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 Ich und Du=I and Thou, I and it) 는 ‘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인식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제기일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다름이 하나 됨을 알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로 향하게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현대문명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간관계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격적 주체인 ‘너’로 보지 않고 도구적 존재, 수단적 존재, 사물적 존재인 ‘그것’으로 본다는 사실을 현실로 알게 하는 말로 ‘나’와 ‘그것’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나’와 ‘그것’과의 관계로 인간은 타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의 인격적 만남인 ‘나’와 ‘너’(I and Thou)의 관계는 관계회복으로 이끈다. 이렇게 마틴 부버는 한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두 겹(나와 너 그리고 나와 그것)의 원초적인 관계성과 그 차이와 중요성을 강조함으로 우리의 삶의 인식에 있어서 생명 살림의 부재현상을 지적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나의 나 된 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은혜가 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함’이라 한다. 부버는 “모든 관계의 연장선은 ‘영원자 너’에게서 만난다”고 한다. 인간은 영원자 너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자기를 완성해 가고 자기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인간과 구별되는 초월자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만날 때 거기서 신앙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 속성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인연(因緣)인 것이다.
나의 나됨은 바울이 말 한대로 당신인 네가 있기에 가능함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너’가 있어야 ‘우리’가 될 수 있다. 고로 우리가 ‘너’는 ‘나’와 만남은 아무런 원인이나 까닭이 없는 우연(偶然)이 아니라 사이를 맺어지는 연줄과 같은 인연(因緣)을 알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여기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고 하지 않는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하신 것이다.
나와 너의 관계는 ‘나’와 ‘너’와의 점 하나의 관계이다. 서로의 사이는 관계이다. 그래서 人間(인간)이라는 말은 서로의 관계를 알게 한다. 함께 사는 삶에서 소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통하는 것은 서로 관계하며 산다는 것이다. 소통은 살림이기 때문에 생명이다. 생명은 살아있음이며 죽음은 살아있음이 없는 것이다.
너와 나 사이의 관계는 너 없이는 내가 없고 나 없이는 네가 없음을 안다. 네가 내 마음으로 들어와서 내 마음이 되고 내가 네 마음으로 들어가서 내 마음이 된다. 이것은 하나의 마음의 상태를 일컬음이다. 서로의 사이에는 들어오고 들어가는 관계의 소통이다. 성서의 전면(全面)은 이 관계에서 수립된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또 하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알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수님은 마음과 목숨,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여 첫째 되는 계명을 지키고, 둘째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여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으로 무슨 일에나 행동의 중요한 지침이 되게 하는 것을 알게 한다. 그 행동의 지침으로써 예수님은 스스로 삶의 자세가 ‘자기 비움’(케노시스)임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첫 번째 출발은 ‘자기 비움’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한다. ‘너’와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자기의 지위와 권세와 위치의 모든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고 내려놓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흔히 사람의 욕심은 그릇이 너무 커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자기를 비우면 사람의 마음의 그릇은 커지고 욕심의 그릇은 작아진다. 여기에 모든 만족과 감격이 찾아 든다. 반면에 자기를 비우지 못하면 마음의 그릇은 작아지고 욕심의 그릇은 커져만 간다. 여기에는 자기만족이 없다. 행복은 여기에 찾아오지 않는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이다. 고로 인간은 만남의 존재이다. 부모를 만나고, 선생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왕을 만나고, 씨앗은 땅을 만난다. 한 생명으로 태어나 만남의 역사는 시작되고 생활의 좋은 살림은 좋은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