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개역성경에 누가복음의 9장 본 문에서 주님의 ‘제자 됨’의 길을 생각해 본다. 누가복음 전체의 ‘제자’라는 말이 누가복음 9장에만 11번 나온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흔히 제자 됨으로 사역이나 목회를 위한 수단으로 생활하는 제자가 아니라 제자 됨의 삶의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본문 9장을 살피게 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삶은 주로 3권의 공관복음서에서 주로 나타난 그 제자가 누구인가를 알게 한다. 제자됨의 선한 의도나 받은 영광보다 더 귀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피게 한다. 제자 됨의 생활은 문화생활의 일부나 시간이 남으면 사역하는 생활이 아니라 제자 됨은 나이(연령) 여하를 막론하고 예수님의 삶이나 하나님의 나라 일을 위해 최우선 순위에 두는 그런 삶으로 생활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예수께서 친히 보여 주시듯이 들짐승이나 날것들보다 못한 노숙자 신세가 되는 길도 열어 보이신다. 57절- 58절에서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제자의 사역(使役) 길을 위해 거처도 없는 생활수단도 없는 그의 삶을 확실히 보여 주심에 인지(認知)하게 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신다. 예수님의 삶은 가르치기 위한 삶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의 스승이요 그 분이 내안에 사심을 사실로 인정하고 순간마다 자기를 인도하시고 해야 할 바를 깨닫게 하신다.
예컨대 바로 그 순간 부싯돌에 부딪치듯이 섬광과 같이 빛나는 광채를 본다. 이는 생명의 삶은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자아, 그분의 인격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디트리히 본 회퍼는 삶을 말하면서 항상 “그분께서 제 안에 계심을 느낍니다. 그분은 순간마다 저를 인도하시고 제가 말하거나 행해야 할 바를 알려주십니다”라고 한다. 아직도 우리 인간들은 생명에 대하여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생명은 삶의 명령을 받아 자기의 삶을 책임 질 줄을 안다. 하나님의 창조는 살아있는 인간을 통하여서 삶을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이 삶의 에너지는 창조 그 자체에 의해서 의지하고 이 삶 조각의 에너지는 우주 에너지에 의해 흡수된다. 창조는 인간에게 어떤 명령도 요구하지 않고 그들의 삶에서 그들의 모양새에서 그의 말씀과 질서를 통해서 창조의 삶의 목적을 갖게 한다. 이 창조는 어떤 모습으로 한정되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의 모습은 자유롭고 기쁘게 삶을 살아간다.
생명은 여타 생명과의 서로 생명작용에 의한 고유한 살림살이가 가능한 개체물질의 총칭으로 정의하고 생명은 모두가 창조적인 삶을 스스로 꾸려 갈 수 있는 무한하고 신비로운 능력인 영 혹은 영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을 대할 때는 목적으로 상관하여야 하지 수단으로 대해서는 아니 된다. 생명은 서로 간에 사랑에 의한 나눔으로 모두가 평등한 생명공동체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생명들이 추구하는 보편타당한 진리는 ‘아름다운 살림살이’이다. 이 ‘살림살이’는 생명의 살림을 조화롭고 건강하게 꾸리는 모습, 그 모양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자기부인은 정상적인 생명으로 생명공동체적 삶을 사는 것이다. 이는 생명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배려가 전제되는 살림의 생명이다. 이 삶은 자신의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에만 집착한 암적 존재로서 이를 죽임의 생명을 말하게 한다.
베드로는 당시에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였고, 그리하여 수제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잘못된 메시아관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을 말렸고 그리하여 사단과 관련된 책망까지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육체의 구원자가 아니라 전인의 구원자였고, 이를 위하여 혼연히 먼저 죽음의 길을 가셨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치르게 하시는 시험은 예수님께서 행하심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시기 위해 오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다.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고통당하시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그분께서 당하실 일에 반대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임을 당하시려고 오셨다는 것과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그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음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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