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지난 6월 9일 서울영동교회에서 개최한 6월 월례회에서 유관지 목사가 발제한 대북지원 ‘교회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일부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주
이 문제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갈등을 촉발시킬 도화선이 되기 쉬운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는 성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성서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고 손해가 되더라도 순종해야 한다.
성서에는 ‘화해’라는 말이 두 번, 화해와 비슷한 말인 ‘화목’이 21번 나온다.(대한성서공회의 ‘성경읽기’에는 ‘화목’이라는 말이 101건으로 되어 있으나, 그 중 80건은 ‘화목제’ ‘화목제물’이다.) 빈도는 그리 높지 않으나 산상보훈에 있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마5: 23˜24)라는 말씀은 이 문제의 황금률이다.
인도적 지원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 17~21)라는 말씀이 또한 그러하다.
김병로 교수(서울대)는 최근의 한 포럼에서, 성경에서 답을 찾는 문제의 폭을 넓혀, “분단 상황 속에서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교회가 반응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분단을 어떻게 성경적으로 해석하면서 한국교회가 사회에 영향을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우리의 과제를 제시했다.(「기독교타임즈」 5월 20일)
‘연합’ 문제의 진보를 이룰 계기
통일선교 운동에서 가장 요청되면서도,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연합’이다. 2015년에 분단 70년과 관련된 행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 ‘통일선교의 컨트럴 타워 구축’이라는 이름으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몇 차례 있었으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지금은 통일선교 운동의 새 전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때 한국교회는 연합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숭실대학교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의장 이철신 영락교회 목사)는 지난 5월 11일,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이해와 한국교회의 준비'라는 주제로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이사포럼을 열었는데, 발제자로 나온 강인덕 박사(전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정책 방향의 변화가 예고된 현 시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문 대통령이 밝힌 인도적 지원과 협력 강화 등의 대북 정책이 한국교회가 민족복음화를 추진하는 부분에 있어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한국교회가 이럴 때일수록 과거와 같은 개 교회 중심 대북 선교 전략에서 벗어나 연합을 통한 선교 확장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경청해야 할 발언이다.
북한을 향한 문이 조심스럽게 열릴 것으로 예측되는 지금을 연합 문제의 진보를 이룰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용어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대북지원’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 이 모임의 주제(남북의 화해와 대북 인도적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에도 이 말이 들어 있다.
용어는 그 일의 성격을 규정하고 인식을 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을사보호조약’과 ‘을사늑약’, ‘동학란’과 ‘동학농민혁명’, ‘5․16 혁명’과 ‘5․16 군사정변’ 등의 예를 보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지원’은 주고 받는 관계이다. 자칫하면 요즘 자주 말썽이 되는 ‘갑을관계’가 되기 쉽다. 이런 것을 생각하며 ‘갑갑관계’임을 담고 있는 용어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먼저 ‘대북협력’을 들 수 있다.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 56개가 참여하고 있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약칭 ‘북민협’)는 설립 당시부터 ‘지원’이라는 말 대신에 ‘협력’이 들어간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활동 내용 기록에서는 ‘지원’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대북나눔’이라는 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구제와 봉사’라는 말을 사용해 왔는데, ‘구제’는 ‘나눔’이라는 말이, ‘봉사’는 ‘섬김’이라는 말이 대신 쓰이더니, 이제는 이 말이 정착이 되었다.
천태종은 대북지원을 담당하는 단체의 이름을 ‘나누며 하나되기(Share the World)’라고 정했는데, 이 단체는 2003년 12월에 설립되어, 2016년 1월에 통일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았다.
‘대북섬김’이라는 말도 있다. 송원근 목사(자연빛교회 담임, ACTS 연구교수, 韓鮮통일목회연구소 소장)는 2014년 6월 5일에 열린 ‘쥬빌리통일콘퍼런스’에서 “어떻게 교회가 통일을 살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Ⅱ. 교회의 통일 사역사(使役史)”서 “대북섬김사역기”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한국교회의 통일선교사에서 1990년대가 ‘대북섬김사역기’라는 것이다. 이 말도 좋게 느껴지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느낌도 준다.
