독교 선교에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무슬림 선교를 지양하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제임스 부룩처럼 기독교 선교를 한낱 구제와 교육 사업등 사회사업을 통한 구제로 국한시키며 도전적이며 열정적 복음 전도는 회피했던 반면, 챨스 부룩의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여러 기독교 교단의 선교사업이 허용되었고 자칫 주(州)수도인 쿠칭지역에 밀집될 수 있던 선교의 터전을 구역을 할당함으로 인해 사라왁의 내지 지역까지 복음의 확산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큰 공헌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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챨스 존슨 부록 지배아래의 사라왁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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