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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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대게 서로 앙숙이 되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 하지 않는 본능이 있다. 이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살다보면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관계에 금이 가는 때가 종종 있다. 또 금이 틈이 되고, 조그만 틈이 더욱 벌어져 도저히 회복될 수 없어 결별을 선언하기도 한다. 나빠진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더라도 기미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참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람만 보아도 가슴이 덜컹 내려않고 죄진 것도 없는데 찜찜하다. 그래서 회복하려고 성급하게 말을 붙였다가 더 틈이 벌어지기도 한다. 독자들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있듯이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첫 사역을 잘해야 한다. 기본 주춧돌이 이상하게 놓이면 그 위에 탑을 높게 쌓을 수 없다. 또 쌓는다 해도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게 되면 곧 무너진다. 때문에 주춧돌이 중요한데 인간관계를 바르게 하기 위한 주춧돌은 바로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에서부터 바른 인간관계는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가 위축되는 가장 근본 이유는 ‘내’가 ‘너’ 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생각, 성격, 학력, 문화, 습관, 언어가 다를 수 있는데 그 차이로 내가 당신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면 어찌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호감이 있어 곁에 갔다가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상처받고 돌아오지 않겠는가. 고로 상대와 자신을 동등하게 생각하고 존중해야만 관계가 바로 유지될 수 있다. 이것이 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기초다. 말로만 서로 존중하라는 뜻이 아니다. 존댓말을 쓰는 것보다 먼저 상대를 나만큼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한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도 이를 무시하면 분명 관계에 틈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상대를 나와 동등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극단적인 개인주의에 빠져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또 느끼는 대로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 한다. 누가 뭐래도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말이다. 절대적 기준이 ‘나’ 이다. 어른이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도 당신이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바라보거나 따진다. 한마디로 세상의 중심이 ‘자신’ 이 된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기준을 정해 놓고 그 안에서 행하는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정당화 한다. 안타깝다. 더불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뤄야 할 사람들이 자기 고집만 세운다. 예컨대 직장, 학교, 사회, 민족, 국가, 심지어는 가정마저도 자기중심적인 기준을 세우고 그것이 정의라고 고집 한다. 자랑은 아니더라도 절대 굽히는 법이 없다. 그래서 공동체는 금이 가고 질그릇처럼 깨진다. 큰 문제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 싸우고 심지어는 소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실로 주님의 몸을 무너지게 할 수 있는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한다. 그리스도인(Christian) 이라는 말은 원래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 시작됐는데 이는 당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섬기는 무리라는 의미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을 가리킬 때 사용했던 특수 용어였다.(행11:26) 즉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 어떠한 우상이나 황제도 숭배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고 섬기는 것을 보며 ‘그리스도에 속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이라는 의미로 그들을 가리켰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나 지금이나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 위해서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오직 그리스도만 믿고 따르며 섬기는 삶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섬기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마22:39)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 증표가 되기 때문이다(요일4:21).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미국에 교환 교수로 있던 집사님이 한국에 돌아와 친구 성도들에게 미국 체류 중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집사님이 언젠가 미국인 동료교수의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놀란 것은 자기를 초대한 교수가 그 날을 위해 한 달 전부터 세심하게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그 교수는 자기 한 사람을 초대하기 위해 벽난로에 피울 숯을 직접 장작을 패 준비했는가 하면 자녀들에게도 한국 손님이 오시니 선물을 준비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드디어 집사님이 방문하자 주인 교수 내외는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숯불을 피우고 자녀들로 하여금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며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집사님은 지금 까지도 그처럼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며 두고두고 그 일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하며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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