방북자들의 언행이 중요하다
통일부는 대북 접촉과는 별개로, 방북 승인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6월 3일) 앞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교계 인사들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NCCK는 통일부의 방북승인을 받으면 실무진과 회원교단 대표 20여 명이 참여하는 방문단을 꾸릴 예정인 것으로 보도되었다.(5월30일)
방북하는 교계인사들의 언행이 중요하다. 겸손함과 신실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진 자의 오만〔猝富根性〕은 절대 금물이다. 다른 기관에 대한 비난, 경쟁의식에서 나오는 말도 그렇다. 그것은 북한측에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대북지원은 북한선교의 한 방편이기도 한데, 북한에서의 직접 전도가 엄하게 금지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방북 크리스천들의 겸손하고 신실한 언행이 좋은 간접선교 방법이 된다.
과거 방북이 많이 행해지고 있을 때 이 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음을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대북협력 NGO 실무자로 교계 인사들, 또는 후원 인사들과 함께 방북을 했을 때, 북한측 참사들보다 같이 간 분들의 언동에 더 많은 신경이 쓰였다. 한번은 친숙해진 북한측 참사로부터 밤에 호텔 앞뜰에서 이에 대해 매서운 충고를 들은 일도 있다.
맺는 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요즘은 북한 주민들의 기아 현상에 대한 보도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 려명거리 건설 등 북한의 화려한 면이 부각되는 보도를 자주 대하게 된다. 탈북민들의 탈북동기도 생계형 탈북보다는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탈북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이제 해결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북한은 계속해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그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주민들의 생활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남한은 지금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올해 봄 가뭄으로 모내기 농사에 어느 해보다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지난 1일, 올해 봄철에 가뭄이 계속된다고 언급하며 가뭄을 극복하고 모내기를 제때에 끝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고 한다.(연합뉴스 6월 4일)
작년 가을에 강화도 제적봉 평화전망대를 찾았을 때, 해설사는 “여러분, 오시면서 추수가 한참인 것을 보셨지요? 봄가뭄이 심했는데 강화도는 소방차들을 동원하고 여러 방법으로 모를 내서 순조롭게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너편 북한 땅은 지금까지 추수하는 광경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강화도 건너편은 ‘연백벌(평야)’라고 해서 북한이 자랑하는 곡창지대 가운데 하나이다.
대북인도적지원의 시급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이런 것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성서에서 답을 찾자
남북의 화해와 대북지원 문제는 지금도 말하기 껄끄러운 문제이다. ‘호국과 보훈의 달’이며,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라는 노래를 부르는 6․25가 들어 있는 6월에는 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이 문제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갈등을 촉발시킬 도화선이 되기 쉬운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는 성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성서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고 손해가 되더라도 순종해야 한다.
성서에는 ‘화해’라는 말이 두 번, 화해와 비슷한 말인 ‘화목’이 21번 나온다.(대한성서공회의 ‘성경읽기’에는 ‘화목’이라는 말이 101건으로 되어 있으나, 그 중 80건은 ‘화목제’ ‘화목제물’이다.) 빈도는 그리 높지 않으나 산상보훈에 있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마5: 23˜24)라는 말씀은 이 문제의 황금률이다.
인도적 지원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 17~21)라는 말씀이 또한 그러하다.
김병로 교수(서울대)는 최근의 한 포럼에서, 성경에서 답을 찾는 문제의 폭을 넓혀, “분단 상황 속에서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교회가 반응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분단을 어떻게 성경적으로 해석하면서 한국교회가 사회에 영향을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우리의 과제를 제시했다.(「기독교타임즈」 5월 20일)
‘연합’ 문제의 진보를 이룰 계기
통일선교 운동에서 가장 요청되면서도,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연합’이다. 2015년에 분단 70년과 관련된 행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 ‘통일선교의 컨트럴 타워 구축’이라는 이름으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몇 차례 있었으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지금은 통일선교 운동의 새 전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때 한국교회는 연합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숭실대학교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의장 이철신 영락교회 목사)는 지난 5월 11일,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이해와 한국교회의 준비'라는 주제로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이사포럼을 열었는데, 발제자로 나온 강인덕 박사(전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정책 방향의 변화가 예고된 현 시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문 대통령이 밝힌 인도적 지원과 협력 강화 등의 대북 정책이 한국교회가 민족복음화를 추진하는 부분에 있어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한국교회가 이럴 때일수록 과거와 같은 개 교회 중심 대북 선교 전략에서 벗어나 연합을 통한 선교 확장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경청해야 할 발언이다.
