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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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된 후 나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이 있다면 고독을 즐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명퇴 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하루 반나절을 사색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고 쓸데없는 짓으로 건강을 해칠지 모른다고 염려하지만, 사색에는 나만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혼자서 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 보거나, 사건 현장을 더듬어 나가는 추리와 상상을 해 보는 것도 겪어 보지 않는 사람은 모르는 크나큰 즐거움입니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의미 없는 잡담을 늘어 놓다가, 날카로운 질문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LA 경찰청의 형사 콜롬보. 드라마 도입부에 살인범이 먼저 밝혀지고, 범인의 완벽한 계획 범죄가 콜롬보에 의해 밝혀지며 사건이 해결되는 형식의 형사 추리물인 <형사 콜롬보>(리처드 레빈슨 등의 각본, 피터 폴크 출연)는 미국 NBC 방송에서 드라마로 1971년 9월 15일부커 2003년 1월 30일까지 방영되었고, 한국에서는 KBS TV에서 1974년 4월 6일부터 9월 28일까지 방영되었습니다.
가령 모 건설회사 부사장이 자신의 아내를 의도적으로 살인하고 건설 현장에 묻은 후 바닥 콘크리트를 쳐 버립니다. 콜롬보는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부사장의 실종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부사장 집의 현관 바닥에서 진주 목걸이로 추정되는 진주를 발견합니다. 콜롬보는 부사장이 일하는 건설 현장을 자주 들러 콘크리트 타설 광경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리고 현장 경비로부터 부사장이 밤에 들른 적이 있다는 목격담을 확보합니다. 물증을 확보한 콜롬보는 부사장이 살인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그의 집에 들릅니다. 현관에서 부사장에게 두 사람 사이의 부부 관계가 최근 들어 좋지 않았다는 이웃 주민의 얘기를 하면서, 현관 우산 꽂이대에 있던 우산에 자신이 증거물로 가지고 있던 진주를 톡 쳐넣습니다. 얘기 도중 부사장이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 보라고 하자, 슬쩍 우산을 치켜듭니다. 그러자 진주 한 알이 바닥에 떨어지고, “이게 증거죠.” 하면서 사건 당일날 부부 싸움이 심하게 있지 않았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콜롬보는 왜 부사장이 콘크리트 타설을 하기 전 날 저녁에 공사 현장에 갔었는가를 묻자, 부사장은 울음을 터뜨리며 자백을 합니다. 이와 같이 후즐근한 바바리 차림으로 건성건성 말하는 듯하면서도, 완벽한 알리바이를 들이대는 사회 저명 인사를 꼼짝 못하게 하는 콜롬보의 끈질긴 추리에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맛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어리숙하면서도 냉철한 판단력으로 악인을 단속하는 드라마 속의 콜롬보는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닮고 싶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우둔하여 평론을 집필하면서 사물에 대한 판단력이 더디긴 하였지만, 끈기 있는 독서 생활로 글의 주제에 걸맞는 논리적인 체계를 구축하여 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아내는 내가 우둔한 데 비하여 무던히 노력하는 편이라고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살아오면서 사람마다 각기 다른 달란트를 조물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달란트를 최선을 다하여 다듬어 나갈 때 좋은 결과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30여 년을 꼬박 글쓰기에 매달렸더니, 최근에는  나에게 어느 정도의 필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교회 연합 신문>에 40개월 이상 수필을 연재해 오고, 여러 문예지에 꾸준히 글을 발표하는 것도, 작가로서의 끈기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강릉에서 H시인협회 세미나 발표가 있었습니다. 김동명 문학관을 돌아보고 점심으로 80여 명의 시인들이 순두부를 맛있게 먹은 후, 세미나 발표장인 녹색체험센터로 갔습니다. 조가비 모양의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세미나장은 확 트인 산야와 더불어 파아란 하늘을 담도 있는 듯 깨끗해 보였습니다. 세미나장은 무대와 조명 시설이 잘 되어 있고,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담한 곳이었습니다. 강릉 출신의 시인들이 시낭송을 하고 난 후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기발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세미나 발표를 굳이 앉아서 할 게 아니라, 서서 하면서 ‘형사 콜롬보’ 흉내를 내고 싶었습니다. 시낭송가들의 낭송이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탁자 앞으로 갔습니다. 가슴 속에서는 ‘형사 콜롬보’처럼 논리적으로 사건을 추리하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1980년대의 현실은 언로가 탄압되는 가운데 위정자의 위선이 만연한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시도 세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개인의 자아를 확대하여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서정주의시, 부조리한 현실에서 위정자의 독재에 항거하는 현실주의시, 다양한 표현 기법으로 현대의 상황을 돌파하려는 모더니즘시 등이 그것입니다. …”.
오 분 이상을 나는 무대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콜롬보처럼 손짓을 해 가며 서두를 이끌어 갔습니다. ‘아, 내 콜롬보 흉내가 성공하였나 보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한 시인이 불쑥 말하였습니다. “앉아서 하세요.” 물론 서서 하든 앉아서 하든 발표하는 건 발표자의 자유지만, 콜롬보 흉내 내기 참말 어렵데요.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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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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