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개혁자 인품의 모델-아브라함
서언
성경이 말하는 ‘개혁’의 진의는 무엇인가? 개혁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말틴 루터는 무엇을 개혁한 것인가? 성경에서 벗어난, 성경의 이론과는 틀린,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른 형태로 꼴 지어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경적 오류에 대하여, 특별히 ‘면죄부 판매’에 대하여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나 신앙과 관련된 개혁이란, 성경의 원칙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성경이란 인간의 건강과 행복과 영생을 위하여 기록된 책이며, 그 책의 모든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그 책은 일반 서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의 내용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문제인 죄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마침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영원히 함께 살게 되는지 그 원리와 절차를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개혁이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나서 굴곡지고 왜곡된 상태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원래의 모습대로 변형 혹은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개혁자가 되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기록해 놓은 성경의 원칙에 충실하여 하나님과 건전하고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인권’을 외치려면 자신이 먼저 남의 인권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면 자신이 먼저 깨끗해야 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종교개혁, 혹은 신앙개혁을 하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
홍수 심판 이후에 태어난 노아의 후손들은 한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경건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 조상들이 전해주는 홍수 이야기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고 마치 먼 나라의 전설처럼 들려지는 시대가 되었을 때에 사람들은 다시 죄악적 성향에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일삼게 되었는데, 바벨탑 사건이 그 시대의 상황을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창 11:4)기 위하여 벽돌을 굽고 거대한 성채를 쌓으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가소롭고 어이없는 일을 자행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부들의 언어를 혼잡시키는 방법으로 공사를 중단시키시고 사람들을 홑어 놓으셨다. 그리고 드디어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려 보내시기 위하여 한 씨(혈통)를 선택하셨는데, 그 선택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를 선택하여 불러 내셨는가?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창 26:5).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죄악에 빠져 방종하는 인생을 살고 있을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라서 경건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손님 대접하기를 즐거워하였고 그의 종들에게 후대하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인품과 신앙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비교적 길게 기록되어 있어서 그의 인품과 신앙의 면면을 여다 볼 수 있는 꽤 정확한 자료들이 풍부한 편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목적지도 제대로 모르고 출발할 때에 그의 조카 롯도 함께 따라 나섰다. 후일에 그들의 재산이 증가하여 짐승들이 큰 떼를 이루고 종들의 수가 많아지고 살림살이가 커져서 함께 기거하기가 어렵게 되어 불가피하게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조카 롯에게 건넨 관대한 제안은 오늘날까지,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생들에게 여전히 귀감이 되는 말씀이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세상으로 내려오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하늘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게 되었고, 소돔 고모라의 멸망 계획을 듣게 되었다. 그 때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소돔의 거민들을 살려내기 위하여 하나님과 나눈 대화는 유명한 일화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창 18:32) 라고 말하면서, 소돔에 의인이 열 명 정도라도 있다면 그들을 구원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탄원하는 모습은 마치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표상하는 듯 하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을 때에 헷 사람들에게 매장지를 구입하려고 하였다. 그 때에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는 곳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들어야 할 평가이기도 하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창 23:6)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교회 성도들이 사회를 개혁할 명분을 상실하고 신뢰를 잃어버린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살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당대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헷 족속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무상으로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창 23:7)하면서 반드시 값을 지불하고 매장지를 사겠다고 간청하였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태도는 ‘선물’을 넘어 ‘뇌물’까지 받으려고 애쓰는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회초리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매장지를 구입하여 뒷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개혁자의 조직력과 정직성
아브라함 당시의 주변 나라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그 대적들과 전쟁을 하게 되었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던 소돔의 왕과 고모라 왕도 그 전쟁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패망하였다. 결국 롯의 가족과 재산까지 모두 적군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평소에 자기 집에서 훈련시키고 예비해 두었던 군사 318명을 거느리고 적군을 급습하여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창 14:16)다. 참으로 놀라운 성과였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았던 아브라함의 준비성과 조직력을 보게 된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군사력과 전략이다. 이렇게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바로 개혁의 근본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정직성과 고결함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아브라함 덕분에 목숨과 재산을 다시 찾게 된 소돔 왕이 너무나도 감사한 나머지 아브라함에 이렇게 제안한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창 14:21). 이 때에 아브라함이 취한 태도는 후대의 개혁자들이 영원히 간직해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창 14:22)한다고 전제하고, 실오라기 하나 거저 취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재물과 명예에 탐닉하며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인생들에게 얼마나 찔림을 주는 말씀인가? 이것이 바로 개혁자의 인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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