북한을 향한 문이 조심스럽게 열릴 것으로 예측되는 지금을 연합 문제의 진보를 이룰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용어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대북지원’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 이 모임의 주제(남북의 화해와 대북 인도적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에도 이 말이 들어 있다.
용어는 그 일의 성격을 규정하고 인식을 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을사보호조약’과 ‘을사늑약’, ‘동학란’과 ‘동학농민혁명’, ‘5․16 혁명’과 ‘5․16 군사정변’ 등의 예를 보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지원’은 주고 받는 관계이다. 자칫하면 요즘 자주 말썽이 되는 ‘갑을관계’가 되기 쉽다. 이런 것을 생각하며 ‘갑갑관계’임을 담고 있는 용어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먼저 ‘대북협력’을 들 수 있다.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 56개가 참여하고 있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약칭 ‘북민협’)는 설립 당시부터 ‘지원’이라는 말 대신에 ‘협력’이 들어간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활동 내용 기록에서는 ‘지원’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대북나눔’이라는 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구제와 봉사’라는 말을 사용해 왔는데, ‘구제’는 ‘나눔’이라는 말이, ‘봉사’는 ‘섬김’이라는 말이 대신 쓰이더니, 이제는 이 말이 정착이 되었다.
천태종은 대북지원을 담당하는 단체의 이름을 ‘나누며 하나되기(Share the World)’라고 정했는데, 이 단체는 2003년 12월에 설립되어, 2016년 1월에 통일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았다.
‘대북섬김’이라는 말도 있다. 송원근 목사(자연빛교회 담임, ACTS 연구교수, 韓鮮통일목회연구소 소장)는 2014년 6월 5일에 열린 ‘쥬빌리통일콘퍼런스’에서 “어떻게 교회가 통일을 살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Ⅱ. 교회의 통일 사역사(使役史)”서 “대북섬김사역기”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한국교회의 통일선교사에서 1990년대가 ‘대북섬김사역기’라는 것이다. 이 말도 좋게 느껴지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느낌도 준다.
방북자들의 언행이 중요하다
통일부는 대북 접촉과는 별개로, 방북 승인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6월 3일) 앞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교계 인사들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NCCK는 통일부의 방북승인을 받으면 실무진과 회원교단 대표 20여 명이 참여하는 방문단을 꾸릴 예정인 것으로 보도되었다.(5월30일)
방북하는 교계인사들의 언행이 중요하다. 겸손함과 신실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진 자의 오만〔猝富根性〕은 절대 금물이다. 다른 기관에 대한 비난, 경쟁의식에서 나오는 말도 그렇다. 그것은 북한측에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대북지원은 북한선교의 한 방편이기도 한데, 북한에서의 직접 전도가 엄하게 금지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방북 크리스천들의 겸손하고 신실한 언행이 좋은 간접선교 방법이 된다.
과거 방북이 많이 행해지고 있을 때 이 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음을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대북협력 NGO 실무자로 교계 인사들, 또는 후원 인사들과 함께 방북을 했을 때, 북한측 참사들보다 같이 간 분들의 언동에 더 많은 신경이 쓰였다. 한번은 친숙해진 북한측 참사로부터 밤에 호텔 앞뜰에서 이에 대해 매서운 충고를 들은 일도 있다.
맺는 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요즘은 북한 주민들의 기아 현상에 대한 보도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 려명거리 건설 등 북한의 화려한 면이 부각되는 보도를 자주 대하게 된다. 탈북민들의 탈북동기도 생계형 탈북보다는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탈북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이제 해결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북한은 계속해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그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주민들의 생활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남한은 지금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올해 봄 가뭄으로 모내기 농사에 어느 해보다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지난 1일, 올해 봄철에 가뭄이 계속된다고 언급하며 가뭄을 극복하고 모내기를 제때에 끝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고 한다.(연합뉴스 6월 4일)
작년 가을에 강화도 제적봉 평화전망대를 찾았을 때, 해설사는 “여러분, 오시면서 추수가 한참인 것을 보셨지요? 봄가뭄이 심했는데 강화도는 소방차들을 동원하고 여러 방법으로 모를 내서 순조롭게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너편 북한 땅은 지금까지 추수하는 광경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강화도 건너편은 ‘연백벌(평야)’라고 해서 북한이 자랑하는 곡창지대 가운데 하나이다.
대북인도적지원의 시급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이런 것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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