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9(월)
 
k-a.jpg
 한 여인이 고독을 달래고자 애완동물 가계에서 앵무새를 샀다. 하지만 이틀 후 화가 잔뜩 난 채 가계에 나타났다. ‘앵무새가 말을 한마디도 안해요’ 주인이 말했다. ‘거울을 넣어주세요. 앵무새는 거울로 자기 모습을 비쳐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여인은 거울을 사 집으로 갔다. 그런데 거울을 비춰주어도 앵무새는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가게를 찾았다. ‘앵무새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을 좋아하니 사다리를 넣어주세요’ 그녀는 주인의 말대로 사다리를 사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날 여인은 또 가게에 나타났다. 앵무새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그네를 사다주세요. 앵무새는 그네를 타고 한가로이 노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다음날 여인은 가게 주인에게 앵무새가 죽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주인은 여인을 위로하며 말했다. ‘정말로 안됐습니다. 혹시 앵무새가 죽기 전 무슨 말을 하던 가요?’ 그러자 여인이 말했다. ‘이곳에 모이를 파는 곳은 없는가요?’ 앵무새는 죽어가면서 왜 모이를 찾았을까? 모든 생명체는 영양분을 필요로 하며 그 영양분으로 성장하고 생명을 유지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에게 있어서 육신의 양식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육체적인 식욕 이상의 욕구를 가진 존재이며 인간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존속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옛날에는 선지자와 예언자들을, 오늘 날에는 목회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요 21:15~17). 고로 목회자들은 바른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한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이기 때문이다(벧전 2:2).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양식으로 묘사한다(벧전 2:2). 따라서 목회자는 좋은 설교를 하기 위해서 충분히 준비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조직이나 기구 따위로 영혼을 살찌우게 못 한다. 목회자의 설교 속에 영혼에 필요한 영양가가 충분히 함유돼 있어야만 성도들이 건강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갈 수 있다. 좋은 설교란 문장력이나 매끄러운 전달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왜곡됨 없이 전달되는 설교, 성도들의 영혼을 깨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는 설교, 이것이 좋은 설교이다.
목회자가 설교준비에 소홀하거나 설교보다 다른 일에 더 관심이 있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 유기이다. 정치도, 구제도 중요하며 여가를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설교준비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설교의 내용과 수준에 따라서 우리 시대의 영적 상태와 교회의 위상 사회의 미래 등이 좌우된다는 점을 목회자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간혹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는 분들도 있다. 예컨대 ‘목회자의 중심은 말씀보다는 인간관계’라고 하면서 설교는 다른 사람의 설교집을 적당히 베끼거나 옛날 원고를 다시 활용하면서 뒷전으로 두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는 일에만 정신을 쏟는다. 설교가 부실하다는 지적이라도 있으면 소위 특별식을 먹인다면서 유명한 강사를 초빙하는 것으로 모면한다. 또 지나치게 사회 참여와 봉사를 강조한 나머지 설교를 온통 정치, 사회적인 내용으로 채우면서 말씀은 결론에서 읽는 둥 마는 둥 지나친다. 말씀을 등한시 한다면 교회에서 진정한 구원과 성령의 역사는 물론 올바른 사회 변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러므로 모든 사역자들은 먼저 하나님께서 자신을 말씀의 종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말씀으로 성도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여타의 것들과는 달리 창세전에  예비하시고 감추어둔 것이요. 따라서 오직 은혜의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비밀 중의 비밀이기 때문이다(고전 2:7).
그리고 목회자들이 주님의 은혜의 사명을 제대로 행하려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기 위한 집중적인 말씀의 연구와 묵상은 말할 것도 없고 성령의 조명을 위한 부단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어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섬세한 기술도 있어야 한다. 성도들도 말씀의 사역자에게 하나님의 그 계시에 대한 증거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같은 말씀이라도 보다 재미있으면 좋고 외모도 보기에 좋은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목회자들은 말씀의 종이지 개그맨이나 패선 모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역자들 역시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부분적인 약점과 부족한 면을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목회자들에게 말씀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하며 문제를 일으켜서도 안되고 목회자들 역시 이러한 기대에 맞추기 위해 말씀과 진리를 넘어서도 안 된다. 모든 성도와 목회자들은 오직 말씀과 이에 합한 거룩한 삶을 서로에 대한 기준으로 삼아 서로 위로하며 격려함으로써 어찌 하든지 이 땅에 온전한 하나님의 영광만이 증거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앵무새 이야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