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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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마태복음> 19:24). 여기서의 부자는 물욕에 가득찬 부자를 말합니다. 곧 맘몬의 노예가 된 자들을 말합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축복이지만, 맘몬의 노예에게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는 방해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이 주신 물질을 잘 다스리는 청지기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자녀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베드로전서> 4:8-10).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달란트는 창작입니다. 새벽마다 내리는 이슬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감을 주십니다. 그 영감으로 아침을 열고 묵상을 합니다. 그러면 좋은 글감이 무화과 나무 열매처럼 나의 뇌리에 맺힙니다.
나의 어머니 얘기를 하겠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이십 대에 꿈속에서 웬 노인이 “예수를 믿느냐?”고 물어 본 것을 계기로 믿음을 가진 후, 무려 27년을 새벽 기도를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은 전주 한옥 마을의 ‘경기전’ 뒤쪽의 마당이 넓은 집이었습니다. 88평의 대지에 40평의 예쁜 한옥이 있던 우리집 마당에는 수많은 과실수와 화초들이 심겨져 있었고, 겨울에 눈이 소복히 쌓인 날이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연상케 할 만큼 雪國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툇마루에서 마당까지 발자국을 내 놓고 새벽 기도를 다녀오는 어머니를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기다리면서 나는 천지 가득한 눈발처럼 사랑과 온정이 가득한 고향 풍경을 상상하곤 하였습니다. 나에게 어머니는 세상을 헤쳐 갈 수 있는 원기였고, 주춧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한때 중풍으로 쓰러지셨을 때에는 매일 한 시간씩 어머니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간병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효심 덕분인지 어머니는 내가 성년이 되어서도 아낌없는 사랑을 퍼 부어 주었습니다. 내가 출근할 때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대문 앞에 서서 아들의 안녕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내가 연로하신 부모님의 응급 상황에 대비하여 승용차를 구입하였을 때에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벽마다 몸소 세차를 해 주었습니다. 내가 청년 시절 주일학교 교사로서 열성을 다하여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새벽 기도와 사랑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온정과 화평이 가득한 그 나라를 상상하며 나는 주님 앞에서 예쁜 모습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찬양대에서 노래할 때면 주앞에서 예쁜 짓을 통해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예쁜 표정도 지었고, 노래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서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는 일상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이라면 내 앞에 놓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까 하는 기도와 교제가 이루어졌습니다. 내 앞에 주어진 시간을 주님은 어떻게 운용하시겠습니까. 주님이라면 이 시간에 수필을 쓰실까요, 평론을 쓰실까요. 그리하여 수필을 쓰라 하면 수필을 쓰고, 평론을 쓰라 하면 평론을 썼습니다. ‘수필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까요?’ 등으로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나의 삶에 동행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어머니가 나를 위해 하신 기도처럼, 나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고,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느끼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죄문제로 인한 고뇌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성령이 함께 동행하심을 느끼는 아이들이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먼저 주님 앞에서 신실해지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주님 앞에서 행동하는 나는 시인들 앞에서 몸시 공연도 멋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김동규 노래의「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멋진 표정으로 부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는 시늉도 해 봅니다.  무용이 끝난 후에는 남저음의 목소리로 자작시를 읊어 봅니다.  
“도둑이야 소리치면 바보가 되는 도시/ 걸망 지고 오솔길로 차마 들지도 못해/ 어설픈 미망의 순수 말뚝에다 묶고 있다.// 산과 산이 이어진 우뚝한 등성이/ 햇빛은 그런 곳에 내려앉아 노닥거리고/ 단단한 고백의 숲에 머리 풀고 살고 싶다.// 혈색 좋은 아이의 부라리는 저 눈망울/ 모든 것이 가능한 만물상을 띄워 놓고/ 후미진 그늘을 오르며 산의 흉내 내고 있다.”( 졸시, 「자연」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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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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